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디는 해머로 세상을 구한다 (89)화 (89/140)

89화

‘스탯창.’

내 명령에 시스템 창이 바로 열렸다.

『로웨나 케인

레벨 : 65   명성 : 320

HP : 750    GP : 600

체력 : 658   근력 : 652

민첩 : 651   지성 : 649』

오랜만에 확인한 레벨은 꾸준히 잘 오르고 있었다.

명성도 눈에 띄게 많이 올랐는데, 아마도 무니스에서 활약했던 일이 큰 영향을 준 모양이었다.

로벨라가 보석업계에서 당당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일도 한몫했을 테고.

‘이 정도면 사교계에서도 더는 나를 무시하는 이가 없겠지.’

앞으로 레벨을 올리는 속도를 높여야 할 것 같았다. 대공의 호감도도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고.

‘최근에 클로디안과 애런의 호감도는 확인해 보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무니스 일이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특히 애런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몰라 조금 불안했다.

‘한번 체크해 봐야겠군.’

똑똑. 

“로웨나, 들어가도 될까요?”

반가운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벌컥 문을 열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카밀라가 보였다.

“어서 와요.”

나를 찾아와줬다는 게 기뻐서 카밀라를 끌어안자 머뭇대던 그녀가 마주 안아왔다.

낸시가 암살 의뢰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로 카밀라는 계속 방에서 칩거해왔었다.

그녀가 스스로 방을 나와 나를 찾아온 게 무려 2주일 만이었다.

“미안해요. 걱정 끼쳐서.”

“마음 쓰지 말아요.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잖아요.”

“고마워요.”

카밀라가 고개를 들며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한결 편해진 얼굴에 안심이 되었다.

“들어와요. 오랜만에 같이 차 한 잔해요.”

창가에 자리한 테이블로 이끌자 카밀라가 순순히 따라왔다.

잠시 후 조이가 다과를 차려주고 조용히 방을 나갔다.

“이제 괜찮아요?”

“네. 마음 정리가 된 것 같아요.”

처음 낸시의 소식을 듣고 충격으로 흔들리던 눈빛은 제법 단단해져 있었다.

“언니는 절 미워하니까 제가 황태자 전하와 약혼하게 되면 분풀이를 할 거라고는 생각했었어요.”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인 카밀라가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실 약혼 발표를 하고 나서 언니의 괴롭힘이 심해지긴 했었어요. 예전처럼 몸에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황태자 때문이라도 눈치를 보고 조심할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화가 치밀어 속이 답답해졌다.

“……그래도 저를 죽이려고 할 줄은 몰랐어요. 그게 충격이었나 봐요. 반이라도 같은 피가 섞인 자매니까 그 정도로 미워하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카밀라의 눈빛이 서글프게 흐려졌다.

“이제는 괜찮아요. 남은 미련까지 다 털어버렸더니 오히려 후련한 것 같아요.”

금세 감정을 갈무리한 카밀라가 말갛게 미소 지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어요?”

“독립하려고요. 더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찻잔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머뭇거리던 카밀라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지난번에 제안해줬던 거 조금 서둘러도 될까요?”

황도에 머물 집을 사주고 사업에도 투자하겠다는 제안을 말하는 것이었다.

같이 집을 보러 가기로 했었으나 낸시 일이 터지면서 흐지부지되어 버린 터라 다시 말을 꺼내기가 미안한 모양이었다.

“당연하죠. 오늘 당장 집 보러 가요. 며칠 동안 집에만 있었으니 바람도 쐴 겸.”

“고마워요. 금방 준비하고 올게요.”

그녀가 밝은 얼굴로 방을 나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립 제안에 망설이더니…….

아무래도 낸시 사건이 마음을 정리하는데 큰 영향을 준 모양이었다.

“그럼, 나도 움직여 볼까?”

자리에서 일어나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 * *

“카밀라, 이 집은 어때요? 로벨라 매장과도 가까운 편이고 주변 치안도 좋은 것 같은데.”

나는 붉은 벽돌의 이층집을 보며 물었다.

우리는 지금 매튜를 통해 미리 알아봐 두었던 주택 매물들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여기 전 주인이 무척이나 깔끔한 분이라 내부도 엄청 깨끗하답니다.”

중개인이 주택 내부를 보여주며 이 매물에 대한 장점을 끝도 없이 나열했다.

“음, 집이 예쁘긴 한데 혼자 살기에는 너무 큰 것 같아요. 관리하기에도 벅찰 것 같고.”

“관리야 고용인들이 해줄 텐데 뭘 걱정하세요? 다과 모임이라도 열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죠.”

머리를 곱게 틀어 올린 중년의 중개인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카밀라가 누구인지 알아봤기에 저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돈을 벌어 생활해야 하는 카밀라로서는 고용인을 여러 명 둘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집값도 내게서 돈을 빌려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니 신중해질 수밖에 없겠지.

카밀라가 곤란해 하는 게 느껴져 내가 적당히 나섰다.

“그럼, 다른 매물들도 살펴보고 결정해요. 봐야 할 매물이 몇 개 더 있으니까.”

“어머, 그럼요. 아직 보실 매물이 많이 남아 있답니다.”

눈치 빠른 중개인이 주택의 현관문을 닫으며 얼른 앞장섰다.

그 다음으로 서너 개를 더 보았지만 카밀라의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이 주택은 규모가 작은 편이긴 하지만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어 조용하고 최근에 인테리어를 손 봐서 따로 수리할 곳이 없을 거예요.”

조금 지친 기색인 중개인이 하얀색 이층집을 가리키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집은 크기도 아담하고 알록달록한 꽃들로 예쁘게 꾸며진 앞뜰도 있었다.

“여기는 어때요? 카밀라가 딱 원하는 크기인 것 같은데.”

“마음에 들어요. 동화 속에 나오는 집 같아요.”

반짝거리는 눈빛을 보니 정말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이곳은 하급 귀족이나 부유한 평민들이 사는 지역으로 주택들이 아담하긴 하지만 깔끔하고, 치안도 좋은 편이었다.

“그럼, 여기로 계약하죠.”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안에 들어가셔서 계약서를 작성하시죠.”

계약이란 말에 금세 생기를 되찾은 중개인이 얼른 계약서를 꺼내들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하고 열쇠를 건네받았다.

“고마워요, 로웨나. 덕분에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었어요.”

“뭘요.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제가 찻집 꼭 성공해서 이 은혜 반드시 갚을게요.”

“그래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주택 대금은 우선 내가 지불하고 카밀라가 매달 이자와 함께 원금을 조금씩 갚기로 했다.

사실 내가 사주겠다고 계속 설득했지만 카밀라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해서 할 수 없이 한발 물러선 것이었다.

“카밀라, 집도 구했으니 이제 시장 조사하러 가지 않을래요?”

“시장 조사요?”

“조만간 찻집 개업할 거잖아요. 그럼, 주변 상권을 조사해 봐야죠. 겸사겸사 목도 축이고.”

카밀라의 팔짱을 끼며 이끌자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어떤 상점들이 있는지 살펴봐야 하기에 마차를 둔 채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우리는 우선 가까운 골목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음, 여기는 특색 있는 가게는 많지만 유동 인구가 많지 않네요.”

“찻집 분위기와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요.”

카밀라도 난감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골목은 구석진 곳은 아니었지만 주변에 주점이 많아서 찻집을 열기엔 적당하지 않았다.

“저기 큰 길로 나가볼까요?”

“네.”

골목 끝까지 들어왔던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 큰 길로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낯선 인기척이 느껴져 카밀라를 보호하듯 가까이 끌어당겼다.

“내게서 절대 떨어지지 말아요.”

카밀라의 귓가에 속삭이자 그녀가 의아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던 카밀라가 다급한 내 눈짓에 입을 다물고 긴장했다.

낯선 인기척들은 점점 거리를 좁혀왔다.

‘누구를 노리는 걸까. 나일까 아니면 카밀라?’

대상이 누구든 절대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속으로 저들을 비웃으며 날카롭게 기감을 세웠다.

겉으로 보기엔 우리를 호위하는 기사가 2명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많았다.

황태자의 비밀 호위들과 필립 경이 은신한 채 따라오고 있으니까.

‘이시어스라면 이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 거야.’

황제가 사건을 덮어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일을 벌이면 그의 눈 밖에 나게 될 테니.

그럼, 누굴까.

언뜻 떠오르는 인물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 순간 복면인들이 나타나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너희들은 누구냐!”

슐레만 경과 네이선 경이 검을 꺼내며 우리를 보호했다.

“저 여자만 넘겨주면 너희는 살려주지.”

복면인 중 하나가 카밀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순간 카밀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가까이 붙어 있는 탓에 그녀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힐끗 나를 쳐다보는 슐레만 경에게 눈짓하자 내 뜻을 알아들은 그가 검을 들어올렸다.

“거절하지.”

“어리석긴.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복면인이 비웃음을 흘리며 동료들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그러자 그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 숨어 있던 황태자의 비밀 호위들이 나타나 복면인들을 가로막았다.

복면인들은 다섯 명.

백작가 기사들과 황태자의 호위들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수였다.

“우리도 이 정도는 대비하고 왔지.”

황태자의 호위들을 본 복면인이 피식 웃으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뒤쪽에서 또 다른 복면인들이 나타났다.

그 외에도 건물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이들이 있었다.

‘황태자가 호위를 붙여두었다는 걸 알고 있었군.’

나름 머리를 썼네.

“죽여.”

우두머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복면인들이 달려들었다.

챙, 챙강.

사방에서 날붙이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로웨나.”

카밀라가 겁에 질린 얼굴로 내게 매달렸다.

“괜찮아요. 금방 끝날 거예요.”

카밀라를 다독이며 건물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는 자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필립 경은 데이먼이 나타나거나 내가 위험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황태자가 보낸 비밀 호위들의 실력이 출중하니 내가 나설 일은 없겠지.

돌발 상황만 생기지 않는다면 말이다.

바로 지금처럼.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표창이나 독침 같은 암기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아가씨!”

“공녀님!”

슐레만 경과 비밀 호위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젠장, 나서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바로 해머를 소환해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암기들을 쳐냈다.

후두둑.

바닥에 떨어지는 암기와 함께 당황 어린 시선들이 내게 꽂혔다.

그 중에서도 카밀라의 눈이 가장 크게 벌어졌다.

암기를 던진 자들도 당황한 것인지 주춤하는 것이 느껴졌다.

‘드루이드의 과녁.’

그 틈을 타 스킬을 발동시켰다.

시야에 나타난 과녁판을 따라 가장 가까이에 숨어 있는 암살자를 향해 해머를 날렸다.

“윽.”

빠르게 날아간 해머에 정확히 맞은 암살자가 신음을 흘리며 쓰러졌다.

그 뒤로는 해머가 돌아오는 족족 숨어 있는 자들을 향해 다시 날렸다.

“저 계집부터 처리해!”

복면인의 우두머리가 나를 가리키며 소리치자 그를 상대하고 있던 슐레만 경이 내게 오려고 방향을 틀었다.

“그놈부터 처리해요! 여긴 알아서 할게요.”

혹여 나를 신경 쓰다가 슐레만 경이 다치기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의 얼굴에 당황이 어리긴 했지만 이내 복면인과의 싸움에 집중했다.

그사이 카밀라를 겨냥한 화살이 날아왔다.

“다양하게도 준비했군.”

화살을 쳐내며 시위를 당긴 놈에게도 해머를 보내주었다.

“억.”

건물 위쪽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가 흡족했다.

“……로웨나?”

카밀라의 여린 음성에 고개를 돌리자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는 동공이 보였다.

“아, 조심.”

나는 카밀라의 뒤로 달려드는 복면인을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그녀를 내게로 당겼다.

그리고 해머를 크게 휘둘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