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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는 해머로 세상을 구한다 (63)화 (63/140)

63화

곧이어 황제와 황후가 입장하고 본격적으로 수확제가 시작되었다.

황제의 인사말이 끝나고 황태자와 카밀라가 첫 춤을 선보였다.

카밀라가 빙글 몸을 돌리자 치맛자락이 만개한 꽃송이처럼 펼쳐졌다.

더불어 다양한 각도에서 빛을 받은 카라나이트 목걸이가 다채롭게 빛났다.

사람들은 카밀라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했고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이 정도면 충분해.’

아니나 다를까 황태자와 카밀라의 춤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이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카밀라는 자랑스럽게 목걸이를 내보이며 카라나이트 홍보에 열을 올렸다.

“우리도 춤출까?”

“아, 그래.”

애런이 내민 손을 잡으며 홀 중안으로 나아갔다.

“로벨라의 이름이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겠어.”

“그렇지? 내일이면 아마 카라나이트에 대한 소문이 쫙 퍼질 거야.”

지난 2주 동안 한산했던 보석점에 이제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정말 대단하다, 로나.”

“내가 쫌 대단하긴 하지.”

애런의 리드에 따라가며 어깨를 으쓱거리자 그가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 보니까 백작님께서 무척 기분이 좋으신 것 같더라. 아마 네가 사업을 시작해서가 아닐까.”

“그런 것 같아. 요즘 매일 도와줄 건 없는지 물어보시거든.”

식사 때마다 보석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때마다 아버지께서 즐거워하시는 게 눈에 보였다.

“사실 네가 부담 느낄까봐 말씀하지 않으셔서 그렇지. 백작님께서는 네가 사업에 흥미를 가지기를 바라고 계셨었어.”

그건 잘 알고 있었다. 기대가 없었다면 매튜도 보내주시지 않았겠지.

“벨라를 만나게 된 게 행운이지. 덕분에 사업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거든.”

“최근에 안 좋은 일들이 생겨서 걱정했었는데. 다행이야. 네가 즐거워 보여서.”

애런이 나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즐거워 보인다라.

지난 회차보다 높은 난이도, 희망을 걸 수 있는 공략 캐릭터는 대공 한 명뿐인 상황에서 즐거울 리가.

그러나 들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이전 회차에서 해보지 못한 사업을 시작해서 그런 건가?

아니면 그동안 사업에 쏟아 부은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해서인지도 모른다.

그 결실이 너무나 탐스러워 마음이 설레는 건 사실이니까.

“새로운 일이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된 것 같아.”

덕분에 카밀라도 가까이 둘 수 있게 되었으니 여러 모로 성공적이었다.

왠지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스텝을 밟는 발걸음이 경쾌해졌다.

그걸 알아차린 애런이 흐뭇하게 웃었다.

이윽고 춤을 마치고 중앙에서 물러나자 애런의 친우들이 다가왔다.

“애런, 나 저기 테라스에서 좀 쉬고 있을게.”

“같이 가.”

애런이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괜찮아. 잠시 쉬고 나올 테니까 친우들하고 이야기 나누고 있어.”

끝까지 나를 따라오겠다는 애런의 등을 떠밀어 친우들에게 보내고는 테라스로 들어갔다.

테라스의 커튼을 내려 사람이 있음을 표시해 놓고 긴 의자에 반쯤 누워 다리를 쭉 뻗었다.

“후우.”

카라나이트 홍보 계획이 실패할 리 없을 거라 자신하고 있었지만 내심 긴장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어깨가 뻐근한 걸 보면.

나는 손으로 어깨를 주무르며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었다.

띠링!

『명성이 +3 되었습니다.』

‘오호, 드디어 시작인가.’

나는 의자에 기대었던 몸을 일으키며 시스템 창을 바라보았다.

『명성이 +5 되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또다시 알림 메시지가 떴다.

이전보다 커진 상승폭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카밀라가 내 이야기도 한 모양이네.’

아마도 카라나이트에 대해 홍보하면서 자연스럽게 로벨라의 소유주 중 한 명이 나라는 것도 알린 모양이었다.

로벨라의 지분은 나와 벨라 그리고 카밀라가 나눠가지고 있지만 그 중 내 지분이 가장 많았다.

카라나이트 광산은 물론 보석점에 가장 많이 투자한 데다 아이작도 나와 계약이 되어 있으니까.

나는 명성이 올라가는 알림 소리를 즐겁게 감상하며 느긋하게 와인을 마셨다.

‘카라나이트가 유명해지면 덩달아 우리 로벨라의 다이아몬드도 알려지겠지.’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본다면 귀족들이 열광하게 될 것이다.

‘청혼과 연결 지어 마케팅을 하면 대박일 텐데.’

카밀라에게 청혼할 때 우리 반지를 쓰라고 황태자에게 압력을 넣어 볼까?

여유롭게 앞으로의 판매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전과는 다른 메시지가 떴다.

띠링!

히든 퀘스트> ‘숨겨진 궁을 찾아라!’

황궁에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사악한 기운이 황궁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궁 주변에 감춰진 오염의 매개체를 찾아 제거하십시오.

목표 : 오염의 매개체 (0/12)

보상 : 정화석 6개, 레벨 +10』

“이건 또 뭐야.”

나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히든 퀘스트? 원작 게임에도 없던 퀘스트가 왜 갑자기 등장한 거지? 더구나 황궁에서.

‘히든 퀘스트’라는 명칭도 명칭이지만 퀘스트 내용 또한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숨겨진 궁을 찾으라고? 마수를 잡는 게 아니고?

아니,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궁을 내가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안 해. 이건 뭐, 맨 땅에 헤딩 정도가 아니라 그냥 머리가 깨지라는 소리잖아.”

투덜대며 의자에 몸을 기대자 시스템 알림음이 다시 울렸다.

『플레이어를 위한 어드바이저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오라, 네가 지금 급하구나. 그렇지?

평소 같으면 아무리 욕을 퍼부어도 꿈쩍도 않던 시스템이 재깍 반응을 하고 말이야.

도대체 그 궁에 무엇이 있길래 저러는 거지?

숨겨진 궁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 일었다.

퀘스트 완수를 위한 Tip.

1. 악취가 나는 곳.

2. 정십이면체 형태의 검은 돌.

3. 목숨이 소중하다면 새로운 스킬을 사용할 것.』

나는 조언이랍시고 전해준 시스템 메시지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악취? 내가 개도 아니고 악취만으로 어떻게 궁을 찾아?

그리고 정십이면체는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거야?

가장 어이가 없는 건 세 번째 조언이었다.

목숨이 소중하다면?

누구 약 올리니?

나는 씩씩대며 시스템창을 노려보았다.

퀘스트 미이행시 페널티.

명성 스탯 –200 하락』

‘야, 이 빌어먹을 시스템 놈아!’

나는 가까스로 이성을 발휘하여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다.

내가 명성을 올리기 위해 지금까지 무슨 고생을 했는데.

이제 겨우 플러스를 바라보고 있는데 –200이라니.

분명 나를 엿 먹이려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뒤늦게 페널티를 제시할 리가 없지.

당장 시스템의 멱살을 쥐고 짤짤 흔들어 주고 싶지만 아무리 시스템창을 휘저어도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식히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했다.

“후우.”

그래, 간다. 가.

시스템에 목숨줄이 잡힌 슈퍼 을인 내게 다른 대안이 있을 리가.

나는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며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새로운 스킬이라.’

스킬창을 열자 ‘천공의 방패’와 함께 ‘은의 망토’ 스킬이 보였다.

『액티브 스킬 : 은의 망토

스킬을 사용하면 주변의 배경에 동화되어 몸을 숨길 수 있습니다. 소리도 차단됩니다.

지속 시간 : 45분

쿨타임 : 5시간』

‘은의 망토’는 지난번 모울링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스킬 선택권을 이용해 뽑은 스킬이었다.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박스가 여러 개 주어진 상태에서 하나를 고르는 방식이었는데 나름 득템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흠, 지속 시간이 45분이면 궁을 발견하고 나서부터 사용하는 게 낫겠네.’

‘은의 망토’를 사용하라고 조언한 걸 보면 그곳이 황가의 비밀 장소라도 되는 건가?

지난 회차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숨겨진 궁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자주 황궁을 드나들었는데도 말이다.

설마 그곳이…….

악취와 숨겨진 공간, 사악한 기운.

갑자기 매캐한 기름 냄새와 썩은 내가 코를 찌르는 것만 같았다.

손끝이 차가워지며 몸이 경직되었다.

‘……아니야. 그곳이 아닐 거야.’

나는 머리를 흔들며 필사적으로 불쾌한 기억을 떨쳐 버리려 애썼다.

‘그곳이 황궁이었다면 애런이 그리 쉽게 출입할 수 없었겠지.’

그래, 아닐 거야.

애써 부인하고 또 부인하자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손끝에 차츰 온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후우.”

손을 가볍게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하며 굳어진 몸을 풀었다.

‘좋아, 할 수 있어. 가자.’

크게 숨을 들이켠 뒤 걸음을 옮겼다.

테라스 밖을 내다보니 지나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난간을 집고 가볍게 뛰어넘어 테라스를 벗어났다.

1층에 있는 테라스였기 때문에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오늘 심플하게 입기를 잘 했네.’

안 그랬으면 주렁주렁 달린 장식들 때문에 번거로울 뻔 했다.

탁탁.

드레스 자락을 펴며 산책하는 것처럼 느긋하게 걷기 시작했다.

‘어디부터 살펴봐야 하지?’

정원에 숨겨져 있을까? 아니면 내궁에?

사람들 눈을 피해 숨기고 싶은 곳이라면 황제와 황태자가 머물고 있는 내궁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곳은 사람들 출입이 제한되니까.

내궁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 사람들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곳이어야 하겠지.

그렇다면 황태자궁보다 더 북쪽으로 들어가 봐야 했다.

나는 여유롭게 산책을 하는 척하며 다이아몬드 홀이 있는 베이렌 궁을 벗어났다.

수확제가 무르익을 시간이라 그런지 밤하늘에는 벌써 별이 총총 빛나고 있었다.

외궁과 내궁 사이에 있는 미로 정원에 다다르자 미로 주변에 빽빽하게 자리 잡은 나무들 사이로 밀회를 즐기는 이들이 보였다.

그들을 모른 체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여기서부터가 문제인데.’

내궁 출입구는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바로 들어갈 수가 없다.

2회차 때에는 황태자가 준 통행증으로 언제 어느 때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경비병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스킬을 써야겠네.’

스킬 창을 열어 ‘은의 망토’를 클릭했다.

『액티브 스킬 ‘은의 망토’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예’를 누르자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 00 : 44 : 56 』

‘이거 작동하는 맞아?’

영 미심쩍어서 팔을 흔들어 보았는데 내 팔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뒤에 있는 굵다란 나무줄기만 보였다.

‘헉!’

진짜 작동 되네.

팔을 마구 흔들어 대는 데도 환영에는 어떤 흔들림도,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우와, 진짜 신기해.’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점점 줄어드는 시간을 보며 발을 재개 놀렸다.

경비병들 사이로 지나갈 때는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후우.’

다행히 경비병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모양인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콩닥콩닥 뛰어대는 심장을 달래며 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종국에는 달리기 시작했다.

황태자궁을 지나고 황제가 거하는 태양궁과 황후의 로즈궁까지 지나자 경비병들도, 순찰을 도는 이들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별궁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는 한숨 돌렸다.

스킬 사용 시간이 벌써 10분 정도 지난 상태였다.

‘후우, 체력을 단련하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 했네.’

괜히 레벨 43이 아니란 말이지.

뿌듯한 마음에 호흡을 정돈하고 있는데 공기 중에 희미하게 썩은 내가 섞여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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