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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서비스 (60)화 (60/85)

60

어둠이 내려앉은 산 아래 으슥한 길에서 기철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시간이 몇 신데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염병, 이러다가 날 새겠네!”

그는 조금 전 산으로 올라간 유신을 쫓아 이곳까지 온 터였다. 황준기의 묘소는 번듯한 납골당이 아니라 야산 기슭에 위치해 있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일을 처리하기에 딱 좋았다. 해서 그는 이곳으로 장소를 잡고 문형주에게 미리 연락을 해 두었다.

“아까 분명히 출발한다고 그랬는데…… 산길이라서 좀 헤매나? 조유신 내려오기 전까진 도착해야 할 거 아니야!”

그는 유신의 차 근처에 자신의 차를 대 놓고 초조하게 청부업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형주가 소개해 준 그는 조선족으로 이쪽 일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라고 했다. 어둠의 세계에 오래 몸담고 있던 형주가 직접 알선한 사람이니 실력은 확실할 테고, 일을 마치면 곧바로 배를 타고 한국을 뜬다고 하니 뒤탈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왜 안 오는 거냐고!’

유신이 산으로 올라간 지 한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도 상대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지나다니지 않는 시골길에 덩그러니 남은 기철은 시간이 지날수록 목이 바짝바짝 말랐다. 기다림을 참지 못한 그가 결국 형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어떻게 된 거예요. 그 조선족한테 주소 제대로 알려 준 거 맞아요?”

형주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여어, 기철아. 안 그래도 내가 막 전화하려던 참이야. 어쩌냐? 그 자식 토꼈어.

“뭐, 뭐라고요?”

―작업 들어가기 전에 조사를 좀 했나 봐. 조유신이라는 놈 태권도에 주짓수에 경력이 거의 살상 무기 수준이던데? 차로 밀어 버리는 거면 모를까 맨손으론 자신 없다고 꽁무니 말고 튀었어.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착수금도 받아 놓고 이러는 법이 어디 있냐고!”

기철은 어이가 없어 머리가 새하얘졌다. 아니, 무슨 청부업자가 사람을 가려 받는단 말인가! 살다 살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에이, 씨! 이번 기회 놓치면 또 언제 타이밍 잡을 수 있을지 모르는데……. 아오, 진짜!’

분노가 치밀어 올라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릴 것 같았다.

기철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핸들을 쾅쾅 내리쳤다. 수십 가지 생각이 뇌리를 관통했다.

‘그 자식이 호텔에서 살고 있으니 기회를 만들기가 영 힘들다고. 아씨, 진짜 어떡하냐고!’

마침 저쪽 산기슭에서 사람 하나가 터덜터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길쭉한 실루엣을 보니 유신이 분명했다.

“미치겠네, 진짜.”

마음이 급하니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다. 기철은 펄떡펄떡 뛰는 심장을 손바닥으로 꾹 누르며 건성으로 말했다.

“일단 끊어 봐요.”

짧은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까? 일단 돌아갔다가 다음 기회를 노리면……. 아니야, 나한테 다음 기회가 어디 있어. 경찰이 두 눈 새파랗게 뜨고 나를 찾고 있는데! 만약 이번에 붙잡혀 들어가면 당분간 나오지 못할 수도 있어. 조유신 그 새끼한테 복수할 기회가 영영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그사이 산에서 내려온 새카만 인영이 점점 가까워졌다. 띄엄띄엄 서 있는 가로등 불빛 아래 비친 모습을 보니 유신이 확실했다.

그를 향한 복수심으로 이성을 상실한 기철이 붉게 달아오른 눈으로 그 모습을 좇았다. 그의 귓가엔 조금 전 형주가 했던 말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차로 밀어 버리는 거면 모를까.]

[차로 밀어 버리는 거면 모를까.]

[차로 밀어 버리는 거면 모를까.]

그건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기철의 의식을 사로잡았다. 기철은 진득이 땀이 맺힌 손으로 운전대를 움켜잡았다.

‘확 밀어 버리고 튀면 아무도 모를 거야. 숲속이라 CCTV도 없고 근처에 주차된 차들도 없잖아.’

그의 손이 뭔가에 씐 것처럼 차의 블랙박스를 제거했다. 칩을 꺼내 입 안에 넣은 그가 오도독오도독 칩을 씹어 삼켰다.

“죽여 버릴 거야. 내 손으로 직접!”

유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바닥을 보며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이제 그와의 거리는 제법 가까워져 있었다. 더는 지체할 수가 없었다.

“죽어어어엇!”

기철은 눈을 질끈 감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부아아아아아아앙!!!!

요란스러운 배기음이 공기를 찢는 순간 유신이 고개를 들었다. 샛노란 라이트가 크게 벌어진 그의 동공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콰앙!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생각보다 거리가 가까워 충격이 없을 줄 알았는데 차체에서 느껴지는 파동은 어마어마했다. 기철은 핸들을 꽉 잡은 채 부들부들 떨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피가 온몸에 펌핑된 듯 들끓었다.

그는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겨우 고개를 들었다. 멀찍이 날아가 바닥에 엎어진 유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잇새로 나지막한 욕설이 흘렀다.

“씨발…….”

그건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극한의 두려움과 묘한 쾌감이 동시에 엄습했다. 어느새 오줌을 지렸는지 바지가 축축했다.

“주, 죽은 건가?”

쓰러진 유신은 미동도 없었다. 시체처럼 바닥에 누워 있는 그를 보는 순간 기철은 제가 저지른 짓을 실감했다.

끝났다. 이제는 정말 모든 게 끝나 버린 것이다.

“쿡쿡.”

기철의 잇새로 음산한 웃음이 새었다.

키득거리는 입가엔 거품이 가득했고 눈동자는 광기에 휩싸여 있었다.

“푸흣……. 아하하하하! 거봐, 내가 이겼잖아! 좆도 안 되는 새끼가 감히 누구한테 덤벼?”

기철은 목젖이 훤히 드러나도록 웃기 시작했다. 머리는 산발이 되고 턱으론 침이 뚝뚝 떨어졌다. 한참을 미친 사람처럼 웃던 그가 시뻘게진 눈으로 앞을 보았다. 그때까지 유신은 꿈쩍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꼴좋다, 개새끼야.”

기철은 비릿하게 웃으며 차 문을 열고 내렸다.

타박타박.

시골길에 울리는 발걸음 소리가 사신의 것처럼 음습했다.

유신에게 걸어가는 몇 걸음 동안 그는 잠시도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앞일에 대한 걱정은 되지 않았다. 오직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하기만 했다.

‘저 자식은 죽어 마땅해. 내 여자를 빼앗았고, 나를 회사에서 잘리게 했고, 치사한 술수로 나를 경찰서에 처넣었고. 어디 그뿐이야? 아버지 회사를 시궁창으로 처박기도 했지!’

기철에게 유신은 그의 인생을 말아먹은 장본인이었다. 복수심에 눈이 먼 기철은 모든 게 제 손에서 시작되었다는 건 깨닫지 못했다.

점점 거리를 좁혀 나가던 기철의 눈매가 일그러진 건 그 순간이었다.

“뭐야, 저거?”

가까이 갈수록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까 올라갈 땐 분명 슈트 차림이었던 유신이 어느새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깐 거리가 먼 데다 어두워서 몰랐는데 머리엔 헬멧도 쓰고 있다.

기철은 후들거리는 발로 쓰러진 유신의 옆구리를 툭 차 보았다. 미동도 없을 거라 예상했던 그가 쿨럭쿨럭 기침을 내뱉은 순간 그는 혼비백산해서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으헉!”

죽지 않았어. 살아 있다고!

기철은 놀란 나머지 할 말을 잃고 입술만 벙긋거렸다.

“아씨, 더럽게 아프네.”

그때 쓰러져 있던 유신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상체를 일으켜 툭툭 고개를 꺾어 본 그가 느릿하게 목덜미를 주물렀다.

“넌 어째 예상을 빗나가는 법이 없냐.”

“뭐, 뭐야! 왜…… 왜 안 죽었지? 어째서 살아 있는 거야!”

“실망한 표정이 볼만하네. 진짜로 죽이려고 밀었나 보지?”

“씨팔, 네가 왜 살아 있는 거냐고!”

유신은 찢어져 피가 흐르는 입술을 손등으로 닦으며 픽 웃었다.

“제법 위험하긴 했어. 두둑이 입었는데도 골로 갈 뻔했거든.”

엉망진창인 몸에 비해 그의 목소리는 말짱했다. 턱없이 여유로운 모습에 기가 질린 기철은 턱을 달달 떨었다.

‘말도 안 돼. 이건……!’

차체에 그 정도 충격이 있었으면 온몸의 뼈가 으스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저렇게 멀쩡할 수가 있나? 그는 재빠르게 유신의 모습을 스캔했다.

유신의 입에서는 가늘게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멀쩡한 척 가장하고 있지만 이마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안색은 파리했다. 몇 겹을 껴입은 방탄조끼가 충격을 오롯이 흡수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기철은 다시 기세가 등등해졌다.

“역시. 멀쩡한 게 말이 안 되지! 이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아?”

그는 시험 삼아 유신의 복부를 발로 후려쳐 보았다. 숨도 못 쉬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유신을 본 순간 그의 눈빛이 희번덕거리며 빛났다.

‘이럴 때가 아니야. 지금 저 새끼를 죽이지 않으면 분명 뒤탈이 날 거야. 무조건 이 자리에서 해치워야 해!’

독하게 마음먹은 기철이 차로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파밧.

어디선가 강렬한 헤드라이트가 쏘아졌다. 눈이 멀어 버릴 것처럼 새하얀 빛에 기철은 손등으로 눈을 가리고 욕설을 퍼부었다.

“뭐야?”

차에서 내린 것은 문형주였다. 긴 다리를 휘적거리며 걸어온 그가 손가락으로 기철의 뺨을 툭 쳤다.

“너 여기서 뭐 하냐?”

“형주 형?”

기철은 선뜻 사태가 파악되지 않아 눈을 굴렸다. 느닷없이 나타난 형주를 반가워해야 할지, 두려워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형주는 멍하니 선 기철을 보며 낄낄 웃었다.

“왜, 차로 돌아가서 진짜로 밀어 버리게? 아서라. 조유신 잘못 건드렸다가 너 뒈지는 수가 있어. 벌써 볼 장 다 본 것 같지만.”

기철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둘이 짜기라도 한 거야?”

“눈치 더럽게 없네. 그걸 이제야 알아채다니.”

형주가 비스듬히 담배를 꼬나물었다. 사태 파악이 된 기철이 분노하며 멱살을 잡은 순간 형주가 그를 바닥으로 패대기쳤다.

“비켜, 새끼야. 어디서 지린내 나는 손으로 이 고귀한 몸을 잡아, 잡기를.”

“이런 씨……! 문형주!”

기철이 벌떡 일어나 다시 형주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닳고 닳은 형주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어디 보자. 잘 찍혔네.”

순식간에 기철을 바닥에 찍어 누른 형주가 힐끗 유신을 쳐다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 건 손바닥만 한 소형 카메라였다.

“미친놈. 괜찮냐? 적당히 피했어야지.”

“적당히 피하면 저 새끼 살인 미수 못 받아 내.”

“독한 새끼. 이래서 너 같은 놈이랑은 상종을 못하겠다니까.”

피식 웃은 형주가 사고의 현장이 담긴 카메라를 유신에게 넘겼다. 유신은 피 섞인 가래를 바닥에 뱉어 내곤 품 안에서 차 키를 꺼내 형주에게 던졌다.

“가져가.”

“나이스 캐치. 역시 거래가 깔끔하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슈퍼 스터드의 키가 형주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만족스러운 듯 씩 웃는 그가 돌아선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경광등 소리가 울렸다.

“야, 경찰 올 때까지 얌전히 바닥에 붙어 있어. 여기서 나 본 거 불었다간 감방 생활이 아주 지옥이 될 테니까 알아서 하고.”

“문형주 이 개새끼……!”

“나 개새낀 거 이제 알았어? 크큭, 네가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툭툭.

기철의 뺨을 두드린 형주가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섰다. 슈퍼 스터드에 몸을 실은 그가 서서히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유신은 희미하게 웃었다. 핏물이 가득 고인 입 안에서 나직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준기 형, 봤지?”

그의 시선이 머나먼 산 중턱을 향했다.

준기의 묘소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기철을 잡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형한테 좋은 선물이 됐길 바라.’

유신의 의식이 서서히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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