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나는 마차에서 내려 철문 앞에 섰다.
‘정말로 내게만 보인다면 출입도 제한되어 있을지 몰라.’
추측을 확인해보기 위해 마부를 불러 철문 앞에 세웠다.
“여기 손을 대고 밀어봐.”
그는 의아해하면서도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이렇게 하면 될까요?”
“좀 더 세게 밀어봐. 있는 힘껏.”
“이렇게요?”
마부가 낑낑대며 문을 밀었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와 봐. 내가 해볼게.”
“아가씨께서 하신다고 이 돌벽이 무너지진 않을 것 같은데요.”
마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했지만 선을 넘지 않으려 조심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마부가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철문의 문고리를 잡고 힘껏 밀었다.
마부가 밀었을 때와는 달리 손쉽게 문이 열렸다.
‘역시 나만 들어갈 수 있나보네.’
대공저가 내게만 보인다면 그곳으로 들어가는 내 모습 또한 이상하게 보일 터.
마부를 멀리 떨어뜨려 놓을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산책할 거니까 숲 입구에서 기다려줘.”
“여기서 산책을요? 절대 안 됩니다. 아가씨 혼자는 위험합니다.”
“걱정하지 마.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잖아.”
“저주받은 숲이잖습니까? 사람들이 안 오는 덴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페니아 영애와 내기를 했단 말이야. 에일숲에서 혼자 산책할 수 있는지. 이번엔 꼭 이기고 싶어.”
페니아 영애란 말에 마부가 한숨을 내쉬었다.
초기 설정값으로 인해 로웨나 케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제국 제일 부자인 케인 백작의 금지옥엽이자 제국 최고의 미인.
여기까지만 보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배경이지만 시스템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주지 않았다.
혀를 내두를 정도의 멍청함과 오만함으로 유명했으니까.
그러다 보니 로웨나 주위엔 그녀를 골탕 먹이며 우월감을 느끼려는 이들이 많았다.
페니아 영애도 그중 하나였다.
“그럼, 저는 저기 나무 옆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마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는 데다 안개로 인해 사물의 분간이 쉽지 않았다.
“알겠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소리를 지르십시오.”
“그래, 알았어.”
줄어드는 시간에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마부는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지 한참 망설이다가 마차를 몰고 갔다.
그의 모습이 마차에 가려지자마자 얼른 철문을 통과해 대공저로 들어갔다.
“여보세요! 아무도 없나요?”
안개가 자욱한 공간에 내 목소리만이 메아리처럼 퍼져 나가자 덜컥 두려움이 밀려왔다.
퀘스트 때문에 정신없이 달려오긴 했지만 으스스한 분위기에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퀘스트를 실패하면 난 끝이야.’
마음을 다잡으며 정문과 대공저와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대공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모르니 최대한 시간을 아껴야 했다.
그리하여 야심차게 달리기를 시작했건만.
“헉, 헉.”
내 몸이 나를 배신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두 다리는 쇳덩이라도 매단 것 같았다.
갓 태어난 새끼 사슴처럼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끌어 1층 로비에 겨우 도착했다.
“여보, 헉, 세요. 헉, 아무도, 없어요?”
대공저 내부는 개미 한 마리도 지나가지 않을 정도로 적막했다.
한숨이 치밀어 올랐지만 밭은 숨을 내뱉는 게 고작이었다.
“젠장, 도대체, 헉, 여기는 뭐하는, 곳인 거야?”
대공저가 맞기는 한 거야?
『버몬트 대공저에 입장하였습니다.
버몬트 대공을 찾으십시오.』
마치 내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듯 메시지가 날아왔다.
“하, 이젠 하다 하다 숨바꼭질까지.”
너무 기가 막혀서 화도 나지 않았다.
일단 시간이 없으니 호흡을 가다듬으며 대공이 어디에 있을지부터 생각했다.
‘리라이트 고인물로서 확신하는데 1층은 아니야. 가주의 침실을 1층에 두는 경우는 없으니.’
그럼, 2층부터.
중앙계단을 통해 2층에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방마다 모두 다 열어봤다.
“아무도 안 계세요? 누구라도 제발 대답 좀 해주세요.”
방은 또 왜 이리 많은지 구토가 나올 정도였다.
결국 30분도 채 남지 않았을 때 3층에 있는 커다란 침실에서 대공을 찾았다.
그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새하얀 이불을 덮은 채 잠들어 있었다.
“헉, 헉. 저기요. 이보세요.”
한시라도 빨리 대공을 깨우기 위해 목청껏 불러봤지만 희고 창백한 얼굴은 미동도 없었다.
주변에 물건이라도 있으면 깨뜨려 소리라도 내 볼 텐데 넓은 방 안엔 침대만 덜렁 놓여 있었다.
에잇, 나도 모르겠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대공의 어깨를 흔들었다.
“이봐요, 제발 좀 일어나요. 당신이 일어나야 내가 산다고!”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깨어나지 않았다.
『제한 시간이 10분 남았습니다.』
메시지 창이 붉게 물들었다.
에라, 이판사판이다.
“잠시 실례할게요.”
짝.
대공의 뺨을 냅다 후려쳤다. 그래도 깨어나지 않길래 다른 쪽 뺨도 때렸다.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한데 피부결은 어찌나 곱고 탄력이 있는지 아주 손에 착착 감겼다.
“헉!”
뭔가에 홀린 듯 스윙을 날리다가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을 보고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큰일 났다.’
깨어난 대공이 부어오른 제 얼굴을 보고 화를 낼 게 분명했다.
‘폭행죄로 처벌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그러나 내겐 몇 분 뒤의 미래를 걱정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제한 시간이 5분 남았습니다.』
메시지창이 불길하게 깜빡거렸다.
안 돼!
“저기요, 제발 좀 일어나세요.”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란 생각에 대공의 멱살을 붙잡고 흔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사이 제한 시간은 3분을 향해 줄어들고 있었다.
“생각을 하자, 생각을. 잠에서 깨우는 방법이 뭐가 있더라.”
안개에 휩싸인 거대한 저택에 홀로 잠들어 있는 대공.
저주에 걸린 것 마냥 어떤 방법을 써도 깨어나지 않는 미남.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이야기인데. 에이, 설마.
그러나 내겐 더 이상 이것저것 따질 시간이 없었다.
『남은 시간 00: 00: 59』
‘젠장. 내 첫 키스를 이런 식으로 하게 될 줄이야.’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눈을 질끈 감고 돌진했다.
부드럽고 탄력 있는 감촉에 설렐 틈도 없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느낌에 살짝 몸이 떨려왔다.
그리고.
바로 시야가 뒤집혔다.
대공이 살벌한 기색으로 내 목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넌 누구냐!”
당장이라도 죽일 듯 노려보는 황금빛 눈동자에 작살에 꿰인 물고기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누구냐고 물었다.”
놓아줘야 말을 하지. 이러면 어떻게 대답을 해?
살려 달라 버둥거렸지만 그는 더 강하게 목을 누를 뿐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띠링!
『경고!
플레이어의 생명이 위험합니다.
HP: 80/100』
체력을 보여주는 HP(hit point 또는 health point)가 100에서 80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대공이 나를 누르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HP는 80에서 50으로 또 30으로 계속 줄어들었다.
게임중엔 HP가 0이 되면 퀘스트 실패로 간주되어 모험 필드에서 방출되었다.
그러나 이건 모험 퀘스트가 아니었고 HP는 생명력을 뜻하기도 하니 게임오버가 될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있다간 죽을지도 몰라.’
숨이 막혀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 다시금 메시지가 떴다.
『플레이어를 보호하기 위한 어드바이저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아직 확인하지 않은 퀘스트 보상이 있습니다.
‘숲속의 대공을 깨워라!’ 퀘스트 보상으로 신의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신의 선물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신의 선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황을 벗어나게 해주는 거라면 일단 사용하고 봐야 했다.
하지만 점점 멀어지는 정신에 수락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플레이어를 보호하기 위한 자동 실행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신의 선물 ‘아다마스 해머’가 장착되었습니다.』
순간 손에 차가운 금속의 감촉과 함께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할 겨를도 없이 팔이 멋대로 움직였다.
쿵!
“윽.”
대공의 신음과 함께 막혔던 숨이 확 트였다.
콜록, 콜록.
갑자기 트인 숨으로 인해 거세게 마른기침이 터져 나왔다.
신물이 올라올 정도로 멈추질 않던 기침이 차츰 가라앉자 흐릿했던 시야도 조금씩 밝아졌다.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내 손에 들려 있는 해머였다.
망치머리를 대신해 네모난 모양의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달려 있는 해머는 고대 유물처럼 보였다.
짧은 자루에는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머리가 쇠가 아닌 두툼한 다이아몬드라는 점만 빼면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그 망치’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이런 무기는 ‘리라이트’를 플레이하면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검이었으니까.
“너, 무슨 짓을 한 거지?”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싸늘한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커다란 불꽃이 형상화한 것처럼 분노로 활활 타오르는 대공이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해머를 들어 올리며 뒷걸음질 쳤다.
힐끗 그의 뒤를 보니 멀쩡하던 침실 벽에 금이 가 있었다.
그에 반해 대공은 너무나도 멀쩡해 보였다.
‘뭐야? 이 사람, 해머에 맞은 거 맞아?’
의아한 마음에 대공과 침실 벽을 번갈아 보고 있는데 그가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내게 손대지 마세요.”
가까이 다가오려던 대공이 해머를 보고는 멈칫했다.
살벌하게 타오르던 금빛 눈동자가 순간 커다래졌다.
“너, 이거…….”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온 그가 당장이라도 해머를 낚아챌 것처럼 팔을 뻗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당신을 해치고 싶지 않아요.”
해머를 작게 휘두르자 붕하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내게로 향하던 손이 우뚝 멈췄다.
나와 해머를 번갈아 바라보던 대공이 감정을 가라앉히려는 듯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해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엉덩이를 움직여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내 침대 헤드에 막히고 말았다.
“우, 우리 일단 대화로 오해를 풀어 봐요.”
당장이라도 대공이 공격해 올까 봐 얼른 휴전을 제안했다.
“오해?
“네, 오해요.”
“내 집에 함부로 들어와 나를 죽이려고 한 주제에 오해?”
“억울해요!”
황당한 누명에 크게 소리치자 대공의 매끈한 이마가 단박에 구겨졌다.
“전 당신을 깨우려고 했을 뿐이에요. 죽이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요.”
“방금 전 내게 이 해머를 사용한 것도 오해인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미 죽었어.”
내가 휘두른 해머 때문에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손이 떨려왔다.
‘아, 아니야. 시스템은 나를 보호하려고 했을 뿐이야. 플레이어를 살인자로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아.’
리라이트는 전체 연령 등급의 게임이란 말이야.
두려움을 떨쳐내고자 온갖 이유들을 가져다 대며 합리화하려 애썼다.
“저를 죽이려고 한 건 당신이잖아요. 이걸 휘두르지 않았다면 전 이미 숨이 끊어졌을 거예요.”
정당방위였음을 강조하자 그도 반박할 말이 없는지 붉은 입술이 일자로 꾹 다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