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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는 해머로 세상을 구한다 (114)화 (114/140)

114화

『명성이 떨어졌습니다.』

『명성이 올랐습니다.』

어제부터 빈번하게 뜨던 알림 메시지가 지금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정신없이 뜨고 있었다.

나는 창을 꽉 채우다 못해 매초마다 갱신되는 메시지를 질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감옥에 갇힌 후로 죽죽 떨어지던 명성은 어느 순간부터 급등락을 반복하더니 지금은 점차 오르는 추세로 변하고 있었다.

‘시위의 영향 때문인가.’

기존의 명성 수치를 유지할 수만 있어도 다행이라 여겼는데 잘만 하면 이전보다 더 올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도대체 누구일까? 나를 정화자라고 소문을 낸 세력이.’

왜 나를 도와준 것일까?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어느덧 마차가 멈춰 섰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내리자 저택의 사용인들은 물론이고 가문의 기사들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아가씨, 무사히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맨 앞에 있던 집사 팬튼이 크게 안도하며 밝게 웃었다. 다른 이들도 기뻐하며 나를 반겼다.

그러나 나는 웃어줄 수가 없었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기 때문이었다.

‘왜 우리 집에서 악취가……?’

“왜 그러니? 몸이 아픈 게냐?”

내가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있으니 아버지가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서요.”

아무도 악취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나는 어설프게 이마를 짚으며 어지러운 척을 했다.

“의사! 의사를 불러와!”

아버지가 나를 부축하며 다급하게 외쳤다.

손가락 사이로 힐끔 보니 하인 한 명이 주치의가 있는 별관으로 부리나케 뛰어가고 있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슐레만 경이 다가오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맡겼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가볍게 나를 안아든 슐레만 경이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그 뒤를 조이가 종종 거리며 따라왔다.

그 바람에 나의 귀환을 축하하며 들떠 있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가라앉아 버렸다.

‘미안해요.’

걱정스럽게 나를 보고 있는 백작저 식구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사과를 전했다.

악취만 아니었어도 멋지게 귀환식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감히 내 집과 내 사람들을 건드렸겠다?’

나는 요수를 향해 이를 갈았다.

침실에 도착하자 슐레만 경이 나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혀주었다.

얼마 후 주치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어지럽다고 하더군. 법정에서 볼 때부터 안색이 안 좋았어.”

아버지가 안절부절못하며 설명했다.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아가씨,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잠깐 현기증이 일었을 뿐이야. 기운이 없기도 하고.”

아픈 건 아니지만 피곤한 건 사실이었기에 힘을 죽 빼고 침대에 몸을 묻었다.

“애 얼굴 좀 보게. 얼마나 상했는지. 나쁜 놈들. 애를 굶기고 잠도 못 자게 한 게 분명해!”

아버지가 주먹을 불끈 쥐며 부들부들 몸을 떠셨다.

“평소보다 몸이 차군요. 기력도 없으신 것 같고요.”

“그 추운 곳에서 며칠 밤을 지냈으니 몸이 축날 만도 하지.”

주치의의 진단에 아버지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우선 뜨끈한 물에 몸을 좀 담그시는 게 좋겠습니다. 단, 너무 오래 계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방안의 온도를 올리는 게 좋겠군요.”

주치의는 빈속에 약을 먹으면 안 된다며 집사에게 묽은 스프를 부탁했다.

“약을 드시고 한숨 푹 주무십시오.”

주치의의 당부를 끝으로 진료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방에 불이 지펴지기 시작했다.

이후 목욕을 하고 약까지 먹고 나자 잠이 솔솔 밀려왔다.

‘아, 악취의 원인을 확인해 봐야 하는데.’

그러나 무거운 눈꺼풀을 이길 수가 없었다.

“아무 걱정 말고 푹 자거라.”

침대 맡에서 날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가 얼른 자라며 눈을 감겨주었다.

“저녁 때 ……꼭 깨워주세요. 아버지와 ……같이 식사하고 싶어요.”

“그래, 그러마.”

밀려오는 졸음을 참으며 띄엄띄엄 말을 건네자 나지막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내가 제대로 저택을 살펴볼 수 있게 된 건 낮잠에서 깨어나 저녁 식사까지 마친 뒤였다.

다른 사람들을 물린 뒤 조이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내가 감옥에 있는 사이 별 일은 없었어? 낯선 사람이 찾아 왔다든가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 이가 있다든가.”

“그 황실의 책을 몰래 두고 간 범인을 찾으시려는 거죠? 그렇죠?”

아니, 그건 황제가 그런 거야. 범인 안 찾아도 돼.

하지만 조이는 모르니까. 알아서도 안 되고.

나는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그걸 긍정으로 받아들인 조이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의지를 불태웠다.

“저도 도와드릴게요. 꼭 그 나쁜 놈의 시키를 잡아요! 안 그래도 저택의 식구들 모두 벼르고 있어요.”

뒤를 이어 험악한 말들이 이어졌지만 언제나 그렇듯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얘가 마음고생을 많이 하긴 했지.’

사면 받고 법정을 나오는 내게 안겨 들어 펑펑 운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내부에 범인이 있을까요? 대부분 오래 일한 사람들이고 다들 아가씨를 아끼는데.”

조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을 의심하는 게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도 아닐 거라 생각해. 다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확인해 보려는 거야.”

“지난 며칠 동안 낯선 방문자는 없었어요. 새로 들어온 사람도 없었고요.”

“별다른 일은 없었고?”

“음,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아! 맞아요. 아가씨께서 가신 날부터 밤마다 악몽을 꿨어요.”

“악몽?”

“네.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제시도 그렇고 러트도 그렇고. 심지어 하녀장님도 그러셨대요.”

“혹시 아버지도 악몽을 꾸셨어?”

아버지께 보호술이 걸려 있지만 법정에서 봤을 때 눈 그늘이 짙었던 점이 신경 쓰였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다만 계속 밤을 새다시피 하셨어요. 아가씨 일로.”

조이가 내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요수의 술법 때문이 아니라 나를 석방시키기 위해 과로하신 거라면 다행인데.

‘직접 확인해 봐야겠네.’

“혹시 악몽의 내용도 같았어?”

“그렇진 않았어요.”

“너는 무슨 꿈을 꿨는데?”

“아가씨께서 감옥에서 돌아오시지 못하는 꿈이요.”

악몽을 떠올린 것인지 조이의 얼굴이 슬프게 일그러졌다.

“내가 금방 돌아올 거라 그랬잖아.”

“아가씨께서 약속하신 건 반드시 지키신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너무 무서웠어요.”

북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한 조이가 울먹거렸다.

나는 조이를 안고 토닥여 주었다.

3회차 동안 항상 내 곁을 지켜준 아이.

씩씩하고 당차지만 마음이 여리고 정이 많은 탓에 내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이었다.

“고마워. 내 곁에 있어줘서.”

네가 있어서 웃을 수 있었어.

새삼 조이의 존재가 내게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조이는 말없이 팔을 들어 나를 마주 안았다.

나는 조이가 진정될 때까지 가만히 여린 등을 도닥여주었다.

“아유, 제가 주책을 부렸네요. 아가씨께서 돌아오신 좋은 날에.”

한참 만에 고개를 든 조이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며 민망해했다.

“조이를 울린 내 잘못이지.”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거리자 조이가 언제 울적했냐는 듯 해맑게 웃었다.

조이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각자 가장 두려워하는 걸 악몽으로 꾼 모양이었다.

개중에는 하얗게 질린 채 꿈 내용을 발설하지 않는 이도 있었다고 했다.

“큰일이네. 악몽을 계속 꾸면 안 될 텐데.”

“이제 괜찮을 거예요. 아가씨께서 돌아오셨으니까요.”

“다른 사람들도 나아질까?”

“오늘밤 다들 푹 잘 거예요. 그동안 다들 아가씨 걱정을 하느라 노심초사해서 꿈자리가 뒤숭숭했던 걸 테니.”

왠지 괜찮아지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악취랑 악몽이 연관된 것 같거든.

“악몽을 꾸는 것 외에 달리 아픈 사람은 없었어?”

“다들 잠을 잘 못자서 그런지 두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우울하거나 얼굴이 어두워 보인 이들도 있었고.”

“그렇구나. 내가 걱정을 많이 끼쳤네.”

나는 부러 밝게 대꾸하며 모두 내 탓으로 돌렸다.

“아가씨께서도 곤욕을 치르신 걸요. 진짜 나쁜 놈은 아가씨께 누명을 씌운 작자들이죠.”

마치 그 자들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조이가 이를 갈았다.

나는 조이를 잘 달래준 뒤 돌려보냈다.

“필립 경.”

나지막한 부름에 필립이 모습을 드러냈다.

“요수가 한 짓이겠죠?

내 부탁으로 미리 방안에 은신하고 있었기에 필립도 조이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참이었다.

“저택 전체에 데이먼의 기운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필립도 악취를 맡을 수 있는 탓에 그의 눈이 살풋 찌푸려져 있었다.

‘아주 깜찍한 짓을 했어.’

감히 내 사람들을 건드리다니.

내가 이렇게 빨리 석방될 줄은 몰랐겠지.

“아버지께서도 영향을 받으셨을까요?”

“주군께서 보호술을 걸어놓으셨으니 괜찮으셨을 겁니다.”

악몽은 정신적 공격이라 보호술이 통하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요수가 저희 집까지 침입했었다니 불쾌하네요.”

아버지에게 직접 손을 대기라도 했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저택 감시를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저를 지키느라 바쁘시잖아요.”

“다른 친구에게 부탁하면 됩니다. 그건 그 친구의 전문이니.”

저번에 말해줬던 또 다른 신수라는 분?

그분도 상당히 바쁜 것 같았는데.

“일단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해 볼게요. 우선 이 악취부터 처리해야겠어요.”

“제가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요. 제 손으로 직접 하고 싶어요.”

“그럼, 뒤를 따르겠습니다.”

필립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모두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움직였다.

창문을 열고 가볍게 몸을 날리자 필립도 나를 따라 조용히 바닥에 착지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백작저는 달빛만이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와 필립은 기척을 숨긴 채 고요한 정원으로 발을 내디뎠다.

저택의 정중앙에 멈춰 선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결계는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술법의 매개체가 심겨져 있는 모양이에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판타시아 별궁에서처럼 직접 매개체를 찾아다녀야 한다는 건데.

백작저는 본관과 여러 개의 별관으로 나뉘어 있고 연무장을 비롯한 부속 건물도 많았다.

정원은 또 어떠한가. 금권의 가문이라는 명성답게 크고 작은 정원이 수십 개였다.

‘이걸 다 돌아보려면 시간이 부족하겠는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녀야 하니 낮에는 돌아다닐 수 없다.

‘은의 망토’ 스킬을 사용한다고 해도 시간제한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오늘 일부만 살펴볼 수도 없었다. 언제 요수가 술법의 강도를 높일지 모르니.

‘드디어 업그레이드 된 기능을 써보게 되는 건가?’

해머 등급이 A로 올라감에 따라 기능도 업그레이드 되었으나 아직 사용해 보지 못한 터였다.

바로 해머를 소환하자 달빛을 머금은 해머가 요요하게 빛났다.

필립은 처음 보는 것이 아님에도 경탄 어린 시선으로 해머를 바라보았다.

‘탐지 기능 활성화.’

속으로 외쳐대자 허공에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탐지 기능을 활성화합니다. 업그레이드 된 기능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예전에는 해머를 들고 하나하나 찾아다녀야 했는데 이제는 해머를 던지면 알아서 사악한 기운이 있는 곳에 멈춰 선다고 했다.

내가 서 있는 곳을 기준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것부터 찾아낸다고 하니 훨씬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지금부터 매개체를 찾아볼까요?”

나는 메시지 창에서 ‘예’를 선택한 후 해머를 붕붕 돌려 멀리 던졌다.

거침없이 날아간 해머가 근처 분수대 앞에 우뚝 멈췄다.

“여기부터 부수죠.”

나는 허공에 떠 있는 해머를 집어 들며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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