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그래, 거기 딱 좋아.”
조셉이 두 손을 높이 들어서 나무판을 들고 섰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땅을 박차고 달렸다.
“끼야아옷!”
괴성을 지르면서 빠르게 달려 나갔다.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공중으로 번쩍 뛰어오른 후 한 바퀴 공중회전을 한 후에 돌려차기를 시전 했다.
파파팍! 나의 화려한 발차기 동작에 조셉이 들고 있던 송판이 여지없이 박살나 버렸다.
“오오오!”
“짝짝짝!”
“와아아!”
내가 둘러보니 갑판부원들은 진심으로 감동한 표정으로 박수를 쳐대고 있었다.
[당신에 대한 외국인 선원들의 존경심이 상승했습니다.]
겨우 이런 일로도 보상이 있네?
‘봤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산 영도의 뒷골목을 접수한 사내.
‘영도 일대에서 고무고무킥으로 불리는 내 필살기 브라질리언킥에 도전자들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지.’
부산의 영도일대 고등학교들 사이에 살아있는 전설.
나는 갑판 위로 착지한 다음 주변을 둘러보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연이어 뽐내기 시작했다.
앞차기, 뒷차기, 옆차기, 돌려차기 등등.
화려한 폭풍 발차기를 연속으로 보여준 후에야 내 연무를 마무리 됐다.
나를 바라보는 선망의 시선을 만끽한 후에 나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한 사내를 발견하고 손을 들어 올려 그를 지목했다.
“찰리?”
손바닥을 들어 올려 찰리를 가리켰다.
너도 한 수 보여 달라는 나의 도발이었다.
뜬금없이 내가 갑자기 자신을 지목하자 찰리는 매우 당황한 표정.
하지만 이미 주변의 선원들의 시선이 모두 그를 향하고 있었다.
‘여기서 빼면 바다 사나이가 아니다!’
그를 바라보는 선원들의 표정도 기대에 제법 부풀어 오르고 있는 상황.
“휴…….”
팔짱을 끼고 있던 찰리는 짧은 한숨을 내쉰 후 앞으로 나섰다.
그가 뭐라 뭐라 이야기 하자 주변의 갑판원이 달려가더니 야구방망이를 들고 달려 왔다.
‘뭐, 뭐야?’
살벌한 도구가 등장하자 나도 살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내가 격파한 나무판과 달리 저 나무방망이는 격파용이 아닌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오늘의 퍼포먼스를 위해 조셉과 함께 몰래 격파용 송판을 제작했다.
크지 않은 충격에도 격파될 수 있도록 미리 두께를 조절해 상태였지만 찰리가 가지고 나온 야구방망이는 그냥 선원들이 평소에 사용하던 일반적인 야구 방망이가 분명했다.
조셉이 방망이를 들고 섰다. 조셉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찰리는 자신의 눈높이로 방망이를 들라고 하더니 조셉의 바로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별다른 준비동작도 하지 않고 그저 오른팔을 들어 올려 뒤로 몸을 뒤틀었다.
그리고 왼손으로 오른손 주먹을 쥐더니 오른쪽 팔꿈치를 앞으로 가볍게 내질렀다.
“툭!”
그리 힘을 주지도 않은 것 같은데 팔꿈치가 방망이의 손잡이 부문을 가격하자 방망이는 툭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오오오!”
“와아아!”
찰리의 깔끔한 한 수를 지켜본 갑판원들이 함성을 크게 내질렀다.
“훗.”
찰리는 나를 바라보며 짧게 미소를 지었다.
‘이 새끼, 쫌 하네?’
깔끔한 한수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찰리도 나를 알아보았을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그렇겠지?
비록 나를 바라보는 찰리의 표정은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고 있었지만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킥복싱인가?’
찰리를 바라보는 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팔꿈치를 휘두르는 동작으로 그의 무술이 무엇을 베이스로 한 것인지 나는 이미 간파해낸 것이다.
나는 조셉을 불렀다.
“조셉!”
“써(Sir)!”
“모자!”
조셉은 내 지시에 따라 미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항구에서 준비해온 밀짚모자를 들고 왔다.
조셉은 밀짚모자를 내 머리에 씌웠다.
“이건 내가 옛날에 친구한테서 받은 내 소중한 보물이다. 나는 동지를 모아서 선박왕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
“…….”
기행을 이어가던 삼항사가 드디어 미친 것인가.
이들도 내가 바다사나이들을 주제로한 만화의 한 장면을 흉내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람들은 그런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찰리!”
“…… 써(Sir)?”
나를 보는 찰리도 여전히 황당하다는 표정.
나는 머리위에 있는 밀짚모자를 벗어 찰리의 머리 위에 올렸다.
손으로 모자를 푹 눌렀다. 그의 머리가 완전히 모자에 파묻히도록.
“왓(What)……?”
찰리는 나의 미친 짓에 상당히 당황한 표정을 짓고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너, 내 동료가 되라.”
평소 감명 깊게 읽은 만화책 주인공의 대사 한 구절을 멋지게 인용한 후 나는 천천히 뒤로 돌아 걸음을 옮겼다.
“왓 더 …… (What the hxxx)!”
찰리는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혼자 중얼 거렸다.
하지만 찰리는 씨맨스클럽에서 나의 옆자리를 지켰더 사내.
그 순간부터 나는 그를 내 동료로 간택한 상태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찰리가 전생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조셉이 빠르게 나를 쫓아왔다. 그리고 다급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써, 그래도 내가 오른팔 맞죠?”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짧게 웃어보였다.
‘조셉, 제대로 해라. 요즘 분위기 안 좋다. 안 그러면 곧 나가리다.’
* * *
- 선박 M.V. 비너스호의 기관실
나는 몇 가지 확인할 일이 있어 기관실을 찾아내려갔다.
기관부는 기관장을 책임자라로 일등기관사, 이등기관사, 삼등기관사 그리고 기관부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치 선박안의 작은 공장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기관부는 체선 중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체선 기간 동안 미뤄둔 정비작업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항해사들은 보통 당직시간을 정해 교대로 일을 하지만 기관사들은 일과시간에 맞춰서 일을 하는 차이점이 있었다.
“기관장님, 안녕하세요.”
“오! 우리배의 슈퍼스타 삼항사가 여기까지 무슨 일로?”
“부끄럽게 왜 그러세요.”
“기사에도 많이 나고, 인맥도 짱짱하고 뭐 사실인데 뭘 그러나. 부끄럽긴 뭐가 부끄럽다고. 자랑할 일이지. 허허허.”
나는 대답대신 얼굴을 살짝 붉혔다.
기관장 김현호은 오랜 승선 경력에도 온화한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항상 선장의 뒤에서 묵묵하게 서포트를 하는 유형의 사내.
전생에 내가 어리버리 항해사였던 시절 나를 위로해주고 좋은 덕담을 많이 해준 분이 바로 이 기관장이었다.
승선기간 중에 그는 나에게 항해하는데 필요한 기관관련 지식들도 손수 가르쳐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싱가폴에서 골치 아픈 일이 있을 것 같아서요.”
“음? 그게 무슨 소린가?”
Bunkering
- 선박 “M.V 비너스호”의 기관실
김현호 기관장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 생겼나?”
“아! 아직 문제가 생긴 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에 싱가폴에서 급유를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 싱가폴에서 보통 급유를 하니까.”
“그래서 말씀 드리는 겁니다. 이번에 자카르타 씨맨스클럽에서 다른 나라 선원들한테 들은 이야기인데요.”
“음?”
“최근 싱가폴에서 공급되는 벙커(선박유)의 품질 불량이 많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허허허, 그래? 안그래도 그런 문제가 있긴 한지. 그래도 해신해운이 거래하는 업체들은 세계적인 회사들인데 품질 문제가 있기야 하겠는가.”
“그래도 최근 벙커 때문에 엔진에 문제가 생긴 경우가 많다고 하니 저도 괜한 걱정이 드네요. 허허허.”
“삼항사 또 영감같이 웃는군. 그나저나 삼항사 몇 개월 승선생활 했다고 벌써 그런 주변을 살필 여유가 생겼나보군?”
기관장은 나를 바라보며 기분 좋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사실 최근에 그런 문제가 많긴 하지. 기관부에서도 크게 걱정하고 있는 부분이야. 선박 엔진의 성능은 좋아지는데 벙커의 품질이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지고 있으니…….”
이른바 벙커클레임(Bunker Cliam)은 해운업계에서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는 이슈였다.
이 문제는 대단히 큰 피해를 야기하는 종류의 사건은 아니었다. 다만, 귀찮고 머리가 아프고 언제 생길지 모르는 그런 종류의 일이었다.
마치 두통 같은 그런 종류의 문제랄까?
선박을 운항하는 선박회사, 그리고 선박을 빌려서 사용하는 용선자, 벙커를 납품하는 정유회사, 선박을 건조한 조선회사와 엔진을 만든 제조회사 그리고 보험회사 사이의 이해관계가 복작하게 얽혀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좀처럼 합의점을 찾기가 힘든 까다로운 문제였다.
업계에서는 선박에 공급하는 벙커의 품질이 떨어져 선박의 엔진 고장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고 있었다.
선박의 엔진은 성능이 좋아지는데, 선박유인 벙커의 품질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어 엔진고장을 유발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벙커의 품질이 떨어지는 이유는 정유사들의 정제기술이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하니 그것도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정유사의 정제기술이 좋아지면서 가솔린과 같은 비싼 기름을 좋은 품질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선박유로 사용하는 벙커의 품질이 하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정확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만약 이런 소문과 같이 기술적인 문제라면 사실 내가 딱히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우리 선박에서는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나서야 해결이 되겠지.’
그것은 바로 이 배에 선박유를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이 있기 때문이다.
* * *
- 선박 "M.V 비너스호"
비너스호는 싱가폴 항구의 정박지에 대기 중인 상태였다.
싱가폴 항구는 동남아 최대의 허브항구로 항상 물동량이 많은 곳.
하지만 지금은 인도네시아 해역에서 일어난 쓰나미로 인해 유례없는 체선 사태를 겪고 있는 실정이었다.
싱가폴 항구에서 내리는 컨테이너 화물은 대부분 다른 항구로 환적해야 하는 화물들이었다.
싱가폴이 최종 목적지인 경우도 있었지만 인근의 동남아시아 국가의 다른 항구들을 향하는 선박으로 컨테이너가 옮겨지는데 이런 화물을 환적 화물이라고 부른다.
환적 화물이 실리는 소형 선박들을 피더선(Feeder)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피더선들은 보통 작은 규모의 컨테이너선들이었다.
해신해운은 동남아시아의 각국의 소규모 선사들과 피더계약(Feeder agreement)을 체결하고 있었다.
이들 피더선을 이용해 해신해운은 자사 선박이 직접 기항하지 않는 마지막 목적지인 소규모 항구들까지 화물을 운송할 수 있었다.
M.V. 비너스호는 부산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항로를 운항하는 선박이었는데, 중간 기착점인 싱가폴에서 급유를 실시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희영 선장은 싱가폴 항구에 선박들이 너무 몰려 있는 상황에서 시간을 아끼기 위해 정박지에서 해상 급유선을 이용한 벙커링(선박 급유)을 하기로 결정했다.
벙커링 과정을 참관하기 위해서 나도 바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참견(?) 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긴 하지만.
그때 선박급유를 위해 작업을 하고 있는 작업자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흠흠!”
나는 작업자들에게 다가서며 일부러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어색한 헛기침을 했다.
급유 작업자들은 선박의 항해사로 보이는 내가 다가오자 다소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급유를 하고 있는 급유 업체의 작업자들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작업은 잘 되어 갑니까?”
“누구십니까?”
“이 배의 삼등항해사입니다.”
“그렇습니까?”
작업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느닷없이 나타난 삼등항해사가 자신들의 작업에 참견하려고 하자 이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
“여기 책임자가 누구요?”
"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