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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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는 기회다.

이제 정산할 차례인가.

현준이는 사원들에게 피자 한 판씩.

정주임은 자동차

그리고 나는 명품 구두였다.

최부장은 진땀만 뺐다.

막상 1등에 당첨되고 나니, 나갈 돈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도일 빌딩에서 근무 사원 약 1,500명.

피자 한 판에 최저 이만 오천 원만 잡아도 계산하면 총 삼천칠백만 원이었다.

최부장은 현재 1등 당첨금을 받기 위해 은행 본점으로 향한 상태였다.

"X나타 정도면 괜찮겠죠? 중고로 천칠백만 원 정도면 사던데요."

"정말 받게?"

"그럼요?"

혹시나 해서 물었더니 정주임은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따졌다.

약속은 약속이란다.

최부장이 사원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가 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절대 입으로 꺼내지 말라는 것.

특히 원청과의 계약시, 구두 계약만큼 조잡한 것 없으니 절대 구두계약은 금지라고 했다.

그런데 최부장은 스스로 떠들었다.

구두 계약 약속을.

피자와 자동차, 그리고 내 명품구두 까지 합하면 오천 오백정도 되려나.

현준이만 울상이었다.

겨우 피자 한 판.

크크.

그러게, 먹을 것만 탐내다 그런 거야.

* * *

최부장의 로또 1등 소식은 조순형 기자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는 피자 한 판을 얻어먹으려는 심상으로 우리 회사로 들렀다.

중성일보 본사와 우리 회사는 차로 10분 거리였다.

로또 1등의 주인공 최부장은 휴먼매니저에 복귀한 뒤 강남 인근의 피자집에 모조리 전화하여 도일빌딩으로 주문했다.

그런데도 모자랐다.

1,500판의 피자를 주문하기 위해서는 강남역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여러 다른 동네의 피자집에도 전화하여 물량 공세를 펼쳤다.

배달 봉고차가 끝도 없이 밀려 들어왔다. 한 봉고차에 피자 백판을 실어 왔는데, 사원들이 달라붙어 입구에서 옮기기 시작했다.

조순형 기자는 이런 광경은 살면서 처음이라며 연신 셔터를 눌려댔다.

그리고 최부장과의 짧은 인터뷰가 진행됐다.

"소감 한 말 씀 부탁드립니다."

"아시다시피 휴먼매니저가…크흠"

"물 한잔 드시고 하시죠."

최부장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물 한 잔을 마신 뒤 다시 말을 이어갔다.

"휴먼매니저가 평소 좋은 일을 했기 때문에 이런 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일이라면…?"

"뭐, 이것저것 복지 사업도 하고…근로자들 무료 상담도 해주고 뭐 그런 것들이죠."

"로또 당첨금으로 뭐 하실 생각이세요?"

"부모님 집 리모델링해 드리고, 남은 빚도 마저 갚고, 노후 준비하려고 합니다."

로또는 소득세를 거두지 않았기 때문에 20억의 당첨금을 온전히 받아낼 수 있었다.

"직장은 계속 다니실 생각이신가요?"

"어떻게 그만둡니까? 제 눈에 흙이 들어가면 이곳에 제 비석을 세울까 합니다. 뼈를 묻고 일할 겁니다."

비석과 뼈.

최부장은 정말 그럴 것 같았다.

인터뷰는 인터넷 기사로 바로 올라왔다.

[휴먼매니저 1,500인분의 피자, 로또 1등 당첨자의 플렉스]

ㄴ ㅋㅋㅋㅋ 일반인 로또 걸린 기사가 왜 올라오는 거임?

ㄴ 로또 1등 존나 부럽다. 그런데 동네방네 소문내도 되는 건가?

ㄴ 조순형 기자만 휴먼매니저 기사 쓸수 있음. 사내 기자 수준.

크크,

전 국민이 최부장의 로또 당첨 소식을 알게 됐다.

최부장이 로또 당첨자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개인 전화와 휴먼매니저 유선 전화로 전화가 빗발쳤다.

한 푼 좀 달라는 사람부터, 사이비 종교의 협박까지도 있었다.

여느 투자회사는 좋은 투자처가 있다며 최부장을 꼬드겼다.

영세 복지 회관에서도 전화가 왔고 도움을 달라고 말했다.

어디서 최부장의 번호를 알아냈는지 참 다양 각색한 사람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솔직히 걱정도 좀 됐다.

특히 투자 회사.

좋은 대박 아이템이 있다며 약 500%의 수익률을 보장한다며 꼬드겼다.

혹할 수 있다.

꽤 유명한 투자회사였기 때문이다.

최부장이 혹시라도 투자 회사에 돈을 건넬까 싶었는데, 최부장은 딱 한 마디 했다.

"그렇게 수익률 좋은 대박아이템이면 당신네들이 대출받고 투자하세요."

그러더니 정말 좋은 투자 아이템이라면 이미 본인 귀에 들어오기 전에 다 팔렸을 것이라고 했다.

하여튼 뚝심이 있는 양반이다.

최부장은 걱정할 필요 없겠다.

문제는 오과장이었다.

사무실 한편에 조용히 앉아 피자 한 판을 뜯어 먹고 있는 모습이 매우 초라해 보였는데,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부르고 있을까 싶었다.

그의 표정에 옅은 미소가 담겼다.

겉으로는 좀 심각한 표정이지만, 속으로는 웃고만 있었겠지.

본인 계좌에 20억이 들어있을 테니 말이다.

오과장은 최부장에게 걸려 오는 전화부터 시작해 지나친 주위 관심을 구경하며, 나서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나 보다.

그저 묵묵히 상황을 관망할 뿐이었다.

그때 현준이가 피자 한 조각을 물며 오과장에게 다가갔다.

"과장님?"

"응?"

"최부장님 로또 1등 되셨는데, 표정이 영…어둡네요. 로또 확인해 보셨어요?"

일순간 오과장의 동공이 흔들렸다.

거짓말을 해야 하는데 오과장의 성격상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 어 했지."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오과장이 당황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고개를 저었다.

현준이에게 얘기하는 순간 전 국민이 다 알게 될 거다.

"당첨 안 됐어. 꼴등이야. 너는?"

"저도 꽝이죠. 근데 최부장님 진짜 대박입니다. 어떻게 1등을…흐흐."

"그러니까 말이다. 성실하게 살면 1등이 되나 보다. 너도 노력하면서 살아."

"으…꼬온대 냄새"

정주임이 오과장에게 말했다.

코를 막으며 손사래를 저었다.

오과장이 기분 나쁠 법도 한데,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정주임? 최부장님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냐? 자동차? 좀 심한데?"

"최부장님이 먼저 약속 하셨는데요? 그리고 1등될 줄 알았나요. 저도 모르고 한 소리인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걸 진짜 받으려는 너도 참 대단하다 대단해. 안 그래요 대표님?"

"어…?"

정주임이 나를 쏘아보듯 바라봤다.

정주임에게 자동차가 생기면 좋겠지만…

"그래, 정주임 차는 좀 심했다."

"대표님 구두는요? 그것도 백만 원 넘지 않을까요?"

"말만 해본거지 뭐. 내가 최부장님에게 그걸 받겠냐?"

"들었지 정주임? 대표님도 안 받으신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자동차는 네가 노력해서 꼬박꼬박 적금 모아서 사라."

"또 노력 타령. 우윀."

오과장은 정주임의 놀림에도 개의치 않았다.

여유가 생겼다 이건가. 그의 행동에 대단한 여유가 묻어나 있었다.

오과장이 말했다.

"현준아. 내가 부탁했던 동향 보고서 제출해야지?"

"피자 한 판 좀 먹고 하면 안 될까요?"

"지금 업무 시간이잖아. 그리고 현준아, 너는 이제부터 일 할 때 떠들지 않았으면 싶은데…"

"네?"

"최부장님이 1등 된 건 된 거고, 지금 근무시간에 한 참 떠돌아다니면서 뭐하는 짓이야? 회사가 놀이터니?"

"…"

"죄송합니다."

"일하자. 다들 앉아."

"네."

오과장의 일갈에 정주임과 현준이가 입을 꾹 닫을 뿐이었다.

* * *

오과장에게 고마웠다.

로또 1등 사실을 내게 알려준 것만으로도 나를 신뢰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오과장과 함께 옥상으로 올라왔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대표님에게 먼저 전화 드리려고 했는데, 경황이 없었습니다."

"괜찮아. 오과장. 이해해. 로또 1등 20억이 적은 금액이냐? 나 같아도 멘탈 나갔을 거야."

"멘탈 뿐이겠습니까. 온 몸에 지진이라도 나듯이 떨리더라고요. 사실 아직까지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주말 내내 멍하니 있다가 오늘 아침에서야 아내에게 얘기했습니다."

"그래도 퇴사 안하고 계속 다닐 생각인가 보네?"

"네?"

"그렇잖아 1등 되면 다들 퇴사하던데…"

"…"

오과장이 말이 없었다.

퇴사 생각을 하는 건가?

"뭐야?"

"퇴사라뇨 대표님. 제가 감히 어떻게 퇴사를 생각하겠습니까. 전부 대표님 덕분인데요."

"솔직히 고민은 좀 했지?"

"…정말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얘기해 봐."

"1등 당첨된 걸 확인한 순간 정말 머리가 멍하더라고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솔직한 마음으론 잠수 탈까도 했거든요. 짧은 찰나예요."

"…"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회사를 관둔다는 생각은 해본적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아내하고 많이 상의했습니다. 모른 척하지 말고 대표님에게 얘기하자고요."

"…"

"당첨금 절반은 대표님에게 드려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절반을 나한테?"

"네. 받아주셔야 합니다. 저도, 아내도 대표님에게 받은 게 있는데요."

그의 말을 한참 곱씹었다.

받은 게 있다니…

내가 해준 건 월급 준 것 말고는 없다.

마땅히 오과장이 받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 오과장의 입에서 뜻밖의 얘기가 나왔다.

"예전에 대표님이 저희 아내 우울증 걸렸을 때 정신 병원에서 면담 하셨잖아요? 그때 했던 말씀 기억하시나요?"

"내가 뭐라고 했지?"

"언젠가 저희 집이 로또에 당첨되게 해주겠다고…아내는 그걸 믿었대요. 우스갯소리로 말한 것 같았는데, 대표님 눈은 거짓말 같지가 않았대요."

"…내가 그런 말을 했구나."

"네. 아내가 정말 많이 고마워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표님."

"꼭 내가 당첨 되게 해준 것 같잖아. 순전히 네 운이고 복이야."

"…"

"오과장."

"네. 대표님."

"앞으로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거야."

"…"

"로또 1등에 당첨됐다고 해서 네 인생이 끝난 건 아니잖아?"

"맞습니다."

"20억, 한순간이야. 코인이나 주식에 넣어놨다가 폭락하면 한순간에 잃을 수 있는 돈이야. 그리고 절대 도박 같은 건 하지 말고."

"…네."

"그 돈으로 아파트나 사버려."

"…"

"그리고 네가 무슨 투자를 하든 내가 말리진 못하겠지만, 돈은 지키려 할수록 불어나는 법이야."

"알겠습니다."

"편의점 알바도 그만두고."

"네…"

오과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 울고 그러냐."

"…"

오과장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정장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그가 등을 돌렸다.

짙은 한숨을 쉬었는데 그 목소리마저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더니 애써 웃으며 뒤돌아 나를 바라봤다.

오과장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편의점 새벽알바 그 새끼 엿 한 번 맥이고 그만두겠습니다. 그 자식 땜빵 근무 때문에 잠도 못 잤거든요."

"그래."

* * *

아픈 손가락.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유달리 신경 쓰이고 그 아픔이 오래가는 손가락이 있다.

가족들 앞에서 떵떵거리며 성공하겠다고 외쳤지만, 실상은 개뿔 아무것도 없다.

누구나 가질만한 감정이겠지.

성공에 목마르고 효도하고 싶은 마음일거다.

이제 20대 중반인 현준이를 보며 느끼고, 정주임을 보면서도 안타까움이 생긴다.

그런데 더 사무치는 건 부모님도 그런 자식들 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출발선은 동등했는데 왜 나만 언덕이 있고 굽이진 비탈길이 많은 건가 싶다.

누군가 그 길은 순전히 본인이 만들어가는 거라며 듣기 좋은 소리를 해대지만, 길을 만드는 건 본인이 할 수가 없다.

길이 없는 길은 애초에 길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 닦아 놓은 길을 찾아갈 뿐이다.

그게 평범한 범인의 마음이다.

물론 나또한 과거에 그랬고.

그런데 난 지금 그 길 앞에 서 있었다.

누군가 닦아 놓지 않은 길 앞에서 서 한참을 서성이고 있었다.

내가 어디든 걸어가야만 했다.

누군가 내 뒤를 따라올 길을 만들어야 했다.

한 발을 내딛고 두 발이 됐을 때, 비로소 길이 된다.

누군가 내 흔적을 보며 편한 마음으로 걸으며 따라오겠지.

로또는 기회다.

단순히 1등 당첨금을 받아서 돈을 펑펑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실패도 두렵지 않게 된다.

무슨 일이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 받는다.

그래서 로또를 한다.

"대표님, 만원 어치만 사죠."

"그래."

정주임과 현준이를 데리고 편의점으로 왔다.

최부장의 로또 사건 이후로 그들은 매주 만원어치 로또를 사기로 했다.

"언젠가 되겠죠."

"그래, 꼭 될 거다. 그러니 무리하지 말고 한 주에 만원씩만 해."

내 가정은 내가 지키고 살게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고 다시 주말이 왔다. 최부장의 로또 1등 사건도 조금은 잠잠해졌다.

오과장은 여전히 로또 1등 당첨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최부장과 오과장의 로또 1등 당첨 이후로 몇 가지 변화했던 점이 있다면, 사내 직원들의 퇴사율이 줄었고 업무 효율도 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반대로 생각했었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퇴사율이 더 상승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 로또 1등? 게다가 같은 회사 상사가?

박탈감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나?

그런데 예상외의 결과였다.

어째서 그런 걸까.

생각해보건대 최부장의 태도 변화라고 봤다.

부하 직원들에 대한 포용력이 늘어났다고 봐야 할까?

과거에 비해 더 관대해졌고 미소가 많아지고 부하들에게 말하는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상사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부하들의 사내 생활 만족도가 더 상승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나도 놀랐다.

최부장의 저 인자한 미소, 그리고 여유로운 걸음걸이.

하긴, 예전부터 최부장은 뭐가 그렇게 바쁜지 항상 뛰어다녔다.

사무실 내에서도 현장에서도 말이다.

상사가 바쁘게 뛰어다닌다?

부하 직원들이 얼마나 숨이 갑갑했을까 싶다.

여기서 한 가지 깨달은 점은 회사의 업무 효율은 상사의 태도로부터 나온다는 것이었다.

부하 직원들을 탓할 게 아니다.

상사의 태도부터 바꿔야 했다.

이번 로또 1등 사건으로 그 믿음이 확고해졌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

휴먼매니저의 사원들이 매주 구매하는 로또 금액이 늘었다는 것.

심지어 로또를 하지 않는 사원들도 매주 한 번씩 로또를 구매한다고 했다.

본인도 1등이 될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고 했다.

어떤 회사원은 현실의 벽이 도무지 가망이 없어 삶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한주에 사는 로또 희망 회로로 간신히 버틴다고 했다.

하아…

그렇다면 앞으로 로또 이벤트는 매주 해야 할 것 같았다.

많은 사원들에게 너무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휴먼매니저에서 계속 1등이 나온다면 또 이상한 소문이 퍼질 게 분명했다.

1등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

이번 달은 2등 정도만 해줘야 할 것 같았다.

로또 1등 당첨자의 심리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당첨된 찰나의 순간.

벼락을 두 번 연속으로 맞을 확률을 뚫고 당첨된 그 짜릿한 순간은 결코 잊지 못한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어떤 다른 대체제로도 경험 불가능한 수준이다.

비슷한 기분이라고 꼽자면, 마치 롤러코스터 꼭대기에서 내리막에 꽂힐 때, 그 짜릿한 순간이라고 보면 될까.

찰나라면 그랬다.

순간적으로 뇌의 호르몬이 엄청나게 과다분비 되기 때문이다.

선민의식도 생긴다.

우쭐거리기도 하고,

그저 일확천금을 얻은 운 좋은 사람 수준으로 그치는 게 아닌, 본인은 세상으로부터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비단 로또뿐만 아니라 미국의 파워볼이나 메가밀리언같은 1조 단위의 당첨금을 받고도, 몇 해 가지 못해 파산하는 이유가 그러했다.

특별하다는 것.

본인이 무슨 일을 해도 다 잘 풀릴 거라는 신적인 믿음.

선택받은 인간이라는 착각,

이런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1등 당첨자는 무리하게 투자를 하거나, 지나치게 소비하여 돈을 탕진하게 만든다.

주식, 코인, 부동산, 사업, 예술, 등.

세상에 투자할 게 얼마나 많은가.

주위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평소 연락 없던 지인 또는 친구들에게 연락이 빗발친다.

대체로 목적이 다분하다.

유흥이 목적이거나 돈을 빌리는 경우 투자 권유 등의 목적이다.

로또 당첨자가 만약 거절을 쉽게 못 하는 성질이라면 절망적 비극이 시작될 때였다.

누군가의 권유로 재단에 투자하거나, 누군가의 권유로 주식에 투자하다 보니 서서히 투자 금액이 늘어난다.

본전은 둘째 치고 마이너스가 시작된다.

이성을 차리면 된다고?

로또 당첨으로 이미 잃은 이성은 서서히 더 잃어가게 된다.

본전은 찾자는 마음으로 투자에 더 열을 올린다.

비로소 파산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더 짧아지게 된다.

그리고 본인 주머니가 빈털터리가 됐을 때야 깨닫게 된다.

차라리 1등이 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며 후회도 한다.

파산을 하는 1등 당첨자들의 대체적인 과정이자 결말이다.

인간관계는 본인의 의지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정 반대 방향으로 흐를 때도 있고 간혹 뒤통수를 가격하는 경우도 생긴다.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게 사람 마음이라고 했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어렵다.

아니, 애초에 내 뜻대로 바라는 것 자체가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1조를 받든 10억을 받든 로또 당첨자가 어떻게 살아가느냐, 판도를 결정하는 것은 대체적으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파산을 겪은 당첨자들은 인간관계가 엄청 복잡해서 풀어내기 힘들 정도로 꼬여버렸다고 했다.

가족 관계가 파탄 나거나, 친인척끼리 욕설과 고성이 오가거나, 친구끼리 의가 상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후회한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걸!

나 혼자만 알고 있을걸!

그런데 깨달음은 너무 늦다.

빈털터리가 됐을 때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최후의 결말을 맞이한 복권 당첨자들의 교훈을 벗 삼아 복권 당첨자들 대부분이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다고 한다.

로또는 확률이라도 있지만, 인간관계는 확률이 없다.

언젠가 로또에 당첨된다면 내 사원들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로또는 결코 인생 역전이 아니다.

네 인생이 풍족해질 기회임과 동시에 보험일 뿐이라고 말이다.

* * *

지영씨와의 결혼을 일주일 남겨두고 있었다.

결혼 전 마지막 한 달 주말은 서로에게 자유를 주기로 했었다.

지영씨는 참 알차게 보냈다.

친구와 여행을 떠났고, 고등학교 은사 선생님을 만나 식사를 했고, 어느 날은 온종일 집에서 빈둥거리며 영화를 세 편씩이나 보거나, 드라마를 몰아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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