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200)

사실이다. 전생까지 합치면 이미 선장과 비슷한 나이의 경험이 나에게 축적되어 있질 않은가?

선장이 말을 이어갔다.

“배우는 게 있다면 다행이네. 그래서 이번에 자네를 한번 믿어보기로 한 것이지.”

“네?”

“혹시라도 자네 말이 맞는다면 자네가 이 배를 구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나?”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어떻게 되는지 한번 지켜보지. 어떻게 되는지. 만약 자네가 틀리면 나도 당장 시말서를 쓰고 감봉되는 것도 감수해야 되질 않겠나? 허허허.”

“......”

“초임 항해사가 선장 말도 안 듣고 이로(항로를 이탈한다는 의미)를 하다니. 내 승선생활 중에 처음 들어보는 일이네. 허허허.”

“......”

“막내딸이 이번에 의대에 진학했는데 이거 큰일이네. 등록금이 제법 비싸던데 말이지. 허허허.”

“......”

“삼항사, 혹시 우리가 짤리진 않겠지?”

“......”

갑자기 내 입안의 침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이번일이 잘못되면 나 때문에 이배에 시말서를 써야 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젠장! 그래도 짤리진 않겠지?

+

<부속 퀘스트(#01-1) 성공을 축합니다..>

당신은 부속 퀘스트를 성공하였습니다.

보상 :

- 칭호 : [수성의 달인]

+

‘음? 한 시간이 지났나?’

그때였다.

나는 선박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쿵하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었다.

평소 바다 위에 있는 선박에서 일어나는 롤링 같은 것들과는 다른 움직이었다.

이희영 선장과 같은 베테랑이라면 분명이 알아차렸을 것이 분명했다.

“선장님!”

“음?”

“방금 느끼셨습니까?”

“뭘?”

“방금이요.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습니까?”

“무슨 헛소린가?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

“...... 아무것도?”

“그래, 미동도 없었네.”

“......”

젠장. 환청이 들리는 건가?

그때였다.

지지직. 지지직.

어색한 기운이 감돌던 그때.

선장의 손에 있던 무전기가 신호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선장님, 일항사입니다.”

“그래, 일항사. 선장이다.”

“선장님, 브릿지로 빨리 올라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가?”

“운항팀과 본사에서 긴급으로 기상정보와 운항지시를 보내 왔습니다.”

선장과 나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빠르게 시선을 교차한 후 우리는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 * *

- M.V. 비너스호의 선교.

선교에는 이미 대부분의 선원들이 올라와 있는 상황이었다.

평상시라면 선내의 모든 선원들이 이 곳에 집합하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다들 내가 벌인 소동의 이 스펙타클한 사건의 결말이 보고 싶어 모여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선교로 뛰어 들어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나를 향했다.

모두 신기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예, 접니다. 해신해운 선박의 망나니가 바로 접니다.’

나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만렙 선원이 된 줄 알았는데 망나니가 되어 버린 기분이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선장이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나이차 때문인가? 선내에서 우사인 볼트만큼 빠른 사내인 나와는 제법 시간차이가 있었다.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일항사 본사에서 교신이 왔다고? 무슨 내용인가?”

선장이 선교로 들어서자마자 일항사를 바라보며 다급하게 질문했다.

선장을 바라보는 일항사의 얼굴은 사과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제법 상기된 표정.

“선장님, 긴급 피항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래? 이유가 뭔가?”

“예정된 항로근처인 인도네시아 인근 불의 고리 해저 지역에서 8.5 규모의 큰 지진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일항사의 말에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어, 어!”

몇몇 사람들은 짧게 탄식을 터트리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선장이 질문하자 일항사가 말을 이어갔다.

“해저지진의 여파로 최소 8미터 이상, 최대 20미터 상당의 쓰나미가 발생할 수 있음! 본선은 최소 500해리 이상 가능한 멀리 거리를 두고 진앙지를 피항하거나 돌아서 우회하라는 지시입니다!”

“쓰, 쓰나미가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되는 반경이 얼마인가?”

“인도네시아 기상청에서는 진앙지 반경 최대 약 500해리(대략 926km) 해안 까지는 쓰나미에 혹시 모를 피해를 대비하라고 경보를 발령했다고 합니다!”

쓰나미라는 말에 경직된 표정의 선장이 일항사를 바라보며 질문을 이어갔다.

“일항사, 본선과 진앙지까지의 거리가 얼마인가?”

일항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빠르게 해도를 돌려 본선과의 거리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똥그랗게 뜬 채로 놀란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말했다.

“보, 본선과의 거리는 정확히 오, 오백십해리(944.52km)입니다!”

“......!”

잠시 침묵이 감돌더니 이내 선교에서는 큰 함성 소리가 터졌다.

“와아아!”

“살았다!”

“와!”

선박 M.V. 비너스호의 선교에서는 이 선박이 취항한 이래로 가장 큰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 띠링! >

창이 떠올랐다.

+

<메인 퀘스트(#01) 달성을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활약으로 비너스호는 쓰나미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보상 :

- 명성 + 20

- 선원들이 당신을 존중하기 시작합니다.

- 당신에 대한 일등항해사와 선장의 호감도가 증가합니다.

- 항해술 경험치가 증가합니다.

- 바다의 해류를 읽는 능력이 상승합니다.

+

이렇게 보상이 많다고?

“상태창”

< 띠링! >

+

<상태창>

이름 : 장보고

나이 : 23세

클래스 : 항해사

세부클랙스 : 삼등항해사

레벨 : Lv.1

스킬 : [항해술 Lv.1], [태권도 Lv.3], [고무고무킥 Lv.3], [인명구조 Lv.1.]

명성 : + 25

칭호 : [수성의 달인 Lv.1]

Rmark: 능력치가 여전히 현저히 낮습니다. 조금 더 분발하세요!

+

일항사 양화종

- 선박 “M.V. 비너스호” 선교

선박에서 한참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서로 어깨 동무를 하고,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하고 마주보며 환하게 웃는 사람들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찌릿찌릿.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희열.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선교에서 한참을 소리 지르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 틈에서 나를 유심히 바라보던 이희영 선장이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삼항사, 자네가 걱정했다는 상황이 이건가?”

“네, 선장님. 하지만 저도 정확히는 몰랐습니다.”

“그래?”

“네, 그저 원양어선의 선원들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는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던 것뿐인데 운이 좋았습니다.”

“음, 아무튼 고생했네.”

선장은 내 아버지가 오랜 기간 해신해운에서 갑판장으로 승선한 경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입을 굳게 다물더니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으로 나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쳤다.

낯간지러운 격려의 말은 없었다. 하지만 평소 냉정하기로 유명한 이희영 선장이 보여주는 최고의 칭찬과 다르지 않았다.

“삼항사! 짱! 삼항사! 짱!”

조타수 조셉이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크게 박수를 크게 치며 외쳤다. 그리고 사람들을 쳐다보며 박수를 유도했다.

다들 조셉의 구령에 맞춰 박수를 쳐댔다.

선교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더니 모두 나에게 다가와 너나 할 것 없이 박수를 치면서 내 머리와 등을 사정없이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등을 마구 두들기던 사람들 뒤로 어색하게 모습을 드러낸 사내가 있었다.

일등항해사 곰치 양화종.

평소 재수 없어 보이던 그의 얼굴에도 지금 이순간에는 제법 큰 미소가 서려 있었다.

예정된 항로대로 항해했을 경우 어떤 상황에 처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쓰나미를 만나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일항사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일항사가 내게 다가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나도 그의 눈을 바라보며 얼른 손을 내밀어 일항사의 손을 움켜잡았다.

“삼항사, 고생했다. 미안했다.”

“아닙니다. 일항사님.”

“그래도 미리 알려주지 그랬냐?”

“말씀드린다고 사람들이 제 말을 믿었겠습니까?”

“하하하. 그래, 그것도 그러네.”

일등항해사 양화종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실소를 흘렸다.

‘음? 일항사가 이런 스타일이었나?’

나는 순순히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인정하는 그의 모습에 살짝 놀랐다.

전생에 그에게 혼나기만 했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보이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탓인가? 하긴 전생에서는 내가 잘못하고 혼나는 일이 많았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어쩌면 그를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의 기억만으로 현생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속단하지는 말아야겠구나!

이희영 선장과의 인연도, 일항사의 인연도 전생과는 살짝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

“그래 아버님이 조언해주신 말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훌륭한 선원이셨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는데, 나도 앞으로 명심해야겠다. 덕분에 우리가 다 무사했다고 고맙다고 말씀드려다오.”

“감사합니다. 아버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내 덕분에 느닷없이 훌륭한 선원이 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게 효도지 효도가 별건가??’

아버지! 제가 전생에서도 하지 못한 효도를 이곳에서 하네요.

내가 이런 발칙한 생각을 하는 사이 나를 흐뭇하게, 아니 약간은 부담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이희영 선장은 나와 일등항해사 양화종이 악수를 하며 대화하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 띠링! > 다시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

<메인 퀘스트(#02)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지금 쓰나미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을 구하시오.”

세부 퀘스트 : 인명 구출

클리어 조건 : 쓰나미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조할 것

제한시간 : 구조 가능 시점까지.

보상 : 명성 + 20, 히든 퀘스트 달성시 ???,

실패시 : ???

+

이렇게 바로 시작한다고?

내가 상태창을 확인하고 있는 사이 이희영 선장이 일등항해사 양화종에게 지시하기 시작했다.

“일항사, 그럼 500해리를 떨어져서 우회하도록 항로를 다시 설정하게. 불가피하게 싱가폴 항구는 스킵 해야겠군. 싱가폴 항에서 하역할 화물은 다음항에서 하역하고 환적할 수 있도록 운항팀에 연락하도록.”

“네.”

선장의 말을 듣고 나는 다시 한 번 오지랖을 부리기로 결심했다.

‘퀘스트를 달성하려면 돌아가면 안 된다.’

아니, 퀘스트 때문이 아니라도 이번 항차에 반드시 하고 싶은 일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