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200)

나는 선장에게 다가서며 크게 소리쳤다.

“선장님! 안됩니다.”

“음?”

이희영 선장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향해 돌아섰다.

"선장님, 항로를 돌아가면 안 됩니다.“

“무슨 소린가?”

“예정된 항로대로 다시 돌아 가야됩니다. 싱가폴 항구도 들려야 하구요.”

“도대체 무슨 소린가? 쓰나미 때문에 가면 안 된다고 그 난리를 피운 게 자네가 아닌가?”

선장의 말에 선교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 미친놈이 왜 또 헛소리지?

이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

그들의 표정은 예전과는 달리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나에 대한 궁금증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미친놈이지만 한번쯤 들어볼 필요는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표정이랄까?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는 말이 있질 않은가.

괄목상대라더니.

일련의 소동을 거치고 나니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게 변해 있었다.

초임 삼항사에 불과한 내가 선박에서 이정도 발언권을 가진다는 것은 사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순 없지.‘

나는 중대한 발표를 하는 사람처럼 선교에 모인 선원들을 둘러보며 시선을 하나하나 마주쳤다. 그리고 말했다.

“선장님, 구해야죠.”

“음?”

“저건 또 무슨 소리야?”

“또 왜 저래?”

내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삼항사, 구한다니 무슨 소린가?”

“규모 8.5 해저지진, 그리고 쓰나미 경보 발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라면 다른 선박들의 피해가 크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 부분은 내 전생의 기억과 다른 점이었다.

이렇게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었던가?

당시 격랑과 황천에 큰 피해를 겪은 기억은 이었다. 하지만 이정도 규모의 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했던 것인지는 확실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이정도 자연 재해라면 분명히 피해가 심한 상황일 것이라는 점은 추측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전생보다 큰 피해가 발생했을지도 모르겠어.’

전생과 현생이 반드시 똑같이 흘러간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밝힐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만약 이 일에 성공만 한다면 나에게는 꽤나 든든한 국제적인 인맥이 생길지도 몰랐다.

앞으로 파산에 처할 해신해운을 살리는데도 꽤나 도움이 될 그런 든든한 인맥.

결심한 나는 이희영 선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선장님, 해신해운도 예상하지 못한 자연재해가 아닙니까?“

“그렇지.”

다른 소형 선사들이나 민간인들은 아마 대피하지도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항로상에는 분명 미처 피하지 못한 선박들이 큰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릅니다.”

“으으음.”

이희영 선장은 즉답을 하기 보다는 신중하게 판단하는 스타일이었다.

신음성을 내던 선장이 손을 들어 올려 턱을 쥐었다. 고민할 때 나오는 그의 버릇.

나는 상념에 빠진 선장을 바라보며 다시 살짝 목소리에 힘을 주어 다시 외쳤다.

“선장은 다른 선박의 조난을 알았을 때 인명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하여야 한다!”

“......!”

내가 뜬금 없는 소리를 외치자 사람들이 다들 나를 바라보았다.

이희영 선장도 고개를 들었다.

“그래 삼항사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했군. 선원법 제13조의 내용이지. 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조난 요청을 한 선박이 있던가?”

이희영 선장의 지적이 날카로웠다.

내가 외친 말은 선원법 제13조의 내용이었다.

선원법은 선장의 직무와 권한에 대해서 정하고 있는데, 선장은 다른 선박 또는 항공기의 조난을 알았을 때에는 인명을 구조하는데 필요한 조치를 다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희영 선장에게 조난된 선박을 구할 의무가 선장에게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희영 선장의 말대로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좀 달랐다. 이희영 선장이 이것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선박이 조난당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선원법 조항이 적용되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우회하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이희영 선장이 선원법의 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생에서 우리 선박은 가까스로 조난되는 상황에 까지 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보다 앞서가던 선박들이었다.

선박의 규모가 작은 선박은 쓰나미에 밀려 좌주(물이 얕은 곳의 바닥이나 모래가 쌓인 곳에 배가 걸린 상황을 말함)된 선박도 있었고, 실제로 침몰 위기에 선원들이 비상탈출을 감행해서 구조될 때까지 표류한 일도 있었다.

선장이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인근이니 인도네시아의 해군이나 해경들이 구조하러 오지 않겠나?”

“그렇겠지요.”

“그들이 우리보다 구조의 전문들이 아닌가?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낫지 않겠나?”

“맞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늦을 가능성이 높지요.”

아니. 그들은 늦게 도착한다. 그리고 내가 구하고자 하는 VIP는 죽은 채로 발견된다.

선장이 고개를 나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그 이유는?”

“해저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는 해안가로 몰려가 큰 피해를 유발하게 가하게 됩니다. 구조대가 출동하려면 항구에서 출항해야 하는데 쓰나미를 뚫고 오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도 제법 멀리 있질 않은가?”

“우리는 해안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대양에 있으니 비교적 쓰나미의 영향이 적습니다.”

“그래도 쓰나미를 뚫고 갈 순 없지 않은가?”

“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구조 준비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면 됩니다. 좀 잠잠해지면 전속력으로 빠르게 항행해서 현장에 도착하면 됩니다.”

나의 말을 들은 선장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나의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선장도 나의 의견에 수긍하는 듯 했지만 바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일은 감정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선장은 옛날부터 자신이 운항하는 선박의 운항과 안전에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선박의 소유자인 선박회사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난된 선박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지 여부도 당연히 알 수 없는 상태.

그리고 해신해운은 민간회사였다.

민간회사는 기본적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집단이다.

민간 회사인 해신해운의 입장에서 운항을 중지하고 구조 활동을 하러가는 것은 이익추구활동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었다.

잘못하다가는 회사에 불측의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 진앙지 주변은 쓰나미의 위험이 완전히 해소된 것도 아니었다.

진앙지를 향해 항행하는 것은 선박을 위험에 처하게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상황.

나도 선장의 고민이 충분히 이해가 가는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번일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도 충분히 감수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물론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선장님.”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는 선장에게 한 사내가 다가왔다.

그는 일등항해사 곰치 양화종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를 바라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음? 또 다된 밥에 재 뿌리려고 저러는 건 아니겠지?’

나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일등 항해사를 경계했다. 그도 나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일등항해사 양화종은 나를 한번 힐끔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선장에게 말을 건넸다.

“선장님.”

“그래, 일항사. 다른 의견이 있나?”

“가시죠.”

”음? 어디로?“

“구하러 가시죠.”

“......!”

"헙!"

사람들도 의외라는 반응. 어떤 이는 헛바람을 들이키고, 사람들은 다들 침묵했다.

하! 우리 화종이 그 사이에 사람 됐네!

나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일항사가 나의 의견에 동조한 이유는 나도 제법 궁금했기 때문이다.

해난구조(1): 우리는 뱃사람이잖아요

- 선박 M.V. 비너스호의 선교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 보아도 일등항해사와의 추억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이 배를 타는 6개월 동안 내리 갈굼을 당한 기억만 떠올랐다.

그런데 지난 몇 시간 동안 일항사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내 기억과는 살짝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해서 그런 건가?

퀘스트를 달성하고 받은 보상이 떠올랐다.

‘내가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전생과 달라진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몰랐다.

20대 초반에 불과한 삼항사의 시선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것과 60살이 넘는 인생을 살면서 단맛 쓴맛을 본 후에 사람을 바라보는 안목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희영 선장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일등항해사 양화종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 이런 오지랖을 부리는 캐릭터는 아니었기 때문이겠지.

“아직 쓰나미 경보가 해제된 것도 아니네. 준비해서 들어간다고 해도 본선이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

“네 선장님, 알고 있습니다.”

“일이 잘못되면 나를 포함한 사관들 모두 시말서 정도 쓰는 걸로 끝날 문제가 아니야. 물론 최종 책임은 선장인 내가 지겠지만.”

“네. 저도 일항사 아닙니까?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감수하겠습니다.”

“본선을 위험에 빠뜨리는 항해사는 어떤 경우에도 용서받을 수 없다네.”

“그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일항사.”

“네.”

선장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일등항해사 양화종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장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일항사, 자네도 내년이면 선장 진급 대상이 아닌가.”

“맞습니다.”

“이번일이 잘못되면 자네 경력에도 큰 오점이 될 수 있다네. 동기들은 다 승진하는데 자네만 선장 진급이 누락될지도 몰라.”

“알고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뭐야 저 새끼. 왜 저래?’

이렇게 사람이 변해도 되나?

나도 일등항해사가 하는 말에 계속 놀라고 있는 실정이었다. 저런 새끼가 아니었는데.

‘저 자식 오늘 뭐 잘못 먹었나?’

그리고 일등항해사의 입에서 약간은 낯 간지러운 말이 이어졌다.

“선장님, 다른 건 몰라도 뱃사람은 씨맨십(Seamanship)은 있어야죠.”

“......”

사람들이 일등항해사에 말에 순간 침묵했다. 일등항해사가 선교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전부 뱃사람이잖아요. 뱃사람이 물에 빠져 있으면 군인, 해경 기다릴 것 없이 우리가 먼저 가서 건져줘야죠.”

그 말에 선교의 분위가 살짝 변한 듯 했다.

‘오...... 이건 솔직히 나도 인정.’

나도 모르게 일등항해사와 눈이 마주치자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다른 꿍꿍이를 계획하고 있는 나보다는 일등항해사가 훨씬 선한 의도를 가지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괜히 일항사까지 배를 탄게 아니구나.’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눈빛이 살짝 반짝이며 조용히 변하고 있었다. 선교의 공기가 미묘하게 변한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씨맨십(Seamanship)!

우리나라에서는 ‘선원의 상무’라는 이상한 말로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었지만 나에게 도통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배를 타보니 알겠다.

씨맨쉽은 뱃사람들이 가슴 한 켠에 품고 사는 말이었다.

전 세계 선원들에게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옛날부터 큰 유대감과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선원들은 해외 어디를 나가도 항구 근처에 있는 씨맨클럽(Seaman's club)에서 술 한 잔에 금방 친구가 되는 것도 이런 유대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국적과 인종이 달라도 바다 생활을 하는 선원들 사이에는 장벽과 경계를 초월하는 유대감이 깊게 형성되어 있었다.

뱃놈간의 의리.

그게 바로 씨맨쉽이다.

“선장님! 일항사 말이 맞습니다!”

조용히 구석에서 존재감 없이 서있던 이등항해사 김호영도 분위기를 타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잠자코 있을 생각이었지만 여기서 한마디 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감이 너무 미약하다고 느낀 것이 분명했다.

전생 때는 그저 나를 잘 챙겨주는 좋은 선배로 기억되었는데 지금 보니 기억보다 굉장히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은 사내로 보였다.

하지만 그 마저도 나에게는 귀엽게 보였다.

‘그래도 아직 어린 나이니까.’

이 역시 전생의 나와는 달리 사람 보는 안목이 생긴 탓일지도 몰랐다.

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그를 빤히 바라보자 일항사는 민망한 듯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선장이 말했다.

“그래? 이항사도 같은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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