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200)

조셉은 필리핀 출신 선원으로 조타수였다.

나와는 평소 합이 잘 맞아 같이 근무하는 일이 많아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조셉은 왜? 교대 시간 전이라서 자고 있는 거 아닌가?”

“한번 사람 보내서 찾아봐 주세요.”

“무슨 일이 생겼는가?”

“사실 조셉에게 천식이 있습니다.”

“뭐? 무슨 소리야? 승선 전에 신체검사 다하고 승선하는데 갑자기 천식이라니? 그런 말 없던데.”

“알잖아요. 현지에서 하는 검사는 돈만 좀 주면 다 통과하는 거.”

외국 선원들이 한국이나 일본, 유럽의 상선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선박관리회사와 계약된 현지의 매니지먼트들을 통해야 했다.

자국에서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선원이 되려고 하는 외국 선원들이 많았다.

특히 해신해운과 같은 글로벌 선사의 상선은 복지가 좋아 더욱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현지 브로커들에게 돈을 주어야 겨우 해신해운에서 승선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말도 있었다.

선원들은 승선 전에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

외국인 선원들은 현지 병원에서 검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검사에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돈을 제법 쥐여 주면 브로커들이 병원과 짜고 신체검사증을 조작해 주는 일도 더러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해운업계의 비밀이었다.

그리고 만약 내 과거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조셉은 오늘 선박의 밀폐공간에서 천식으로 쓰러진다.

그리고 너무 늦게 발견되어 조셉은 결국 선박에서는 회복하지 못한 채로 이 선박에서 하선하게 된다.

조셉은 떠나기 전날 제발 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사람들에게 빌었지만 달리 선박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조셉은 이 배에 타기 위해 필리핀 현지에서 브로커에게 돈을 많이 줬다고 소리쳤다. 그 뒷돈은 가족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이라고 했다.

이대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돈을 벌어서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애원하는 조셉에게 나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를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조셉에게 천식이 있다고? 아이고야. 그럼 어쩌지?”

갑판장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조타수니까 일하는 데는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요?”

“그래? 그럼 다행이지…….”

“사실 제가 지금 감이 이상해서요.”

“뭐가?”

“올라오기 전에 지나가다 보니 조셉 상태가 좀 이상해 보이더라고요.”

“그래?”

“네, 그러니 갑판장님이 한번 찾아봐 주세요. 찾아서 괜찮으면 선교로 잠시 올라오라고 하시구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일은 비밀로 하시는 것으로 하죠.”

“아, 알겠네.”

갑판장이 내말을 듣고 허둥지둥 선교를 내려가려고 하자 나는 그의 등 뒤로 소리쳤다.

“혹시 모르니 조셉이 지내는 방으로 먼저 가서 방에 없으면 흡입기를 미리 챙겨서 움직이시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아! 그래, 그렇구먼.”

“사람들 몰래 흡입기를 쓰려고 밀폐구역 근처로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쪽을 우선 찾아보시지요.”

내가 말을 마치자 갑판장이 우두커니 서서 움직이지 않고 나를 돌아보았다.

나를 보는 그의 표정은 많이 놀란 표정.

그는 평소 나를 조카처럼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초임 항해사로 부임한 내가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남들 몰래 챙겨주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내가 베테랑 선원 같은 침착한 모습으로 그에게 지시를 하고 있었다.

마치 경험이라도 해본 사람처럼 차분하게 지시하는 모습이 그에게는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매우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베테랑 선원들에게 초임 항해사들은 하룻강아지나 마찬가지였다.

군대로 치면 훈련을 마치고 자대로 갓 배치된 소위를 바라보는 하사관들의 심정과 비슷했다.

갑판장도 여태껏 나를 그렇게 대하고 있었다.

“삼항, 오늘 뭐가 좀 변했구먼?”

갑판장은 나와 단둘이 있을 때는 종종 삼등항해사를 줄여 ‘삼항’이라고 불렀다.

그도 오늘 갑자기 변한 나의 분위기를 분명히 알아차린 것이다.

“변해요? 뭐가요?”

하지만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질 않은가.

살짝 웃어 보이며 모르는 체 할 수밖에.

“글쎄, 뭐랄까. 분위기랄까 아니면 기운이랄까.”

“허허허.”

“웃음소리도 영 노인네 같네.”

“뭐, 저도 이제 엄연한 항해사 아닙니까? 삼등항해사.”

“그래, 항해사. 그렇지.”

갑판장은 잠시 흐뭇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삼등항해사에 불과했지만 나는 전생에 일등항해사까지 했던 몸이다.

어지간한 일등항해사들보다는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나도 그저 말없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것으로 그에게는 충분한 대답이었다.

* * *

갑판장이 선교를 떠나간 후 나는 해도를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음, 어떡하지.”

사실 지금 나에게는 조셉의 천식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셉은 너무 늦게 발견되지만 않으면 흡입기로 처치하면 아마도 진정이 될 것이다.

전생에서는 쓰러진 이후 꽤 시간이 흐르고서야 조셉이 발견되었다.

당시에는 선박에서는 손쓸 방법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지금 변경된 이 항로였다.

나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 항차(항해의 차례)에서는 유난히 사건 사고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발생할 사고는 제법 큰 사건들이었다.

전생에서 발생한 사고는 이렇다.

항로를 변경한 이번 항차에 조타수인 조셉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선원이 실종되자 선내가 발칵 뒤집혔다.

선박 구석구석을 뒤진 후에야 조셉이 쓰러진 채로 있었던 것을 겨우 발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박은 쓰나미와 심한 황천(비바람이 심한 날씨)을 만나 큰 피해를 입게 된다.

‘분명 이 항차의 항로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해도에 그어진 선박의 예상 항로를 유심히 바라보자 과거의 기억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음번 교대 직전에 사고가 발생해서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는 정말 겁나서 진지하게 배를 내리는 것도 고민했지.’

당시에는 생명의 위험을 느낄 정도로 겁나는 순간이었다. 오죽하면 항해사를 그만둘까 하는 고민도 진지하게 했다.

문제는 배를 내리면 나는 군대를 가야했다.

선원들은 승선근무예비역 제도가 있어 승선 근무로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데, 배를 내리면 군대를 가야 되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군대보다는 승선 근무를 하는 것이 돈도 벌고 경력도 쌓는 길이었기 때문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승선생활을 이어갔다.

물론 이번에는 다르다.

전생에 대형 선박에서 일항사까지 근무하고 원양어선도 수차례 경험한 나는 이미 바다 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몸이었다.

하지만 노련한 뱃사람에게도 여전히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래도 그것이 두려워 배를 타지 못하는 겁쟁이는 더 이상 아니었다.

하지만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도 그 황천 속으로 제 발로 들어갈 바보는 더더욱 아니었다.

‘일기예보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예측 안 된 재해로 발생한 사건이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인근 해역에서 지진이 발생했고, 큰 쓰나미가 일어나 격랑이 발생한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황천에 지진도 모자라 쓰나미라니.

이런 일은 과거 오랜 기간 승선한 나도 이번 단 한번만 경험한 일이었다.

아니, 당시 30년 승선경력의 베테랑 선장도 살아난 게 다행이라고 말했으니 여간 위험천만한 일이 아니었다.

지진 이후 발생한 쓰나미 때문에 이 큰 대형 컨테이너선박에도 롤링이 심하게 발생했다.

천만 다행으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선박은 결국 큰 피해를 입었다.

전생에는 가까스로 전복은 면했지만 이번 생애에서도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선적된 컨테이너 화물에도 큰 피해가 발생했다.

큰 파도가 선박의 옆면을 강하게 쳐서 컨테이너 수백 개가 바다로 유실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한참이 지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컨테이너 중에는 한국의 유망 중소기업이 미국으로 보내는 샘플이 선적되어 있었다고 한다.

샘플을 공급하지 못한 중소기업은 결국 계약이 파기되었고, 이어지는 재정난을 견디지 못해 파산했다는 이야기도 뒤늦게 들려왔다.

사건 이후에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매우 참담한 심정이었다. 상선을 운항하는 항해사가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는 여전히 위험한 곳이었다.

배를 타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바다는 아직 위험이 정복되지 않은 장소였다.

선원들은 이런 일들을 해상에서 발생하는 해상 고유의 위험이라고 말하곤 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선박의 성능이 향상되었지만 아직도 감당하지 못하는 자연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불가항력적 사고가 발생한 경우, 해운회사가 책임을 온전히 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책임과는 별개로 그 소식을 듣고 도의적인 죄책감을 크게 느꼈다.

말단 항해사라고 하여도, 내가 이 선박의 항해사였기 때문이다.

* * *

- 선박 “M.V. 비너스”호의 선교

"지지직!“

옆에 세워둔 무전기에서 신호음이 들려왔다.

“브릿지, 갑판장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삼항사입니다.”

“조셉을 발견했습니다. 발라스트 탱크로 진입하는 문 안쪽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요? 어떻게 됐습니까?”

“다행히 쓰러진지 얼마 안 된 것 같습니다. 흡입기로 처치했더니 빠르게 진정되었습니다. 호흡이 좋아진 것을 보니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 잘 됐네요. 우선 방에서 잠시 안정을 취하라고 하시고, 혹시 모르니 이항사님이 깨어나시면 본사와 연락해서 원격으로 의료지원을 받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선박에는 선박 운항 중 선원의 건강을 관리하는 담당자를 두게 되어 있는데 보통 이항사들이 담당하는 업무였다.

일단 작은 불은 껐다.

< 띠링! >

환청소리와 함께 눈 앞에 다시 정체불명의 창이 떠올랐다.

+

<보너스 퀘스트 달성을 축하합니다.>

보상 :

- 명성 + 5

- 조타수 조셉이 당신에게 충성합니다.

- 외국인 선원들이 당신을 존경합니다.

- 최초 퀘스트 달성으로 상태창을 쓸 수 있습니다.

- 기술 [인명구조 Lv.1.]을 회득했습니다.

+

보상? 이건 또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어쨌든 조셉이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난 것은 분명해 보였다.

일단 작은 불은 끝건가?

어쨌든 이제 할 일은 지금 선박이 가고 있는 곳에 나타날 쓰나미를 피하는 것이다.

그때였다.

< 띠링! >

또?

다시 들려오는 환청. 그리고 여지없이 눈 앞에는 창이 떠올랐다.

+

<메인 퀘스트(#01)를 시작합니다.>

시나리오 진행에 따른 메인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지금 비너스호는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선박과 선원들의 생명을 구하시오.”

세부 퀘스트 : 쓰나미 탈출

클리어 조건 : 쓰나미로 인한 위험으로부터 선박과 선원들의 생명을 구할 것

제한시간 : 쓰나미 종료 시점까지

보상 : 명성 + 20, 칭호(???)

실패시 : ???

+

이건 또 뭐야? 미치겠네.

* * *

나는 교대를 마치고 숙소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이번에도 나를 깨우는 불청객이 있었다.

쫙! 쫙!

“어이! 어이! 삼항사님! 그만 주무시고 일어나시라고요.”

쫙! 쫙!

“하! 이 미친 새끼가 사고 쳐놓고 잘도 쳐 자고 있네.”

내 뺨을 아주 세차게 쳐대는 사람은 이번에도 이등항해사 김호영이었다.

다른 점은 그때보다 강도가 심하게 올라갔다는 점이다.

“아, 또 왜 그래요?”

“뭐? 또 왜 그래요?”

김호영이 내가 한 말을 따라했다. 그는 나를 보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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