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200)

“그래, 나 같은 늙은이는 이제 늙으면 죽어야지.”

“아, 제 말은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허허허. 농담이지. 자네 마음은 잘 알고 있네.”

나는 거울을 통해 그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백미러로 내가 미소 짓는 것을 확인한 기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그리고 말씀하신 장학금은 이번에 마지막 사람까지 찾아서 모두 잘 전달했습니다.”

“오? 그래, 잘됐군. 고맙네.”

“네, 그러니 이제 그만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시지요.”

“마음의 짐이라…….”

“네, 해신해운이 망한 게 회장님 때문은 아니지 않습니까?”

해신해운.

글로벌 10대 해운회사 중에서도 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던 초대형 글로벌 선사.

해신해운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제일의 국적선사였다.

해신해운은 창립 이래로 항상 우리나라의 물류 기업 중에서는 가장 큰 회사였고, 세계로 나가도 누구나가 알아주는 10대 글로벌 선사였다.

대마불사.

한때는 한국 경제계에 이런 말이 있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미신처럼 믿고 자주 사용하던 말이었지만 이제는 좀처럼 쓰지 않는 말이기도 했다.

국적선사 중 가장 큰 해운회사였던 해신해운도 과거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불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나도 그때 해신해운을 떠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시간이었다. 해신해운을 떠난 나는 동료들과 함께 작은 해운회사를 차렸다.

누가 그랬던가.

회사 밖은 전쟁터라고.

대기업 밖의 세상은 정말 전쟁터였다.

우리는 전쟁에 나설 준비가 되지 않은 병사들이었다.

마치 잠수함정에 일하는 해군 병사에게 소총을 쥐여주고 육지의 전쟁터로 나서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결국 우리는 또다시 파산했다.

같이 회사를 차렸던 동료들의 말년은 비참했다.

신용불량자가 된 이도 있었고,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다가 알코올 중독으로 생을 마감하거나, 도박에 손을 대 결국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채에 돈을 빌려 갚지 못해 생을 마감한 인들도 있었다.

당시의 기억은 악몽 그 자체였다.

나도 절망스러운 순간마다 수십 번을 고민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버티고 또 버텼다.

원양어선을 처음 타게 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삼등항해사 장보고

원양어선을 쉬지 않고 승선해서 겨우 마련한 종잣돈으로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나는 제법 사업에 수완을 발휘할 수 있었다.

아니, 운이 좋은 사내가 되었다. 부동산 사업으로 제법 성공했다. 사업에서 성공한 것은 내 실력이라기보다는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찌 됐든 지금은 이곳 부산에서 제법 자수성가했다는 소리를 듣는 사업가가 되었다.

이제는 회사도 아들에게 물려주고 편히 쉴 수 있는 나이.

하지만 아직도 가끔은 해신해운이 파산하고 벌어진 악몽 같은 시간들이 꿈속에서 다시 떠오른다.

가장 젊은 시절 치열하게 일하고 함께 웃고 울었던 동료들의 얼굴이 아직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늦은 나이임에도 다시 원양어선을 타기 시작했다.

원양어선을 타는 것은 먼저 떠나간 이들에 대한 내 나름의 속죄 의식이었다.

‘그래. 이런 짓을 한다고 그들이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이 쓸데없는 짓도 그만 둘 때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내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해 헛짓거리를 하는 중인지도 몰랐다.

‘그래, 이제 그만두자.’

끼이이익!

급제동 소리가 들리고, 기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회, 회장님! 조심하십시오. 꽉잡으세요!”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의 눈에도 정면에서 우리를 향해 돌진해오는 대형 트럭의 모습이 들어왔다.

기사가 차를 급하게 꺾어보려 했지만 갑자기 중앙선을 침범해 돌진해 들어오는 트럭을 피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이 모든 순간이 아주 천천히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눈앞에서 흘러갔다.

끼이익!

쿵!

큰 충격음과 함께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트럭이 어느새 내 눈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화물트럭이 쏟아내는 라이트 빛이 내 눈에도 눈부시게 빛났다.

‘이렇게 죽는 건가?’

머릿속에는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성공하기 위해 애달 복달 살아온 과거가 어쩐지 아깝게 느껴졌다.

아니, 돈은 충분히 벌었지만 젊은 시절 그렸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 어쩐지 아쉽게만 느껴졌다.

갑자기 해신해운이 파산하던 그 악몽 같은 순간이 다시 내 뇌리를 빠르게 스쳐갔다.

< 띠링! >

죽음이 찾아왔기 때문인가?

환청과 함께 몽롱해진 눈 앞으로 이상한 글자가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

<선박왕 퀘스트를 위한 회귀자로 선정되었습니다.>

후회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온 당신! 회귀자로 선정되었습니다.

특전 : 회귀, 퀘스트, 상태창, 레벨업

메인 퀘스트 : “선박왕이 되어라”

클리어 조건 : 선박왕 칭호를 획득

+

과거로 돌아갑니다.

뭐? 무슨 소리야. 뭐야 이거.

나의 의식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 * *

쫙! 쫙!

“어이! 어이! 삼항사님! 그만 주무시고 일어나시라고요.”

쫙! 쫙!

“하! 이 새끼 졸라 빠졌네.”

누군가 나의 뺨을 때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찰지게 때리는 것이, 제법 손맛이 있는 사내였다.

‘뭐야!’

비몽사몽간에 정신을 차린 나는 뺨을 통해 느껴지는 고통이 제법 불쾌했다.

그래도 제법 자수성가해서 회장이라고 불리는 고령의 노인을 이렇게 때린다고?

나는 눈을 부릅떴다.

‘뭐야?’

그러자 나의 뺨을 세차게 쳐대고 있는 한 사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매우 젊어 보였다.

“그, 그만 때려!”

나는 소리를 크게 지른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허허허. 웃긴 놈이네, 이거! 내가 존댓말을 한다고 자기도 반말을 하세요?”

눈앞의 사내가 시원하게 웃어 보이더니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확! 마!”

때리는 시늉을 하던 사내는 가볍게 내 뒤통수를 툭 건드렸다.

“정신 차리세요. 삼항사님!”

삼항사? 삼등항해사? 삼등항해사 장보고!

그래, 나는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해신해운의 삼등항해사로 근무했지.

‘근데 이게 무슨 개소리야. 도대체 어디야, 여긴?’

내가 정신을 차린 곳은 생소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또 익숙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집이라고 하기에는 무엇인가 이질적인 장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안의 풍경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제법 익숙한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철로 된 방.

흔들리지 않도록 다리가 바닥에 고정되어 있는 책상과 가구들.

그리고 공기에서 살짝 느껴지는 진득한 기름 냄새.

미세하게 귓속으로 들리는 이 소리.

웅웅웅.

그것은 선박의 엔진 소리였다.

그래, 이곳은 선박 안에 마련된 선원들의 숙소였다.

그리고 나의 뺨을 툭툭 건드리는 이 사내.

나는 그의 정체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반가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내 예상과는 달리 아주 젊은 시절의 얼굴이었지만 어렵지 않게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김호영.

이 사람은 내가 초임 항해사로 승선했던 선박 ‘M.V. 비너스호’의 이등항해사 김호영이었다.

김호영은 나와 같은 해양대학 항해과를 나온 직속 선배였다.

그리고 우리는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태권도부 활동을 함께 했는데 우연히 같은 선박을 승선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리바리한 삼항사 시절의 나를 제법 아껴주고 도와주던 좋은 선배였다.

해신해운이 파산한 이후로는 소식만 간간히 들었을 뿐, 이렇게 얼굴을 대면할 기회가 없었다.

반가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늙으면 눈물이 많아진다더니.”

나도 모르게 입에 붙은 이상한 헛소리를 지껄였다.

“뭐? 뭐야, 이 미친 새끼는. 새파랗게 젊은 놈이 무슨 헛소리야.”

“형, 내가 젊어요? 허허허.”

나도 모르게 실없이 웃어보였다.

나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흘러내렸다.

“뭐, 뭐야! 이 미친 새끼가 자다 일어나서 징그럽게 갑자기 왜 이래?”

김호영은 내가 눈시울을 붉힌 채로 다가오자 기겁하며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형, 오랜만인데 한번 안아봅시다.”

나는 두 팔을 벌리며 그에게 다가섰다.

“오랜만? 야 이 미친 새끼야 저리가! 가라고 새끼야!”

김호영은 질색하며 두 손을 들어 올려 내 가슴팍을 세차게 밀어냈다. 하지만 나는 지지 않고 그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징그러운 새끼야!”

“왜요!”

“헛소리하지 말고 얼른 준비해!”

“준비?”

“그래, 빨리 준비해서 선교에 올라가. 일항사 새끼가 기다리고 있잖아.”

“일항사?”

“그래 그 곰치 새끼! 교대 시간에 빨리 안 오면 나까지 불러서 지랄하는 거 알잖아!”

괴롭히는 사람을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고 해서 곰치로 불리던 일등항해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내가 초임항해사로 승선한 날부터 쉬지 않고 나를 괴롭히던 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왠지 싫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본다니까 좀 반갑네.’

과거에는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어쩐지 시간이 흘러 다시 본다고 생각하니 그 악명 높은 곰치 일항사마저도 반갑게 느껴졌다.

“야! 빨리 준비하고 일어나! 곰치 새끼가 너 안 올라온다고 나한테 연락했다니까. 너 때문에 나도 자다가 일어났으니까 나도 나중에 천천히 올라간다.”

김호영은 느끼한 표정으로 윙크를 하더니 방을 벗어났다.

항해사들은 교대로 당직 근무를 서게 되는데, 일등항해사 다음으로 내가 당직 사관이 될 차례가 된 것이다.

‘그나저나 이게 무슨 일이지.’

영문을 알 순 없었지만 나는 과거로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이곳은 내가 과거 삼등항해사로 처음 승선했던 선박 ‘M.V. 비너스호’가 분명했다.

내 기억속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했다.

나는 곰곰이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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