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200)

프롤로그

원양어선에서는 나는 일개 갑판 부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능숙한 선원이었다.

과거 항해사로 상선에서 일등항해사까지 근무하고, 해운회사의 육상직으로 자리를 옮겨 오래 근무한 나는 이미 해운업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젊었을 땐 나도 선박왕이 되고 싶었는데 말이지.’

간만에 옛날 생각이 났다.

내 젊은 시절 꿈은 그리스의 오나시스 같은 선박왕이 되는 것이었다.

< 띠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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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왕 퀘스트를 위한 회귀자로 선정되었습니다.>

후회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온 당신! 회귀자로 선정되었습니다.

특전 : 회귀, 퀘스트, 상태창, 레벨업

메인 퀘스트 : “선박왕이 되어라”

클리어 조건 : 선박왕 칭호를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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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돌아갑니다.

원양어선

“야! 이번에 배에서 내리면 모은 돈으로 뭐 할 생각이냐?”

“몰라. 개같이 고생했으니 일단 술이나 진탕 마셔야지.”

"그리고?“

“그다음은 일단 질릴 때까지 놀고 그때 생각해보지, 뭐.”

“쯧쯧쯧. 돈 좀 벌었다고 그렇게 다 쓰면 늙어서도 여기 못 벗어난다.”

“야! 끔찍한 소리 할래?”

“아껴야 잘 살지. 안 그러면 우리도 저기 저 신세 된다니까.”

“에휴, 그래. 우리는 나이 먹고 저렇게는 안 되어야 할 텐데.”

원양어선 청진호의 갑판.

청진호는 제법 큰 규모의 대형 원양어선이었다.

두 젊은 청년이 대화를 나누며 힐끔힐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물을 정리하던 장보고는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에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잠시 멈추었다.

청년들은 내가 하던 동작을 멈추자 목소리를 작게 줄여서 속삭이기 시작했다.

“야, 저 아저씨 들은 거 아니야?”

“그러게 목소리 좀 줄이라고 했잖아, 이 눈치 없는 새끼야.”

장보고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두 청년이 나누는 대화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용돈을 벌기 위해 배를 탔다는 두 청년은 대학생이라고 본인들을 소개했다.

휴학을 하고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해서 힘들다고 하는 원양어선을 탔다나 뭐라나.

나이 차이도 있고 해서 이들과 큰 교류는 없었다.

하지만 평소 나를 힐끔 거리며 망한 인생이라는 둥하면서 떠들어대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버릇없는 놈들이 버릇없는 짓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는 이번에도 그리 새롭지 않았다.

‘아직 젊으니까.’

두 청년은 자신들에게 앞으로 창창한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듯 했다.

방학기간 중에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서, 또 어떤 사람은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하면서 이곳에 왔다고 했다.

아직 창창한 나이니까. 그런 용기가 있을지도 모르지.

나도 저렇게 겁 없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기만 하는 것이던가.

저들이 하는 이야기는 이런 원양어선에 처음 승선하는 놈들이 늘 하는 이야기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돌고 돌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 배로 돌아오곤 했다.

이유는 뻔했다.

모아놓은 돈을 도박으로 탕진했다거나 사업에 실패했다는 그런 뻔하고 뻔한 사연들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질 않았지만 장보고는 돌아온 이들에게 다시 배로 돌아온 이유를 묻지 않게 되었다.

“어이, 장 씨! 애들 논다고 같이 놀지 말고 빨리 마무리합시다. 오늘 정박하면 선술집에서 소주나 한잔하고 가자고! 내가 쏠게!”

갑판장이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내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친한 척 어깨동무를 했다.

나는 손을 들어 올려 그의 손을 치우며 대답했다.

“오늘은 일이 있어서 안 되고, 다음에 따로 만나서 한잔하지요.”

나는 짧게 대답하고 하던 일을 이어가려고 했다.

“다음? 언제?”

“언제 기회가 있겠지요.”

“에이! 장 씨, 오늘도 빠지기야? 이러면 나 정말 섭섭해!”

갑판장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지만 나는 그저 허허 웃어보였다.

갑판장은 나에게 흥미를 잃었다는 듯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갔다.

갑판장은 유독 나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원양어선을 타기 위해 한 번씩 나타났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다.

이들에게 나는 베일에 싸인 노인네였다.

어쩌다 저 나이에 이렇게 원양어선까지 타게 되었을까?

뭐 이런 궁금증이겠지.

배에는 나의 사연을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나는 별다른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았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고 이곳 원양어선에 모인 사람들은 특히 더 그럴 것이다.

사연이 있는 이들은 원양어선에 오래 머무른다.

일이 고되어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원양어선에서의 벌이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양어선은 열악한 근무환경이다. 힘든 만큼 육지에서 할 수 있는 어지간한 일보다는 제법 쏠쏠한 벌이가 되었다.

그리고 배에 승선하는 동안에는 돈을 쓸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단기간에 돈을 모으기에는 이보다 좋은 일이 없었다.

“드디어 이 빌어먹을 배도 끝이다!”

선수(뱃머리) 쪽에 서서 멀리 앞을 내다보던 갑판장이 크게 소리쳤다.

전방에 눈에 익은 장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갑판장의 목소리에는 제법 큰 기운이 들어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길었던 항해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누가 외쳤다.

“저기 도선선 온다!”

갑판장이 그 소리를 듣고 외쳤다.

“다들 정박 준비하시게! 집에 가자!”

항구 쪽에서 청진호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검고 작은 선박이 있었다.

그 선박의 측면에는 영어로 PILOT 이라고 적혀 있었다.

도선사가 타고 있는 선박으로 도선선이라고 불리는 선박이었다.

도선사는 선박이 항구에 안전하게 접안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도선선이 청진호를 향해 거침없이 다가오더니,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도선사가 사다리를 타고 선박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힐끔 바라보았지만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대형 원양어선인 청진호는 드디어 6개월 만에 긴 항해를 마치고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긴 항해의 마지막.

주변을 둘러보니 선원들은 매우 지친 표정이었다. 하지만 하선해서 육지를 밟는 날은 언제나 즐거운 날이었다.

* * *

“아저씨, 집에 가는 길에 제가 태워드릴까요?”

나는 배에서 내린 후 수속을 마치고 나와, 주차장으로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내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불러 세운 사람은 나를 두고 망한 인생이라고 소곤거리던 젊은 대학생 청년들이었다.

“나는 됐소.”

“친구가 데리러 오기로 했거든요. 교통비라도 아끼면 좋잖아요.”

“나도 데리러 오기로 한 사람이 있어서 괜찮소.”

“예? 데리러 오는 사람이 있어요?”

내가 대답하자 청년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런 처량한 신세인 사람을 데리러 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끼이익!

차 소리가 들리더니 내 앞으로 고급 대형 세단이 다가와 빠르게 정차했다.

눈앞에 나타난 고급 세단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야, 저 차 그거 아니냐? 그 벤틀린지 뭔지 하는 그 차 아니야? 졸라 비싼 그거!”

대학생 중 한 명이 놀란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차문이 열리고 운전석에서 검은 정장의 사내가 급하게 내렸다.

그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고개를 90도로 깊숙이 숙였다.

툭. 나는 그에게 말없이 지고 있던 가방을 건넸다.

“회장님! 오셨습니까? 별일 없으셨습니까?”

정장을 입은 잘생긴 사내가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 사지 멀쩡하게 돌아온 것을 보면 모르겠나.”

“하하하. 다행입니다. 정말 걱정했습니다.”

“내가 없으니 편하고 좋았겠지.”

“아닙니다. 회장님이 빨리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일단 빨리 집으로 가세.”

나는 기사가 열어주는 뒷문으로 차에 올라탔다.

청년들은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원양어선에서 갑판부원으로 일하던 선원, 그것도 일개 부원에 불과했던 할아버지가 느닷없이 회장이라니?

“회장님, 요트도 근처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요트로 가시겠습니까?”

“일 없네. 이때까지 지겹게 배를 타고 왔는데 무슨 요트인가.”

“하하하. 요트는 좀 그렇지요?”

요트라니?

고개를 돌리진 않았지만 두 청년이 입을 벌리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뜨거운 시선이 아직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저 친구들은 어떻게 할까요?”

기사가 대학생들 쪽으로 고개를 까딱하며 말했다.

내가 평소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면 같이 승선한 젊은 친구들에게 장학금으로 쓰라고 금일봉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사는 이번에도 금일봉을 줘야 하는지 물어본 것이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네, 알아서 간다고 하더군.”

“알겠습니다.”

‘젊은 놈들이 싸가지가 없는 짓을 했나 보구나.’

기사는 두 청년의 얼굴을 힐끔 쳐다 본 후 운전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 청년은 입을 살짝 벌린 채로 내가 사라지는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태운 고급 세단이 빠르게 부산항 대교를 질주했다.

나는 차 안에서 창문을 바라보며 생각에 젖어있었다.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나를 바라보던 청년들의 떨리는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들은 원양어선에서, 그것도 갑판의 부원으로 일하던 내가 그들의 예상과 달리 망한 인생이 아니라는 것에 크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하긴, 나 말고 이런 미친 짓을 할 사람이 없겠지.’

지역에서는 제법 성공한 사업가로 불리는 나였다. 그런 내가 지난 십여 년 동안 2년에 한 번 꼴로 원양어선을 타고 있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원양어선에 승선해서 고된 노동을 계속 하는 것은 내가 가진 마음의 부채를 덜기 위한 일종의 속죄 의식이었다.

어느 날 나는 지키지 못한 과거의 인연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속죄는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사실은 그저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했던 일종의 도피였을지도 몰랐다.

원양어선에서 일해서 버는 임금은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이미 자수성가한 나에게는 태산의 티끌 같은 돈에 불과했다.

재밌는 점은 역시 승선생활이 내 적성에 잘 맞는다는 것이었다.

돈도 벌만큼 충분히 벌어봤고, 크고 좋은 집이 있는데 이 고생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안했다.

원양어선에서는 일개 갑판 부원에 불과했지만 사실 나는 누구보다 능숙한 선원이었다.

과거 항해사로 일항사까지 근무하고 해운업계에서 오래 근무했기 때문에 선박 생활에 이미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젊었을 땐 나도 선박왕이 되고 싶었는데 말이지.’

간만에 옛날 생각이 났다.

내 젊은 시절 꿈은 그리스의 오나시스 같은 선박왕이 되는 것이었다.

* * *

항구를 벗어난 고급 세단은 도로 위를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회장님, 차가 좀 막히는데 대교로 지나갈까요?”

“그래, 좋지.”

기사가 말을 마치자 나를 태운 차는 빠르게 달려 부산항 대교로 올라섰다.

바다 위로 길게 펼쳐진 대교 위를 달리는 기분은 언제나 상쾌했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창문을 열어놓고 바닷바람의 향기를 맡는 것은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기사가 거울로 뒤를 힐끔 돌아보더니 슬며시 말을 건넸다.

“회장님, 이제 원양어선 타는 건 그만두셔도 되지 않습니까? 연세도 있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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