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200)

내가 중얼거리자 이항사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너 미쳤냐? 왜그래?”

그녀는 내가 선실에서 구조한 그 여자가 분명했다.

“그럼 조셉이 아니고?”

내가 기대심에 부푼 표정으로 김호영을 바라보았다.

“조셉이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자기가 살리겠다고 인공호흡을 실시해서 너를 살렸다고 하던데?”

“……!”

나는 별다른 대꾸를 하진 않았다. 빠르게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허허허. 젊긴 젊네.”

“아이고 저 미친 새끼. 입 꼬리는 왜 올라가냐?”

“이 와중에 저 지랄하는 거 보니 몸에 이상은 없나 보네요.”

차례대로 선장, 이항사, 일등항해사가 한마씩 나에게 덕담(?)을 건넸다.

이항사 뒤로 다른 선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비너스호의 선원들이 다가온 것이다.

“삼항사님!”

그들은 의식을 회복한 나를 발견하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박수를 치고, 서로를 얼싸안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뭐, 다들 무슨 좋은 일 있습니까? 왜 이렇게 난리입니까?”

내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다들 내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차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항사 김호영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건 그렇고, 이 미친놈아! 장비도 없이 혼자 들어가다니 돌았냐? 정 방법이 없으면 본선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러네요. 이렇게 빨리 올 줄 알았으면 좀 기다릴걸 그랬네요.”

“허허허. 이 제대로 미친 새끼.”

이항사 김호영도 나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 뒤로 일항사와 선장의 얼굴도 보였다.

다들 표정이 붉게 상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제법 걱정을 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에요?”

내가 몸을 반쯤 일으키며 이항사에게 물었다.

“조셉한테 다 들었다.”

“뭐가요?”

“삼항사가 자기 보고 구명정을 지키라고 하고 솔선수범 하겠다며 먼저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고 하던데.”

“…….”

“그 이야기를 듣고 다들 괜히 삼등항해사가 아니라며 칭찬하는 이들이 많았다.”

“…….”

“조셉 안시키고 위험한 일에 나선건 그래도 잘한 일이지. 덕분에 항해사들 체면도 살았다.”

이항사가 김호영이 학교 직속 후배인 내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어깨를 두들겼다.

뭐, 사실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시나리오.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중에서 선실 문은 다 열었는데, 마지막에 호흡이 모자라서 의식을 잠시 잃었다고 하던데? 저 여자가 수면으로 끌고 올라왔다고 하니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

이항사가 손짓을 하며 그녀를 가리켰다.

‘허! 구하러 갔는데 구조되어서 나온 꼴이네.’

‘쫌...... 꼴사납네?’

물속에서 나타난 히어로 아쿠아맨처럼 멋있게 구할 생각이었는데.

회귀했다고 모든 일이 내 뜻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 게 분명했다.

하지만 뭐 그런 건 어찌됐든 좋았다.

중요한건 전생과 달리 내가 사람을 살렸다는 것이니까.

아주 중요한 사람. 그것도 매우 예쁜 사람을.

< 띠링! >

+

<메인 퀘스트(#02) 달성을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활약으로 비너스호는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구조하였습니다.

보상 :

- 당신의 명성이 상승합니다.(명성 + 20)

- 당신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국민들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 당신에 대한 구조된 외국인 선원들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 비너스호 선원들의 자부심이 상승합니다.

- 비너스호의 선원들이 당신을 존경하기 시작합니다.

- 수영, 잠수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 기술 [인명구조 Lv.2] 를 획득했습니다.

+

일항사의 비밀

- 선박 M.V. 비너스호의 선교

내가 구명정을 타고 요트를 구하기 위해 떠난 이후 본선에서의 구조 작업은 별다른 문제없이 척척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비너스호는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사이에도 꽤 많은 사람들을 구조하는데 성공했다.

‘보기 좋네.’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비너스호의 갑판 위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웃고 떠드는 모습.

쓰나미라는 대형 재난을 겪은 사람들 치고는 구조된 사람들도 구조한 비너스호의 선원들도 모두 제법 표정이 밝았다.

“그래 이게 씨맨쉽이지!”

혼자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옆에서 들은 일항사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도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어쨌든 일항사가 나서준 덕분에 이 많은 사람을 구조할 수 있었지.‘

하지만 부끄럽긴 할껄?

아마 선교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씨맨쉽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말은 상당히 낯간지러운 말이기도 했다.

일항사를 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나의 자랑스러운 건치미소가 하얗게 빛났다.

일등항해사는 어이 없어하는 표정을 짓더니 마지못해 나를 보며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새끼. 평소에 웃는 연습 좀 하지.’

미소를 지으려고 최대한 노력한 것이겠지만 일등항해사의 얼굴에는 썩은 미소만 드리워졌다.

비너스호는 구조한 사람들을 태우고 빠르게 자카르타의 항구를 향해 항해를 계속했다.

비너스호 앞에는 연안에서 구조 소식을 듣고 출동한 코스트가드(해경)의 선박 3척이 앞장서며 우리를 안내하고 있었다.

해경 선박의 호위를 받으며 전진하는 비너스호의 모습은 그야 말로 개선장군처럼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 * *

항구에 도착한 우리는 빠르게 구조된 사람들을 당국에 인계했다.

한 바탕 소란스러운 일들이 벌어진 이후 인수인계를 마친 선원들을 선장이 선교로 불러 모았다.

이희영 선장이 선교에 모인 비너스호의 선원들 한명 한명을 바라보며 눈을 마주쳤다.

“여러분, 긴 하루였습니다. 모두 고생이 많았습니다.”

짝짝짝! 내가 크게 박수치자 다른 선원들이 따라서 크게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나 이희영은 그동안 선장이 되기까지 30년이 넘게 배를 탔습니다.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면 짧은 승선기간이었지요. 항상 힘든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오늘 참 보람되고 선원이 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비너스호에 있는 선원 모두가 참 자랑스럽습니다.”

선장이 말을 마치더니 갑자기 선원들을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다들 깜짝 놀라 선장을 향해 같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고개를 들어 올린 선장이 사람들을 향해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우린 내일부터 정상 업무로 복귀합니다.”

“네!”

선원들은 크게 대답했지만 선장의 말에 살짝 실망하는 기색도 보였다.

선원들 모두 오늘 있었던 구조 작업의 성과 때문에 아직도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대신 본선 업무는 내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배는 제가 지키겠습니다. 오늘 하루 선장의 권한으로 특별 하선 휴가를 부여합니다. 내일 오전 11시까지 늦지 않게 본선으로 복귀하도록”

“와아아!”

예정에 없던 하선 휴가를 부여받은 선원들이 크게 함성을 질렀다.

함성소리를 뒤로 하고 선장은 갑판장을 따로 조용히 불렀다.

갑판장에게 특별히 금일봉을 지급하면서 부원들을 데리고 나가서 술 한 잔씩 사주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등항해사 김호영도 제법 신난 표정.

오랜만에 육상에 나가서 놀 생각에 그는 벌써부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선원들이 신난 표정으로 빠르게 선교를 떠나기 시작했다.

항해사들은 선원들이 모두 하선하면 선장에게 인사를 하고 마무리 작업을 한 후에 내릴 계획이었다.

이들은 선장에게 인사를 하고 선교를 떠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나도 오랜만에 하선해서 시원한 생맥주를 한잔 할 생각에 기분이 상당히 좋아진 상태.

우리를 바라보던 선장 이희영이 말했다.

“그럼, 항해사들은 내 방에서 한잔하지?”

“......네?”

“......”

“......”

간만에 육상으로 외출할 꿈에 부풀어 있던 이등항해사 김호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갔다.

고개를 돌려보니 일등항해사 양화종의 표정도 그리 다르진 않았다.

‘쯧쯧쯧 새끼들, 사회생활 참 못하네.’

나는 이 눈치 없는 놈들을 생각하며 안타까운 감정에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좌우로 한차례 흔들었다.

선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장님, 제가 방에 가서 위스키 한 병 챙겨 올까요? 발렌타인 삼십년? 아니면 조니워커 블루?”

“오! 자네 방에 그런 것도 있나?”

“선장님이 위스키를 좋아하신다고 들어서 승선할 때 미리 챙겨 놨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이희영 선장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 * *

- 비너스호의 선장실

위스키를 몇 잔 마신 이희영 선장은 신난 표정으로 옛날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런 스타일이었나?’

평소 차갑게만 보이던 이희영 선장이었다.

전생에서는 자신의 옛날이야기들을 항해사들에게 자세히 들려준 적이 없었다.

사실 요즘은 그게 오히려 직장상사들의 미덕인데.

이희영 선장님도 오늘 상당히 기분이 좋은가 보네.

눈치 없이 그동안 자신의 장점이었던 것을 이렇게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니!

이희영 선장의 상태창을 볼 수 있다면 [상사의 미덕 경험치가 하락하였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떠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나도 전생에서 60살의 인생을 살아온 몸.

비슷한 나이대의 선장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도 나에게는 제법 흥미롭게 들렸다.

‘사람 사는 게 이런 거지.’

그래도 위스키 몇 잔이 오고 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더니 나를 바라보는 일등항해사의 눈빛도 한결 부드러워진 상태였다.

나도 술 한 잔 마신김에 객기를 부려보기로 했다.

“일항사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한 가지 여쭤봐도 됩니까?”

“뭐? 음……, 뭔데? ”

일등항해사 양화종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최근 내가 보여준 돌발행동 때문일까. 나를 상당히 견제하는 것 같은데…….

“일항사님은 일도 잘하시고, 학교 다닐 때도 공부도 잘했잖아요. 항해과도 수석으로 입학하고 또 졸업할 때도 수석으로 졸업했다면서요? 그리고…….”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본론만!”

“네, 그럼 본론으로 바로 들어갈게요. 화내지 마세요.”

“끙……, 그, 그래.”

“그런 잘난 분이 왜 저만 보면 그동안 못 잡아먹어서 안달난 사람처럼 그러셨던 건가요?”

“풉!”

나의 말에 깜짝 놀라 마시던 위스키를 입 밖으로 뿜어낸 사람은 이등항해사 김호영이었다.

“죄송합니다.”

이항사는 휴지를 꺼내들어 탁자위로 뿜어낸 술을 급하게 닦아 냈다.

“제가 평소에 양주는 즐겨 마시지만 위스키를 잘 안마셔봐서요. 위스키가 독하긴 독하네요. 양주는 이 정돈 아니던데. 하하하.”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저러는 것일까.

이등항해사는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형이 거기서 왜 나와. 모르면 그냥 가만히 있지.’

살다보면 침묵이 금인 순간이 의외로 많다.

사실 지금이 그런 순간인데 이등항해사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

양주라는 개념이 모호한 건 사실이지만 위스키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주에 속하는 술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항사만 빼고.

우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일등항해사를 바라보았다.

일등항해사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지만 평소처럼 화난 표정은 아니었다.

일등항해사가 어색하게 썩소를 짓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삼항사, 내가 그랬나?”

“네.”

“음……, 그랬다면 사과하지.”

“아! 사과하실 일까진 아닙니다. 제가 실수했을 때 보통 엄하셨다는 뜻이지 이유 없이 저를 괴롭혔다는 그런 말은 아니니까요.”

“그래? 그럼 다행이네.”

“네, 제가 궁금한 건 이항사님이 실수할 때는 한 번씩 넘어가기도 하시던데, 저한텐 유독 엄격하셔서 여쭤보는 겁니다.”

“음, 초임 삼항사 때는 엄하게 배워야지. 아직 바다의 무서움을 제대로 모르는 시절이니까. 나도 그렇게 배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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