소설리스트

23화 (23/200)

“네놈들은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런 짓을 하는 거냐?”

당연하지.

자기소개에는 포함하지 않았지만 나는 미래를 아는 사람. 마치 예언자와 같은 사내.

나는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삼합회 아니냐?”

“…… 이 새끼가! 뭔 개소리냐!”

음? 아니라고?

검은 정장의 사내는 황당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정색하며 말했다.

“우리는 흑룡회 소속이다.”

“흑룡회?”

“그래 너희도 들어보았겠지.”

“…….”

뭐지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조직은?

나는 고개를 돌려 이등항해사를 바라보았지만 그도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이등항해사가 알 가능성이 사실 없긴 했다.

전생에 찰리는 삼합회가 중개하는 마약을 운반하다 검거되었다. 나는 당연히 이 일에도 삼합회가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과는 달랐던 것이다.

그는 우리가 대답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자 겁을 먹은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이제 와서 흑룡회의 이름을 들으니 겁을 먹은 것이냐?

“…….”

“네놈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것이냐? 싱가폴에서 우리 흑룡회를 건드리면 어찌 될지 모르지 않을 텐데?”

“…….”

모른다.

사실 애초에 흑룡회도 모르는데 흑룡회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 리가 없질 않은가?

내가 묵묵부답하자 흑룡회의 간부로 보이는 검은 정장의 사내가 의기양양해졌다.

“대답을 못하는 걸 보니 이제야 누굴 건드린 것인지 알게 된 모양이군”

“…….”

“그래 이제야 네놈들이 얼마나 무모한 짓을 한 것인지 알겠냐? 크크크. 그래 이제야 겁을 먹은 것이냐?”

“…….”

“그나저나 네놈들은 왜 이곳까지 온 것이냐?

신난 표정이네.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는 한참 혼자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범죄조직의 간부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게감이 없어 보였다. 굉장히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었기 때문.

나는 그의 수다를 더 이상 듣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찰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난 그저 동료를 데리러 왔을 뿐이다.”

* * *

장보고와 김호영이 창고에 들어섰을 때부터 이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살펴보는 사내가 있었다.

장보고와 흑룡회는 알지 못했지만 이 창고의 2층 후미진 곳 구석에 미리 잠입해서 몸을 숨기고 있던 사내들이 있었던 것이다.

정장을 입은 두 명의 사내가 몸을 숨긴 채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창고에 나타난 장보고가 소란을 피우자 흥미로운 표정으로 장보고와 김호영을 지켜보았다.

이들은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하하. 웃기는 놈들이군. 선원이라고?”

“저기 무릎을 꿇고 있는 놈을 데리러 왔나 봅니다? 뱃놈들의 의리 뭐 이런 거 아닐까요?”

“뱃놈? 내 아버지도 배를 타셨다는 이야기를 했던가?”

“아, 바다사나이들의 의리를 말한 겁니다. 헤헤헤.”

“크크크. 제법 용기가 있는 놈들이군.”

“맞습니다. 바다사나이들의 의리가 보기 좋군요. 헤헤헤. 형님, 그런데 어떻게 할까요? 일반인들이 끼어 있으니 아무래도 오늘은 일을 벌이기에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이렇게 좋은 기회가 다시는 없다. 계획대로 그대로 실행한다.”

“네, 알겠습니다.”

“대기하고 있다가 내가 신호하면 들어오도록.”

“네, 형님.”

둘 중 수하로 보이는 사내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아직도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사내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장보고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흐흐흐. 동료?”

동료를 구하러 왔다는 나의 말에 흑룡회의 간부인 사내가 실소를 흘렸다.

“그래, 나는 네놈들에게 빼앗긴 동료를 되찾으러 왔을 뿐이다!”

찰리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써(Sir), 왜 여기까지......”

그의 표정은 오묘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흑룡회 간부는 내 말에 어이없어하며 웃어댔다.

“아! 이놈? 크크크. 동료라니. 이놈은 우리한테 돈을 받아 처먹고도 맡은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한심한 놈이 아닌가? 이놈 때문에 대(大)흑룡회에 대적한다고?”

‘흑룡회는 모른다니까…….”

나는 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나저나 내 동료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찰리의 옷은 발길질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먼지 투성이었다.

검은 정장의 사내는 그저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무슨 짓이라니? 이놈은 우리 손님이다. 돈을 빌려갈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겠다고 하더군. 제 발로 찾아와서 이렇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것도 내 잘못이냐?”

저, 저 뻔뻔한 새끼!

저 놈의 본업은 고리대금 사채업자이었던 모양이다.

면세유인 선박유 밀매도 모자라 폭행사주, 고리대금 사채업이면 대부업법 위반까지 아주 질이 나쁜 놈이 분명해 보였다.

하긴 범죄조직원이니 이 정도의 범죄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몰랐다.

“흥, 돈을 못 갚는다고 사람을 이렇게 대하면 안 되지요.”

“불법이라니? 우리는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빌려준 것뿐인데?”

“그런 고리대금업이 어차피 불법이 아닙니까?”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른 후 찰리를 향해 말했다.

“찰리! 일어나라”

찰리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찰리, 저런 고리대금업은 어차피 불법이니 고리의 이자를 전부 변제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지금까지 갚은 돈이면 원금은 변제하고도 남았겠지.”

“써(Sir), 그,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그래, 그리고 어차피 이놈들도 불법을 저지른 놈들이니 경찰에 신고할 것도 아니잖아. 이제 이 한 놈 밖에 안 남았으니 이놈을 빨리 처리하고 선박으로 돌아가자!”

눈치를 보던 찰리가 흑룡회 간부를 슬쩍 쳐다보더니 살그머니 일어서 내 옆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 삼항사님? 저는?”

부갑판장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흑룡회 간부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사람도 돈을 빌렸습니까?”

“돈을 빌려주다니? 우리가 그분의 고객인데, 그동안 우리가 팔아준 기름이 얼만데 이제와서 못하겠다니?”

“기름이라면 선박유를 말한 겁니까?”

“크크크. 뭐 다 알고 왔으면서 모르는 척 하느냐?”

듣고 있던 부갑판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부갑판장은 급유업체에서 저질의 기름을 선박에 납품하고 선박에서 면세유를 빼돌리는 컨넥션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흑룡회 간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가볼테니 비즈니스 파트너들끼리 이야기를 나눠보십시오.”

“크크크. 건방진 새끼들. 아주 우리 흑룡회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가긴 어딜 가겠다는 거냐?”

흑룡회 간부가 내 말에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응?”

드르륵. 덜컹.

우리가 들어온 창고의 반대편 철문이 열리더니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 50여명이 우르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러면 나가린데......”

TR TADING

- 싱가폴 겔랑 창고

나는 창고 문을 열고 들어선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걸어 들어왔다.

그중 한 사내가 사람이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하더니 흑룡회 간부를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

이들은 흑룡회의 조직원들이었다.

“형님, 죄송합니다. 좀 늦었습니다.”

“괜찮다. 이상한 놈들이 끼어들어서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니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미친놈들이 동료를 구하겠다며 이곳으로 쳐들어왔다.”

“크크크. 정말 미친놈들이군요. 겁도 없이.”

흑룡회의 간부의 말에 조직원들이 크게 웃어댔다.

흑룡회의 간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비릿하게 웃어보였다.

이놈은 나와 쓸데없는 대화를 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부하들이 도착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구나.’

나는 이등항해사를 바라보았다.

제법 기백이 있는 이항사도 상대 숫자가 50여명을 넘어가는 듯 보이자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형, 설마 겁먹었어요?”

“그건 아닌데, 쫌 많긴 하네. 하하하.”

그의 말과는 달리 얼굴에서는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이 제법 긴장한 표정.

“나는 겁먹었는데, 어쩌죠?”

“…….”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형, 아무리 우리라도 3명이서 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려면 좀 버겁긴 하겠죠?”

“왜 3명이냐? 2명 아니냐?”

“음? 형, 나 그리고 찰…….”

이항사가 턱을 들어 올려 찰리를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돌려 찰리를 바라보았다.

일어서서 내 옆에 있던 찰리는 어느새 다시 공손한 자세로 흑룡회 간부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이고 이 새끼야!’

씨맨스클럽에서 내 옆을 지켰던 바다사나이는 어디로 갔니.

나는 씨맨스클럽에서 내 뒤를 지켜줬던 든든한 바다사나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로마도 정복하지 못했던 위대한 선조들의 후예들.

바이킹 전사의 후예로 뿔잔을 들고 다니며 술을 마시는 낭만이 있던 사내. 덴마크의 항해사.

게르만족의 후예로 실신하기 직전까지 맥주잔을 놓지 않던 독일에서 바다사나이.

그리고 갈리아족의 후예로 펜싱이 취미라던 빠르고 날랜 프랑스 국적선사의 선원들까지.

함께 했을 때 우리는 마치 어벤져스와 같았는데. 지금은 나와 이등항해사 둘 뿐.

흑룡회 간부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뒤에는 오십여 명의 사내가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 천재항해사, 동료를 구하기 위해 더 올 사람은 없나? 크크크.”

재수 없는 미소.

“없긴 왜 없냐!”

“음?”

“바다사나이! 어벤져스 어셈블!”

"……."

"……."

나는 용맹한 바다사나이들을 떠올리며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침묵만이 창고를 가득 채웠다.

‘튀어야 되나?’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건 모양 빠지는 일이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순간일지 몰랐다.

‘아니면 사고 한번 쳐버려?’

문제는 이항사였다.

나는 도망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등항해사는 체격이 큰 거구의 사내라 달리기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형?”

“으, 응 보고야.”

“튀어야 될 것 같은데 쫓아올 수 있겠어요?”

“글쎄 자신은 없는데……."

음, 어쩔 수 없네. 일단 협상을 좀 시도해봐야지.

나는 땅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슬며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최대한 공손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말했다.

“대흑룡회 여러분, 그럼 저는 할 말은 마쳤으니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웃기는 놈이군.”

“네?”

“누가 보내준다고 하더냐?”

흑룡회의 우두머리가 웃으며 손을 까딱거렸다.

그의 뒤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한 사내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더니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빠르게 달려와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더니 나를 향해 날라 차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의 발차기는 나에게 닿지 않았다. 제법 성공적인 기습이었지만 그의 뒷덜미를 낚아 챈 사내가 있었던 것이다.

무릎을 꿇고 있던 찰리가 어느새 일어나 그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뭐, 뭐냐?”

찰리에게 뒷덜미를 잡힌 사내가 깜짝 놀라 찰리를 돌아보았다.

찰리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오른팔을 빠르게 휘둘러 팔꿈치로 그의 턱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배에서 야구방망이를 부러뜨릴 때 보여줬던 깔끔한 한수였다.

턱을 가격당한 조직원은 다리가 풀린 듯 쓰러져 내렸다.

“이 비겁한 새끼들이!”

“저 놈들을 다 잡아 죽여라!”

“와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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