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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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년생 때 썼던 기사야. 그때 그거 쓰고 내가 얼마나 깨졌는지 알아? 미친놈 취급받고 완전히 매장당할 뻔했다니까. 그런데 그 기사가 아직도 있어? 회사에서 내린 줄 알았는데 말이야."

"어. 있어. 검색하면 나와. 그런데 댓글도 없고 관심도 없더라고. 추측성 기사라서 그런지 말이야."

"추측? 그게 무슨 추측이냐? 완전히 확신에 차서 쓴 기사인데 말이야. 당시 편집장님이 겁이 많아서 수정해서 그 정도야."

"아, 정말?"

"그치 그때 당시는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게 많았거든. 내 눈으로 직접 말이야."

"무슨 일인데?"

조순형 기자를 휴먼매니저로 불렀다. 최근 그는 유명해지고 있었다.

나와 유착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수시로 기삿거리를 던져줬다. 특히 중간착취에 관한 기사가 많았다.

과거 중간착취에 관한 기사를 최초 쓴 기자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서로 윈윈하는 관계다.

그가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유성PSD 혹시 찾아본 거 있냐?"

"어. 지하철 스크린도어 공사는 뭐 독점하다시피 했던데? 게다가 지하철 광고까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고."

"맞아. 완전 독점이야. 씨발 그게 말이 돼? 말도 안 되는 일이거든. 그래서 좀 팠지. 신입 사회부기자가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

"그래서?"

그의 말에 따르면 한참 특종에 목말라 무서울 게 없던 신입 사회부 기자였을 당시, 유성PSD에 잠입 위장 취업하여 회사 내부를 관찰했다고 한다.

잠입 위장 취업?

순형이도 애라씨와 비슷한 과다.

하여튼 신입 사원으로 들어가자마자 목도한 첫 광경은 직원의 70%가 60대라는 것,

뭐 그것까지야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고 한다.

60대가 취업하지 말란 법은 없잖아?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사무실이 무법지대였다고 한다.

사무실 담배 뻑뻑은 기본이고 업무는 개차반, 40명의 직원 중에서 소수의 과장 밑 대리와 사원 몇 명이 업무의 90%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수의 어르신들은 대체 누굴까? 그렇게 해서 파본 결과,

유성PSD의 60대 직원 대부분이 서울지하철의 간부급으로 퇴직한 인물들이라는 것이었다.

서울 지하철에서 도급 회사인 유성PSD와 유착 관계를 맺었고, 그곳에 국민의 세금을 집어처넣으며 퇴직 후 안락한 삶을 위한 정관특혜를 일삼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거기서 얻은 결론.

마피아 집단이라는 것

일주일 만에 겁에 질려 퇴사했고, 그렇게 작성한 기사라고 한다.

아무튼 조순형 이 친구도 보통은 아니다.

"유성PSD의 대표가 누군데 그래? 이 정도 수준의 유착이면 언론사나 검찰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대체 누구야? 어떤 새끼야?"

이 정도 일을 언론사나 검찰에서 눈감아 준다면, 뭔가 대단한 인물이겠거니 했다.

조순형 기자가 뜸 들이며 담배를 피워댔다.

"대표는 진즉에 물 갈려서 현재는 모르겠고…"

그리고 내 얼굴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철기…라고 알아?"

"최철기? 부동산 재벌?"

"그분이 연관된 회사라고 들었거든. 워낙 베일에 싸여있는 인물이라 정확한 건 아니지만…"

물론 알다마다.

"그 사람이 연관됐다고? 연관됐다는 이유로 건들지 못할 건 뭐야? 요즘 시대에 말이야."

"그치, 나도 딱 너 같은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그런 게 아니더라. 정말 건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더라. 서울 지하철뿐만 아니라 좀 거대한 언론사라면 최철기 손아귀를 벗어나질 못한대. 워낙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혔다고 한다나 뭐라나… 그런데 갑자기 왜 찾아본 거야?"

"아…이번에 사고가 났데."

"사고? 무슨 사고?"

"지하철 스크린도어 보수하는 과정에서 유성PSD 직원이 사고가 났다고 하더라고. 20살이란다. 20살…"

"20살…"

"아버님께서 직접 오셔서 울분을 토하는데, 내가 어떻게 또 가만히 있겠냐? 그래서 좀 알아보다가 네 기사를 본 거고."

"됐다 그래 인마. 네가 무슨 배트맨이고 슈퍼맨이야? 이건 네가 피 보는 일이야. 그러니까 사려. 그리고 거기는 원래 그래."

"원래 그렇다고?"

"원래 그런 법이 있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아 원래 저런 데가 있나보다 하면 끝날 일이야. 게다가 네가 나선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 말이야."

"겁이 많아졌네. 철없던 사회부기자는 어디 가셨나?"

"거긴 법이 통하질 않는 곳이야. 그래서 그래."

막 나가면 될 일이다.

법?

진즉에 그런 건 버려둔 지 오래였는데 말이다.

애초에 근로자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법이 있던가.

파견직들 일당 떼먹혀도 법에 읍소할 수 있는 조항도 없고, 중간착취 금지법이 무색하게도 갖은 꼼수로 합법이 되는 세상인데 말이다.

조순형 기자가 법이 통하지 않는 곳이라며 지레 겁먹으며 말했는데, 어차피 우리 일이 그러하듯 법에 기댔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잘됐다고 봤다.

법이 통하지 않으니 막 나가면 될 일이다.

조순형 기자가 휴먼매니저를 떠난 뒤 나는 곧장 최군이 입원한 병원으로 향했다.

아버님으로부터 최군이 의식을 되찾았다는 연락을 받아서였다.

병원에 도착하니 최군이 멍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며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병상에 누워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 그의 옆에 앉았다.

아버님이 최군의 이름을 불러 보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그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사고의 충격이 컸던 것일까.

하긴 이제 그의 나이 스무 살이다.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에 달려들었던 최군이 처음으로 사회라는 세상을 겪은 곳이 하필 유성PSD이었으니 말이다.

아버님이 최군을 달래보며 애썼다.

"옆에 계신 분이 도와주실 거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겁먹지 말고 다 얘기해봐."

최군이 서서히 말문을 열었다.

어느 날부터 2인 1조였던 근무가 1인으로 바뀌게 된 계기는 근무 수칙 때문이라고 했다.

"근무 수칙이라니?"

"스크린도어가 고장 났을 경우 한 시간 이내에 출동해야 하는 근무 수칙이 있거든요. 그런데 간혹 스크린도어가 동시다발적으로 고장 났을 경우 흩어져서 수리할 수밖에 없었어요."

"회사 방침이었나요?"

"네. 지시가 내려왔었어요. 무조건적인 2인 1조를 고집하지 말고 융통성을 발휘해서 근무하라고요. 1인도 괜찮다고…"

"기록이 있나요?"

"사내 팀즈에 내용 있어요."

"그런데 꼭 한 시간 이내에 도착해서 수리해야 하는 건가요?"

"네. 그게 서울지하철과 유성PSD가 맺은 계약 때문이라고 했어요. 한 시간 이내에 도착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줬거든요."

"페널티요?"

"근무 태만이요."

"근무 태만?"

"네. 한 시간이내에 도착하지 못하거나 한 선로에 너무 오래 있으면 일일이 기록해서 근무 성적에 마이너스를 줬어요. 그렇게 되면 승진도 보류된다고 들었거든요. 예전에 한 시간 이내에 도착하지 못하고 10분 늦은 선배가 있었는데, 결국 사유서 작성하고 진급도 누락됐어요."

"많이 바쁘셨겠네요."

"바빴죠. 스크린도어 자체가 노후화되고 오래돼서 고장도 잦았거든요. 그래서 컵라면 하나로 밥을 때웠어요. 스크린도어가 점심시간에 고장 나지 말란 법은 없잖아요?"

점심시간을 컵라면으로 대충 때워가며 일했다고 한다.

최군과의 대화를 통해 사달의 원인을 조금씩 파악할 수 있었다.

인건비를 과하게 절감한 정황이 몇몇 보였다.

근로자들을 쥐어 짜내어 회사 이윤을 불려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질 않는다.

계약 조항.

제한된 시간 내에 도착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준다는 조항이 있었다.

없는 인력으로 시간마저 촉박하니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여 있었다.

"사고 당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최군은 사고 당시를 기억하려는 게 괴로운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한숨을 푹 내쉬며 그때의 공포를 꺼내기 시작했다.

"규정대로라면 운영실에 작업 사실을 통보하고 관제실에서 지하철 운행을 서행하도록 지휘하는데, 사실 한 명이서 수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선로에 진입을 못 하거든요."

"그래서요?"

"회사에서는 근무 기록일지에 두 명이라고 허위로 작성한 뒤 관제실에 통보는 하지 말고 조용히 수리만 하라고 했어요."

"아…"

그의 말에 따르면 스크린도어에 이상이 발생 후 시간 이내에 역사에 방문하여 열쇠를 받은 뒤 관제실에 통보하여 지하철을 서행토록 하여 수리를 진행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간발의 차였어요."

"…"

"선로에 진입하여 수리를 진행하는데, 갑자기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빠져나가려는 데 스크린도어 문은 닫혀있고, 당황해서 문을 열려고 해도 열리지도 않고."

"…"

"소리만 질렀어요. 살려달라고…살려달라고 계속 소리치니까 거기 계시는 몇 분이 힘으로 문을 열어줬어요. 비록 몸 한쪽이 망가졌지만, 그때 빠져나오질 못했다면…"

최군이 울먹이며 말했고, 아버님이 분노를 쉬이 삭이지 못하고 거친 숨만 몰아 내쉬었다.

정상적인 매뉴얼을 지켰다면 밖에서 신호를 보던 한 사람이 지하철이 들어오기 전 그를 대피시켰을 것이다.

이걸 누가 근로자의 실수라고 탓할 수 있을까.

최군의 성격이 착하고 순하기 때문에 회사에는 큰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회사에 큰 피해는 없을 거예요. 다만 당신이 겪은 일을 누군가 또 다시 겪으면 안 되잖아요?"

"네."

최군을 위로해준 뒤 병실을 빠져나왔다.

사무실로 향했다.

정주임과 현준이에게 사고 과정을 설명해준 뒤 앞으로의 일을 계획했다.

특히 이번 일은 비단 최군의 사고만을 해결할 게 아니었다.

사고의 본질적인 이유를 찾아 뿌리째 뽑아야 했다.

유성PSD와 서울지하철과의 관계부터 시작해 전관 특혜 등의 일이 서로 얽히고 있었다.

특히 최철기.

이 양반은 재벌들도 어찌하지 못하고 정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리는 사람이다.

계획을 잘 짜야 했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들이닥쳐 정의를 실현하는 배트맨처럼,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움직여야 했다.

첫째로 해야 할 일은 정의로운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공권력을 휘두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고, 권력과 힘이 뒷받침돼야만 했다.

단 한 사람이 있었다.

경술대학교 교수와 총장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잠입하여 입시 비리와 청탁 등의 증거를 확보하기도 했고, 400채 전세 사기꾼을 잡는데 큰 도움을 줬던 한 사람.

화연씨였다.

오랜만에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서울지검 앞 카페로 향했다.

한산했다.

늦은 점심이라 손님들이 거의 없었다.

홀로 2층 창가 자리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때,

-또각또각

어디선가 발망치로 걷는 힘찬 구두 소리가 1층에서 들렸다.

뒤를 돌아봤다.

그녀가 2층 계단으로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를 반겼다.

"오셨어요?"

"오랜만이네요. 도일씨."

* * *

그녀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문서화하고 유성PSD와 서울지하철의 유착을 정리한 서류 더미를 건넸다.

그녀가 깊이 있는 얼굴로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탄식에 담긴 의미는 뭘까.

조순형 기자처럼 이건 건드려선 안 되는 일이라는 걸까,

아니면 이 개새끼들이 이 따위로 일을 해 처먹었어? 하는 분노의 탄식일까.

그녀가 서류를 보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고, 서류를 덮은 뒤 나를 보며 씩 웃었다.

그 미소에 살기가 풍겨 있었다.

"나쁜 놈들이네요."

"하아…"

"왜 한숨을 쉬어요?"

"혹시라도 화연씨도 그쪽하고 같은 편 일까봐. 걱정했죠."

"제가 이런 놈들하고 같은 편이면 검사 안 했죠."

역시

그녀와 나는 서로 신뢰한다.

특히 경술대학교에서 함께 만났을 당시 그녀는 청소부였고 나는 관리자였다.

관리자로서 보여준 행동에 그녀는 나에게 많은 신뢰를 보냈고, 현재까지도 믿고 따라준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화연씨가 믿지 못할 이야기 하나가 더 있어요."

"뭐죠?"

며칠 전 있었던 재벌 회장들과 몇몇 정치인들을 만났던 이야기를 해줬다.

마을을 통째로 사버린 최철기가 그곳에서 밀담을 한다고 했다.

화연씨는 믿지 못하는 투였다.

세상에 눈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싶겠지.

"아마 그래서 마을의 모든 집들을 사버렸겠죠."

"…?"

"외부인들이 접근하지 않을 테니까요. 게다가 보는 눈도 없을 거고."

"그렇겠네요. 마을을 의심하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최철기가 연관됐다는 건 확실한 건가요?"

"제 친구 한 놈이 기자거든요. 본인이 직접 눈으로 보고 썼던 기사가 있습니다."

"확실하냐고요."

"그건…정황만 있을 뿐 확실한 증거는 없죠."

"어떤 정황이죠?"

"최철기에게 유일한 동생이 있습니다. 그 동생이 유성PSD 사장이고요. 그렇다면 연관이 안 되려야 안 될 수가 없지 않을까요."

"음…"

"공익 제보를 검사가 무시할 수 없지 않습니까?"

화연씨를 설득시키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지금 현재로선 유성PSD의 압수수색은 불허한다고 했다.

수색 영장이 나오려면 범행의 정황이 명백해야만 하는데, 판사를 설득할만한 근거가 현저히 빈약하다는 것.

"영장 필요 없습니다."

"네?"

"법조계 쪽에 유착관계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조심스럽게 행동하자는 거죠."

"에이…최철기를 그렇게까지 의심하는 이유가 뭐죠?"

"그 눈을 보면 알아요. 차갑고 냉정한 눈이요. 언제 어디서든 지켜보고만 있을 것 같거든요."

"그렇다면?"

"철저하게 아무도 모르게 준비해야 돼요. 저는 제 조력자를 모으고 있을 테니, 화연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시면 돼요. 절대 발설해선 안 됩니다."

* * *

마지막 조력자는 현재 사무실에 있었다. 이미 정주임과 현준이가 그 부부를 설득해 놓고 있었다.

아마 어렵지 않게 승낙하리라 봤다.

그 부부의 특기이기도 했다.

그 부부가 만나게 된 계기이기도 했고,

평생 업으로 삼았던 일이기도 했다.

명석이와 애라씨 부부였다.

특히 애라씨는 고발 프로그램을 주로 맡아왔기 때문에 이런 일에 아주 빠삭했다.

어디서 어떻게 잠입해서 촬영해야 하는지부터, 카메라는 어떻게 숨기고, 내부 조력자를 빼내는 방법 등, 평생을 업으로 삼았던 일이기 때문에 지식 등이 빠삭했다.

애라씨는 단연코 예스였다.

특히 이번 휴먼매니저 광고로 많은 돈을 벌여 들였다.

휴먼매지저 광고 이후 광고 문의가 빗발쳤고 광고계에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러니 내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겠지.

특히 명석이의 표정이 매우 신나게만 보였다.

그를 이끌고 옥상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난 명석이가 반가웠다.

"잘 지냈냐? 저번 광고 촬영 이후로 오랜만이네."

"덕분에…돈도 많이 벌고 회사도 커졌고. 고맙다."

"고맙긴."

"오랜만에 떨리네."

"뭐?"

"설렌다고. 결혼 생활이나 일 때문에 많이 지쳐있었는데, 갑자기 모험을 하는 기분이 생겨서. 기분이…들떠."

"적당히 들떠라. 노는 거 아니니까."

"알아."

명석이의 표정을 살폈다.

왠지 모르게 서글프게만 보였다.

"너 애라씨한테 용돈 받아쓴다며?"

"어떻게 알았냐?"

"저번에 네가 얘기했어. 삼십만 원 받는다고."

"삼십만 원…맞아. 기름값 내고 담배 사면 끝나는 돈이야."

"애라씨가 돈 관리 다 하지?"

"어."

"애라씨한테 꼼짝도 못 하지?"

"당연하지."

"밤마다 봉사도 하고. 그지?"

"죽겠어."

명석이가 담배를 후우 내뱉으며 말했다.

사실 명석이가 결혼할 당시 물었던 내용 그대로 다시 물어본 것뿐이었다.

다를 게 없었다.

매너리즘에 빠지고 사는 명석이가 안타까웠다.

한 가지 더 묻고 싶었다.

"사는 게 재미없냐?"

"재미 찾아 사냐. 그냥 사는 거지 뭐."

"들뜨자."

"뭐?"

"재밌는 일은 아니지만, 네가 잘할 수 있는 일이니까, 들뜨자고."

명석이가 씩 웃었다.

"내려가자. 할 일도 많은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리가 직접 달려들어 유성PSD에 위장 취업해볼까도 했다.

내부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썩은 세포를 관찰하고 싶었는데,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야 말았다.

신입 공채를 진행하지 않았다.

심지어 최군의 말에 따르면 유성PSD 같은 경우 신입을 따로 뽑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생 위주로 직접 차출 해간다고 했다.

특히 실업 및 공업 고등학교에서 현장 실습을 한 학생 중에 졸업반이 되면 뽑아간다고 했다.

유성PSD의 취업은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건물을 사들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건물을 사면 유성PSD의 대표 얼굴 정도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유성PSD 건물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했다.

강남의 수천억짜리 건물은 등기가 복잡하게 읽히고 설킨 경우가 많다.

허나 1,200억짜리 건물의 등기는 너무나 깔끔했다.

법인 부동산 소유였고, 해당 법인은 최철기가 소유한 법인이었다.

그렇다면 소유주는 당연히 최철기,

유성PSD는 최철기가 소유한 1,200억 빌딩의 한 층에 사무실을 임대하며 운영하고 있었다.

1,200억.

건물을 사서 유성PSD를 파악하는 것도 힘들다는 결론.

게다가 최철기가 내게 그 건물을 팔 리가 만무하다.

결국 취업도 불가능, 건물을 사서 유성PSD에 잠입하는 것도 불가능…

사원들과 머리를 맞대며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려 보려 했으나 이렇다 할 방법이 나오질 않았다.

"누군가 고발을 해주면 좋을 텐데…"

정주임이 읊조리며 말했다.

"고발?"

"네. 직원들이 불합리함에 나서서 언론사 제보나 해줬으면 좋을 텐데요. 내부 고발자 같은?"

내부 고발자란 집단의 누군가 내부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총대 매고 외부에 고발하는 것을 뜻한다.

"고발한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어? 언론사도 한통속이라잖아."

"그러니까, 언론사가 아니라, 우리요. 우리. 우리에게 고발해주면 얼마나 좋아요?"

"그럴만한 직원들이 있을까. 대부분 사회 초년생에 어린 직원들이라는데…"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 한 명.

그 친구라면 왠지 가능할 것 같았다.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사원들을 보며 말했다.

"누구요?"

"최군에게 들었는데 지각 10분으로 진급 누락된 친구가 있다고 들었거든요. 최군 통해서 연락 한번 해보죠. 만약 아직도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힘들겠지만, 퇴사했다면 가능성이 있잖아요?"

유성PSD는 최군처럼 젊은 청년들이 취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20살,

최군이 그랬고 대부분의 사원이 젊은 청년들이라고 했다.

지각 10분으로 진급 누락 및 감봉까지 당했다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최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최군은 다행히 그 친구의 번호를 가지고 있었다.

최군과 나이가 비슷했고 직장 동료임과 동시에 선배였다.

최군을 통해서 연락이 닿았고, 그를 휴먼매니저 회사로 초대했다.

그는 최근 휴먼매니저 광고를 통해 우리에 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언젠가 한 번 찾아가 볼까도 싶었는데, 이렇게 먼저 전화가 와서 신기하다고 한다.

그의 나이는 현재 25살,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탓에 군 입대를 약 한 달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잃을 게 없었던 걸까.

그의 입에서 속사포 같이 터져 나온 단어는 ‘X발넘들’ 이었다.

"잠깐만요."

"네?"

욕을 먼저 내뱉던 그에게 잠시 심신의 안정을 권유했다.

그리고 촬영 부탁을 했다.

모자이크와 음성변조를 통해 본인의 신상은 절대 나가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동의했다.

어차피 미련 없는 회사라고 말했다.

명석이가 카메라를 설치했고 인터뷰가 시작됐다.

그는 20살이 되는 해에 유성PSD에 취업했고 약 3년간 사원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위에 있는 대리는 20대 후반이었고 과장급은 30대 초반이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사내 직원 수 총 37명 중에 70%가 60대 이상의 간부라고 했다.

하나같이 정년퇴직 이후에 재취업한 경우였다.

사원들 대부분 이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스크린도어와 관련된 기술이 전무했다고 한다.

심지어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서울지하철에 원청에서 유성PSD으로 건네는 도급비용에서 본인의 직접노무비가 약 340만 원이라는 것, 그런데 유성PSD로부터 140만 원을 받았다고 한다.

200만 원이 한 달에 착복 당한다는 것.

그는 울분을 토했다.

대체 그 돈이 어디로 갔으며 누구 목구멍으로 들어갔는지 말이다.

그가 추측하기로는 간부들이라고 했다.

그들은 하는 일도 없이 우리 월급의 3배 이상을 받았다고 한다.

3배 이상?

그게 누가 받아야 할 금액이었으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거기 계시는 어르신들 대부분은 젊은 친구들을 선호해요. 세상 물정 모르고, 사회 초년생에, 언젠가 입대 탓에 제 발로 알아서 기어나가는 사람들? 그래서 대부분 미필만 뽑아요. 미필이요. 언젠가 알아서 관두니까."

그럼 그렇지.

언젠가 알아서 관두는 미필 사회인들을 거둬다 착복하는 경우였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머리가 자근거렸다.

"그런 방식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것 같아요?"

"사장이죠. 돈독 오른 X새끼라니까요. 제가 웬만하면 어른들한테 욕 안 하려고 하는데, 그 개새끼는 사람 새끼도 아니에요."

최철기의 동생 최형기였다.

"전부 그 인간 머리에서 나온 일이거든요. 아주 우리 같은 젊은 친구들을 어찌나 잘 이용해 먹는지, 등골 빼먹는 데는 아주 천재적인 개새끼에요. 좋은 머리를 나쁜 데만 쓰고 있다니까요. 으휴 X새끼...."

그는 계속해서 울분을 토했다.

특히 1시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해야 하는데 10분 늦었다는 이유로 감봉당한 일에 대해서는 입에 거품을 물어대며 욕했다.

"아니, 막말로 제가 강남역에 한창 스크린도어 작업하고 있었거든요? 30분은 걸릴 작업인데, 4호선 쌍문역까지 한 시간 이내에 어떻게 가요? 그랬더니 그걸 못했다고 지랄 발광을 하더라고요. 너 때문에 스크린도어 망가졌다고요. 그러더니 월급 깎이고 진급도 누락됐죠."

"왜 가만히 계셨어요? 따지시지 그랬어요."

현준이가 묻자 그가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따져요? 그래도 직장인데, 따지면 잘리기만 더하겠어요? 그냥 참고 일했던 거죠."

그의 말에 수긍했다.

괜한 질문을 해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탓에 정주임이 현준이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내가 그를 보며 말했다.

"그런 분들이 많겠어요?"

"대부분 그래요. X같아도 참고 일하는 회사원들 많잖아요? 우리도 똑같았어요. 단순히 어리고 세상 물정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참 X같아도 돈 벌어야 하니까 했던 거고요."

"착복당한 급여는 받으셔야죠?"

"군대 가는 마당에 그걸 어떻게 받아요?"

그러더니 그는 사무실 전경을 연신 둘러보며 부러운 눈빛을 쏘아댔다.

"여기가 말로만 듣던 휴먼매니저네요. 참, 좋겠어요.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이 참 부럽거든요."

"전역하고 오세요."

"그때까지 제가 살아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더 할 말 없으시죠? 제가 오늘 약속이 있어서요."

"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혹시 뭐, 인터뷰 비용이라던지…"

"이미 보내드렸습니다. 계좌 확인해 보시죠."

"네."

그는 스마트폰을 열어 계좌를 확인한 뒤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곤 내게 90도로 깍듯이 인사한 뒤 전역 후에 뵙겠다는 말과 함께 문을 열고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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