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읍!”
완전히 젖어 버린 발가락이 혓바닥을 지질 듯 맞닿았다. 제가 핥아 대며 내는 소리에 흥분해 버린 태건은, 터져 나온 타액을 다시 입 안에 담으려 발밑 오목한 부분을 연신 핥아 올렸다. 잘 참고 있던 은하도 여긴 간지러운지 몸을 움찔거렸다.
“아, 간지러워, 아!”
잘게 떠는 은하의 몸짓에 태건은 그녀가 쾌감을 느꼈음을 알 수 있었다. 머리에 열이 오르기 시작한 그는 정강이에 입술을 묻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하아……. 천천히 하고 싶었는데.”
잠시 한숨을 내쉰 태건이 은하의 종아리에 코를 박았다.
“후우, 그리웠어. 이 냄새.”
지난번 함께 밤을 보낸 이후 수시로 상상했다. 한창 호르몬이 날뛰는 시기도 아닌데 한번 여체를 맛본 몸은 만족을 몰랐다. 한번은 잠을 자다가 극렬한 충동에 휩싸인 적도 있었다. 물론 깨어 있을 때에는 누구에게도 몸이 단 티를 내지 않았지만.
“네 거야, 오늘은.”
설은하는 사람을 자극하는 데 선수였다. 아무것도 아닌 저에게 소유권을 주며 쾌감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오늘은’이라는 한정된 단어를 붙여 추잡한 질투를 느끼게 했다.
“그래. 내 거지, 오늘은.”
일부러 종아리를 조금 아프다 싶게 갉작갉작했다. 개새끼들은 심술이 나면 입질을 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제 머리카락 위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태건은 곧바로 반항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착하지, 차태건.”
순간 태건은 자신이 진짜 은하의 개가 된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사랑받는 개. 다정한 목소리로 얼러 주는 걸 듣고, 따뜻한 손길을 받는. 하지만 개는 개라도 그는 흥분한 개였다.
“자, 원하는 대로 해 봐.”
잔뜩 가라앉은 은하의 목소리에 태건은 일어서 옷 위로 그녀의 몸을 어루만졌다. 옷 위로 만져지는 감각을 느끼며 흐느끼는 은하의 모습은 눈이 핑 돌 정도로 선정적이었다.
“우리 강아지……. 애원해 볼래?”
정말 사랑스러운 존재를 보는 듯, 그의 목에 팔을 감고 태건을 바라보는 은하의 미소는 눈이 부셨다. 하, 진짜. 예쁘긴 더럽게 예쁘네.
“얼른. 듣고 싶어.”
은하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입술이 닿을락 말락한 거리에서 은하가 멈췄다.
“키스해 줘.”
“…….”
“목말라. 네 거, 내가 다 마시게 해 줘.”
애원인지 협박인지 모를 태건의 말에 은하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그래, 마셔.”
은하는 그의 목을 끌어당기며 깊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서로 혀가 얽혀들며 태건은 은하의 타액을 받아 마셨다. 숨이 막히면서 짜릿하게 올라오는 쾌감에 태건이 잔뜩 흥분한 듯 은하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아…… 하아, 아…….”
가까스로 입을 뗀 은하가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태건이 은하의 뒤통수를 잡고 다시 입을 맞춰왔다.
그는 아까 제가 한 말을 지키겠다는 듯 타액을 모두 흡입해 버릴 기세였다.
“아, 잠깐, 아, 아으…….”
“부족해. 아직 모자라다고.”
애처롭게 애원하는 태건에 은하가 마지못해 입술을 완전히 내어주었다.
“더…… 더 줘!”
“읍!”
은하는 미친 듯 포효하는 태건의 머리채를 잡고 거칠게 입을 맞추었다. 서로가 서로의 입술을 집어삼키며 격렬한 키스가 계속 되었다.
“아…… 나 이제 그만하고 싶어. 아, 읍!”
온몸을 비틀며 제 얼굴을 떼어 내려는 은하에 태건은 마지막으로 입술을 딱 붙여 미친 듯이 혀로 입 안을 훑었다. 고작 키스만으로 시작된 흥분은 점점 그 크기를 키워 극한에 가까운 쾌감을 끌어냈다.
“하, 하아……. 아으…….”
가까스로 입술을 떼자 은하는 격한 쾌감을 쉽게 끝내지 못했다. 흥분이 가실 때까지 입술로 그녀의 목덜미를 짓이기던 태건은 조금씩 잦아드는 그녀의 몸짓에 허리를 가볍게 쓸었다. 그의 가슴에 머리를 맞댄 은하의 몸이 전기가 통한 것처럼 움찔거리고 있었다.
“괜찮아?”
조심스럽게 자신을 품에 안은 태건을, 은하는 혼몽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희게 질린 뺨을 살살 쓸어 주자 얕은 한숨과 함께 눈을 깜빡거렸다.
“솔직히 말해. 너 진짜 처음 아니지.”
슬쩍 눈을 흘기는 은하에게 태건은 그냥 웃어 보이고 말았다.
“잠깐 쉬었다 할까?”
“너 아직 못 했잖아.”
“괜찮아. 기다릴 수 있어.”
아파 보일 만큼 잔뜩 흥분한 몸을 그대로 두고, 태건은 은하를 침대로 옮겨 주었다.
“나 받기만 하는 스타일 아닌데.”
“잠 못 잤어? 피곤해 보인다.”
은하의 말을 자연스럽게 돌리며 눈가의 점이 있는 부분을 슬쩍 쓸어 주었다. 정말 고단했던 모양인지 은하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밤을 샜더니. 일이 좀 많았거든.”
“응. 좀 쉬어.”
이러면 안 되는데, 미안. 점점 잦아드는 은하의 목소리에 태건은 조용히 이불을 끌어다 주었다. 쌔액쌔액, 고르게 변한 숨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지고, 왠지 모를 평화로움이 공기 중에 감돌았다.
“잘 자, 설은하.”
은하가 잠든 사이, 태건은 잔뜩 흥분한 제 몸을 대충 해결하고 여기저기 묻은 흔적들을 닦아 냈다. 한 시간 뒤 은하가 일어났을 때에는 고이 개켜져 있는 옷가지 옆에 새로 사 온 스타킹과 항아리 모양의 바나나 우유 하나가 놓여 있었다.
“하, 차태건.”
문득 시선을 돌리던 은하의 눈에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들어왔다. 부스스한 표정으로 저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그 여자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스스로도 참 오랜만에 보는, 아주 편안한 얼굴이었다.
* * *
“운전 조심하고.”
“네.”
“다녀와서 아빠가 말한 거 생각해 보고.”
“네.”
태건의 부친은 태건이 정윤오의 일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유도 유망주였던 아들이 운동을 그만둔 것도, 한창 뜻을 펼칠 시기에 저를 따라 기사 노릇이나 하고 있는 것도 다 정윤오와 얽혀서 생긴 일이라고 보는 것이었다.
어젯밤 아버지는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라고, 여름휴가를 마친 후 다시 수능 공부라도 시작해 보기를 권유했다. 잠시 생각하던 태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가져가.”
아버지는 조그만 거실 테이블에 작은 상자 하나를 툭 던져 놓고 먼저 밖으로 나섰다. 귀밑에 붙이는 멀미약을 본 태건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흘렀다.
“건아!”
짐이 별로 없어 널널한 스포츠 백을 어깨에 메고 오던 태건은 차 옆에 서서 저를 향해 손을 흔드는 정은수를 발견했다. 그 옆에는 바로 그저께 만났던 설은하가 함께 서 있었다.
“어…….”
“내가 은하한테도 연락했어. 괜찮지?”
“안녕.”
옷 때문에 그런가. 상큼하게 웃는 설은하의 모습은 또 새로운 느낌이었다. 테니스복을 리폼한 것 같은 상하의가 함께 쓴 선 캡과 아주 잘 어울렸다.
“짐이 그게 다야?”
“어.”
“남자들은 진짜 대단하다니까. 우리랑은 완전 다른 종족이야, 그지?”
“그러네요.”
뒷좌석에 먼저 올라타는 설은하와 정은수를 보던 태건은 한쪽에 삐뚜름하게 서 있는 정윤오를 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설은하.”
“정은수가 또 오지랖 부린 거지, 뭐.”
“괜찮아?”
“안 괜찮을 게 뭐 있어. 그리고 너도 분발 좀 해야지. 내 부탁 들어주고는 있는 거냐?”
심드렁하게 말하는 정윤오의 모습에 태건은 저도 모르게 차 안을 살폈다. 다행히 두 여자는 수다를 떠느라 바깥에 관심이 없었다.
“못 하겠으면 빨리 말해.”
“말하면.”
“다른 사람한테라도 부탁해야지.”
“뭐?”
“이제 두 달 남았다, 친구야. 이대로 계속 갈 수는 없잖아.”
답답하다는 듯 태건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정윤오가 조수석에 올라탔다. 혼자 남겨진 태건은 정윤오가 남긴 말을 곱씹으며 한동안 서 있었다.
“별장 너무 오랜만에 가는 것 같다. 얼마만이지?”
“지난겨울에 못 갔으니까 거의 1년 됐지.”
“아, 주기별로 가 줘야 하는 건데.”
차 안은 금세 정은수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세 사람이 있든, 설은하가 끼든 언제나 대화는 정은수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사실 우리 별장은 가을에 가는 게 더 멋있어. 마당에 나무가 많아서 운치 있거든. 우리 다음에 또 같이 가자?”
“네, 언니.”
“설 대표님도 양주에 별장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거긴 어때?”
“전 별장에 잘 안 가요. 일이 좀 바빠서요.”
“그래?”
“첩 자식 뭐 이쁘다고 별장까지 데려가겠어.”
가는 내내 한마디도 안 하던 정윤오의 입에서 또다시 은하를 찌르는 말이 튀어나왔다. 운전하던 태건의 손이 굳어짐과 동시에 높아진 정은수의 목소리가 뒤에서 건너왔다.
“정윤오, 너 진짜 이럴래? 꼭 기분 좋게 놀러 가는 길에 이래야겠어?”
“괜찮아요, 언니. 첩 자식은 아니지만, 부모님이랑 안 친한 건 맞아요.”
정은수를 만류하는 설은하의 목소리는 담담하기만 했다. 곧 죽어도 잘난 척이지, 중얼거리는 정윤오의 말은 다행히 태건에게만 들렸다.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 윤오 쟨 우리 엄마한테도 맨날 불륜녀, 불륜녀 그러는데 뭐.”
“정은수.”
순간 싸늘해진 정윤오의 목소리가 정은수의 입을 막았다.
“왜. 네 입으론 해도 되고, 내 입으로는 하면 안 돼?”
“허, 막가라, 그래.”
순식간에 얼어붙은 분위기에 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후우, 속으로 한숨을 삼킨 태건은 줄여 놓았던 라디오의 볼륨을 다시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