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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서비스 (63)화 (63/85)

63

쿵!

선율이 그 자리에 곧장 무릎을 꿇었다. 어찌나 대차게 꿇어앉았는지 딱딱한 바닥이 울릴 정도였다.

“갑자기 무릎은 왜……?”

상미의 동공이 어지러이 흔들렸다. 선율은 단단히 결심한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부탁드립니다, 어머님. 유신이 힘들게 하지 말아 주세요. 저를 냉대하셔도 괜찮고 평생 반대하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유신이에게서 저를 떼어 놓지만 말아 주세요.”

“선율 씨.”

“유신이는 저를 사랑해요. 그리고 어머님도요. 그게 제가 무릎을 꿇은 이유입니다.”

상미는 몹시 당황하면서도 속으론 웃음이 났다.

‘내가 반대할 거라고 생각하고 무릎까지 꿇은 거야? 이거 나만 못된 사람 되겠네.’

사실 병실에 누워 있는 동안 상미의 마음은 많이 누그러든 상태였다. 괴한에게 습격을 당했을 때 한 줌의 망설임도 없이 제 앞을 막아서던 선율의 모습이 자꾸만 어른거렸다.

용감한 아가씨였다. 그 덕에 목숨을 구하기도 했고.

상미는 복잡한 눈빛으로 선율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목숨을 구해 줘서 고마웠어요. 선율 씨도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내가 유신이 엄마이기 때문이겠죠?”

“그건…… 네, 그렇습니다.”

“나 아직 선율 씨 마음에 안 들어요. 아니, 말해 놓고 보니 표현이 조금 진부하네. 솔직히 두 사람 지켜보는 거 많이 불안한 건 사실이에요.”

선율의 얼굴에 낙담한 빛이 스쳤다. 그러나 이어진 상미의 말에 그녀의 동공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조금 두고 보려고.”

“어머님……!”

“우리 어머님 돌아가실 때까지 4년 넘게 병실에 다녀갔다면서요.”

상미가 잔잔한 시선으로 선율을 응시했다.

“그 정도로 근성 있는 사람이면 한번 믿어 봐도 되겠다 싶어. 내 아들을 그만큼이나 사랑해 주는 여자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기도 하고.”

“아…….”

“고마워요, 여러모로.”

선율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러려고 할머니를 돌본 것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할머니 덕분에 유신을 잃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할머니에게 깊이 감사를 드렸다.

“잘할게요. 진짜…… 잘해 보겠습니다.”

“언제까지 무릎 꿇고 있으려고? 이제 그만 일어나요. 나 못된 사람 만들지 말고.”

“네.”

상미가 톡톡 옆자리를 두드렸다. 훌쩍거리며 다가온 선율의 손을 그녀가 따스하게 잡아 주었다.

* * *

유신이 퇴원했다.

뼈가 붙는 데 거의 두 달이 걸린 그는 병원 생활을 무진장 답답해했다. 외출을 못 하는 것도 갑갑했지만 그 좋아하는 운동을 못 하니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업무를 무기한 미룰 수가 없어 병실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하니 그나마 지루함은 조금 덜었지만 온종일 갇혀 있으니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저녁이면 퇴근한 선율이 말동무를 해 주었으나 그건 외려 곤욕스러울 때가 많았다. 손만 잡으려고 했는데 어느새 입술이 붙어 있고, 키스만 하려고 했는데 제집을 찾아가듯 손이 마음대로 움직였다. 정신 차려 보면 어느새 끈적해진 공기에 온몸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뭣 모르고 들어오던 간호사가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른 후로 선율은 그에게 접근 금지 명령을 내렸다.

“퇴원할 때까진 손잡는 것도 안 돼. 너 거기서 엉덩이 떼는 순간 집에 갈 거야.”

최후의 조치로 선율은 그를 병원 침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그러곤 침대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책을 읽거나 회사에서 못다 한 업무를 처리했다. 가만히 시선을 내리깔고 일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 유신은 참을 수 없이 갈증이 났다.

“다른 게 고문이 아니야. 이게 고문이라고.”

볼멘소리를 해 봐도 선율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낮에는 먼저 퇴원한 상미가 방문했다. 그녀는 매일같이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 후유증 없이 무사히 퇴원한 상미를 보며 유신은 깊이 안도했고, 빠르게 회복하고 있는 유신을 보며 상미 역시 안심했다.

둘 사이는 여전히 무뚝뚝했으나 한 가지 고무적인 변화가 있기는 했다. 병실에 갇혀 있느라 죽을 만큼 지루해하던 유신이 처음으로 상미에게 제 속을 주절주절 털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교도소에 들어갔을 때 텃세로 고생한 얘기, 복수와의 첫 만남, 미국으로 건너갔을 때 느꼈던 극도의 고독감과 외로움……

그의 얘기를 들으며 상미는 울고, 웃고, 끝없이 잔소리를 했다. 오랜만에 듣는 엄마의 잔소리에 유신은 가슴이 푸근해졌다. 상미는 수다쟁이가 된 아들을 반가워하며 꼭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다고 좋아했다.

퇴원 당일.

유신은 새벽같이 일어나 몸 상태를 점검했다. 어깨도 휙휙 돌려 보고 기지개도 켜 보고, 뼈가 제대로 붙었는지 확인했다.

엑스레이 검사상으로 90퍼센트 이상 회복이 되었다고 하는데 운동이 부족해 조금 뻐근한 느낌이 들기는 했다. 그래도 통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유신은 가뿐한 기분으로 병실을 나섰다.

“짐 다 쌌어? 수속 끝나서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될 것 같아.”

그가 준비를 끝내고 나왔을 때 선율 역시 퇴원 수속을 마친 참이었다. 유신은 선율의 어깨를 한 손으로 감으며 속삭였다.

“빨리 집에 가고 싶어요.”

나란히 병원을 나서던 두 사람은 마침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외출하던 주치의와 마주쳤다. 그는 건강히 회복한 모습으로 퇴원하는 유신을 보고 무척 뿌듯해했다.

“퇴원 축하합니다. 그동안 병원에만 있느라 고생 많으셨는데, 하하.”

“두 발로 이렇게 걸어 나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별말씀을요. 다 환자분이 건강 체질이라 그런 거죠. 그래도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갈비뼈가 완전히 붙기 전까지는 격한 운동은 하시면 안 돼요.”

“격한 운동이라면 어느 정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유신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팔 굽혀 펴기나 철봉, 턱걸이처럼 체중을 싣는 운동은 절대 금물입니다. 몸을 보니까 운동을 아주 좋아하실 것 같아서.”

“운동 좋아하죠. 격한 운동은 특히.”

유신이 의미심장하게 눈썹을 치켜 올렸다.

“어쨌든 뭘 하든 체중을 싣지 않으면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예?”

그의 눈빛 속에 숨겨진 음험한 욕망에 선율이 학을 떼며 옆구리를 찔렀다.

“선생님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억!”

무자비한 팔꿈치 공격에 유신이 새우처럼 몸을 구부렸다. 숨도 못 쉬게 아파서 눈물까지 찔끔 흘렀다. 무리하면 안 된다는 의사의 경고가 피부로 와 닿는 순간이다.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다음 달 외래 때 뵐게요.”

선율이 벌게진 얼굴로 꾸벅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같이 가요, 선배!”

유신이 짐 가방을 어깨에 메고 부리나케 뒤따랐다. 청춘의 빛으로 반짝이는 선남선녀의 모습을 보며 의사는 오랜만에 감상에 젖어 들었다.

“좋을 때다.”

가볍게 한숨을 쉰 그가 구내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왠지 극심한 외로움이 느껴지는 날이다.

* * *

환자를 두고 어딜 내빼느냐고 유신이 하도 엄살을 떨어 대는 통에 당분간 선율은 그의 호텔에서 지내게 되었다. 뼈 다 붙어서 퇴원한 주제에 왜 잔말이 많으냐고 투덜대면서도 선율은 못 이긴 척 그의 엄살을 받아 주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많이 참긴 했지.’

사실 욕구 불만으로 치자면 그녀 역시 만만치 않았다. 늑골을 고정하느라 붕대를 감아 놓는 통에 유신은 거의 상의를 탈의하고 지냈는데 시선 둘 곳 없이 옹골차게 들어찬 근육을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키곤 했다.

가뜩이나 신이 내린 비율인데 밥 먹듯이 운동을 하니 그야말로 완벽한 몸매였다. 두 달간 병원 신세를 지면서 근육이 제법 빠지긴 했으나 타고난 뼈대가 워낙 우월해 그다지 티도 나지 않았다.

“짐은 여기다 풀어 놓으면 돼?”

선율이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겉옷을 벗은 유신이 할 일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는 선율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보다 우리 먼저 할 거 있지 않나.”

허리를 감아 온 손에 선율이 급히 숨을 들이켰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블라우스 안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 왔다.

“그동안 나 간호해 준다고 고생 많았어요. 회사 다니랴 병간호하랴 얼굴 살이 쪽 빠졌네.”

“얼굴 살 얘기도 하지 마. 안 그래도 요새 스트레스 엄청 받고 있으니까.”

“몸보신 몇 번 하면 금방 회복될 걸 뭘 걱정해요.”

자세를 낮춘 유신이 선율의 목덜미에 가볍게 입술을 문질렀다.

“여기 선배 보양식.”

그의 입술이 진득하게 목선을 쓸어내렸다. 따뜻한 기운이 스치는 길을 따라 솜털이 오소소 돋아났다.

“어린 데다 힘도 좋아서 제법 쓸 만할 텐데. 먹어 볼래요?”

그가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아…….”

야릇한 느낌에 선율이 작게 신음을 토해 내며 고개를 젖혔다. 유신은 길게 휘어진 그녀의 목덜미를 따라 진하게 입맞춤을 하며 그녀를 돌려세웠다.

나른하게 풀린 선율의 눈동자에 유신은 어느 때보다 달아올랐다. 벌어진 그녀의 아랫입술을 살살 빨다가 틈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끈적하게 얽힌 살덩이가 서로를 맹렬하게 탐했다.

초옥, 촉.

야한 마찰음이 금세 공간을 채웠다. 유신의 힘에 밀려 점점 뒤로 물러난 선율이 소파에 주저앉자 유신이 그녀의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그는 그 상태로 셔츠의 단추를 툭툭 풀었다.

“계속하게? 의사 선생님이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라고 그랬잖아.”

“안 움직이고도 할 방법은 많아요.”

순식간에 벗어 내린 셔츠를 바닥에 툭 떨군 그가 나른한 얼굴로 웃었다. 소파와 선율 사이의 비좁은 틈을 차지한 그가 무방비하게 노출된 제 상체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쓸었다.

“가령 선배가 내 위로 올라온다든가.”

선율은 자석에 이끌리듯 그의 몸 위에 올라탔다.

“거기서 아주 섹시하게 옷을 벗어 준다든가.”

잠시 망설이던 선율이 픽 웃으며 카디건을 벗어 내렸다. 몸이 단 건 그만이 아니었다. 그가 입원해 있는 동안 내내 금욕 생활을 하던 선율 역시 몹시도 그의 몸이 그리웠었다.

사르륵.

그녀가 벗은 옷가지가 한 겹씩 바닥에 쌓였다. 어느덧 아름다운 곡선을 드러낸 그녀의 자태에 유신은 눈을 떼지 못했다.

“키스해 줘.”

유신이 유혹하듯 말했다. 선율은 그의 지시에 따라 천천히 입술을 내렸다.

“흐읍…….”

이윽고 달아오른 입술이 강하게 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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