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200)

조셉은 내가 지시한 대로 시동키를 잡아 뽑았다. 그리고 다시 시동을 걸 수 없도록 조타키를 빠르게 잠가버렸다.

조셉은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는 있지만 시동키를 손에 쥔 그의 두 손은 심하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조셉!”

내가 소리치자 조셉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선장실로 튀어! 빨리!”

“예? 예 써!”

조셉이 크게 외치더니 일항사가 쫓아오기도 전에 빠르게 선교를 뛰쳐나갔다.

조셉은 선내에서 가장 빠른 사내였다. 천식 환자가 이렇게 날랜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전대미문의 사건에 어안이 벙벙해진 일등항해사와 선장, 일항사가 나를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너, 너 이 새끼.”

당황한 일등항해사는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말을 더듬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살짝 둘러보았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희영 선장과 이등항해사의 황당해 하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 난리를 치고 보니 쫌 미안하긴 하네.’

나는 선장을 바라보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나중에 설명 드릴게요오오오.”

나는 크게 소리치며 빠르게 선교를 벗어났다.

나도 조셉을 쫓아서 선장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조셉 다음으로 이 선박에서 날랜 남자였다.

나는 배 위에서라면 우사인 볼트도 뺨을 때릴 만렙 선원이었다.

아, 만렙은 아니구나!

< 띠링! >

+

<부속 퀘스트(#01-1)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부속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쓰나미 발생 1시간 남았습니다. 1시간만 버티세요!”

세부 퀘스트 : 선장실 수성전

클리어 조건 : 1시간 수성

제한시간 : 1 시간

보상 : 칭호(수성의 달인)

실패시 : ???

+

선상반란

- M.V. 비너스호의 선장실

조셉을 쫓아서 빠르게 선장실로 들어온 나는 방문을 닫고 자물쇠를 걸었다.

조셉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흥분한 기색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써(Sir), 큰일 나따. 우리 이제 큰일 나따.”

“왜?”

“캡틴(선장)한테 개겨다.”

잘 하지도 못하는 한국말을 하는 조셉의 얼굴은 꽤나 진지해 보였다.

“우리 조대따. 조대따.”

“흐흐흐.”

조셉의 말에 내가 갑자기 실소를 흘렸다. 조셉은 더욱 경직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써, 미쳐써? 미쳐써요?”

나를 쳐다보며 손가락을 머리 옆으로 올려 빙빙 돌리는 모습에 나는 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선박의 키를 잠그고 선장실로 도망치는 것은 미리 계획된 행동은 아니었다.

순간적인 임기응변이었다.

"조셉, Don't worry(걱정하지 마). Everything's gonna be OK.(다 잘 될 거야)."

조셉은 나를 바라보며 알았다는 표정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를 세뇌하려는 듯이.

조셉은 내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줬다며 생명의 은인이라는 말을 했다.

생명의 은인이라곤 하지만 선장의 명령을 거역하면서까지 내가 시키는 대로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셉은 나를 신뢰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제법 시간을 버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도 약 한 시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전생의 기억대로라면 약 한 시간 후면 회사에서 업데이트된 최신 기상정보를 다급하게 보내올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기상정보를 받았을 때는 이미 황천 속으로 진입한 후였기 때문에 배를 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본사의 연락이 오면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상태였다.

쾅쾅쾅!

방문 밖에서 문을 세차게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고야! 장보고! 이 미친놈아, 빨리 문 열어!”

이등항해사 김호영이었다.

“형, 싫어요. 혼자 있고 싶어요.”

“야 인마! 도대체 너 왜이래! 미쳤어?”

“안 미쳤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미쳤어도 미쳤다고 하겠어요?”

“그럼 도대체 왜 이러냐! 너 때문에 멀리 돌아오느라고 우리가 손해 본 게 얼마나 큰지 몰라서 그래?”

“손해 본 게 도대체 얼만데요?”

“어? 모, 몰라! 이 새끼야!”

“자기도 모르면서 나한테 왜 그래요!”

“그래도 대충 너 때문에 멀리 돌아온 만큼 태운 벙커 값이랑 용선료만 계산해도 삼항사 연봉보다는 훨씬 비쌀 거다! 이 미친 새끼야!”

“…….”

이항사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과거에 황천 사고로 인해 선박이 파손되고 화물을 유실해서 수습하는 데 들어간 비용에 비하면 이건 새 발의 피였다.

‘이런 걸 조족지혈이라고 하지.’

그런데 이렇게 좋은 걸 나만 알고 있네.

답답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아무리 가까운 이라고 하여도 알려줄 순 없었다.

내가 과거가 어쩌고 전생이 어쩌고 하면 나를 정신병원에 보내려고 하선시킬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똑똑똑.

이번에 들리는 소리는 선장이었다. 그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항사.”

“네, 선장님.”

“이러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밖으로 나오시게.”

“선장님,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은 하지 않으면 되지.”

“한 시간만 더 하겠습니다.”

“뭐? 왜 한 시간인가?”

“그때쯤이면 일이 잘 풀릴 것 같습니다.”

“무슨 일.”

“좋은 연락이 올 것 같습니다.”

“…….”

점잖기로 유명한 이희영 선장도 나의 미친 짓에 질린 듯 이제 별다른 대답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저 대화가 불가능한 미친 새끼라고 결론을 지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쯤 되니 나도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과거의 기억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으면 어쩌지?’

아니다.

항로를 갑자기 변경한 일, 조셉이 쓰러지고 발견된 일 모두 과거와 똑같이 반복되고 있었다.

물론 내가 개입해서 바뀔 미래도 있겠지만 아직까진 그 영향이 있을 리 없었다.

선장도 결국 포기하고 물러났다.

쾅쾅쾅.

마지막 남은 상대는 역시 곰치 일항사였다.

이들을 차륜전으로 상대하자니 나의 모습이 마치 삼국지에서 여포가 유비 삼형제를 상대로 싸움을 펼치던 모습과 유사하게 느껴져서 흐뭇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이 새끼는 처음부터 욕설이네.

“이 미친놈들아!”

“왜요!”

나도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삼항사 너 이 새끼! 나오면 바로 징계에 회부할 거야. 상급자 명령 안 따르면 선장님 권한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는 거 정도는 알고 있지?”

일등항해사가 문 뒤에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선원법에 있는 내용으로, 나도 다 아는 내용이었다.

이놈은 다 아는 것도 자기만 아는 것처럼 말할 수 있는 신기한 재주가 있었다.

과거에는 고분고분 들어주며 잘난 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줬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 난리를 치면서도 찝찝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난리를 치고 이렇게 욕을 먹는데. 나중에 저자식도 큰 이득을 볼 게 분명하니 잘난 척까지 들어줄 순 없었다.

저 자식이 내 덕분에 과거와 달리 빨리 선장으로 승진한다고 생각하니 순간 짜증이 몰려왔다.

‘에휴, 저 시발 새끼. 진짜 내일이면 나한테 고맙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되는 놈인데.’

답답하지만 어쩌겠나. 내가 참아야지.

내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일항사는 작전을 변경했다.

목표를 변경했다. 내가 아닌 조셉을 노리고 설득하기로.

“조셉! 조셉!”

“예 써!”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문 열어.”

“…….”

“지금 열면 너는 봐준다. 너는 내가 책임지고 징계위원회에 안 올라가게 해준다.”

일항사의 말에 조셉의 표정이 또다시 심각하게 굳기 시작했다.

“조셉! 돈 계속 벌고 싶지?”

“예 써!”

“그래, 돈 계속 벌어야지! 빨리 문 안 열면 너희 둘 다 다음에 기항하는 항구에서 하선시켜 버릴 거야!”

“…….”

“조셉!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조셉은 하선이라는 말에 심각하게 갈등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는 머리를 세차게 좌우로 흔들더니 결심한 듯 문 뒤에서 크게 외쳤다.

“아이 돈 노(몰라요). 써!”

“이 씨발 새끼들이 진짜!”

“욕하지 마세요. 일항사 나빠요!”

“닥쳐 이 새끼야!”

일항사는 경기 들린 사람처럼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이쯤 되면 내가 미친놈인지 아니면 일항사가 미친놈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조셉은 속이 후련한 듯 손을 들어 올려 입을 틀어막고 웃어댔다.

나는 조셉을 바라보며 엄치를 치켜세웠다.

‘조셉, 잘했어!’

조셉도 신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평소 고압적으로 행동하는 일항사에게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상태였다.

조셉에게 한방 먹은 일항사는 잔뜩 골이 난 표정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며 크게 소리쳤다.

“갑판장, 기관부에 연락해서 문을 뜯을 수 있는 장비 좀 빨리 들고 오라고 해요!”

일항사가 갑판장를 바라보며 손짓하자 갑판장이 허겁지겁 아래로 달려갔다.

‘아직 좀 더 버텨야 되는데.’

나는 선장실 안에서 초조하게 시계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의 바람과 달리 문 뒤에서는 큰 기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절단기 소리였다.

위이이이잉.

기관부 선원들이 올라와 절단기로 문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아직 시간을 더 끌어야 했다.

과거의 단편적인 기억이 내 뇌리를 빠르게 스쳤다.

나는 빠르게 선장의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절단기의 소리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이 달려들어 문을 열어젖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털컹!

문이 절단되고 그 뒤로 의기양양한 일항사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본사로부터 연락이 오기까지 30분의 시간이 더 남은 순간이었다.

물론 나도 나름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제 전쟁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나는 결전을 앞두고 결의를 다졌다.

* * *

“어, 어, 저거 뭐야! 저 새끼 진짜 뭐야!”

문 뒤로 나타난 내 모습을 바라본 일항사는 크게 소리쳤다.

그 소리는 비명소리에 가깝게 들렸다.

내가 문 뒤로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이쯤 되면 내가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했다. 이미 승리의 샴페인을 터트린 상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다.

과거로 회귀까지 해서 얻은 기회인데 내 사전에 포기란 있을 수 없는 단어였다.

짜자잔.

내 머리 위에는 헬멧, 그리고 가슴에는 방탄조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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