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립서비스 (74)화 (74/85)

외전 2.

우격다짐으로 선율을 쫓아낸 재철은 본격적으로 취조를 시작했다.

“나이가 우리 율이보다 어리다꼬?”

“예. 올해 스물여덟입니다.”

“하는 일은 뭐꼬?”

“자동차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 율이 만나면서 여자 문제를 일으킨 적 없제?”

“저한테 여자는 선율 선배 하나뿐입니다.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유신은 모든 질문에 선선히 대답했다. 이리저리 빙빙 돌리지 않고 원하는 대답을 착착 꽂아 주는 그의 태도에 잔뜩 경계했던 재철의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사내놈이 깎아 놓은 밤톨맹키로 잘생깃구마. 뺀질뺀질하게 생겨가 쪼매 걱정했드만 말투는 또 어린놈답지 않게 진중하단 말이지? 흐음.’

그렇다고 해서 못마땅한 마음이 풀리는 건 아니었다. 조금 전 선율에게 들었던 여러 가지 결격 사유가 자꾸만 뇌리에 맴돌았다. 초면에 덜컥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에둘러 다른 질문을 던졌지만 정작 재철의 머리를 가득 채운 건 단 하나였다.

군. 대.

‘사지 멀쩡한 대한민국 머스마가 군대를 뺄 일이 뭐가 있겠노?’

직접 보니 사지 멀쩡한 것뿐만 아니라 피지컬이 지나치게 훌륭하다. 저보다 머리통 한 개는 큰 것 같은 훤칠한 키에 넓은 어깨. 슈트를 꽉 조이는 허벅지와 굵은 힘줄이 잡힌 손등을 보니 운동도 꽤 했겠고.

그러니 더 문제였다. 몸이 말짱한데 군대를 안 갈 일이 대체 뭐가 있겠느냔 말이다. 재철은 관심도 없는 질문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이윽고 결심했다.

‘고마 확 물어봐야겠다. 제대로 된 이유도 없이 군대를 안 간 기면 다시 볼 일도 없을 낀데 딸내미 시집보내는 중차대한 일에 예의 차리게 생깄나?’

단단히 마음먹은 재철이 뚫어져라 유신을 쳐다보았다.

“우리 율이와 대학에서 만났다고 들었네. 근데 졸업은 못했다꼬?”

“예.”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싶지만은…… 아비 된 몸으로 그 사정이 뭔지 알아야겠다꼬 하면 너무 주제넘은 기가?”

“아뇨. 당연히 아셔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신은 술잔을 내려놓고 재철을 마주 보았다.

“제가 어떤 놈인지, 금쪽같은 따님과 함께할 자격이 있는지 지금부터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아버님.”

상견례 날이 잡힌 후부터 이곳으로 오는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대답이 그의 입술을 타고 흘렀다.

“대학교 때 선율 선배를 따라다니는 스토커가 한 명 있었습니다.”

선율이 몰카의 피해자였단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당사자에게도, 그 가족에게도 너무나 큰 상처가 되는 일이었기에.

두 번 다시 입에도 담고 싶지 않은 그 일을 재철은 모르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선율 역시 그걸 원했기에 유신은 재철에게 모든 걸 사실대로 털어놓는 대신 적당히 덜어 내는 쪽을 택했다.

그렇다고 모든 걸 숨길 수는 없었다. 대학교 중퇴와 교도소 수감 같은 중대한 사유는 가족이 될 그에게 반드시 이해받아야 하는 일이었고,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성공한 제 위치를 설명하려면 과거에 그가 살아온 길을 보여 줄 수밖에 없었으니까.

“뭐? 스토커?”

아니나 다를까 몰카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재철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우리 율이 뒤꽁무니를 따라댕기는 머스마가 있었단 말이가?”

“꽤 오랫동안이요.”

유신은 선율이 당한 스토킹이 범죄 수준으로 심각했으며 그것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때의 사고로 같은 자리에 있던 친구 한 명이 크게 다쳤다는 얘기 또한. 사실상 몰카 얘기를 제외하면 실제로 선율에게 일어났던 일이라 설명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이런 우라질 놈의 새끼를 봤나!”

담담한 유신의 얘기를 듣는 내내 재철의 낯빛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당장이라도 보쌈 고기를 써는 칼을 들고 일어날 기세였다. 금지옥엽 키운 딸을 어떻게 서울까지 올려 보냈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에게 그런 짓을 저질렀다니 가슴에서 불길이 확 치밀었다.

벌떡 일어나 한참을 서성거리던 재철이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그놈아랑 다투다가 친구가 마이 다쳤다꼬? 군대는 그것 때문에 못 간 기가?”

“예.”

유신은 덤덤히 대꾸한 후 덧붙였다.

“지금이라도 다녀오라시면 어떻게든 알아보겠습니다.”

재철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선율이 그저 잘 지내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옆에 끼고 살 것을.

“하아…….”

또한 자신의 속 좁음을 탄식했다. 제 딸을 지키기 위해 감옥까지 다녀왔다는 사람 앞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란 마당에 취조하듯 몰아붙였으니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예끼, 이 사람아! 결혼 앞두고 군대는 무슨! 우리 율이 청상과부 만들 일 있나?”

뼛속까지 경상도 남자인 재철이 투박한 말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러곤 덥석 유신의 손을 잡았다.

“조유신이라고 켔나?”

“예, 아버님.”

“……고맙네.”

유신은 그게 허락이라는 걸 알았다.

거칠거칠한 재철의 손을 굳게 맞잡은 유신이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대답했다.

“예, 아버님.”

* * *

선율은 가게 앞 평상 위에 쪼그려 앉아 하늘을 보고 있었다.

‘둘이 무슨 얘기를 한다고 저러는 거야?’

우격다짐으로 재철에게 쫓겨난 후 선율은 내내 평상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눈빛을 교환하는 건 봤는데 그 짧은 찰나에 합심해 선율을 밀어낼 줄은 몰랐다. 그 탓에 하릴없이 내쫓긴 선율의 신경은 온통 가게 안에 쏠려 있었다.

‘조유신 귀싸대기라도 한 대 맞는 거 아니야? 우리 아빠 성격 장난 아닌데.’

재철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를 평생 신조로 삼아 살아온 사람이었다. 본의 아니게 선율이 나열해 버린 여러 조건이 그의 성에 차지 않음은 분명했고 아까 유신을 볼 때 눈초리도 곱지 않았다.

‘조유신 성격도 보통 아니잖아. 큰일이네.’

전전긍긍하며 엉덩이를 붙였다 떼기를 백번쯤 했을까.

저 멀리 터덜터덜 걸어오는 홀쭉한 인영이 보였다. 스웨그 넘치는 걸음걸이, 건들건들한 폼이 딱 선우였다. 선율은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채 손가락만 까딱였다.

“한선우, 빨리 안 튀어와? 넌 누나 왔는데 뭐 하다가 이제야 집에 들어와?”

오랜만에 보는 동생이다. 만나면 주려고 아이팟도 사 왔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말이 곱게 안 나간다.

“평소보다 일찍 들어온 거야. 보자마자 잔소리야.”

선우는 투덜거리면서도 옆으로 와 평상에 다리를 뻗고 앉았다. 못 본 새 키가 훌쩍 큰 듯한 동생을 보며 선율은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선우는 선율과 열세 살이나 차이가 나는 늦둥이였다. 선우를 낳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엄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선우는 엄마의 품도 모르고 자랐다. 4킬로그램이 넘는 우량아였던 탓에 엄마는 제왕절개를 했는데 출산 후에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계속 복통을 호소했더랬다.

39도를 넘는 고열로 병원을 찾아갔을 땐 이미 배 안이 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했다. 당시 의료 사고다 뭐다 말이 많았다. 재철은 황망하게 보낸 아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경찰이고 변호사 사무실이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으나 성과는 없었다. 병원을 상대로 의료 소송을 제기해 이길 확률은 희박했기 때문에 어떤 곳에서도 선뜻 사건을 맡아 주지 않았고 젖먹이와 초등학생 딸을 두고 생계까지 이어야 했던 재철은 결국 피눈물을 삼키며 병원 측과 합의를 보았다.

삼천만 원. 아내의 목숨값으로는 너무도 적은 액수였다.

“너 요새 공부는 하는 거야? 고3이 독서실 다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늦게 들어오면 어떡해?”

“고3은 뭐 사람도 아니냐. 볼일이 있으면 늦게 들어올 수도 있지.”

“무슨 볼일인데? 여자 친구?”

“뭔 소리야! 그런 거 없어.”

안 어울리게 귓불이 빨개진 걸 보니 백 퍼센트다. 네가 지금 공부할 때지 연애할 때냐, 연애는 대학교 가서 해도 충분하다, 진로는 생각해 봤니, 그 성적으로 어디 갈 건데. 목 끝까지 치미는 잔소리를 꾹 인내하는 선율을 향해 선우가 툭 한마디를 던졌다.

“결혼한다며.”

선율은 많은 말 대신에 짧게 대답했다.

“응. 다음 달에.”

“그렇게나 빨리? 되게 급하네.”

“누나 나이가 서른둘이다. 빨리 가면 좋지 뭘 그래.”

선우는 잠시 말이 없었다. 워낙 무뚝뚝한 애라 축하한단 말까진 바라지 않았어도 적어도 어떤 남자냐 한마디 정도는 물어볼 줄 알았는데.

“누나 결혼하는 거 싫어?”

조심스레 묻는 선율을 향해 선우가 대답했다.

“싫을 게 뭐 있어.”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어릴 땐 귀찮을 정도로 쉴 새 없이 재잘거리던 아이는 어느새 훌쩍 커 말수가 줄었고, 엄마를 대신해 아이를 업고 다니던 누나는 자꾸만 동생의 눈치를 보게 된다. 같이 살 땐 이러지 않았는데 선율이 대학에 진학한 후 사이가 어색해졌다. 공부한답시고 서울로 훌쩍 떠나 버린 누나에게 서운하기라도 했던 걸까.

‘하긴 그때 선우는 고작 일곱 살이었으니까.’

가게 일로 바쁜 아버지와 덜렁 남겨진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 냈을지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팠다. 차로 너덧 시간은 걸리는 거리를 매달 오가며 챙긴다고 챙겼는데 아마도 어린 선우에겐 한참이나 부족했을 것이다. 선우가 삐뚤어져 나간 덴 자신의 영향이 크다고 선율은 생각했다.

“결혼은 대충 축하하는데 애는 낳지 마.”

입술을 꾹 다문 채 발끝만 보고 있던 선우가 던진 말에 선율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애를 낳지 말라고?”

“어.”

대뜸 그런 말을 하니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눈동자를 굴리는 선율의 귓가로 들릴락 말락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누나도 엄마처럼 애 낳다가 죽으면 어떡해.”

선율의 가슴이 쿵 떨어졌다.

“……무슨 소리야?”

“나 때문에 엄마 죽었잖아. 잘 모르지만 그런 것도 유전일 수도 있지 않나?”

선율은 진심으로 놀랐다. 엄마가 선우를 낳고 돌아가신 건 재철과 선율 두 사람만 아는 비밀이었다. 행여 선우가 자책할까 봐서 입도 벙긋하지 않고 살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거지?

“너 그거 어디서 들었어? 누가 그런 말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너 때문에 돌아가신 거 아니야. 그건……!”

“누나.”

선우가 처음으로 선율과 눈을 맞추었다. 가로등 불빛이 일렁이던 그의 눈매가 이내 부드럽게 휘었다.

“공부 못한다고 머리가 똥통인 줄 알아? 내 생일이랑 엄마 기일이랑 한 달도 차이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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