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5. (185/200)

야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직원들을 모두 회의실로 불렀다.

앞으로 상담 관련 보완할 점이 많았다.

첫째로 상담하기 전 양식을 배포하여 미리 일지를 작성하도록 했다.

그렇게 된다면 상담 시간을 많이 앞당길 수 있었고, 실수가 줄어든다.

둘째로 홈페이지 개설.

단기간 운용할 계획으로 홈페이지 또는 카페를 만들고자 했다.

피해사실을 호소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착취 회사를 공유해서 피해 보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었다.

"대표님?"

"응?"

"오늘 약속 없으세요? 취미 생활은요? 오늘 지영 언니 만나서 저녁이라도 드시지 그래요?"

"응, 왜?"

현준이가 정주임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야근하기 싫어서 그래?"

정주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사원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기진맥진, 축 처져 있었다.

"대표님…"

"응?"

오과장이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최부장님 도시락 사러 가셨습니다. 그러니 너무 개의치 마시죠. 정주임! 회사에서 시키면 하는 거지 따박따박 따지고 드냐?"

"아니, 그렇잖아요. 내일도 있는데 굳이 오늘 하루 체력을 다 뺄 필요는 없다는 거죠."

"뭐? 그럼 네가 체력을 길러 인마. 대표님 앞에서 너무 무례한 거 아냐?"

"오늘 하루 너무 힘들었는데, 또 일해요? 대표님 너무해요."

때마침 최부장이 양손에 도시락 봉투를 가득 들고 들어왔다.

"밥 먹고 합시다."

적절한 타이밍에 최부장이 들어왔다. 현준이가 최부장의 도시락을 받아 사원들에게 일일이 뿌렸다.

회의실에 모여 앉아 도시락을 까먹었다.

그때 도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

"어 도현아."

-대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데?

"응?"

-내일 아침에 아버지 수술이잖아. 아버지가 형 기다리는데.

"수술이 내일이었구나."

-오늘 올 거야?

"…"

-어떻게 할 건데? 왜 대답이 없어.

"가야지. 갈게."

-빨리 와. 엄마도 형 기다리고 있어.

"어."

옆에서 통화내용을 듣던 최부장이 말했다.

"가봐야 지?"

"아버지 수술이 내일 아침이라고 하네요.."

"얼른 가봐. 당연히 가야지."

"…"

직원들의 표정을 둘러보니 하나같이 피곤함에 절어있는 모습이었다.

그래,

내일도 있으니까.

퇴근시켜야지.

"최부장님 다들 퇴근 하시죠."

"응?"

"오늘 힘들었는데, 제가 괜히 오버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직원들 신경 쓰지 말고"

"아뇨. 저 먼저 들어갈 테니 다들 퇴근하세요."

도시락을 까먹던 사원들이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가방과 도시락을 챙기기 시작했다.

오과장이 1등이었다.

정주임이 오과장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자, 오과장이 윙크를 보냈다.

최부장과 나를 보며 깍듯이 인사를 한 뒤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저도 들어가 볼게요. 부장님."

"어, 어...그래."

최부장 홀로 덩그러니 남았다.

* * *

차를 타고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 들러 간식거리를 몇 개 사고 아버지가 머물고 있는 1인실 병동으로 향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아버지는 달빛 아래 잠이 들어 있었다.

한발 늦었다.

동생 도현이는 이미 집으로 돌아갔고 엄마는 소파 침대에 누워 쪽잠을 자고 있었다.

부스럭대는 소리에 엄마가 눈을 떴다.

"왔냐?"

엄마가 속삭이듯 말했다.

"어, 자 엄마."

"밥은?"

"먹었어."

"어휴, 내 정신 좀 봐. 방금 잠들었네."

"미안해. 좀 늦었지? 들어갈게 엄마. 자."

병실 문을 열고 다시 나가려는 찰나, 엄마가 슬리퍼를 신고 내 뒤를 따라 나왔다.

"얘기 좀 해. 아들."

엄마와 함께 병원 옥상의 정원으로 향했다. 늦은 밤이지만 산보하는 환자들의 모습이 여러 보였다.

"그렇게 바쁘니?"

"요 며칠 좀 그랬네."

"아이고, 핼쑥해진 것 좀 봐. 끼니는 제대로 챙겨 먹고?"

"잘 먹고 다녀 엄마, 걱정마, 아버지 수술이 내일 아침 10시라고 했지? 이참에 병원에서 잘 테니까 엄마는 집으로 가. 편하게 주무셔. 여기서 쪽잠 자지 말고."

"괜찮다."

한참을 별빛만 바라보며 정적을 곱씹었다. 엄마가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다, 말문을 열었다.

"너희 아버지 수술 잘 끝나면 합가해서 살기로 했다."

"…정말? 정말이지?"

엄마가 피식 웃었다.

"그럼 가짜겠어?"

"잘됐네. 아버지도 동의한 게 맞고?"

"두 팔, 두 다리 성한 곳 없는 양반이 이제 내장에 문제가 있단다. 동의고 자시고 할 게 뭐가 있어. 반송장 데려다가 살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엄만?"

"응?"

"엄마는 어때? 앞으로 아버지하고 살면 어떨 것 같아?"

"고생길 훤하지. 병수발 들게 생겼는데"

"에이, 전문 요양사 붙여 줄 거니까 엄마가 전적으로 하는 일 없을 거야. 그리고 아버지 췌장암 수술만 잘 끝나면 항암치료 꾸준히 받으면서 잘 먹고 잘 놀러 다니면 돼. 괜찮아 엄마."

"으휴, 말은."

"도현이도, 나도 전적으로 지원해줄게."

"그렇게 좋니?"

좋았다.

내가 좋았던 건 단순히 그들이 함께 사는 걸 넘어 엄마의 감정이 아버지에게 한발 다가섰다는 것.

벽이 허물어진 느낌이다.

"아파트 사는 게 좋아? 정원 딸린 주택? 아니면 타운하우스? 말만 해 엄마."

"여기가 편타. 그래도 공사는 잘 끝나서 천장에 물이 새는 것도 없고 집도 널찍하니, 아버지하고 각방 쓰기 딱 좋고. 그리고 아들 집들 근처니까, 그게 가장 좋아."

"에이, 아무리 그래도 아파트보다는 타운하우스도 괜찮아. 어르신들끼리 모여 사는 곳도 있고."

"엄마 아직 젊다."

"…"

"지금이 좋아."

"알았어. 엄마. 그리고 언제든지 필요하면 바로바로 얘기해. 아들 뒀다 뭐해? 평생 고생해서 키워서 뭐 해? 이럴 때 좀 써먹는 거야 엄마. 그러니까 눈치 보지 말고 팍팍 얘기해. 아들이 옆에서 든든하게 버티고 있으니까."

"아이고, 장군감이네 장군감이야. 독신으로 사는 게 아쉽다 아쉬워."

"독신 아니야. 아직 현재 진행형이야."

"언제 소개해 줄 거야?"

"다음에…"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엄마 눈에 흙 들어가게 생겼다"

"내가 언젠가 엄마한테 예쁘고 차려 어디서 만나자고 하는 날이 있을 거야."

"…"

"그때가 그땐 줄 알면 돼."

"대체 뉘 집 딸년 인지 얼굴 한번 보기 이렇게 힘드니. 대단한 집안이야?"

"아냐. 대단한 건 우리 집이 더 대단해."

"응?"

"이혼가정에 아버지는 췌장암, 엄마는 류머티즘, 동생은 국제결혼, 뭐 하나 평범한 게 없잖아?"

"…"

일순간 엄마의 표정이 서글퍼졌다. 장난이 심했다.

"미안해. 엄마 내가 장난이 심했어."

"한 가지 더 있다."

"응?"

"장남이 잘생겼잖아?"

"흐흐."

엄마와 오랜만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웃고 떠들고,

과거 얘기도 하고 엄마 옛날얘기도 듣고.

재밌었다.

휴식이 뭐 별거 있겠나.

퇴근하고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수다 떨며 시간을 보내는 게 휴식이겠지.

"늦었다. 들어가자."

시간이 꽤 늦었다.

얼마나 떠들어댔는지 한 시간을 넘게 옥상에서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오늘 나도 병원에서 자고 갈게."

"응?"

"오랜만에, 엄마 옆에서 자는 거지 뭐. 이렇게 엄마 옆에서 떠드는 거 오랜만이고 행복하고 좋아. 마음도 편안하고."

"…"

"괜찮지?"

"안 괜찮을 게 뭐가 있니. 샤워실 있으니까 일단 좀 씻어라. 어휴, 땀 냄새."

* * *

엄마와 함께 1.5인용은 될 것 같은 좁은 소파 침대에 누웠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아버지가 잠을 뒤척였다.

혹시라도 잠에 깰까 조심스레 이불을 덮었다.

"자. 엄마. 내일 아침 7시에 알람 맞춰 놨어."

"그래, 잘했다."

"잘게 엄마."

옆으로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런데 늦은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질 않았다.

정신이 멀쩡했다.

어디 가서 마라톤이라도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이 그만큼 인상적이었다고 할까.

오늘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계속 뇌리에 남았다.

돈 달라고 떼쓰던 할아버지부터, 30분 동안 하소연하던 아저씨, 입에 침을 튀기며 쌍욕을 했던 아줌마,

누구에게 하소연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놓았던 감정을 휴먼매니저에서 토하는 듯 보였다.

좀 더 개선해야 할 점이 떠올랐고, 앞으로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그들의 떼인 돈을 받게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선 업체 대표들의 발을 묶어 놔야만 했다.

지난 수십 년간 아버지가 착취당하지 않았다면 집안 빚을 몇 년은 더 빨리 갚아낼 수 있었겠지.

엄마도 마찬가지다.

파출 일을 하면서 못 받은 퇴직금도 많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은 더 조급해져만 갔다.

복잡하고 힘든 과정이겠지만 할 수 있다.

그때,

-두근

심장은 크게 두근거렸고,

몸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어디 두드러기라도 나는 것처럼, 그러다가 갑자기 또.

-두근.

두통과 함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휴우."

손으로 왼쪽 가슴을 쥐었다.

조여 오는 통증에 호흡을 쉽게 할 수가 없었다.

"휴우."

마치, 빨대 구멍으로 숨을 쉬는 느낌이랄까.

숨을 거세게 내쉴수록 심장 통증은 더 심해졌고, 겨우 옅은 숨으로나마 숨 쉴 수가 있었다.

통증은 더 조여 왔고, 몇 분간 간헐적 통증이 지속됐다.

통증이 끝나자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왜 그래?"

"어, 아냐 엄마."

연신 심호흡 하는 나를 엄마가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어디 아프니?"

"호흡하기가 좀 힘드네. 갑자기. 요즘 무리해서 그런가봐. 괜찮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병실은 조용하기만 했다.

아버지가 수술 전 검사를 진행하기 위해 병실을 나갔고, 엄마가 때마침 쟁반에 밥하고 반찬을 담아 병실로 들어왔다.

"밥 먹어."

"내가 무슨 환자 같다. 엄마?"

"얼른 취소해."

"응?"

"퉤퉤퉤 하란 말이야. 말이 씨가 된다?"

"퉤퉤퉤"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침대에 앉아 한 번에 흡입했다.

병원 밥이라 싱겁기만 했다.

스마트폰을 열었다.

이제 곧 휴먼매니저 업무 시작이었다.

오늘도 어제처럼 사람들이 몰려들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요즘 휴먼매니저는 가장 바쁠 때였다.

콜센터 증원부터 상담과 홈페이지 그리고 업체 대표들과의 만남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날인데 급브레이크가 걸린 느낌이다.

단체 깨톡방을 열어 사원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저희 아버지 수술 날입니다. 바쁜 시기에 혼자 떨어져 나와 있어 마음이 불편하네요. 최대한 빨리 회사에 도착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마다 깨톡을 읽은 듯 숫자 1이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과장 [걱정 마십시오 대표님! 아버님의 성공적인 수술을 기도합니다!]

고현준 [회사는 걱정 마시고 잘 다녀오세요. 파이팅입니다.]

정주임 [야근 안 했더니 컨디션 100%. 이따 뵐게요.]

이지혜 [증원 광고 올렸더니 구인 인원이 엄청 많아졌어요. 면접 진행할게요]

최부장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아버님 옆에서 잘 보살펴 드려라. 오긴 뭘 와.]

저마다 위로 글을 올려줬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억울하지 않다.

수술은 현재가 적기라고 했다.

항암치료도 10회째 진행했고 지금 때를 놓치면 수술 시기를 놓친다고 했다.

의사로부터 수술 과정을 상세히 듣게 됐다.

수술 명칭은 휘플수술이라고 했다.

암세포가 있는 췌장을 절제하고 담낭, 담도, 십이지장까지 잘라내 장기를 연결하는 수술이라고 했다.

원칙적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암을 절제하여 제거하는 수술이라고 했다.

그런데 췌장 자체가 담도, 담낭에 둘러싸여 암을 제거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고 한다.

게다가 췌장을 제거하면 인슐린 분비가 안 돼 당료가 올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평생 약을 먹어야만 한단다.

듣기만 해도 어려울 것 같은 수술이었다.

의사로부터 수술 과정과 앞으로의 일정을 전부 전해 듣고 수술 동의서에 서명한 뒤 수술실 앞으로 향했다.

수술 예정 시간은 10시였다.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간호사 한 명이 아버지의 병상을 끌고 있었다.

아직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이라 아버지의 정신은 또렷해 있었다.

조금의 시간이 있었다.

동생 도현이가 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았다.

"괜찮을 거야 아빠. 별로 어려운 수술도 아니래, 하고 나면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하더라고."

"그래, 알았다."

"아버님, 건강해야 돼. 손자 오래 봐야지."

제수씨도 달라붙어 아버지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덩달아 긴장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 도현이가 눈물을 흘려대기 시작했다.

"너 우냐?"

아버지가 순간 당황하여 도현이에게 물었다. 도현이의 눈물은 그치질 않았다.

어려운 수술인 걸 안다.

실패하면 재수술도 어렵다.

이번 수술에 모든 걸 다 걸어야 했다.

"울지마. 응?"

도현이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아 왜, 좀 슬프면 울 수도 있는 거지"

"그래, 울어라. 울어."

덩치는 산만한 녀석이 아버지 손을 붙잡고 엉엉 울어대고 있으니, 주위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아버지도 당황하여 눈을 찔끔 감았다.

"수술실 들어가는 사람 앞에서 우는 거 아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지! 도현아 그만 울어."

결국 보다 못한 엄마가 도현이에게 말했다. 그제야 도현이가 꿇던 무릎을 펴고 일어나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수술 꼭 잘 될 거야. 아버지 걱정 마."

"알았다니까."

그래도 아버지는 도현이가 밉지 않나보다.

하긴, 도현이는 평생 아버지와 연락을 하고 살았지.

"아버지, 수술 잘 끝나면 드릴 말씀이 많아요. 눈 딱 감았다 뜨면 모든 게 다 잘 돼있을 거예요."

"고맙다. 도일아."

때마침 시간이 된 듯 간호사가 아버지의 병상을 끌고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실로 향하는 모습에 나도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도현아, 그만 울어."

"어…"

소매 춤으로 눈물을 훔치던 도현이의 눈물이 그칠 기미가 없었다.

수술실 문이 닫히고 난 뒤에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엄마가 우리를 이끌고 대기실로 향했다.

수술실로 들어간 지 삼십 분이 흘렀을까, 수술 현황판의 낯선 이름 사이에 아버지의 이름이 올라왔다.

[김석훈 수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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