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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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은 총 7시간 정도 진행된다고 했다.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만 있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지만, 딱히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도현이와 그저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그저 초조한 마음으로 기도할 뿐이다.

-털컥.

커피 자판기 앞에 서서 커피 두 잔을 뽑았다.

도현이에게 커피 한잔을 건네며 말했다.

"괜찮냐?"

"어."

눈이 심각히 충혈됐다.

아까 얼마나 울었는지, 대기실 사람들이 위로까지 해줬다.

결국 보다 못한 엄마가 도현이의 등짝을 때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살면서 네가 그렇게 우는 건 처음 봤다. 왜 그렇게 울었어?"

"그냥, 처참하게 무너지더라고. 아버지가 누워 있는 모습 보니까."

"어휴."

"형은 모를 거야. 그래도 내가 아버지하고 평생 연락했잖아."

"그래 수술 잘 될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알아. 무조건 잘 될 거. 형은? 회사 안 가도 돼?"

"나 없어도 잘 돌아간다."

"좋겠다."

"왜?"

"식당은 나 없으면 안 돌아가거든."

"이제 좀 정신이 돌아왔나 보네?"

"알잖아? 형 동생, 꽤 잘나가는 거. 요즘 장사도 잘되고, 매출도 좋아."

"잘됐네."

"흐흐, 형 덕분이지 뭐."

때마침, 보호자 대기실에 있는 TV에는 자동차 CF가 나오고 있었다.

언젠가 생각해뒀던 게 있었는데, 마침 시간도 여유가 있겠다.

지금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몇 시간 동안 여기 앉아 있기에는 좀 뻐근하지 않아? 나가서 바람이라도 좀 씌자."

"어딜 가게?"

"따라 와."

동생을 이끌고 간 곳은 자동차 매장이었다. 아버지가 퇴원 후 엄마와 함께 탈 차량을 구매하기 위함이다.

"여기 외제차 매장이잖아? 아버지에게 선물해 주려고?"

"어. 그래도 아버지 나이에 탈 수 있는 차면 벤츠가 좋지 않을까 싶어서."

"비쌀 텐데…"

"잘 나간다며?"

벤츠 S클래스로 정했다.

다행히 출고일이 가장 빨랐고, 가격대도 적당히 1억 원대 중반.

도현이가 돈을 보태주겠다고 나섰으나,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결제했다.

* * *

다시 병원으로 향했을 때, 수술 종료 시각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병실에 가족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의사가 들어왔다.

현재 수술은 잘 끝났고 회복실에서 한두 시간 회복 후 병실로 이동 예정이라고 전했다.

"수술은 잘 끝났나요?"

엄마의 질문에 의사가 말했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췌장에 붙어 있는 암을 전부 도려냈고, 전이 된 혈관도 일부 제거했습니다."

"휴우"

엄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동생이 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데 차후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일주일 뒤에 조직검사를 한 차례 더 진행할 예정이고, 그때 수술 결과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오늘 수술은 잘 됐다는 거죠?"

"네. 맞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도 덩달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잘됐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그런데,

아버지가 회복실을 빠져나와 병실로 왔을 때 눈에 초점이 흐릿해 보였다.

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현재 통증이 너무 심해 진통제를 주사해놨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술 후 통증을 너무 심각히 호소하여 무통 주사를 계속 맞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 나 보여?"

도현이가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아버지의 흐릿한 눈동자가 도현이에게 향했다.

"어"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버지 이게 몇 개야?"

도현이가 손가락 세 개를 펼치며 물었고, 아버지가 대답했다.

"네 개."

순간 가족들이 전부 당황했다.

네 개?

모두가 간호사를 바라봤고, 간호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 섬망 증상에 관해 설명했다.

인지 기능이 저하됐을 때 간혹 나타나는 의식 장애라고 했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나아질 거라고 했다.

병실에서 심전도 검사와 혈당 체크를 진행하고, 한 시간 정도 흘렀다.

아버지가 정신이 돌아온 듯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수술 잘 끝났더냐?"

"네. 아버지."

잘 끝났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 * *

수술이 끝난 뒤에도 치러야 할 일이 많았다.

누군가 아버지 옆을 계속 지켜줘야만 했다. 엄마는 새벽 일찍부터 일어났기 때문에 또 밤을 지새우는 건 힘들다.

동생과 내가 아버지 곁을 새벽 내내 교대로 지키기로 했다.

도현이가 아버지의 무릎을 계속 주물러댔다.

수술 후 몸에 자극을 주어 마취로 잠든 세포 조직을 깨워주는 게 좋다고 했다.

"도현아"

"응?"

"이제 그만 해. 아버지 깨시겠다."

"괜찮아. 조금만 더 하고."

병실 불도 꺼놓고 속삭이듯 대화했다.

"형."

"응?"

"아버지 깨면 걷기 운동 필수로 해야 한다고 하더라,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안 된다고 했어."

"알았어."

"그리고 공불기 운동도 계속해야 될 거야. 폐에 물이 차서 그걸 빼줘야 한다고 그러더라고.."

"알았다니까. 넌 내일 어딜 가? 너도 있을 거 아냐?"

"어디 안 가. 형이 알아두면 좋으니까. 그리고 혹시라도 아버지 컨디션이 좋으면 간단히 물 한 잔 정도는 괜찮을 거야."

"그래. 너는 좀 자. 내가 아버지 보고 있을게."

"아냐. 형이 좀 자."

"네가 자라니까."

"형이 먼저 자라고."

"고집은…먼저 잔다? 한 시간 뒤에 깨워줘."

"알았어."

동생을 옆에 두고 소파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스마트폰을 열어 휴먼매니저 단체 깨톡방을 확인했다.

조용하기만 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했건만,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무슨 큰일이 벌어졌을 것 같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지금은 회사 걱정할 때가 아니다.

인터넷 창을 켜서 췌장암 수술 이후의 과정을 살폈다.

여러 환우들이 작성해 놓은 글을 읽고 검토했다.

동생의 말마따나 공불기 운동과 걷기 운동이 기본이었다.

1일차에는 음식을 못 먹고, 2일차 즘 되면 미음 정도 식사는 가능했다.

"형, 자?"

"안 자."

"생존율이 10%라는데…우리 아버지 살 수 있을까."

췌장암 3기의 생존율은 10%라고 했다. 동생은 계속 불안한가 보다.

"10%…높은 거야."

"뭐? 10%가 높다니, 완전 낮은 거잖아."

"너 살면서 로또 5등에 당첨된 적 몇 번 있냐?"

"한두 번?."

"5등 확률이 2%야."

"…"

"생존 확률 10%, 결코 낮은 거 아냐. 그러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알았어."

동생이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계속 아버지의 팔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형."

"또 왜."

"우리 아버지 인생, 너무 억울하지 않아?"

"…"

"이혼하고 본인 먹을 거, 입을 거, 단 하나도 못 챙겨 입고, 돈 벌어서 빚 갚고, 우리 양육비 보내주고. 참 억울해. 그렇게 평생 시간이 가버렸잖아."

"…"

"형, 우리 아버지 꼭 살리자."

"그래."

* * *

다음 날 아침, 아버지의 의식이 돌아왔고, 생각보다 몸이 개운하다고 하셨다.

걷는 운동을 스스로 먼저 자처해서 했다.

하루에 1,000보 이상을 목표로 병원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비록 한 보를 내딛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수술 첫날부터 이런 컨디션을 보여준다는 게 참 고마웠다.

수술이 정말 잘됐나보다 싶다.

그런데, 물 한 모금을 마셔도 구토와 울렁거림을 호소했다.

간호사에게 물어봤더니 아직 배에 가스가 많이 차거나, 마취 또는 진통제 후유증이라고 했다.

정상적인 과정이니 꾸준히 운동하고 공불기 운동을 하라고 말했다.

그런데 통증은 지속적으로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진통제 주사를 맞았고, 또 운동, 또 진통제, 또 운동 반복이었다.

그래도 가만히 누워 있는 것보다 좋은 거라며 간호사가 칭찬을 해줬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더 노력했고 더 움직였다.

비록 그 고통은 말도 못 할 정도겠지만, 아버지는 꾹 참고 있었다.

밤새도록 아버지 옆에서 간호해 줬더니 노곤함이 밀려왔다.

다행히 오전에 엄마와 제수씨가 병원으로 왔고, 도현이는 집으로 돌아갔다.

"고생했다. 도일이 너도 얼른 집에 들어가 쉬어라."

엄마가 채근하며 말했다.

나도 집으로 갈까 생각했지만, 회사에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인사를 한 뒤 병실을 빠져나가려는 찰나,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도일아."

"네. 아버지."

"억울하지 않다."

억울하지 않다는 아버지의 말을 한참 곱씹었다.

"이따 저녁에 올게요."

짧은 휴가

아버지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잘 끝났으니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다시 예전의 체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치료와 재활이 중요했다.

앞으로 힘든 시간이 남았겠지만, 생존 10%의 확률은 이겨낼 수 있다.

분명히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병실을 빠져나와 지하 3층으로 향했다. 차에 올라탄 뒤 스타트 버튼을 눌러 시동을 켜려는데, 전기 스파크 소리가 들렸다.

-따따따따따

뭐지?

방전된 것 같은 이 더러운 기분은 뭘까.

재차 시동을 걸어도 똑같은 증상이 반복됐다.

방전이다.

하, X발.

방전될 이유가 전혀 없는데 대체 왜?

브레이크 패드를 밟으며 스타트 버튼을 계속 눌러댔으나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급히 보험회사에 전화하여 차량 방전 긴급 사고 요청을 진행했다.

차량이 막혀 30분 뒤에나 도착한다니 이곳에 꼼짝없이 갇히게 됐다.

다시 병실로 올라갈 생각도 했으나, 올라가는데 걸리는 시간과 또 몇 분 뒤에 내려올 생각 하니 그냥 차 안에 있기로 했다.

긴급출동 직원과 통화를 해서 차가 방전된 위치를 설명해줬다.

도착하면 전화를 준다고 하니 마침 짬난 시간 잠시 졸기로 했다.

글러브 박스에서 안대를 꺼낸 뒤 운전석 시트를 최대한 뒤로 젖혀 누웠다.

긴급출동 직원에게 연락이 올 때까지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몸이 개운했다.

안대를 벗은 뒤 스마트폰을 켜고 시간을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20통이나 와있었고, 현재 시각은 오후 다섯 시.

차 안에서 꼼짝없이 여섯 시간을 잠들어 있었다.

스마트폰은 진동 상태였다.

휴우.

차량 시동을 재차 걸어 봐도 여전히 방전 상태였다.

-똑똑똑

"형 거기서 뭐 해?"

도현이가 창문 문을 두들겼다.

"도현아."

차에서 내린 뒤 그간의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다행히 도현이 트렁크에 점프선이 있어서 차량과 연결하여 방전된 배터리를 살릴 수가 있었다.

"나한테 전화를 하지 그랬어."

"고맙다."

"병원으로 다시 올라갈 거야? 지금 회사 가봐야 직원들 전부 퇴근했을 거 아냐?"

"…도현아"

"응?"

"하루만 부탁할게."

"뭐?"

"갈 곳이 있어. 단 하루만."

"…알았어."

갈 곳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핑계였다.

방전된 차량, 고갈된 체력, 번아웃과 공황 증상까지, 이대로 가다간 쓰러진다.

머릿속을 모두 비워내고 싶었다.

이기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내가 당장 죽을 것 같았다.

내비게이션도 켜지 않았고 국도를 이리저리 떠돌다 고속도로를 탔다.

발길 닿는 곳 아무 곳이나 가고 싶었다.

목적지도 없고, 계획도 없이 떠나고 싶었다.

도착지가 허허벌판이든, 어느 길목 어귀의 조용한 마을이든, 혹여나 길바닥에서 잠을 자게 되더라도 아무 목적도 없이 떠나는 나만을 위한 짧은 일탈을 즐기고 싶었다.

무작정 동쪽으로 향했다.

양양 고속도로를 탔고 속초로 빠졌다.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해안 국도를 타고 올라갔다.

관광객이 별로 없는 한적한 해변이 보였다.

차를 주차한 뒤 해변의 전경을 바라봤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

그리고 이제 곧 다가올 가을.

끝물에 다다른 여름을 즐기기 위해 관광객들이 늦은 밤에도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다.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산 뒤 바닷가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푹푹 꺼지는 동해안의 부드러운 모래알이 구두 속을 파고들었다.

구두를 벗었다.

양말까지 벗어 밀려오는 파도에 발을 담갔다.

시원하다.

왜 단 한 번도 여름휴가를 즐기지 못했던 걸까.

스스로 학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라도 잘됐다.

단 하루의 휴가.

마음껏 즐기고자 했다.

"좋네"

그저 좋다는 말이 자연스레 나왔다.

맥주 한 캔을 벌컥벌컥 들이켜 순식간에 해치웠다.

아쉬운 마음에 주위를 둘러 술집이 있나 확인했다.

인근에 포장마차와 횟집들이 불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한참을 배회하며 어디로 들어갈지 고민했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간판 이름 ‘공형진?’

끌렸다.

아무 기준도 없이 단순히 횟집이름이 특이하여 무작정 들어갔다.

"몇 분이세요?"

"혼자요."

알바생이 내게 물었고 혼자라고 대답하니 구석진 곳에 자리를 안내했다.

"좀 많이 시킬 건데요. 테이블이 너무 작은데 4인용으로 앉아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바닷가가 보이는 4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고, 먹고 싶은 건 한입이라도 먹고 버려도 좋으니 메뉴판에 있는 안주는 골고루 많이 시켰다.

회부터 시작해 조개구이, 해산물이 들어간 용궁라면, 해삼, 멍게, 성게, 전복 등 종류별로 전부.

"혹시 먹방 촬영하시려고요?"

"아뇨. 혼자 먹으려고요."

직원들이 나를 너튜버 먹방을 하는 사람으로 착각한 듯 물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테이블에 가득한 안주 만해도 이미 4인분을 훌쩍 넘었으니까.

소주 한 잔에 멍게 한 점.

두 잔에 해삼 한 점.

석 잔째에 회, 가리비, 등등

그렇게 소주병이 쌓여 갔다.

취한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취기가 참 반가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연인들의 모습, 가족 단체로 온 모습이 보였다.

행복해 보였다.

조금은 적적하여 지영씨에게 전화할까 생각했지만, 괜히 혼자 여행하러 왔다고 얘기를 하며 오해만 살 것 같아 말았다.

그렇게 한참을 홀로 술과 산해진미를 즐기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앞에 앉았다.

"어?"

분명히 어딘가에서 봤던 얼굴이었다.

환한 미소와 함께 내 앞에 앉은 남자,

과거 산재 병원에서 함께 병원 생활을 했던 동기였다.

"형?"

"너 뭐야? 알고 온 거야?"

"아뇨."

서로 당황하여 말문이 막혔다.

그는 공사장 인부였고 덕트가 무너져 큰 사고를 당했던 형이었다.

과거 산재 병원에서 마지막 치료를 끝낸 뒤 병원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을 때 형은 내게 큰 위로를 해줬다.

나이도 있고 뭔가를 다시 시작하기 두려웠을 때,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그때 했던 형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사회에서 본인을 받아줄 곳도 없고,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할지 막막하고, 10년 경력을 쌓았지만, 다시 사회 초년생으로 시작해야 하는 절망감이 가득하지만, 어쨌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 멋있는 얘기를 하더니, 다리를 절뚝거리며 병원을 빠져나갔을 때가 형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형이 사장…?"

"그치, 사장이지."

그리고 형은 사장이 돼 있었다.

형은 테이블에 차려진 안주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너 뭐야? 무슨 일 있어?"

매우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아니. 별일 아니고. 혼자 여행하러 왔어."

"식도락 여행이라도 하는가 보구나."

"어, 뭐 그런 거지."

"여기 소주 한 병하고 소주잔 좀 갖다줘."

알바생에게 시키는 것을 보아 확실히 사장인 듯 보였다.

"대단하네. 형. 횟집 사장. 상상도 못 했는데."

"여태 모아뒀던 돈하고 산재 보상금하고 합쳐서 고향에 차렸지. 한잔 받아라."

형과 소주 한 잔을 주고받으며 마셨다.

그리고 과거 산재병원에서 있었던 얘기들을 쏟아냈다.

식당에서 일하다 화상을 입은 아줌마, 공장에서 근무하다 손가락에 부상을 당한 어르신, 무슨 화학공장에서 폐암에 걸려 산재 인정을 받은 아줌마, 매번 병원에서 만나면 응원해줬던 간호사들까지.

근황들이 참 궁금하긴 했지만, 어디선가 뭘 하든 잘 살길 바랄 뿐이었다.

혼자서 먹던 소주가 빠른 속도로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형도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반가운 듯 바지춤을 풀어헤치고 술을 먹어댔다.

칼칼한 용궁 라면을 벌컥 들이켰다. 라면이 텅텅 비자 용궁 라면 하나를 더 시켜줬다. 그리고 형이 의아한 듯 물었다.

"차림이 꼭 놀러 온 사람 같지는 않은데?"

"아, 갑자기. 갑자기 오고 싶어서 온 거야. 별 이유 없이."

"무슨 일인데?"

형이 걱정된다는 투로 물었다.

홀로 바닷가로 여행 온 것은 그렇다 쳐도, 정장을 입었고, 안주만 해도 40만 원이 훌쩍 넘게 시켰다.

충분히 오해를 살만할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인생의 마지막 휴가처럼 보였겠지

"걱정할 일이 너무 많아. 형. 그래서 그래. 내가 진 부담이 너무 커."

"걱정할 일이 많다고?"

"어, 형도 횟집 사장님이 됐듯이 나도 회사 대표거든.."

"이야, 도일이 넌 잘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리저리 신경 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야. 머리가 복잡해. 복잡해서 터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야. 그래서 식히러 왔는데, 마침 형을 만났네."

"도일아."

"응?"

"난 내가 선택한 삶에 만족하면서 살아. 무슨 일을 하든 적당한 선에서 하거든."

"적당한 선? 그게 무슨 뜻이야?"

"내 기준으로 정한 선. 남들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내가 정한 선 말이야. 내가 이걸 넘어가면 스스로 힘들어질 것도 알고 불행해질 것도 알아. 그래서 안 해. 그 선을 꼭 지켜."

"아…"

"남들은 겁쟁이처럼 보일지 몰라도, 난 그런 삶이 좋더라. 적당히 즐겁고 행복하면 될 텐데 비교해서 더 가지려고 할 필요도 없이 말이야."

"형은 좋겠다. 주관이 확실해서."

"산재 병원에서 많이 깨달았지. 치료받으면서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받고, 취업하려 해도 받아주는 곳 하나 없더라고. 그때 새삼스럽게 깨달았어. 아, 그치, 세상은 전부 남이였지. 내가 남에게 대체 무슨 기대를 한 걸까 싶더라고."

"…"

"회의감이 들더라고, 그래서 고향으로 왔고, 횟집을 차렸지. 대박도 아니고 망한 것도 아니고, 적당히만 해보자는 마인드로."

"멋있네."

"아냐. 멀쩡했던 오른쪽 다리 절름발이로 살아야 돼. 그것에 대한 보상일 뿐이야. 그런데 도일아."

"응?"

"네 선은 뭐야?"

형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내 기준에서 행복이란 뭘까.

돈은 벌대로 벌었는데, 왜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일을 벌이는 걸까 싶다.

"형…"

"응?"

"난 아직 멀었어. 형처럼 살고 싶어도. 잘 안돼. 그런데 그게 조금씩 눈앞에 보여. 내가 그리는 행복 말이야. 조만간 알 것 같아. 그 행복."

"잘됐네. 한 잔 받아 인마."

오랜만에 만난 형과 밤새 술을 마셨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한 게 있었다.

"형, 그 선 지킬 수 있어?"

"그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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