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200)

하긴 장관을 만나볼 기회가 있었겠냐.

사람들과 인사를 마친 장관은 이항사를 거쳐 나에게로 다가섰다.

장관이 나의 손을 강하게 마주 잡았다.

“찰칵찰칵!”

장관의 뒤로 ‘PRESS’ 기자단 완장을 차고 서 있던 사진 기자들이 대규모로 나와 장관의 악수 장면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수많은 기자들이 연이어 기자들이 대규모로 나타나 카메라 셔터를 누르자 프레쉬가 강하게 터지기 시작했다.

그가 나를 보며 뭐라고 말하자 외교부 직원이 통역을 시작했다.

“장관님께서 기자들이 사진을 잘 찍게 좀 웃어보라고 하십니다.”

“아! 네.”

‘긴장되네.’

이정도로 대규모의 기자들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한참 포즈를 취하던 장관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따님을 구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십니다.”

나도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니네, 자네처럼 용기 있는 사내가 없었다면 나는 내 딸을 다시 만나지 못했을 것이네.”

“과찬이십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바라는 게 있으면 말해보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음……, 따님을 주시죠?”

“…….”

“농담입니다. 하하하…….”

젠장.

나만 웃고 있을 뿐 아무도 웃질 않았다.

“재밌는 친구이군. 그것 말고 다른 부탁은 없나?”

“음, 아직은 없습니다. 제가 다음에 생각이 날 때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하하하. 그래? 그래도 좋네. 젊은 친구라 패기가 있군! 하지만 나는 제법 나이가 들었다네 너무 늦게 연락하면 그때까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 자신이 없어.”

“설마요. 장관님은 오래오래 잘해내실 겁니다.”

“그래?”

“네,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장관은 내 말에 크게 웃어보였다.

‘아마 잘릴 일은 없을 겁니다.’

전생과 다르지 않다면 그는 지금 대통령의 뒤를 이어 차기 대통령에 오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관 뒤로 그의 딸이자 유명한 셀렵 겸 모델인 미녀가 다가왔다.

그리고 내 앞으로 다가온 그녀는 갑자기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기습적으로 내 볼에 입을 맞췄다.

“……!”

나는 돌발 상황에 깜짝 놀라 아무런 말을 잊지 못했다.

“허허허, 삼항사 굳어버렸네.”

“새끼 긴장했냐?”

“……, 부럽.”

차례대로 선장, 일항사, 이항사가 이 돌발 상황에 대한 관전평을 하나씩 남겼다.

장관과 악수하는 경직된 이항사를 보고 로봇이라고 비웃었는데, 나는 그보다도 훨씬 긴장한 상태.

움직이지도 못하는 로봇, 아니 말 그대로 나는 얼어붙은 얼음 조각상이 되어 버렸다.

얼이 빠진 내 모습을 지켜보던 장관이 나를 보며 말했다.

“음……, 자네 말이야.”

“네, 장관님.”

“그런데, 자네 혹시 결혼은 했나?”

“……네?”

“하하하. 농담인데 자네는 왜 그렇게 진지한 표정인가?”

“…….”

“하하하.”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나의 얼굴은 불화산 같이 빨갛게 타올랐다. 인도네시아 불의 고리에서 폭발하는 화산처럼.

* * *

- 비너스호의 선교

며칠 후.

잠시 항로를 벗어났던 우리는 원래 예정대로 싱가폴 항구를 향하고 있었다.

싱가폴 항구는 동남아시아 제일의 허브항(항로들의 잇는 중심항)으로 환적화물(다른 배에 옮겨 싣는 화물)량이 많은 세계적으로 손 꼽히는 대형 항구이다.

그리고 유럽이나 아시아로 가는 선박들의 대부분은 이 곳 싱가폴에서 선박유인 이른바 벙커를 급유하기 위해 들리기 때문에 항상 많은 선박들이 오고가는 곳이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싱가폴 항구가 이렇게 성장한 이유는 화물이 많아서가 아니고 선박들이 급유를 위해서 싱가폴을 들리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싱가폴로 향하는 M.V 비너스호의 선교에서 나는 교대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대 하기 전에 한번 더 볼 까?’

나는 방금 전에도 본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읽어보기 위해 신문을 펼쳐 들었다.

“에휴.”

조타키를 잡고 있던 조셉은 내가 또 다시 신문을 펼쳐 들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캬!”

[그날 바다에서는 무슨 일이? 쓰나미를 이긴 영웅들]

[자카르타 앞 바다에서 대한민국 선원들이 생명을 구조]

[대한민국에서 온 영웅, 인도네시아를 구하다!]

[대한민국의 젊은 항해사 씨맨쉽을 외치다!]

[대한민국의 젊은 항해사, 잘생긴 외모에 신드롬 생겨!]

컥! 주, 주모 여기 막걸리 한잔 주시오!

이미 몇 번이나 본 기사였지만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저 짜릿해!’

지난 며칠간 발생한 일들이 아직도 머리 속을 완전히 떠나지 않고 있었다. 아직도 나는 뽕에 취해 있었다.

딱!

나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소리가 선교에 울려퍼졌다.

“삼항사, 또 신문 보고 있냐?”

“이항사님, 좋은 건 계속 봐야죠.”

“…… 안질리냐?”

“질리긴요. 보고 또 봐도 좋습니다.”

“아 그러세요. 뭐 삼항사님은 이제 인도네시아 장관 사위가 되실 뿐인데 뭐 계속 승선하실 필요가 있으실까요?”

“아! 이제 그 소리는 그만하라니까요.”

이항사는 자카르타 항구에서 벌어진 일을 내심 부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항사는 자신이 요트를 구하러 갔어야 한다고 아쉬워했지만 그게 어디 말 처럼 되는 일인가?

나도 거의 죽을 뻔 하다가 겨우 살아난 아찔한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들을 저질렀을까.’

선장의 명령에 불복하고, 도망치고 말 그대로 선상반란이라고 불러도 변명할 수 없는 망나니짓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겨우 이룬 일들이다.

사람들을 구하고, 여러 선사들의 항해사들과 어울려 놀기도 하고, 한 나라의 장관과 연예인인 그의 딸과도 친분을 쌓게 되었다.

나조차도 믿기지 않는 일의 연속이었다.

아마 이번 항차를 마치고 육지에 내려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 다들 나를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테지.

이 모든 일들이 불과 며칠 만에 다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꿈을 꾼 기분이다.

하지만 이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여전히 나는 삼항사의 신분이고, 아직 선박 M.V. 비너스호에서 할 일이 많았다.

“이항사님, 저는 진즉 벌써 정신을 차렸습니다. 이항사님이 말로 하루 빨리 현실로 돌아오십시오."

"무슨 헛소리? 방금 전까지 신문 보면서 웃고 있던 놈이 누군데!“

“현실을 자각하소서. 한국의 영웅들이여!”

“흥! 내가 영웅은 무슨 영웅이야. 재주는 누가 부리고 돈은 누가 번다더니!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다 받고 정말 억울하다!”

“한국의 영웅이여 명성을 쫓지 마십시오!“

“야, 됐고 얼른 내려가!”

이항사가 또다시 내 뒤통수를 때릴려고 하자 나는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아! 형 싱가폴에서 우리도 급유하는 거죠?”

“당연하지.”

‘그럼, 싱가폴에서 정리 좀 해야겠네.’

나는 머릿속으로 다부진 체격의 찰리를 떠올리고 있었다.

+

<메인 퀘스트(#03)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비너스호에 있는 도둑을 잡아라.”

세부 퀘스트 : 도둑 잡기

클리어 조건 : 비너스호에 숨은 도둑을 검거

제한시간 : 싱가폴 출항 전까지

보상 : 명성 + 20, 외국인 선원의 충성심

실패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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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결투

- 선박 비너스호의 선교

며칠 후 선박 “M.V. 비너스호”는 싱가폴 항구 인근에 도착했지만 하역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장시간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인도네시아 부근에서 발생한 쓰나미로 인해 항로를 이탈한 선박들이 대거 싱가폴 항구로 이로(항로를 변경하는 것)해 왔기 때문이다.

싱가폴은 인근에서 가장 큰 대형 허브 항구.

이 지역에서 화물을 환적하기 위해서는 싱가폴항구 최적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이 곳으로 배들이 모여들었다.

일등항해사 양화종이 이희영 선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장님, 저희가 도착했다는 통지는 했는데 꽤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음 일항사, 예상되는 체선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글쎄요, 항만 쪽에서도 아직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다고 합니다.”

“음, 안 그래도 쓰나미 때문에 본선의 스케줄이 제법 지연 됐는데 여기서 또 체선이 심하니 또스케줄이 늦어지겠군.”

“네, 쓰나미 때문에 피항하거나 이로했던 선박들이 지금 싱가폴로 대거 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비너스호는 싱가폴항구의 정박지에서 앵커(닻)을 내리고 정박 중인 상태였다.

비너스호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의 선박들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정박지에는 비너스호 주변으로 수십 척의 선박들이 대규모로 체선(선박이 항만의 수용 능력 이상으로 초과 입항하여, 항구 밖에서 하역 작업 순서를 기다리는 상태)한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다른 회사의 선박들도 모두 하역 작업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

컨테이너선을 운항하는 이희영 선장은 제법 수심이 깊어졌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여도 본선을 책임지는 선장 입장에서는 수심이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

컨테이너선과 같이 정해진 항로를 스케줄대로 운항하는 선박을 정기선이라고 하고, 철광석이나 원유와 같이 필요에 따라 그때마다 운항하는 선박을 부정기선이라고 구분한다.

정기선인 컨테이너선박은 정확한 시간에 항구에 도착해야 되는데, 이는 회사의 서비스품질과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이기도 했다.

컨테이너 화물이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항구에 도착해야지만 이후에 육상에서 화물을 운송하는 업체들이 운송 스케줄 대로 화물을 인수받아 내륙운송을 이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에 발생한 해저지진과 쓰나미 같은 불가항력적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

이런 국제계약에는 불가항력(Force majeure)조항이 기재되어 있는데, 계약의 당사자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천재, 지진 홍수 등과 같은 사유가 발생한 경우 손해배상이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해운회사들이 화물을 맡긴 화주들에게 발행하는 선하증권(B/L)의 약관에도 이러한 내용이 잘 기재되어 있었다.

따라서 선박회사가 체선이나 화물운송에 지연이 발생했다고 해서 화주들을 상대로 책임질 사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선박을 운항해야 하는 선장 입장에서는 그래도 속이 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일등항해사는 선장과 대화를 하며 선교에서 갑판을 유심히 내려다보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일항사는 갑판부원들이 갑판위로 동그랗게 모여 있는 것이다.

‘음? 뭐하는 거지?’

갑판부원들은 체선이 발생해서 오히려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간만에 느긋하게 필요한 정비를 하면서 시간적 여유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모여있는 갑판부원들이 가운데서 상당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내가 일항사의 눈에 들어왔다.

‘저, 저놈 뭐야 또 무슨 짓을……?’

삼등항해사 장보고와 조셉이 사람들을 세워놓고 가운데 서서 뭐라고 떠드는 장면이 그의 눈에 들어 온 것이다.

또 엉뚱한 짓을 하려고 삼등항해사가 모의작당을 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항사!”

“네, 일항사님.”

일등항해사가 선교 뒤편에 서있던 이등항해사를 불렀다.

“이항사, 저기 저거 삼항사 아니야?”

이등항해사 김호영도 일등항해사 양화종의 옆으로 다가와서 갑판을 내려다보았다.

“삼항사 맞네요. 저기서 또 뭐하는 거지.”

“저거 조셉이 들고 있는 저거 뭐야?”

“글쎄요……, 나무판 같은데요?”

“나무판을 왜 들고 있어?”

“하는 짓이 뭐 태권도 발차기로 격파 시범 같은 거라도 보여주려고 그러는 거 같은데요.”

“……, 에휴.”

일등항해사 양화종이 한숨을 한번 짧게 내쉬더니 이등항해사 김호영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항사.”

“네, 일항사님.”

“삼항사랑 같이 학교 다녔다고 했잖아.”

“네, 잠시 같이 다녔죠.”

“그때도 저랬나?”

“네?”

“학교 다닐 때도 원래 저런 돌 아이였냐고!”

“맞는 거 같긴 한데……, 학교 다닐 때도 한 번씩 이상한 짓을 하긴 했거든요. 그래도 지금처럼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하긴, 승선 초기에는 고분고분했던 거 같은데 갑자기 사람이 변한 느낌이야.”

승선 생활 중에 갑자기 심경변화를 보이는 이들이 종종 있었지만 대개는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삼등항해사 장보고를 바라보는 일등항해사의 눈빛은 제법 걱정스런 빛을 띠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삼등항해사를 바라보는 일등항해사의 눈빛이 따뜻하게 변해있었던 것이다.

* * *

- 선박 “M.V.비너스호”의 갑판

나와 조셉을 주변으로 갑판부원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써(Sir), 이렇게요?”

조타수 조셉이 나무판을 눈높이로 들어올렸다.

나를 뭘로 보고. 더 높이 들어야지.

“조셉, 좀 더 높이!”

“이렇게 높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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