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3.
선율은 뭐라 할 말을 잃었다. 지금껏 선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매번 엄마의 기일에 제사상을 차릴 때마다 꾸벅 절만 하고 들어가 버리는 선우를 보며 엄마에 대한 정이 없어서 그렇겠거니 생각했을 뿐이었다. 설마하니 저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그동안 스스로를 얼마나 자책하며 살았을지 눈에 훤히 보였다.
“선우야.”
선율이 선우의 손을 잡았다. 몇 년 만에 잡아 본 동생의 손은 어느덧 제 손보다 훨씬 커다래져 있었다. 보들보들해서 잡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던 손은 몇 년 새 듬직한 남자의 손이 되어 외려 선율에게 위로를 준다.
“너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적어도 아빠와 나는 그래.”
“난 팩트만 말한 거야.”
“그래, 팩트.”
선율은 힘주어 말했다.
“너 낳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엄마가 돌아가신 건 맞아. 배 안에 피가 가득 차서 손쓸 겨를도 없이 하늘나라로 가셨지. 하지만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했어. 우린 수술이 잘못됐다고 따졌지만 병원에서는 체질 때문이라고 하더라.”
“나를 낳지 않았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잖아.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지금껏 그런 마음으로 살았어?”
선율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엄마의 기일이 제 생일과 한 달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무렵부터 넌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억울하다고 울부짖어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던 세상을 넌 어떤 눈으로 보고 있었던 거니.
“설령 그렇다고 해도, 선우야.”
선율이 바르르 떨리는 선우의 손을 꽉 쥐었다.
“네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어.”
“누나…….”
“굳이 따지자면 수술을 잘못한 병원 잘못이지. 그게 어떻게 네 잘못이야.”
선우는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턱을 타고 내려온 눈물이 선율의 손등에 톡톡 떨어졌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엄마는 거의 의식이 없으셨어.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들어갔는데 엄마가 뭐라고 그랬는지 알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선율이 흐느꼈다.
“선우 배냇저고리는 옷장 맨 아래 칸에 있다고……. 겉싸개는 퇴원시킬 때 꼭 가져오라고…….”
엄마는 죽는 순간까지 젖 한번 물려 보지 못한 핏덩이를 걱정했다. 제 생명을 주고 만든 아이가 행여 감기라도 걸릴까 봐 편히 눈도 감지 못했다.
“엄마는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너를 생각하셨어. 아빠와 내 손을 한 번씩 꽉 잡아 주고 눈을 감는데 자꾸만 허공을 보면서 널 찾으시더라. 선우야, 엄마는 널 낳은 걸 후회하지 않았어. 한 번 안아 주지도 못해서 미안하다고……. 엄마가 후회한 건 그것뿐이었어.”
“어흑!”
선우의 잇새에서 울음이 터졌다. 행여 그리움이 깊어지면 어쩌나, 일부러 그의 앞에서 엄마 얘기를 꺼내지 않았던 선율은 목 놓아 우는 선우를 보며 그동안 자신이 잘못 생각해 왔음을 알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얘기해 줄걸.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매일매일 말해 줄걸 그랬다.
“누나……. 나 엄마 너무 보고 싶어……. 흐흑…….”
“나도. 나도 그래.”
선율은 훌쩍 커 버린 동생의 등을 끌어안고 함께 울었다. 컴컴한 어둠을 무서워하던 어린 딸을 위해 항상 작은 불을 켜 두던 엄마, 잠결에 폭 안기면 따스한 냄새가 나던 품이 떠올랐다.
그리워했구나. 나만큼 너도.
얼굴도 못 본 엄마라 너는 좀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엄마의 부재는 그렇게 쉽게 설명되지 않는 것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우리 내일 엄마 보러 갈까?”
누나 앞에서 아이처럼 운 게 창피한지 선우가 손등으로 얼른 눈물을 훔쳤다.
“그러든가.”
선우는 다시 퉁명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에 출발하자.”
“너무 일찍은 싫어.”
한참을 붙잡고 운 게 멋쩍은지 선우가 괜히 시선을 피했다. 연락 온 데도 없으면서 괜스레 휴대폰을 보는 옆얼굴을 보며 선율이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귀엽기는.’
붉어진 선우의 얼굴이 후련해 보였다.
* * *
보쌈 가게 안의 상황은 난장판이었다.
테이블 위엔 유신이 사 온 양주 두 병과 함께 소주병 세 개가 쪼르르 열을 맞춰 서 있었다.
“헉, 설마 이걸 다 마신 거야? 아빠, 괜찮아요?”
“내 나이가 어때서~ 내 나이가 어때서~”
재철은 테이블에 엎어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같은 소절을 무한 반복하며 배시시 웃고 있는 그를 보며 선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냥 주무세요.”
재철이 취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타고나길 말술이라 소주 서너 병으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스타일이었다. 그가 가끔 취할 때는 기분이 아주 좋거나 아주 나쁘거나 할 때였는데 노래 부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전자인 것 같다.
‘그건 다행이지만.’
선율은 애창곡을 부르고 또 부르는 재철을 보며 막막해졌다. 나이도 있으신데 가게에서 주무시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신에게 업어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조유신, 너 괜찮아?”
“멀쩡합니다, 충성!”
……괜찮긴 개뿔.
군대도 안 다녀온 게 충성은 무슨 충성.
반쯤 풀린 동공으로 경례를 올리는 그를 보며 선율은 헛웃음이 나왔다.
“대체 얼마나 마셨길래 이래? 너 걸을 수 있겠어?”
“물론 걸을 수 있습니다, 단결!”
망했네.
선율은 울상을 지으며 선우를 쳐다보았다. 선우는 뭐가 그리 웃긴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쿡쿡대고 있었다. 매형 될 사람과 처음 만나는 자리라 나름 긴장했는데 예상외로 웃겼다. 오늘 생성한 흑역사를 두고두고 우려먹을 생각을 하니 조금 신나는 것도 같고.
“군대 좋은 데 다녀오셨나 보네.”
허공에 대고 경례를 착 올려붙이는 유신을 보고 선우가 말했다.
……그런 거 아닌데.
“원래 남자들 다 그래. 군대 얘기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본다고 하더라고.”
……쟤 미필이라고.
선율은 꿀렁꿀렁 목구멍으로 치미는 진실을 간신히 삼키며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두 사람 다 상태가 말이 아닌데 집까지 어떻게 옮기지?”
“내가 업어야지 뭐.”
“두 사람을 어떻게 업어.”
가게에서 집까지는 5분 거리였다. 멀지는 않았지만 축 늘어진 성인 남성을 두 번이나 업고 나를 거리도 아니었다.
“흐음…….”
안 취한 두 사람의 고심이 깊어졌다. 그사이 뒤에선 ‘내 나이가 어때서’와 ‘단결, 충성’이 BGM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선우가 의견을 말했다.
“누나는 그냥 여기에서 자. 내가 아빠만 업고 집으로 갈 테니까.”
“아빠만?”
“손님을 가게에서 재우는 건 좀 미안하긴 한데 저 형 딱 봐도 185는 넘어 보이잖아. 나 저 형 옮길 자신 없다.”
하긴.
마른 체형인 선우에 비해 유신은 너무나 건장하다. 섣불리 업으려 들었다간 둘 다 생명을 보장할 수 없을 게 뻔했다. 순식간에 납득한 선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린 여기서 잘 테니까 아빠만 잘 부탁해.”
“알았어.”
충실히 대꾸한 선우가 번쩍 재철을 업었다.
“우왁, 진짜 우리 아빠 왜 이렇게 무거워.”
“내 나이가 어때서~”
“아이고, 아버지요.”
투덜대는 선우와 가락 좋게 노래를 부르는 재철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두 사람이 골목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지켜보던 선율이 가게 문을 닫고 돌아섰을 때 유신은 턱을 괴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와……. 조유신 취한 거 오랜만이네.”
조는 모습이 귀여워서 잠시 바라보다가 살짝 어깨를 흔드니 유신이 용수철 튕기듯 벌떡 일어났다.
“안 졸았습니다, 충성!”
“유신아, 나야. 충성 그만해.”
선율은 터지는 웃음을 끅끅 참으며 유신의 팔을 잡아끌었다.
“너 여기서 뻗으면 내일 턱 돌아가. 얼른 방으로 가자.”
“방 말씀이십니까?”
“그래. 대충 이불 펴면 잘 만할 거야.”
가게 안쪽에 딸린 방은 가끔 일이 아주 바쁠 때 재철이 쪽잠을 자는 곳이었다. 이불도 있고 작은 냉장고도 있고 심지어 전기장판도 있었다. 선율은 급한 대로 이불을 두 겹 깔고 유신을 그 위에 눕혔다. 털레털레 따라온 유신은 다이빙하듯 이불 안으로 안착했다. 선율은 화장실에서 새 칫솔을 꺼내 치약을 쭉 짠 뒤 유신의 입에 물렸다.
“졸려도 치카는 하고 자.”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충성!”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떽.
선율이 어린아이 다루듯 아랫입술을 감쳐물자 유신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반쯤 풀린 눈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유신을 보고 있자니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좀처럼 귀여운 구석 없는 이 연하남이 오늘따라 참 사랑스럽기만 하다.
“다 했다. 우르르 퉤 해.”
유신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양치질을 마쳤다. 선율이 제 칫솔을 찾아 양치질을 하고 세안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유신은 세상모른 채 곯아떨어져 있었다.
“양치질시킨 보람이 없네, 쯧.”
혹시나 하는 마음에 꾸역꾸역 이까지 닦였는데 그냥 잠들어 버리다니. 괜히 아쉬운 마음에 선율은 픽 웃으며 유신의 가슴까지 이불을 덮어 주었다.
“잘 자, 유신아.”
가게에 딸린 쪽방엔 베개가 하나뿐이었다. 선율은 유신의 팔을 벌려 조심스레 베고 누웠다. 서너 평이나 될까 싶을 만큼 아담한 방에 누우니 그의 숨소리가 더욱 잘 들렸다.
‘오늘 아빠랑 얘기는 잘 된 건가? 아빠 노래 부르는 거 보니까 기분 엄청 좋아 보이던데.’
유신이라면 잘했겠지. 뭐든 잘하는 남자이니 아버지 구워삶는 것도 뚝딱뚝딱 해냈을 거다.
‘군대 미필인 건 어떻게 해명했을까? 궁금해 죽겠네.’
선율은 이런저런 생각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봤다가 화장실 한 번 갔다가, 다시 돌아와 눕기를 너덧 번.
어느새 쪽창 너머로 새벽빛이 너울댔다.
“하암. 이제 자야겠다.”
뒤늦게 졸음이 밀려온 선율이 유신의 품을 파고들었다. 따뜻하게 달궈진 그의 옆구리에 팔을 얹고 단단한 가슴에 뺨을 기대니 추운 겨울 벙커에 들어앉은 듯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희미한 알코올 향이 섞인 체취에 가물가물 눈이 감길 무렵이었다.
‘왜 이렇게 숨소리가 거칠지?’
정수리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잠이 번쩍 깼다. 선율은 꼬물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바로 눈앞에서 유신의 동공이 반짝거렸다.
“어……. 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