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매니저 복지 재단
휴먼매니저 복지재단을 언젠가 만들고 싶었는데, 유성처럼 잘 갖춰지고 재산도 상당한 재단이라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언제든 실행할 수 있었다.
그는 내게 이사장직을 제안하면서도 본인의 살길을 강구하는 듯 보였다.
아마, 이대로 일을 끝냈으면 하는 바람이랄까.
그런데 복지가 아무리 좋고 사회에 환원하는 재산이 많다고 할지라도, 잘못한 일이 있으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지?
재산이 면죄부가 돼서는 안 될 일이다.
화연씨가 마을을 급습하여 최철기의 범죄 관련 증거물들을 모조리 찾아냈다.
비단, 최철기의 옛 고옥이 전부가 아니었다.
특히, 마을의 빈집이 그러했다.
최철기가 소유한 마을의 빈집들마다 그러한 증거물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여튼 최철기의 머리는 비상했다.
마을을 통째로 사들여 그곳을 범죄은닉 장소로 사용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검경 인력이 총출동하여 마을에 은닉된 증거물들을 차에 실었다.
그 양이 어마어마하여 봉고차 한 대 분량으로도 부족할 정도였다.
그의 평생 저질러온 업보는 대형버스 한 대 분량이랄까.
마을을 벗어나 집으로 향하려는 찰나, 화연씨가 나를 급히 불러 세웠다.
그녀는 의아했다. 어떻게 이것을 다 찾을 수 있었는지 말이다.
"최철기는 본인의 두려움을 멀리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두려움을 통제하며 가까이 두고 싶어 하죠. 그래서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그가 나를 처음 마주한 날도 그랬거든요."
그녀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뭐 어쩌겠나.
최철기를 이해하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최철기의 과거 행적과 현재 유성과 관련된 일들이 밝혀졌다.
그의 화려한 범죄 전력에 비하면 유성PSD와 연관된 일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정치계 비자금 조성, 신도시 개발권 특혜, 각종 비리 등으로 막대한 금액을 벌어들인 전적까지, 온갖 범죄에 가담된 증거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철기가 소유한 마을의 빈집들마다 그러한 증거물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는 왜 그런 증거물들을 버리지 않고 마을에 보관했을까.
아마, 협박용으로 뒀을 것 같았다.
내가 죽으면 너희들도 다 죽는다는 협박이랄까.
TV에서는 연일 최철기에 관해서 보도했다
[부동산 재벌로 손꼽히는 최철기 씨를 긴급체포한 검찰이, 최 씨에 대해 오는 2일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화연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1일 기자간담회에서 '최 씨에 대해 오늘 구속영장을 신청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조사할 게 많다"며 "내일까지 가야 할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떠들썩했다.
국민들은 저마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이번 최철기 게이트와 연관된 사범들에 엄벌을 촉구했다.
권력형 비리를 청산하자며 시민단체들이 저마다 시위에 참여했다.
휴먼매니저는 빠졌다.
정치적인 이슈로 개입될 수 있었기 때문에 시위는 따로 참여하지 않았다.
최철기 게이트 사건과 별개로 휴먼매니저는 더더욱 유명해지고 있었다.
유성PSD를 흑막을 벗겨낸 연회장 사건부터 시작해 최철기의 증거물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휴먼매니저의 활약이 돋보였다.
휴먼매니저 회원이 오십만 명을 넘어섰다.
그만큼 중간착취를 당한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겠지만,
휴먼매니저의 홈페이지는 알바생들부터 시작해서 일반 회사 직원들까지 근로 상담 소통창구가 됐다.
불합리함을 토로하는 근로자들이 노무사와 직접 상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비단 중간착취 뿐만 아니라 여러 불합리한 일들도 있었기 때문에 노무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어플도 개발했다.
홈페이지 이용보다 스마트폰의 어플을 이용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누적 다운로드 백만 명을 돌파했다.
휴먼매니저 회사에서 직접 고용한 노무사들이 상시 대기 중이었기 때문에 언제든 상담이 가능토록 하였다.
그에 따른 수수료는 일절 없었다.
근로자들이 저마다 후원금액을 보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휴먼매니저는 문자 그대로 근로자들의 매니저가 되고 있었다.
* * *
최형기 징역 20년.
최철기 징역 30년 벌금 1,200억.
그 외 최철기의 비리와 연관된 인물들이 소시지처럼 줄줄이 불려나왔다.
그들 또한 징역형을 면할 수 없었다.
최철기의 부재로 유성복지재단의 이사회가 긴급히 개최됐다.
여러 이사회 임원들의 추천으로 내가 신임 이사장 후보로 선출될 수 있었다.
최철기의 입김이 들어갔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한 집안을 박살낸 장본인에게 이런 감투를 씌어주고 싶진 않겠지.
최철기의 흑막을 벗겨낸 주인공, 그리고 그간 휴먼매니저가 사회 전반에 이뤄놓은 결과물이 재단의 이사장 추천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이라고 생각했다.
이사회의 정관에 의한 투표로 유성복지 재단의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물론 정관을 몇 가지 변경했다.
이사장의 권한이 막강하였다.
이사장 권한을 대폭 축소 시켰다.
월급도 무보수로 진행했다.
그리고 현재 유성 복지재단의 이름을 휴먼매니저 복지 재단으로 변경하였다.
일부 임원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치긴 했으나, 최철기가 꾸렸던 흔적들을 지워내고 싶었다.
이제 남은 건 복지재단과 휴먼매니저를 잘 이끌면 될 일이다.
돈은 차고 넘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력도 생겼다.
게다가 나는 공직자도 아니고 일반인이다.
일반인으로서 최철기가 손에 쥐었던 권력.
내가 이롭게 써보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수개월이 흘렀다.
* * *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고 가을이 왔고 낙엽이 떨어졌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것을 품어 내리는 눈발이 내렸다.
겨울이었다.
저마다 정장 위 두꺼운 코트를 입고 출근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한 손에 겨우 들린 스마트폰으로 여러 기사를 찾아보고 있을 때, 회사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존에 살던 아파트를 청산했다.
회사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를 출퇴근하게 됐는데, 지영씨의 바람이 컸다.
자연 속에 살고 싶다고 했다.
북한산 어귀의 작은 동네에 터를 뒀고, 그곳에 주택을 지어 살고 있었다.
그게 한 달 전 일이었다.
결혼 예정일은 내년, 3월 초하룻날이었다.
여러 하객들이 찾아온다고 했는데, 얼마나 많은 하객들이 찾아올지 몰라 가장 넓은 식장으로 예약했다.
회사는 변함없었다.
현준이와 정주임은 여전히 티격태격하고 있었고, 최부장은 물류센터를 비롯하여 이제는 택배 사업까지 발을 뻗고 있었다.
오과장은 최근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한다. 비록 아파트 가격이 최고점일 때 이사했고 갑자기 상승한 대출 금리로 이자 손해가 만만치 않다곤 하지만, 꿈에 그리던 아파트라 행복은 하다고 한다.
행복은 하다는 그의 말에 왠지 슬프게만 느껴졌다.
아무튼 행복하다니 뭐.
"대표님 소식 들으셨어요?"
정주임이 내게 말했다.
"뭐?"
"최형기 대표, 교도소에서 죽었답니다."
"…"
최형기가 교도소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그의 기사를 찾아본 결과 원인 불명의 급성 패혈증으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최형기의 죽음은 부고란 기사 한 줄.
그렇다면 최철기는?
최근 한 달간 최철기와 관련된 기사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징역 30년을 구형 받았다.
이제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처지였다.
문득 궁금했다.
그를 한번 찾아보고 싶었다.
최철기는 내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 * *
눈발이 거세게 내리는 어느 겨울.
최철기를 만나기 위해 지방의 어느 한 교도소로 향하고 있었다.
최철기는 대법원의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았다.
징역 30년을 온전히 받겠다고 했다.
심지어 그는 삶에 회의감을 느꼈는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그가 유년기 시절 살았던 고옥을 제외하고 말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다고 한다.
이빨 빠진 늙은 호랑이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세상은 그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교도소에서 외로이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면회 신청 시간에 맞춰 교도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접견실로 향했다.
확 트인 넓은 접견실에 앉아 있을 때 최철기가 힘없는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그의 눈,
눈이 변했다.
예전의 살기가 가득했던 좁은 눈은 찾을 수 없었다.
이제 죽음만을 기다리는 한 노인의 초점 없는 눈이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최철기의 얼굴을 마주할 뿐이었다.
면회실의 적막함이 더 해 갈 때쯤, 내가 말문을 열었다.
"건강은 좀 어떠신가요?"
"…"
그가 아무 말 없었다.
그저 입안을 연신 오물거리며 흐릿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동생의 부고에 관해 얘기하려다 말았다.
최철기는 죽어서 이름 석 자는 남기지 못하더라도 유성은 남기고 가는 데에 자부심이 있었다.
복지 재단에 관해서 얘기를 꺼냈다.
"어르신, 이번에 복지재단에 기부한 기업들이 상당합니다. 삼정에서 30억을 기부했고, 여러 회사들도 수억 원씩 기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올해에만 재단이 거둬들인 기부금만 920억 원입니다. 복지 예산을 기존보다 세 배 이상으로 늘렸습니다. 어르신이 좋아하는 장학생 선발 인원도 많이 늘렸고요."
"…"
"사업 분야도 더 늘렸습니다. 그만큼 인력도 충원하였고요. 아마, 어르신이 복지 재단을 보신다면 감회가 새로울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재단이거든요."
"…"
그는 여전히 아무 말 없었다.
밖은 흰 눈발이 거세게 날리고 있었다.
최철기는 그저 창밖을 바라봤다.
이제 그와는 대화가 불가능 할 것 같았다.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짙은 한숨을 쉬며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곧 떠나야할 때였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의자를 뒤로 끌고 자리에 일어섰다.
뒤를 돌아서 나가려는 찰나,
최철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보게."
"…"
"동생이 훔쳐 온 음식이 무엇인지 아나?"
"…"
"반쯤 썩어버린 사과였다. 다음에 올 때 사과 하나만 사 와 주게나. 썩지 않은 것으로."
"…"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단순히 사과를 사 오라는 의미는 아닌 것 같았다.
최철기의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반쯤 썩어버린 사과를 꺼낸 이유가 뭘까.
그의 행동을 정당하게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보릿고개 넘던 시대상을 이야기 해주고 싶었던 걸까.
그가 의도한 것은 알 수가 없다.
다만, 만약 나라면…
동생이 훔쳐 온 반쯤 썩은 사과를 보며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받을 것 같았다.
죽고 사느냐의 문제보다,
나 또한 그런 자존심이 앞섰던 적이 많으니까.
그러자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최철기,
그는 반만 썩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교도소를 빠져나와 서울로 올라가는 길, 신기하게도 거센 눈발은 자취를 감췄다.
오랜만에 해가 쨍쨍했고 눈은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최철기를 다시 마주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이번이 마지막일 것만 같았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의 눈이 설명했다.
그로부터 몇 주 뒤,
최철기의 부고 소식을 들은 것은 면회 이후 약 이주 뒤였다.
사과 한 쪽을 들고 장례식장을 찾았다.
가족이 없었던 그의 장례를 치러줄 사람은 교도관이 전부였다.
그의 영정 앞에 사과 하나를 올려놓은 뒤 고인에 대한 예를 갖췄다.
그리고 최철기의 변호사를 통해 그의 유언장을 볼 수 있었다.
유언장은 짧고 간결했다.
"유성처럼 살다 갑니다."
완연히 빛났다가 급히 소멸되는 유성처럼 살았다.
비록 별이 되진 못했지만 말이다.
침대 위에서 잔소리
복잡한 인생을 살았다.
최철기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유성이라고 하고 싶었다.
빛났고 소멸했다.
그리고 기억 속에 완전히 잊힌다.
최철기에게 동정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의 권력을 좀 더 이롭게 사용했다면 하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11번 매운 쌀국수 나왔어."
"어."
오랜만에 동생네 가게에 들렀다.
제수씨는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기 때문에 당분간 식당 일은 동생이 전담하기로 했다.
걱정된 마음에 찾아왔더니 결국 동생에게 붙잡혀 서빙까지 하게 됐다.
식당은 곧잘 되고 있었다.
주말 하루 매출 이백만을 넘었고 하루 평균 백오십만 원을 상회했다.
이 정도면 고정 지출비를 제외하고 동생과 제수씨가 가져가는 인건비는 약 팔백만 원 정도 했다.
괜찮은 수준이었다.
그들이 아파트 대출금이나 빚을 갚아야 하는 처지가 아니다.
순수익 팔백만 원은 온전히 그들의 생활비나 적금으로 쓰이면 그만이다.
동생은 알까.
대출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마음이 편한 일인지 말이다.
"고생했어. 자, 받아 형."
"뭐야?"
도현이가 내게 흰 봉투를 건넸다.
열어보니 오만 원권 지폐 네 장이 들어 있었다.
"돈 좀 벌었다고 형한테 용돈도 주냐?"
"그게 아니라, 알바비라고 생각해."
"필요 없어 인마, 곧 태어날 조카도 있는데 생활비로 써."
"아냐. 받아줘."
"…"
"내가 살면서 형한테 받은 것도 많은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뭘 해 준 적이 없더라고."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나름대로 고마웠다.
"그걸 이제야 알았냐?"
"알았으면 됐지."
그가 코를 훌쩍거리며 말했다.
본인이 생각해도 머쓱한가 보다.
동생과 홀을 마저 정리하고 가게 셔터를 반쯤 내린 뒤 테이블에 앉았다.
오랜만에 동생과 소주 한잔을 먹기로 했다. 최근 아버지와 어머니 일도 그렇고, 동생에게 할 얘기도 많았다.
"전부 형 덕분이야. 형이 없었으면 난 아직도 방황하며 살고 있었겠지."
"…"
"고마워. 여태 고맙다는 말을 수십 수백 번하고 싶었는데, 정말 고마워 형."
"갑자기 왜 그렇게 센치해졌냐? 일하면서 술 먹었어?"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야."
"그럼 됐어. 고맙다는 말 한마디면 된 거야. 가족끼리 뭘."
"아니."
"…"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세상에 당연한 건 없어. 형도 그건 잘 알잖아."
"…"
"이번에 와이프 임신하면서 내 가정에 책임감이 더 생기더라고. 솔직한 마음으론 좀 더 이기적으로 변했다고 해야 할까. 형도 그렇고 엄마, 아버지, 물론 소중하지만, 언젠가부터 내 가정이 더 중요해진 것 같아. 그래서 내 자신이 좀 밉고 화가 났어."
"당연한 거야 인마. 네 가정이 생기는 거고. 울타리가 넓어질수록 책임감이 커지는 법이잖아."
"그런데 형은…"
"…"
"형은 그러질 않았잖아. 그래서 더 미안하고 고마워."
"한잔 받아."
동생에게 소주 한 잔을 따라줬다.
동생의 진심에 서운한 건 하나도 없었다.
괜히 코끝이 찡하게 올라왔다.
"이제 내가 걱정할 건 없겠네."
"…"
"앞으로 네가 할 일은 가정을 책임지면 될 일이잖아."
"맞아."
"아버지처럼 힘들다고 도망가지 말고."
"흐흐. 농담도 참 무섭게 한다. 형."
아버지는 최근 병세가 많이 호전됐다.
항암치료도 잘하고 있었고 다행히 결과도 괜찮았다.
췌장암 4기라고 생존율이 낮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처절하게 이겨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호사스러움은 만끽했다.
하긴, 생일 케이크를 환갑이 넘어서 처음 받아본 양반인데 그럴 만도 했다.
엄마에게 듣기론 곧 죽어도 이런 즐거움을 하루라도 더 느끼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삶에 대한 절박함이 아버지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한잔 받아 형."
도현이가 내게 소주 한잔을 따라줬다.
그와 술을 나눠 마신 뒤 쌀국수의 육수를 한 수저 마셨다.
"제수씨 몸은 좀 어때?"
"좋아. 조만간 가게 문 닫고 여행 좀 다녀오려고."
"여행?"
"어, 이제 와이프도 임신 중기라서. 곧 있으면 만삭이라 거동도 힘들 텐데, 이때 아니면 나중에는 잘 다니지도 못해."
"잘 안다 너? 나중에 너한테 궁금한 거 많이 물어봐야겠는데?"
"흐흐. 첫째 나을 때 공부 좀 했지."
그때
-쾅쾅!
누군가 셔터문을 두들겼다.
도현이가 급히 가게 문을 열고 나가 보니 그곳에 제수씨가 조카를 데리고 서 있었다.
영업 마감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오질 않으니 제수씨가 급습했다고 한다.
"술 먹고 있을 줄 알았어요."
제수씨가 가게 내부로 들어오며 말했다.
"제수씨 미안해요. 오늘 동생하고 술 한 잔 좀 했습니다."
"나 빼놓고요?"
"에이, 왜 이러실까. 우리 조카 얼마나 컸는지 한번 볼까?"
조카를 업어 무릎 위에 앉혔다.
미운 네 살이었다.
조카가 배시시 웃으며 내 콧잔등을 매만졌다.
"삼촌 술 많이 마셨어?"
"어. 많이."
"코 빨개. 으."
"너도 나중에 어른 되면 삼촌이랑 술 한 잔 해야 된다?"
"술 냄새 싫어요."
"흐흐. 너는 사업할 팔자는 아닌가보다."
"사업이 뭐예요?"
"사업? 부모님이 식당 차려서 하는 걸 사업이라고 하지."
"저는 안 할래요."
"그러면 뭐하게?"
"사장 할래요."
"그게 그거야 인마."
조카가 까르르 웃으며 엄마에게 달려갔다. 때마침 동생이 안줏거리를 더 내왔다.
빈속에 국물로 속을 달래려니 허기졌는데 마침 나온 고기 안주에 한입 집어 먹었다.
동생네 가족과 정말 오랜만에 뭉쳤다.
분위기도 좋았고, 도현이는 노래방에 가네 마네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참에 제수씨에게 궁금했던 점에 대해 물었다.
왜 예전에 한국말을 못 하는 척했느냐고.
제수씨는 급소를 가격당한 듯 순간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씩 웃었다.
"아주버님이 외국에 나가서 살아보면 알게 될 거예요."
제수씨만의 생존 방식이겠거니 했다.
* *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아뿔싸.
지영씨의 문자였다.
[안 들어와요?]
[곧 가요. 동생네에서 술 한 잔 먹어요.]
[정말요?]
"누구야 형?"
"어, 지영씨."
"집에 들어오라고 하지?"
"글치. 가봐야 할 것 같은데."데."
"에이, 가긴 어딜가 형. 분위기 딱 좋은데. 한 잔 더 먹고 가."
한 잔 더 먹고 가려다 지영씨가 내게 보낸 문자를 확인시켜 줬다.
[내일 아침에 데이트 알죠?]
그러더니 얼른 가보라며 말을 바꿨다.
동생에게 음식과 용돈을 받고 택시에 올라탄 뒤 집으로 향했다.
주말이라 지영씨도 부모님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었다.
나는 토요일 주말이라 친정에서 자고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귀가하니 조금 아쉬웠다.
술이 한참 달달했는데 말이다.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혼전 동거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지영씨와 나는 두 달 전부터 함께 살고 있었다.
한번 살아보고 결정하라는 지영씨 부모님의 뜻도 있었다.
요즘 이혼은 흠도 아니지만, 이왕 결혼할 거 제대로 하자는 마인드라고 보면 될까.
물론 신혼집을 어디서 차리느냐는 순전히 우리의 몫이었으니, 지영씨의 뜻에 따라 북한산 자락에 왔다.
강북의 북한산 인근에 단독 주택이었다.
산세권이라고 할까.
자부심은 딱 하나였다.
내 집 뒷산이 북한산이라는 거.
그리고 코앞에 계곡이 있다는 거였다.
젊은 신혼부부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집집마다 어르신들이 많았기 때문에 동네는 매우 조용했다.
그것 또한 장점이었다..
마당에 딸린 주차장에 주차한 뒤 집으로 들어갔다.
지영씨가 씻고 있는 듯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소파에 앉아 기지개를 켜고 대자로 뻗어 누웠다.
결혼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있었다.
여러 준비 기간 동안 지영씨와 다툼도 많았고 헤어질 뻔한 위기도 겪었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정말 사소한 일들이었다.
웨딩 촬영부터 그랬다.
촬영 당일 예약해 놓은 웨딩이 손상됐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하는데 지영씨는 아주 단단히 심술이 나 있었다.
옆에서 달래 봐도 일생 한 번 있을 웨딩인데 본인이 원하는 건 입어야 하지 않겠냐며 말했다.
업체 측은 웨딩 수선은 약 삼일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삼일 뒤는 날씨가 좋지 않아 야외 촬영은 힘들다고 했다.
무엇을 선택하든 지금 당장 해야만 했다.
지영씨는 하는 수 없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웨딩을 입어야 했고, 촬영 내내 별로 달가워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이왕 할 거 제대로 찍자는 데도 성질을 부렸다.
결국 대판 싸웠다.
지영씨가 얘기하는 건 왜 한 번이라도 업체 측에 따지질 않느냐는 것이었다.
아니, 따질 게 있어야 따지지, 따진다고 해서 손상된 웨딩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리고 이왕 찍을 거 좀 기분 좋게 찍으면 어떠냐고, 막 따졌더니 결국 서로 주장만 내내 하다가 소모적인 말다툼만 하게 됐다.
그날 집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지영씨의 부모님이 한번 살아보고 결정하라는 게 이해가 됐었다.
결혼을 엎어버리고 싶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도 지금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만약 또 그런 불가항력인 일들이 발생하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물론 없다.
또 싸우겠지.
그리고 싸울 거리가 없을 때까지 싸워봐야 비로소 부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상견례도 잘 끝냈었다.
예단, 폐백, 이바지, 답바지, 혼수, 집, 식장, 집안끼리 서로 물고 뜯고 맛보고 할 거리는 많았지만, 상견례 자리에서는 그런 얘기가 일절 나오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자식들이 커왔던 과정들에 관해서 얘기했다.
엄마는 물 만난 고기처럼 동생과 나의 성장 과정에 관해서 떠들었다.
가난하게 키웠지만, 자존심도 함께 키웠다고 한다.
가난과 자존심의 정비례라고 할까.
그래서 남들 앞에서 기죽지 않게 키웠다며 엄마가 자부하며 말했다.
물론 지영씨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학군에서 자라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남부러운 것 없는 유년 시절을 보낸 아주 귀한 딸이라며 맞장구쳤다.
지영씨와 나는 서로의 얼굴만 붉힐 뿐이었다.
서로 귀하다 못해 누가 더 잘났네 하는 수준까지 가려는 걸 엄마의 옆구리를 쿡 찔러 겨우 말렸다.
그런데 유독 말 없는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였다.
자식들이 커왔던 과정을 보질 못했으니 무슨 할 말이 있으랴.
그런데도 아버지는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대화에 참여하려 노력했다.
"도일씨 왔어요? 제가 손발 닦기 전에 소파에 눕지 말라고 했죠?"
지영씨가 샤워를 하고 나온 뒤 머리를 수건으로 감고 있었다.
"손발 씻었어요."
"거짓말. 이리 와 봐요."
"씻었다니까요."
"손발 안 씻은 거 뻔히 아는데 왜 그런 거짓말을 해요?"
"그냥 좀 넘어가 주지. 참."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안방의 화장실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고 손발을 씻고 있으니 지영씨의 소리가 또 들렸다.
"양말은 제발 거꾸로 뒤집어 놓으라고 했잖아요!"
"아, 제가 다시 해놓을게요."
"으휴!"
하아.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며 내 몰골을 살폈다.
몇 달 사이 왜 이렇게 늙어 버린 걸까.
기가 쭉쭉 빠져버린다.
"도일씨!"
지영씨가 또 소리를 치며 말했다.
"네?"
"내일 아침에 데이트할 곳 알아놨어요. 날씨가 좀 풀릴 것 같으니까 코트 말고 바람막이 정도만 입어도 될 것 같아요. 제가 옷은 따로 빼놨으니까 맞춰서 입으면 돼요."
"데이트할 곳도 알아 놨다고요?"
데이트 장소를 정하고 계획하는 것도 일이다. 지영씨는 간혹 이런 리드가 있었다.
"그럼요. 도일씨 피곤하고 힘든데 이 정도는 제가 해야죠. 그런데 내일 운전은 도일씨가 하는 거 맞죠?"
"당연히 제가 해야죠. 그런데 지영씨."
"네?"
"사람 마음을 참 들었다 놨다 하시네요."
"…?"
지영씨를 둘러업었다.
일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지영씨가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도일씨 씻고 나와야 할 것 같은데요."
"침대 위에서 잔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