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200)

그 이유는 전생에서 찰리가 휘말리게 되는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앞으로 몇 년 후 찰리는 이 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은 해신해운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히게 된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한국의 해경은 FBI로부터 싱가폴을 거쳐 인천항으로 들어가는 선박에 대량의 코카인이 적재되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이 코카인 물량은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향하게 되는 화물이었는데, 마약카르텔은 미국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남미에서 싱가폴,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들어가는 화물선을 이용했다.

싱가폴과 한국이 상대적으로 마약 청청국가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들어오는 선박에 대한 감시가 비교적 덜한 것을 알고 국제적인 마약카르텔이 한국 해운회사의 선박을 마약을 미국으로 반입하려고 한 것이다.

문제는 그 코카인이 발견된 선박이 다름 아닌 해신해운의 선박이라는 것이.

이런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하자 해신해운은 회사의 명성에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해양경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해신해운의 선박을 대상으로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해신해운도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화물을 해신해운의 배에 선적한 것이 아니고 선원들이 운반책으로 가담한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해양경찰의 수사 결과 해신해운의 외국인 선원들 중 일부가 국제 마약조직 카르텔의 운반책으로 오랜 기간 활동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그 외국인 선원들 중 주동자로 지목된 자의 정체가 밝혀지자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이 일의 주모자로 지목된 이가 바로 찰리였기 때문이다.

찰리는 그 유명한 범죄 조직의 삼합회의 마약을 국내로 옮긴 운반책으로 활동한 사실이 수사결과 밝혀졌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찰리가 이일에 개입하게 된 계기는 투병 중인 자신의 여동생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찰리도 처음부터 마약 운반에 가담했던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그저 선박에서 선박유를 빼돌리는 일에 가담했다. 그저 선박유를 빼돌리는 일을 눈 감아 주는 방조범에 불과했다.

옛말에도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고 하질 않았던가?

찰리는 점차 커지는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게 된다.

싱가폴 현지 급유 업체와 짜고 선박유를 직접 빼돌리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나 결국에는 싱가폴 현지의 범죄 카르텔과의 일을 도와주기 시작한 것이다.

전생에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초임 항해사 시절 같이 승선했고, 이후에도 몇차례 승선을 같이 했던 그가 이런 일에 가담되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전생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아직은 개선의 가능성이 있는 상태였다.

지금의 찰리는 어쨌든 본격적으로 범죄에 가담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생애 나는 찰리를 내 동료로 간택한 상태. 그에게 다른 삶을 선물해 주기로 결심했다.

나는 선실의 불을 켰다.

찰리는 어둠 속에서 나타난 사람의 정체가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찰리, 그만 둬. 연료유샘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둬.”

나는 크게 소리 친 후 앞으로 나섰다.

구석에서 달려 나와 그에게 다가서며 제법 위협적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찰리, 언제부터야?”

“써(Sir)……."

"솔직히 말하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야.“

“…….”

“찰리! 아직 늦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잘 생각해서 대답하도록 해.“

찰리는 내 말에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써, 오늘이 처음입니다.”

“한 번만 더 물을 테니 잘 생각해서 대답하도록 해. 혹시라도 나를 속이려고 하지마. 나는 아직 너에게 기대하는 게 있거든.”

“…….”

“네가 솔직히 이야기 하면 나는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 생각이야. 하지만 대답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너를 공식적으로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마.”

“…….”

“다시 한 번 기회를 줄게. 언제부터 선박유를 빼돌리는 일에 개입한 거야?”

전생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60년 인생을 살아온 나였다.

찰리는 내가 상대를 꿰뚫어 보는 듯 한 안광을 빛내자 그도 나의 눈길에 결국 체념한 듯 실토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이 두 번쨉니다. 정말입니다.”

“좋아. 어느 선까지 연관되어 있느냐?”

“예?”

“찰리, 네가 이일을 주도한 건 아니잖아.”

“…….”

“이런 큰 배에 선박유를 공급하면 그 대금이 얼마인지 상상이 가나? 이런 일을 갑판부원인 네가 단독으로 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잖아.”

“…….”“누구야? 누구까지 연관되어 있냐고 묻는 것이다.”

저질의 선박유를 급유해서 남기는 돈은 제법 막대할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경제 호황기로 원유의 가격이 계속 상승세에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큰 이익이 남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단순히 외국인 선원에 불과한 찰리가 이일은 단독으로 벌린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찰리는 샘플링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

누군가 그에게 이런 지시를 한 것이 분명했다.

“그건…….”

그때였다.

털컹!

그 순간 선실 문이 벌컥 열렸다.

갑자기 시커먼 검은 그림자 하나가 선실 안으로 날아들더니 다짜고짜 찰리의 복부를 가격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갑자기 벌어진 사건에 나도 깜짝 놀라 소리쳤다.

검은 그림자는 나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퍽!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은 찰리를 검은 그림자가 다시 무차별적으로 짓밟기 시작한 것이다.

퍽! 퍽! 퍽!

“이놈! 이런 도둑놈의 새끼! 어디서 해신해운 배위에서 이런 장난질을 쳐! 선원들의 얼굴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배은망덕한 새끼!”

사내의 강한 발길질에 찰리는 팔을 들어 올려 막아내고 있었지만 그야 말로 무차별 폭행이 이어졌다.

이 사내가 난입한 것은 갑자기 발생한 일이었다.

“그만하세요!”

나는 검은 그림자에게 달려들어 그의 폭행을 가까스로 막아냈다.

검은 그림자는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공손한 표정으로 말했다.

“삼항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뭐야? 이놈은?’

그게 바로 나다

- 선박 M.V. 비너스호의 기관실 근처 선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난입해서 찰리를 폭행하기 시작한 검은 그림자.

그 검은 그림자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부갑판장 박문경이었다.

‘뭐야? 이 사람이 왜 여기서 나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갑자기 이 현장에 나타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몰랐다. 이 사람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지금 벌어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나는 빠르게 두뇌를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부갑판장 박문경은 승선경력이 제법 오래된 사내였다.

해신해운이 아닌 다른 우리나라 국적선사에서 오래 승선한 경력이 있는 베테랑 선원.

그는 조금만 경력을 더 쌓으면 갑판장으로 승진할 사람이었기 때문에 항해사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지금 이곳에 나타난다고?

나는 과거 범죄를 소재한 영화에서 들어본 대사가 떠올랐다.

범인은 범죄 현장을 떠나지 않는다는 그 말이 지금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안광을 반짝 빛내며 부갑판장에게 물었다.

“부갑판장? 갑자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제가 선내를 한 바퀴 돌면서 별일이 없는지 확인하는 중이었습니다. 선실에서 인기척이 들려 이곳으로 왔는데 대화소리가 들리더군요. 그런데 너무 황당한 이야기에 너무 화가 나서 저도 모르게 손을 좀 썼습니다.”

“그래도 사람을 이렇게 때리면 어쩝니까?”

“회사의 선박유를 빼돌린 놈이 아닙니까? 맞아도 쌉니다.”

“해신해운의 선박에서 선원들에게 폭행을 가하다니요!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건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해서…….”

“그런 말로 무마될 일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징계위원회에 회부 되도 제가 불이익을 감수하겠습니다.”

“네?”

“저는 이런 놈들을 혼내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잘못했다면 제가 벌을 받아야 겠지요.”

아주 뭐 정의의 사도가 납셨네?

불이익을 감수한다고? 웃기고 있네.

그런 감언이설로 나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단단히 착각하는 것이다.

사실 부갑판장이 하는 소리는 범인이 자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런 짓을 하면서까지 찰리의 입을 막으려고 하는 이유가 있었겠지.’

나는 고개를 돌려 바닥에 쓰러진 찰리를 바라보았다.

찰리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여전히 팔을 들어 올린 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짐작은 되는 순간이었지만 찰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래요?”

“네, 찰리가 경력은 많지 않아도 외국인 선원들을 잘 다루고 제법 리더쉽이 있어 보여 믿고 의지했는데 뒤에서 이런 짓을 할 줄을 몰랐습니다.”

“허허허, 저는 부갑판장이 이곳에 나타나 이런 행동을 할지 생각도 못했는데요?”

“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부갑판장을 노려보았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금 이 상황이?”

나는 부갑판장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네? 무슨 뜻입니까”

“저는 찰리와 대화를 해본 후에 가급적 조용히 일을 마무리할 생각이었습니다.”

“음…….”

“그런데 부갑판장이 알게 되었으니 나도 조용히 넘어갈 수 없게 되었군요.”“어? 네?”

“찰리가 깨어나면 단단히 각오하고 있으라고 전해주시오.”

나는 말을 마치고 선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문으로 다가갔다.

나는 채취한 연료유 샘플을 챙겨서 방을 나서고 있었다. 오늘 밤에 내 방에서 직접 샘플을 보관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사, 삼항사님! 잠시만!”

“왜요?”

“그게…….”

“더 할 말이 있습니까?”

“문제를 크게 만들 생각이 없으셨다면......”

“뭐요? 이제 와서 찰리 때문에 없던 일로 하자는 말입니까?”

부갑판장의 얼굴을 시뻘게졌다.

그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모호한 감정이 느껴지는 듯 했다.

초임 삼등항해사에 불과한 나에게 이 일이 발각된 것이 이 사람을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십 수 년 경력의 부갑판장이 겨우 삼개월 남짓의 삼등항해사에게 한소리를 듣고 있는 상황이니 그의 자존심이 이 상황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초임 삼등항해사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항해사의 신분이었다.

선박 안에서는 엄연히 지켜야 할 위계질서가 있다.

부갑판장은 마지못해 말을 이어갔다.

“아, 삼항사님 아닙니다.”

나는 휙 뒤로 돌아 걸음을 옮겼다.

찰리가 이일을 주모한 주동자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저 나의 추측에 불과했다.

그런데 부갑판장이 이일에 개입되어 있다니?

이 일은 완전히 내 예상 밖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일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일일지도 몰랐다.

‘해신해운에 내가 모르는 종양이 자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어.“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일단 선박이 부두에 접안하면 뒤를 밟아 봐야 겠다.’

이 정도로 일이 커졌다면 이대로 포기할 놈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세금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도둑이 많은 것이라는 어느 정치인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해신해운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다. 매출이 부족하게 아니고 새는 돈이 너무 많은 것일지도. 그리고 도둑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 * *

- 선박 M.V. “비너스호” 선교

며칠이 지난 후.

선박 "M.V 비너스"호는 체선이 심해 아직도 승선 작업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부갑판장과 찰리도 지난 며칠 동안 맡은 일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들은 오히려 내가 지난 밤에 벌어진 일을 문제 삼지 않고 있자 더 심하게 내 눈치를 살피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작업 중에 잠시 짬을 내서 선장을 찾아갔다.

“선장님.”

“그래, 삼항사.”

“체선이 길어지니 시간이 있을 때 잠시 하선해선 되겠습니까?”

“음? 무슨 일이 있나?”

“병원을 잠시 다녀올까 해서요.”

“병원?”

“네, 아무래도 요트에서 잠수 중에 기억을 잃기도 했고 해서 검사를 한번 받아볼까 싶습니다.”

“무슨 증상이라도 있나?”

“특별한 증상은 없습니다.”

“그래, 알겠네.”

“아 선장님, 가는 길에 선박유 샘플을 보낸 랩(Lab)으로 가서 결과서를 좀 받아볼 까 싶습니다.”

“삼항사가 직접? 보험사를 통해 본사 법무팀으로 결과가 가질 않겠나?”

“만약, 급유한 선박유에 문제가 있다면 우리도 조치를 취하고 운항을 재개해야 되질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군.”

“그래서 빨리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네.”

“아, 저는 병원을 갔다가 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한데…….”

이희영 선장은 내 표정을 한번 살피더니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사람이 한명 더 필요할 수도 있겠군?”

“아무래도 그렇겠죠?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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