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200)

선실 안에는 위쪽으로 에어 포켓이 그래도 제법 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천장까지 코와 입을 들어 올려 에어포켓 안에서 겨우 호흡을 이어나가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오랜 시간 버텨온 그녀는 매우 힘든 상황이었지만 자신을 구조하러 온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마지막까지 용기를 잃지 않은 듯 보였다.

‘용감한 사람이네.’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눈앞에 그녀가 내가 찾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녀도 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돌렸다. 문 뒤로 살짝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그녀와 나는 잠깐 시선을 교환했다.

그녀의 눈에는 안도의 빛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예쁘네!’

미스 월드 뭐 어쩌고 출신이라더니.

이와중에도 갑자기 힘이 샘솟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수신호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신호를 한 후 수면 밖으로 올라섰다.

다시 수면 밖으로 나온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조셉을 애타게 불렀다.

“조셉! 조셉!”

“예, 써(Sir)!”

“선실 안에서 사람을 찾았어.”

“왜 안 데리고 나왔어요?”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쉽냐! 네가 직접 내려갈래?”

나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조셉도 이번에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선실 안에 있는데 충격 때문에 문이 뒤틀린 건지 좀처럼 열리지 않네.”

내 말을 듣던 조셉은 구명정 안으로 들어가 제법 두터운 쇠막대기를 꺼내서 들고 나왔다.

구명정을 띄우기 전에 조셉이 이것저것 챙긴 도구들 중에 하나였다.

“써, 이렇게, 이렇게.”

그는 쇠막대기를 지렛대로 삼아서 문을 여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래, 좋은 생각이네. 한번 시도해봐야겠다.”

나는 쇠막대기를 건네받고 호흡을 가다듬은 후 다시 한 번 잠수를 시작했다.

물속에서 빠르게 선실로 찾아간 나는 쇠막대기를 선실의 문 틈 사이로 끼워 넣었다.

한쪽 발로 반대편을 지탱하면서 문을 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쇠막대기를 잡아당겼다.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으으으!”

온 힘을 짜내자 나도 모르게 입이 살짝 열렸다.

하지만 좀처럼 문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안 그래도 가쁜 숨이 입안으로 물이 들어오자 더 급하게 차올랐다.

“으아아악”

너무 크게 힘을 준 탓인지 갑자기 입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바닷물이 벌컥 들어왔다.

‘켁!’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충동호흡이 곧 시작될 것 같았다.

< 띠링! >

+

[위험! 산소가 부족합니다.]

호흡가능 시간 10초, 9초, 8초.

+

‘이러다가는 나도 진짜 죽겠구나.’

나는 마지막으로 젖 먹던 힘도 짜내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순 없지!‘

호흡이 부족해지면서 온갖 상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조금만 더 지체하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이기 때문일까.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었다.

‘으아아아아!’

“끼이익!”

좀처럼 열리지 않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약간 힘에 부칠 무렵.

덥썩!

“......!”

그때 막대기를 잡은 내 손 밑으로 다른 손이 나타났다.

선실에 남아있던 생존자가 나와 함께 문을 열기 위해 잠수한 것이다.

“으아아악!”

끼이이익! 덜컹!

수중이지만 무언가 떨어져 나가는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컥! 수, 숨이 모자라!’

문이 열린 동시에 호흡을 전부 다 써버린 긴장이 풀린 탓인지 갑자기 눈앞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

[위험! 산소가 부족합니다!]

호흡가능 시간 6, 5, 4

+

희미해진 눈앞으로 물속에서 한 여인이 내게 빠르게 다가왔다.

푸른 바다 속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모습의 여인.

비몽사몽간에도 지금의 상황은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 와중에도 그녀가 굉장히 아름다운 미녀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뭐지, 선녀인가……?’

반쯤 의식을 상실한 나는 비몽사몽간 내 눈앞에 나타난 여인의 모습에 넋을 잃었다.

‘물속이니까……. 선녀가 아니라 인어인가?’

< 띠링! >

+

[위험! 산소가 부족합니다!]

호흡가능 시간 3, 2, 1

+

< 띠링! >

+

<히든퀘스트 달성을 축하합니다.>

보상:

- 명성 + 25

- VIP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 칭호 [인도네시아의 국민 사위]를 획득합니다.

- 글로벌 인맥이 형성되었습니다.

- 모태솔로를 탈출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보상? 그러면 성공……한 건가?

그 생각을 끝으로 나의 의식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 * *

- 선박 M.V. 비너스호의 갑판

“쿨럭!”

나는 입에서 바닷물을 토해냈다.

“으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깨어난 나는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바닷물을 느끼고 왈칵 입 밖으로 쏟아냈다.

살았다!

내 눈 앞에는 걱정스런 얼굴의 사람들이 있었다.

가슴 명치 부위에 제법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인공호흡이라도 한 건가? 그런데 누가?’

고개를 돌리자 조셉의 모습이 들어왔다.

조셉은 나를 바라보며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는 손바닥으로 입술을 천천히 닦아냈다.

뭐 시발? 이거 뭐야!

‘설마?’

도대체 뭐냐고! 조셉이 왜 입술을 닦고 지랄이냐고!

황당해 하는 나를 바라보는 조셉의 표정도 어딘지 어색해 보였다.

설마? 진짜? 아니겠지?

‘조셉이 나한테 인공호흡 한 건?’

“켁켁켁! 우에에엑!”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바닥 위로 몇 차례 속을 게워냈다.

‘이런 시발!’

내가 겨우 이런 꼴 당하려고 그 난리를 친게 아니다.

“보고야 괜찮아 갑자기 왜 그래?”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이항사가 말을 건넸다.

가까스로 붕괴되던 멘탈을 되찾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자세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걱정스런 이항사의 표정, 여전히 진지한 선장님, 그리고 뭔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의 일항사까지.

“네, 괜찮아요.”

“임마! 너 죽다 살아났어!”

“…… 살았으면 뭐 됐죠. 처음도 아니고.”

“뭐? 무슨 헛소리야?”

“아무튼 그건 됐구요. 형, 설마 나한테 인공호흡 했어요?”

“그래 임마. 그 덕분에 산거야! 너 평생 고마워해야 돼”

“안돼!”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맙긴 개뿔!’

“퉤퉤퉤!”

황당한 표정의 이항사가 말했다.

“왜 그래?”

“뭐냐구요!”

“뭐가?”

“왜 하필 조셉이냐고요!”

“이 미친놈이 무슨 소리하는 거야?”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왜 하필 조셉이 했냐구요!”

내 공허한 외침에 제법 멀리 떨어져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 조셉도 내가 자기 이름을 외친 것을 듣고는 고개를 돌렸다.

조셉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며 그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저, 저, 저 새끼가!”

당황스러운 마음에 나는 말도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허, 이 미친놈이! 이 상황에 지금 그게 문제냐!”

딱!

이항사 김호영이 손바닥으로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왜 때려요! 안 그래도 기분 나쁜데!”

나도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미친 새끼……! 정신 좀 차려라!”

이항사는 웃으며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귀속말로 조용히.

“야! 조셉 아니야. 저기 봐.”

이항사가 가리킨 방향에는 아름다운 여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가 목숨을 걸고 구하겠다고 그 난리를 쳤던 바로 그녀였다.

‘예쁘네. 저런 사람을 저세상 미모라고 하지 않나?’

연예인인지 모델인지 아무튼 셀럽이라고 하더니 진짜 예쁘네.

그녀는 체온이 떨어진 탓인지 비치타월로 온몸을 감싼 채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어 보이더니 손을 들어올려 나에게 흔들어 보였다.

“서, 선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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