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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서비스 (7)화 (7/85)

7

“술을 왜 그렇게 먹어요?”

숟가락으로 소주를 한 입 떠먹는 그녀를 유신이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한 학기 동안 그녀를 봐 왔지만 이런 모습은 또 처음이었다.

“왜긴. 술 먹고 싶어서 그러지.”

“술은 잔에 따라 마셔야죠. 새 종이컵 하나 사다 드려요?”

“잔술 마시면 취할 것 같아.”

“그럼 그만 마시지?”

“내 나름대로 조절하는 중이야. 잔소리하지 마.”

떽.

선율이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놓았다.

이미 많이 취한 것 같은데.

핏기가 돌아 더욱 붉어진 그녀의 입술에 유신의 온몸에 열기가 번졌다.

예쁘다. 처음 본 그날처럼.

어느 봄날, 같은 화실을 쓰던 선율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았다. 글쎄.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첫눈에 반했다고 하기엔 식상하고 너무 예뻤다고 하기엔 좀 가볍고.

창가로 들어오던 햇살이 보석처럼 부서져 그녀의 살갗에 떨어져 내리는 광경은 유신이 평생을 살며 보아 온 그 어떤 모습보다 인상적이었다. 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이 나던 머리칼이 흘러내려 간신히 옆얼굴만 보였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웠다.

그녀의 분위기가, 차분한 목소리가, 그리고 마주쳤을 때 살짝 떨리던 눈동자가. 모든 게 강렬한 그림이 되어 머릿속에 각인된 유신은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다

“무슨 생각하고 있었어요?”

“사색.”

예상치 못한 답에 유신의 입가에서 삐죽이 미소가 새어 나왔다.

“무슨 사색을 그렇게 하는데?”

“아……. 오늘 너무 많이 마셨다……. 내일부턴 그러지 말아야지…….”

“이제 보니 사색이 아니라 반성이네요.”

뭐가 그리 웃긴지 선율은 박수를 치며 까르르 웃었다.

“맞아. 자기반성 중이야. 어차피 내일이면 까맣게 잊겠지만. 넌 왜 아직 학교에 있어?”

“선배 만나려고 그랬나 봐요.”

“응? 나를?”

술도 마셨겠다, 방학 전날이겠다, 둘밖에 없겠다.

고백에 이보다 완벽한 타이밍은 없었다.

유신은 발밑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툭 차며 담백하게 고백했다.

“좋아해요, 선배.”

그 짧은 한마디를 뱉어 내는 데 석 달이 걸렸다고 말하면 선배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덤덤한 척하는 내 손이 땀으로 축축이 젖은 걸 알면, 지금 당신 대답을 기다리는 내 속이 오천 도씨로 들끓고 있다는 걸 알면 무슨 말을 하려나.

“진짜 좋아합니다, 선배.”

훅 들어온 고백에 선율은 멍하니 눈만 끔벅였다.

한 숟가락 머금었던 알코올이 목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입가로 주르륵 흘렀다. 동상처럼 굳어 버린 그녀의 반응에 유신이 피식 웃었다.

“고백하는데 침 흘리는 건 좀 깬다.”

고백한 건 넌데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선율은 뺨을 붉히며 서둘러 입가를 닦았다.

“침 아니고 술이거든?”

“그거나 그거나.”

“침이랑 술이 어떻게 같냐?”

“입에 들어가면 다 똑같지, 뭐.”

“그게 어떻게…….”

“미지근하고, 알싸하고.”

맛도 있겠지.

입술을 훑는 느릿한 시선에 선율은 반사적으로 입술을 말아 감추었다. 술을 많이 마셔서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걸까. 귀에 들릴 정도로 쿵쿵대는 박동에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둘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유신은 애꿎은 돌멩이만 툭툭 차며 하늘을 바라보았고 선율은 멍하니 그의 옆얼굴만 바라보았다.

달빛이 밝아 그런지 깎은 듯 또렷한 이목구비가 더욱 선연했다. 스무 살짜리답지 않게 살포시 깔린 속눈썹 그늘은 우수에 찬 그의 분위기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매일 잘생겼지만 오늘은 더 잘생겼네.’

입학과 동시에 여학우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독보적인 신입생.

그가 저를 좋아한다고 고백을 해 오는데 생각보다 현실감 없지는 않았다. 화실에서 종종 마주칠 때마다 어쩌면 느꼈나 보다. 제 등에 꽂히는 그 맹렬한 시선과 혈기 가득한 욕구를.

사회에서 네 살 차이라면 몰라도 대학 신입생과 졸업반 차이는 꽤 큰 편이었다. 선율이 느낀 두 사람의 거리는 딱 그만큼이었는데 유신에겐 아니었다.

어려서 뭣도 모르고 덤비네. 저러다 말겠지 했었는데.

저돌적인 고백은 선율의 마음을 단숨에 흔들어 버렸다. 아르바이트와 학교만 오가며 단조롭게 보냈던 대학 생활이 순식간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순간이었다.

‘어쩌지.’

선율은 그를 따라 돌멩이만 툭툭 건드리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실타래처럼 복잡한 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 언제부터 좋아했어?”

“그러는 선배는.”

“난 너 좋아한다고 한 적 없는데?”

하늘을 향해 있던 유신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왔다. 커다란 손이 선율의 아래턱을 붙잡았다.

“!”

그가 고개를 비틀어 다가오는 장면이 슬로 모션처럼 선율의 동공에 맺혔다. 선율의 두 손이 저도 모르게 치맛자락을 콱 움켜쥐었다.

“좋아하는 거 아니면 패 버려요.”

바로 코앞에서 뱉어진 그의 숨이 살짝 벌어진 선율의 입술로 흘렀다.

“뼈 하나 부러트려도 신고 안 할게.”

그의 입술이 단숨에 선율을 헤집었다. 부드럽게 입술이 맞물린 순간 선율의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아…….’

턱을 쥐었던 손이 뒤통수를 끌어당겼다. 더욱 강하게 밀착된 입술로 희미한 알코올 향이 느껴졌다. 유신은 선율을 통째로 삼켜 버릴 듯이 입술을 빨았다. 그야말로 폭풍 같은 입맞춤이었다.

누가 그러던데. 첫 키스를 할 때는 머릿속에서 종이 울린다고.

그 말은 틀렸다.

종이 울리는 게 아니라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유신의 입술은 차가웠으나 선율에게 닿자 금세 뜨겁게 달아올랐다. 숨이 가빴다. 가슴이 뛰다 지쳐 멈춘 것 같았고 모든 시공간이 제자리에 정지한 듯했다.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있던 손에서 스르르 힘이 빠져나갔다.

살짝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정신없이 제 입술을 빨아들이는 그가 보였다. 우뚝 선 콧날이 제 뺨을 짓누르고, 정성스레 빗어 내린 듯한 속눈썹은 낮게 내리깔려 떨리고 있었다.

‘조유신…….’

어느 누가 이보다 더 뜨겁게 키스할 수 있을까.

아마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라고, 선율은 생각했다.

유신의 왼손이 벤치를 짚었다. 그 바람에 선율의 몸이 조금 뒤로 밀렸다. 쓰다듬듯 선율의 어깨를 타고 내려온 유신의 손이 치마 아래로 침범한 순간 선율이 다급히 그의 손목을 잡았다.

“뭐 하는 거야. 너 그러다가 손모가지 날아간다.”

유신은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씩 말아 올렸다.

“왜. 코뼈도 그냥 주저앉힌다고 그러지.”

조금의 틈도 아쉽다는 듯 유신이 다시금 입술을 붙여 왔다.

“좋아서 그래요.”

축축이 젖은 선율의 입술을 빨아 당겼다 놓으며 그가 속삭였다.

“선배가 너무 좋아서.”

낮게 깔린 그 목소리가 선율을 휘감았다. 제 모든 게 그를 향해 열린 듯 선율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 * *

베링거 슈퍼 스터드 V880.

대한민국에 딱 두 대밖에 없다는 슈퍼 카 안에 유신이 있었다.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가 버린 선율을 보며 한참이나 어두컴컴한 곳에 앉아 있던 그는 30분이 훌쩍 지나서야 그곳을 빠져나왔다.

가슴이 욱신거렸다. 그녀만 보면 미친놈처럼 널뛰는 가슴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짙은 한숨만 입가를 맴돌았다.

그는 조금 전 보았던 선율의 얼굴을 떠올렸다.

타고난 듯 맑고 고운 피부, 가느다란 눈썹,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

다소 차가운 인상이지만 웃을 땐 반달이 되는 눈매 덕에 한없이 천진해지는 얼굴이다. 처음 본 순간 반했고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그래서 돌아왔다.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가 없어서.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다 해도 끝내 잊히지 않을 것 같아서.

“한선율.”

가만히 부르는 것만으로도 입술이 간지러운 기분이다.

어떻게 되찾아야 할까, 당신을.

예전보다 조금은 성숙하게 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만이었다. 그녀 앞에 나타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심장은 미쳐 날뛰는 망아지처럼 뛰었으니까. 마음보다 말이, 말보단 행동이 먼저 나가 버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영 안 넘어와 줄 것 같은데.”

살얼음 풀풀 날리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유신은 미간을 문질렀다.

지이잉―

그때 전화가 걸려 왔다. 혹시 선율인가 싶어 발신인을 확인한 유신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네, 접니다.”

애석하게도 선율은 아니었다.

―유, 유신아, 김기철은 마, 만났냐?

전화를 걸어온 건 장복수였다. 유신이 세상에서 가장 믿는 사람이자 그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장본인이다.

“동문회에서 만나기는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아직이고.”

―너보고 뭐라고 하, 하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더군요.”

―그, 그렇겠지. 지은 죄가 있는 놈들은 항상 그렇다니까? 기, 김기철이 꼬불친 물건은 찾을 수 있겠어?

유신은 낮게 웃었다.

“찾아야죠. 그거 때문에 돌아온 거니까.”

유신은 시동을 걸었다.

바닥에 닿을 듯 낮은 차체가 미끄러지듯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 * *

베링거 모터스의 이번 광고 콘셉트는 ‘모터쇼의 제왕’이었다.

넉 달 후 일산에서 진행되는 세계 모터쇼를 홍보하면서 베링거 모터스의 슈퍼 스터드를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전략이었다.

페라리, 부가티 등 럭셔리 브랜드들이 대거 참여하는 이번 모터쇼에서 최고 관심사는 역시 베링거였다.

귀족화 전략으로 전 세계 부호들을 상대로 주문 제작한 차만 팔던 베링거에서 처음으로 홍보에 나선 것이기도 했고, 베링거에서 처음으로 출시한 전기 차를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선율은 베링거에서 넘어온 자료들을 검토하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번 모터쇼에서 선보일 슈퍼 스터드는 베링거 최초의 전기 차야. 전기 차로 흐름이 넘어가고 있는 보통의 추세에 비해 슈퍼 카 업체들이 기존 엔진을 고수하는 이유는 빠르고 파워풀한 엔진의 힘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시장의 흐름은 전기 차로 돌아서고 있었다. 최근 포르쉐와 마세라티, 롤스로이스 등이 전기 신차 개발에 앞장서겠다고 선포한 것이 그 증거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베링거의 신차 발표는 아주 중요했다.

‘전기 차이면서도 빠르고 파워풀하다. 도로를 달릴 땐 섹시하고. 그런 이미지를 주면 어떨까?’

선율은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태블릿에 스케치했다.

Speedy, Powerful, Sexy.

써 놓은 글자들을 보니 어딘지 그 남자를 닮았다.

저도 모르게 유신의 얼굴을 떠올린 선율은 콧잔등을 찡그렸다.

똑똑.

한창 골몰하고 있을 때 기철이 파티션을 두드렸다.

“한 팀장, 나랑 얘기 좀.”

복잡한 얼굴로 펜슬을 돌리고 있던 선율이 짧게 대답한 후 그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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