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새 헬멧과 방탄조끼로 단단히 무장한 상태였다.
그리고 방 안쪽으로 가시철망을 쳐서 사람들이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나는 나름 완벽에 가까운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저, 저 새끼 저거 어디서 났어!”
나를 바라보며 일항사가 절규했다. 그의 목소리는 처절하다 못해 성대가 결절된 거 마냥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최근 해운회사의 최대 화두는 기승하는 해적들이었다.
컨테이너를 싣는 컨테이너선은 벌크선이나 유조선 같은 탱크선에 비해 선속이 빠르고 높이가 높아 해적들에게 피랍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하지만 해신해운에서는 최근 해적들이 계속 기승을 부리자, 만일을 대비하여 대해적용 방호장비들을 선박에 보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희영 선장은 매사에 꼼꼼한 인물이었다.
다른 선원들의 장비는 따로 갑판에 같이 보관되어 있었지만, 이희영 선장은 다른 선장들과 달리 자기 스스로 할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희영 선장이라면 자신의 개인 장비를 항시 자기 방에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내가 쓰고 나타난 것은 이희영 선장이 방에서 보관하고 있던 대해적용 방호장비들이었던 것이다.
황당해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내가 당당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두려움 때문인지 세차게 흔들렸다.
나는 마치 장판파의 장비가 된 기분이었다.
조조의 십만 대군을 장판파 다리에서 홀로 막아내던 그 만인지적의 장수 장비!
하지만 사실 장보고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동자는 다른 이유로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미친놈이다. 이거 제대로 미친놈이다.’
이들의 눈에 비친 나는 대형 컨테이너선을 대뜸 정지시킨 후 방문을 걸어 잠그고 대해적용 방호장비를 착용한 채로 난동을 부리는 미친놈이었다.
아주 제대로 미친놈. 이들은 그렇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아냐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 그것을 본다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이제 약간의 시간만 더 벌면 일이 마무리 될 수 있었다.
내 마지막 위세를 펼칠 시간이었다.
“호영이 형!”
내가 갑자기 이항사의 이름을 호명했다.
“어, 어? 그래! 보고야!”
이항사가 나를 보며 손을 들었다.
“형님, 우리 대학 때 태권도 동아리 같이 했잖아요.”
“그래, 그랬지.”
“제가 태권도 4단이고 종합격투기도 취미로 했다고 일항사님한테 말해줄래요?”
“어?”
“저한테 까불던 후배 있잖아요. 복싱했다고 설치던 놈. 제가 스파링으로 어떻게 참 교육 시켰는지 일항사님한테 말 좀 해줄래요?”
네가 말하면 되잖아.
이항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일항사를 바라보았다.
“일항사님, 사실입니다.”
“뭐가!”
일항사가 이항사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저놈이 한 말이 사실이라고요. 태권도 4단에 종합격투기 도장도 취미로 배우러 다녔다구요.”
“이 새끼가! 그래서 나보고 뭐 어쩌라고!”
일항사는 애꿎은 이항사만 실컷 노려보았다.
그는 제대로 미친놈인 나는 이제 도저히 대화로는 상대할 수 없는 미친놈이라고 단정 지은 것이 분명했다.
그에 일항사는 오히려 이항사에게 스트레스를 풀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항사도 폭발했다. 일항사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온순했던 그도 그동안 쌓여있던 분노를 폭발시켰다.
이항사가 별안간 소리쳤다.
“일항사님!”
“왜 자꾸 불러, 이 새끼야!”
“제가 대학 다닐 때 태권도 동아리 회장도 하고 태권도 3단에 유도도 2단까지 땄다고 말씀드렸던가요?”
“이, 이 씨발 새끼들이 진짜.”
일항사는 잔뜩 열 받은 표정으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한동안 이항사를 노려보다가 그는 포기한 듯 고개를 뒤로 돌렸다.
미친놈들과 상종하면 자기만 손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는 좀 더 제대로 된 인간을 찾기 시작했다.
“갑판장님, 가서 소화기하고 소화전 좀 뽑아오세요.”
“소화전이요?”
“네, 물대포라도 써야지요.”
“물대포를 어디 쓰려고?”
“선상반란이 일어났는데 물대포라도 쏴야지, 그럼 어떻게 합니까!”
‘물대포?’
헬멧이랑 조끼 썼으니까 괜찮겠지?
아무리 60년의 경험이 있는 나라도 전생에 물대포를 맞아본 기억은 없었다.
선장 이희영
- 선박 M.V. 비너스호 선장실
물대포?
하! 이 정도면 내가 막나가는 건지 저 일항사놈이 막나가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경 아닌가?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뭔가 액션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아뵤!”
“......”
“......”
“키야앗!”
나는 느닷없이 허공을 향해 앞차기를 했다. 그리고 발차기에 이어 손날을 이용해 상대를 내려치는 동작을 선보였다.
갑판수들이 소화전을 뽑아 오기 전까지 혹시 모를 육탄전을 대비해 몸을 풀겸 발차기 실력을 보여준 것이다.
“......”
“......”
다른 사람들은 나의 무술 실력을 보고도 침묵했지만 내 든든한 아군이자 조력자, 최측근인 조셉은 내 태권도 실력을 알아보았다.
“삼항사님, 짱! 써(Sir)"
고개를 돌려보니 조셉이 환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나도 조셉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놈이 나 때문에 괜히 줄을 잘 못 선건 아닌지 슬슬 걱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일항사는 내 태권도 실력이 겁난 것일까. 나와 감히 육탄전을 벌일 생각은 아닌 듯 가만히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곧 이어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갑판장과 갑판수들이 선장실로 달려왔다.
이놈들은 우선 물대포를 쏴서 나를 무력화한 후에 달려들겠다는 계획으로 보였다.
그들의 손에는 소화기와 소화전 호수가 들려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일항사가 외쳤다.
“쏴! 쏴버리세요!”
소화기를 들고 나를 바라보는 갑판장의 표정은 매우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일항사의 지시에도 선뜻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 찰나의 순간을 노렸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갑판장을 바라보았다.
“진짜요?”
갑판장이 내 눈을 바라보았다.
“진짜 그걸 저한테 쏘실 겁니까? 소화기랑 물대포를?”
“......”
“에? 삼촌! 진짜 쏘실꺼냐구요!”
“......”
갑판장은 내가 삼촌이라고 부르자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내 아버지도 해신해운에서 갑판장으로 오래 근무했다. 그리고 이 배의 갑판장도 아버지와 함께 근무를 오래한 사이였다.
나는 어린 시절 그를 삼촌이라고 불러왔다.
“...... 선장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것 같습니다.”
내 인정어린 호소가 통했던 것일가 갑판장이 들었던 소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는 선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뭐해요! 시발! 이래 내놔! 내가 쏠 테니까.”
일항사가 소화기를 뺏으려고 갑판장에게 달려들었다.
“일항사! 그만 됐네.”
급발진 하는 일항사를 저지한 것은 이희영 선장이었다.
“네?”
“이쯤하면 됐네. 어차피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조금만 기다려 보지.”
“선장님, 저 미친놈 말을 믿으시는 거예요?”
“믿는 건 아니야. 그래도 삼항사가 이배에 탄지 삼개월이 지나지 않았나. 이유 없이 저런 행동을 할 사람도 아니질 않은가.”
“어휴! 이런 씨발 저 미친 새끼!”
일항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바닥에 내던졌다.
이희영 선장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삼항사, 아까 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나?”
“네, 선장님.”
“그럼 이제 30분도 안 남았겠군.”
선장은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앞으로 한 시간 동안 정선한다. 다들 자리로 돌아가서 필요한 정비를 하고 있도록.”
“네!”
사람들이 대답하자 선장은 주저 앉아 있는 일항사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일항사, 선교로 가서 좀 쉬고 필요한 준비를 좀 해두게. 나는 삼항사와 이야기를 마저 하고 시간이 되면 올라가겠네.”
“...... 알겠습니다.”
일항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나를 노려보더니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일항사 뒤를 따라 선장을 제외한 나머지 선원들이 모두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셉! 너도 빨리 선교로 돌아가라.”
“예, 써.”
내 뒤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조셉이 선장의 불호령에 방을 나와 선교로 달려갔다.
아마 조셉은 일항사의 심한 갈굼을 받을 것이 분명했지만 조금만 지나면 일이 잘 풀릴 것이니 큰 걱정은 되질 않았다.
“삼항사, 우리는 시간이 있으니 이야기 좀 하지.”
“네, 알겠습니다.”
선장이 방으로 들어섰다.
“그 헬멧이랑 방탄 조끼 좀 벗게! 덥지 않나?”
나는 선장의 말에 헬멧과 방탄조끼를 벗어던졌다.
“덥네요. 허허허.”
나는 선장을 바라보며 실없이 웃었다. 이쯤 되니 내가 벌인 일련의 소동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 가시철망은 또 어떻게 찾아냈나?”
선장이 나를 보며 웃었다. 사실 저건 쫌 의외였다. 아무리 꼼꼼한 선장이라도 가시철망까지 방에 가지고 있을지는 나도 몰랐다.
“저기 탁자에 좀 앉아서 쉬도록 하게.”
“네”
“삼항사 어때 커피한잔 할 텐가?”
“아, 제가 타겠습니다.”
“됐네. 이때까지 말도 안 듣더니 이제 와서 무슨 사회생활인가.”
“......”
“체력소모가 심해 보이는데 앉아 있게. 이 기회에 선장이 타주는 커피도 마셔보게.”
선장의 말에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래 이제 삼개월 정도 되는데 승선생활을 할 만한가?”
“네, 아주 좋습니다.”
“그래...... 난 처음에 자네가 미친것은 아닌지 매우 혼란스러웠다네. 간혹 그런 친구들이 있다네.”
“지금은 아니고요?”
“아직도 사실 정확한 판단은 안 되는군.”
“......”
선장은 커피를 한잔 마시더니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보니 뭔가 분위기가 많이 변했군. 눈빛도 제법 깊어지고”
“그런가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그래, 웃음소리도 영 젊은이 같지가 않아. 지금도 마치 내 동년배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나는 그 소리에 웃음을 뚝 멈췄다.
“그나저나, 깐깐한 선장 밑에서 일하니 힘들지 않나?”
“아닙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이 말은 진심이었다.
나는 과거에도 항해사로 일하는 동안 이희영 선장을 멘토 모델로 생각했다.
주변의 다른 항해사들 중에는 선장이 너무 꼼꼼한 스탈일 이라고 같이 승선하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합리적인 일처리와 경험은 배울 점이 많았다.
“내가 내 초임 항해사 시절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던가?”
“없습니다.”
솔직히 좀 놀랬다.
과거에 이희영 선장과 승선하는 동안에도 선장이 자신의 이야기를 길게 들려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첫 삼항사로 승선한 배에서 큰 화재가 있었다네, 소화기를 들고 뛰어갔는데 나는 무서워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지.”
“그럼 불은 어떻게 됐습니까?”
“결국 선장님이 달려오더니 소화기를 나에게서 뺏어들고 컨테이너 위로 직접 뛰어 올라갔다네. 그리고는 불을 껐지.”
“대단하신 분이었나 보네요.”
“그렇지. 내가 롤모델로 생각해온 선배님이시지.”
“그 선장님은 지금도 해신해운에 계신가요?”
“아니. 그 화재 사고 때문에 은퇴하였다네.”
“네?”
“다 진화한줄 알았던 화약이 불씨가 남아있었던 모양이야. 갑자기 큰 폭발이 일어나더니 제법 큰 화상을 입으셨지 그리고 회사를 퇴직하시기로 결심했다네.”
“음......”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배에서 일어나는 사고 중 가장 무서운 사고 중 하나가 화재 사고였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선장이 말을 이어갔다.
“그 이후로 나도 모르게 강박이 생긴 것 같아. 그래서 후배들이나 항해사들을 혹독하게 지도하는 버릇이 생긴 지도 모르겠네.”
“아닙니다. 선장님 덕분에 정말 배우는 게 많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많이 가르쳐주십시오.”
“그래?”
“네, 진심입니다.”
“사회생활이 그새 많이 늘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