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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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늦게 현준이가 얘기했던 직원들이 휴먼매니저로 찾아왔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이었고, 세 명 모두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당시 현장 실습을 유성PSD를 통해서 근무했고, 졸업 과정에서 취업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건넨 것은 그간 근무하며 받은 월급 명세서였다.

150만 원.

아침 8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가 정규 근무시간이었고, 여섯 시 이후부터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월급은 고작 150만 원이었다.

애라씨가 서울메트로와 유성PSD의 도급 계약을 파악했는데, 현장 용역비의 직접 노무비로 책정된 금액은 320만 원이라고 했다.

정확히 170만 원이 어디론가 증발하고 있는 상황.

그것뿐이겠는가.

유성PSD는 파면 팔수록 더러운 오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애라씨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0년 전 유성PSD가 서울지하철과 스크린도어 설치 도급 계약으로 선입금 받은 120억 중의 일부가 사장의 뒷돈으로 빠져나갔다는 정황도 있었다.

애라씨가 얻은 고급 정보였는데, 어느 날 애라씨에게 전화가 왔다고 하니, 내부고발자 신원은 명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고 한다.

120억의 선 지급 공사 금액에서 일부가 사장의 뒷돈으로 빠져나갔다? 시민의 세금으로?

서울지하철의 누적 적자 금액은 2조가 넘는 상황이다.

겉으로는 공기업이지만 매년 국가 세금으로 사업을 꾸역꾸역 메꾸어 나가는 상황이다.

그 돈이 유성PSD로 흘러가고, 유성PSD의 간부들이 돈을 해 처먹고, 사장의 뒷돈으로 빠져나간다는 것.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대규모 금융 수사를 할 수도 있었다.

현준이가 보여준 영상 속에 유성PSD의 대표 최형기의 모습도 보였다.

벌건 대낮에 술판을 벌이는 자리의 중심에 앉아 있었다.

대화 내용을 조금이나마 들을 수가 있었다.

"서울지하철과 유성PSD를 위하여!"

"위하여!"

술판을 벌이는 시각 오후 세 시.

유성PSD의 젊은 직원들은 스크린도어를 수리하기 위해 촌각을 다투고 있을 시간이었다.

며칠 전 최군이 내게 했던 하소연이 떠올랐다.

그는 아직도 몸의 반쪽을 정상적으로 움직

"소리만 질렀어요. 살려달라고…살려달라고 계속 소리치니까 거기 계시는 몇 분이 힘으로 문을 열어줬어요. 비록 몸 한쪽이 망가졌지만, 그때 빠져나오질 못했다면…"

만약 최군이 그날 빠져나오질 못했다면, 그건 누구의 죽음이라고 볼 수 있을까.

기업의 살인?

아니면 최군이 일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2인 1조 수칙을 지키지 않은 본인 책임?

내가 이 짓으로 밥벌이한 지 비록 얼마 되지는 않지만, 단언컨대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명백한 기업의 살인이다.

그런데 처벌이 없다?

책임질 인간이 없다?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처벌 수위는 집행유예나 짧은 징역 수준이 전부겠지만, 왜 기업 살인죄는 없을까.

"대표님?"

"…"

"대표님!"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냐. 현준이 네가 보여준 영상 덕분에 생각이 많아졌네. 고생 많았어."

"흐흐, 감사합니다."

* * *

일이라는 게 차근차근 하나씩 해나가는 게 실수도 없고 깔끔하게 일 처리를 할 수 있다지만,

목적지로 향하는 지름길이 있고, 치트키 같은 답안지가 있다면 마땅히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반 사기업이 복지재단에 20억을 출자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여러 언론사에서 기사를 작성했고 휴먼매니저가 유성복지센터에 20억을 기부한다는 내용은 단 하루 만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조순형 기자와의 짧은 인터뷰가 있었다.

직접 복지 재단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조순형 기자의 질문에, 아직 복지 재단을 운영할 정도로 인망이 두텁지 못하고 관록이 뛰어나지 못하다고 했다.

비영리 복지 재단 특성상 일반인들의 기부 금액과 기업들의 출연 금액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내가 복지재단을 만드는 건 시기상조였다.

인망이 두터워 휴먼매니저에 스스로 기부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기에는 아직 한참 모자란다고 답변했다.

조순형 기자가 올려준 기삿거리를 최철기가 확인했는지 금시에 전화가 왔다.

-기사 확인했다. 너무 겸손 떤 것이 아닌가 싶은데 말일세.

"아직 어르신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조순형 기자라 함은 중성일보에서 사회부로 있는 기자가 아닌가?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중성일보 대표가 내 후배야. 허허, 그런 거 가지고 그렇게 놀래?

"아…아닙니다."

-아무튼 앞으로 여러 기자들 만날 생각 말고 내가 정해준 기자들만 만나 인터뷰해. 앞으로 기자들하고 친해져야 할 거야.

"네."

-아무튼, 내일 보세.

-뚝.

최철기와의 짧은 통화를 마친 뒤 조순형 기자 앞에서 큰 한숨을 내쉬었다.

조순형이 내게 물었다.

"최철기야?"

"어, 네 신상까지 전부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너무 무리했나? 괜히 인터뷰 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괜찮아. 어차피 내가 제일 먼저 특보로 낼 텐데, 상관없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조순형 기자의 표정에는 약간의 두려운 낯빛이 비쳤다.

생각보다 판이 서서히 커지는 것 같아 부담도 더해갔다.

만약 일이 실패한다면, 일이 잘 풀리지 못한다면 나 혼자 독박 쓸 문제가 아니었다.

일에 참여하는 그들의 미래는 내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했다.

화연씨는 검사 옷을 벗어야 할 수도 있고, 조순형기자도 펜대를 내려놔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조금은 두려웠다.

그래서 최철기를 배제하고 싶었다.

허나 유성PSD를 건드리면 어쩔 수 없이 최철기와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단 한 번에 실수 없이 제대로 성공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여러 가지 계획과 입을 맞췄다.

L타워 호텔의 연회 명단에는 유망한 기업가 양반들부터 정계까지, 그리고 최철기의 동생 유성PSD의 사장 최형기도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기자들도 최철기가 직접 차출한 사람들만 이름을 올렸고, 그 외에는 엄격한 경호로 출입구를 봉쇄하여 함부로 연회장에 드나들 수 없도록 하였다.

다행히 나의 부탁으로 휴먼매니저 직원들은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래서 명석이와 애라씨를 우리 회사 직원으로 입사시켰고, 조순형 기자는 특별히 내가 추천하여 연회 현장에서 기자 딱지를 달고 출입할 수 있었다.

연회 당일에 맞춰 축사를 준비해야 했다.

최철기가 특별히 내게 주문 부탁한 것인데, 기업들의 본보기가 돼달라는 뜻에서 복지 사업이 원활할 수 있도록 유성 복지 재단에 힘을 빚어주자는 차원이었다.

물론 어려운 일은 아니다.

쉽다.

우리나라 복지 사각지대를 조명하고 유성 복지 재단이 사각지대를 없애주고, 불빛을 밝혀주는 등불과 미래가 되어야 한다고 쓸 생각이었다.

젊은 30대 대표가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20억을 출연한다는 말과 함께 기업 회장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할 생각이었다.

최철기가 바라는 대로 할 생각이다.

복지는 누가하든 좋은 일이니까.

다만, 마무리는 내가 정했다.

복지 사각지대와 더불어 착취당하는 젊은 청년들에 관해서도 쓸 생각이었다.

축사를 듣는 최철기의 표정이 궁금하다.

아마, 졸도하지 않을까도 싶다.

연회 당일,

휴먼매니저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저마다 옷을 꾸며 입고 있었다.

목이 넓어 턱시도가 터질 것같이 꽉 죄어진 현준이의 옷부터, 오피스 룩이 불편한 듯 연신 어깨나 허리를 매만지는 정주임까지, 저마다 불편함을 호소했다.

"벨트 터질 것 같은데요."

현준이가 말했다.

간신히 버티는 현준이 바지춤의 벨트가 안쓰러워 보일 정도.

"미안해. 내가 너희들 사이즈를 잘 몰라서…사 온다고 사 왔는데, 치수가 큰 걸 사올 걸 그랬다."

"저는 딱 맞거든요?"

정주임이 다소 기분 나쁜 듯 말했다.

딱 맞다고?

정주임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상황.

이러다가 도착하기도 전에 쓰러질 판이다.

"에휴, 그냥 다 벗어라. 너희들 편한 대로 입어."

"정말요?"

"그래, 뭐 어때. 어차피 하루 보고 안 볼 사람들인데, 우리 직원이 편해야지. 벗어라. 청바지 입어."

"넵."

현준이가 잽싸게 화장실로 향했다. 여전히 정주임은 미동조차 없었다.

"정주임, 딱 봐도 불편해 보여. 괜한 자존심 부리지 말고 옷 갈아입고 와,"

"괜찮다니까요."

"…알아서 해."

차를 끌고 L호텔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지하 주차장부터 승강기까지 걸어간 뒤 배치된 안내원에게 초대장을 보여줬다.

그리고 7층으로 안내받은 뒤 대강당 연회장으로 향했다.

분위기부터 압도했다.

마치 대성당과 같을까.

약 200평정도 하는 연회장이었다.

천장도 높았고, 300인치 대형 LED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연회장의 입구에는 ‘2022 유성 복지 재단의 밤’이라는 푯말이 보였다.

연회장의 원형 테이블에는 저마다 자리가 있었다.

물론 휴먼매니저의 자리도 따로 마련돼 있었다.

애라씨와 명석이가 미리 도착하여 카메라 등을 세팅하고 있었다.

휴먼매니저에서 따로 회사 홍보용 촬영 탓에 찍어야 한다고 미리 말해둔 덕이었다.

물론, 인터넷 생방송용이지만 말이다.

기자 테이블에는 조순형 기자의 모습도 보였다.

원탁 테이블에 앉은 조순형 기자의 노트북은 이미 세팅된 상태, 곧 일어날 파국을 가장 먼저 특보로 보낼 준비가 돼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는 얼굴들이 여러 보였다.

삼정그룹 최국현 회장부터, 철강 황회장까지,

일전에 어르신의 집에서 일면식이 있던 회장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최형기,

유성PSD의 대표였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최형기였다

최철기보다 최형기의 얼굴을 마주하는 게 더 어려웠다.

최형기를 봤으니 인사는 해야겠지?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아갔다.

중간착취의 시대

배가 살이 쪄서 볼록 튀어나온 게 개구리가 볼을 부풀린 것과도 같았다.

얼굴에 검버섯이 진하게 피었고 마치 혹부리 영감의 혹이라도 있는 듯 왼쪽 턱 한편에 큰 종기가 나 있었다.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그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머리를 뒤로 젖힌 뒤 눈을 내리깔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가 샴페인 한잔을 마시며 내게 무심코 말을 건넸다.

"누구야?"

"휴먼매니저 대표 김도일이라고 합니다.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잠시 합석해도 괜찮겠습니까?"

자연스레 유성PSD의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 합석했다.

주위의 시선이 느껴졌다.

철강의 황회장부터 삼정의 최국현까지, 최형기와 마주 앉은 나를 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자네가 휴먼매니저 대표 김도일이라고? 우리 형에게 자네 얘기를 몇 번 듣긴 했네만, 생각보다 아주 젊은 친구네."

"네, 저도 어르신 통해서 최형기 대표님 얘기를 간혹 들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풍채가 아주 남다르십니다."

"허허허."

풍채가 남다르긴 했다.

여태 내가 봤던 사람들 중에 가장 덩치가 크고 살이 쪘으니 말이다.

최형기가 연신 샴페인으로 목을 축여댔다.

한 시라도 입에 뭔가 들어가지 않으면 좀이 쑤시기라도 한 걸까.

원탁 테이블에 간단히 차려진 다과를 연신 입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

"그런데 휴먼매니저가 뭐하는 회사지? 회사 이름만 봐서는 딱히 떠오르질 않네."

내가 입을 열려는 찰나, 옆에 있는 한 60대의 어르신이 먼저 말문을 열어 휴먼매니저에 관해 설명했다.

최근 시작한 착취배제 운동부터 광고 내용까지 짧고 굵은 설명이 끝나자 최형기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그러면서 탐탁지 않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한마디 툭 내뱉었다.

"그러면 자네는 누구 편이야?"

"누구 편이라뇨?"

"어허, 젊은 친구가 말귀를 이렇게 못 알아 먹어서야."

한참을 생각해도 ‘누구 편이냐’는 그의 질문 목적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문득 최형기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정말 단순하게 근로자의 편인지, 최철기의 편인지를 묻는 것 같았다.

"이번에 유성 복지 재단에 20억을 출연합니다. 그것만 봐서, 제가 누구 편인지 모르시겠습니까?"

그가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더니 내게 샴페인 잔을 건넨 뒤 샴페인 한 잔을 따라줬다.

"자네를 보면 우리 형 젊을 적이 떠올라. 우리 형이 자네를 많이 신뢰하는 것 같으니, 나도 잘 부탁하네."

"네."

"그런데 착취 배제 운동이니 뭐니 하는 건 대체 왜 하는 거야?"

"그건…"

"그것 때문에 요즘 구인하기가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알아? 이것들이 옛날에는 최저임금을 줘도 굽신거렸던 녀석들인데, 요즘 애들은 요목조목 따지고 든다니까. 어디서 뭘 보고 배웠는지 말이야."

"의도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근로자분들이 알 건 알아야죠."

"너무 알아서도 안 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적당히 못 배우고 무식하고, 아는 것 없고 몸만 때우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야 사회가 잘 굴러가는 법 아닌가. 우리 같이 엘리트가 그런 사람들을 부려야 하는 게 마땅하고 말이야."

"…"

"자네 의도하는 바가 뭔지 잘 알겠는데, 자네가 했던 운동은 사회 통념에는 맞질 않아. 그러니 자네 미래에 발목 잡히기 싫으면 그런 운동 따위는 집어치워야 할 걸세."

유성PSD의 간부들이 저마다 최형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괜한 과거로 자네 미래에 먹칠하지 말고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우리 형 밑에서 일이나 잘 배우게. 어쭙잖게 사업하다간 큰코다치는 수가 있어."

"…"

최형기는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샴페인을 마셨다.

그러더니 이제 볼일이 끝났다는 듯 가보라며 손짓해댔다.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술에 환장하는 듯 이미 샴페인 한 병을 다 비워냈다.

"휴우."

한숨을 푹 쉬었다.

이대로 간다면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아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뭐해 가질 않고."

그가 내게 툭 내뱉었다.

"최 대표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

"유성PSD에 대해서 몇 가지 찾아본 게 있는데, 최대표님이 바지 사장이고, 당신 형이 실질적 소유주가 맞죠?"

"뭐 이 자식아?"

"저는 사람을 볼 때 등 뒤를 보거든요. 최대표님 등 뒤를 보고 있자면, 꼭 최철기 어르신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모양이라… 혹시 해서 물어본 겁니다. 맞죠?"

"이 자식이!"

그때 여러 간부들이 화를 내며 내게 손가락 질해댔다.

"싸가지 없는 노무 자식이 말하는 본새하고는!"

"너 어디서 뭐 하는 새끼야! 얼른 대표님에게 사과 안 해?"

아직 연회가 시작되기 전이라 주위는 부산하기만 했는데, 목소리가 커지자 서서히 이목이 쏠렸다.

"사과 못 합니다. 최형기씨가 먼저 사과하면 저도 사과할 의향은 있고요."

"뭐? 이 개새끼가!"

최형기 대표가 화를 참지 못하고 팔을 걷어붙였다.

그리곤 의자를 뒤로 쾅! 하며 내빼며 일어서며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사람이 최형기 대표를 말렸는데, 철강 황회장이었다.

"상종해선 안 되는 친구니, 자네가 참아."

황회장의 만류에 최형기 대표가 씩씩거리며 쓰러진 의자를 다시 세운 뒤 앉았다.

여러 간부들이 나를 보며 혀를 찼고, 때마침 최철기가 등장하여 소란을 종식했다.

"뭣들 하는 겐가!"

최철기의 호통에 최형기를 비롯하여 간부들이 그저 입을 꾹 다물 뿐이었다.

최철기가 나를 바라봤고, 사태의 전말에 관해 물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줬더니, 동생의 무례함을 대신하여 내게 사과했다.

그러자 최형기 대표가 연신 노발대발하며 형에게 대들 듯 말했다.

"형님! 젊은 친구 앞에서 그게 무슨"

"쫓겨나기 싫으면 가만히 있게나."

"…"

최철기의 일갈에 최형기가 씩씩거리며 화를 삭였다.

그리고 최형기를 바라보며 일부러 골려주려 씩 웃었다.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려다 유치할 것 같아 말았다.

그가 분한 듯 한숨을 푹 내쉬며 책상을 내리쳤다.

* * *

"적당히 못 배우고 무식하고, 아는 것 없고 몸만 때우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야 사회가 잘 굴러가는 법 아닌가. 우리 같이 엘리트가 그런 사람들을 부려야 하는 게 마땅하고 말이야."

그의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적당히 못 배우고 무식한 사람은 내 주위에 참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고, 엄마, 동생도 그랬다.

무식하고 못 배워서 험한 일만 하며 살아왔다.

마치 내 가족을 건드리는 말 같아 속에서 열불이 뻗쳤다.

샴페인을 벌컥벌컥 들이켠 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갑자기 왜 싸우고 그래요 대표님…"

"기분 나쁘게 하잖아. 개새끼. 나이만 처먹었지. 개념도 없어."

"하긴, 저도 옆에서 듣다 보니 화나더라고요. 무슨 자기가 왕인 줄 알아요. 돼지 새끼"

정주임이 최형기의 욕을 대신해주니 그나마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그런데 직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만 있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주위에는 기업 회장들과 정계 인사들이 즐비했으니 말이다.

"기 펴라. 꿀릴 거 없으니까. 내가 너희들 대표야. 대표가 기가 죽지 않은데, 너희들이 그러고 있으면 어떡해?"

"네."

현준이가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그때 애라씨와 명석이가 자리에 앉았다.

모든 카메라 세팅이 끝난 상태,

이제 남은 건 생중계였다.

"고생했어요. 애라씨."

"메인 카메라는 설치가 힘들 것 같아요. 최철기 측 복지재단에서 방송용으로 제작해야 한다며 자리를 내주지 않아서요."

"실시간 방송은 문제없겠죠?"

"네."

"마이크는?"

"문제없어요."

"확실해요?"

"저 완벽주의자인 거 아시죠?"

실시간 방송은 휴먼매니저 홈페이지를 통해서 전국으로 퍼져나갈 예정이었다.

착취 배제 운동으로 수십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화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사건은 일파만파 커지겠지.

* * *

본격적인 연회가 시작됐다.

‘2022 유성 복지 재단의 밤’

연회를 이끄는 진행자는 유성 복지 재단이 걸어온 길에 관해서 설명했고, 전반기 지출한 복지 금액 110억 원이 소중한 곳에 쓰였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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