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3. (183/200)

내 말을 듣던 업체 대표들의 표정이 불안을 휩싸이기 시작했다.

한둘씩 식은땀을 흘려대며 자리에 일어섰다.

한 대표가 급히 자리를 피하려는 것을 현준이가 어깨를 짓눌러 자리에 다시 앉혔다.

천사장의 눈빛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김대표."

"…?"

"잠시 얘기 좀 하지. 시간 좀 내줄 수 있겠나?"

"할 얘기 없습니다."

"김대표! 내가 자네한테 어떻게 했는데! 사고당하고 난 뒤에도 내가 거들어주지 않았나! 어째 이렇게도 정이 없나 이 사람아!"

"정이 없다? 천사장님이 제게 무슨 정을 줬습니까?"

"이 자식이!"

"그리고 저는 당신 밑에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최부장님 밑에서 일했지. 그건 확실히 하시죠."

-쾅!

천사장이 분노에 휩싸여 책상을 뒤집어엎었다.

일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다들 당황하여 뒤로 물러섰다.

덩치도 크고 험악하기 그지없는 그의 행동에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가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멱살을 잡아 올렸다.

"사람 마음을 참 화나게 하는 재능이 있네? 응?"

"천사장님, 예전 좋았던 모습은 어디를 가고 대체 뭐 하고 계시는 겁니까."

"뭐?"

"옆에 있는 황부장이나 박찬혁만 봐도 당신 눈이 얼마나 흐릿해졌는지 알 수 있겠죠. 정신 차리시죠 천사장님."

"…"

황부장과 박찬혁 얘기가 나오자, 황부장이 벌떡 일어나 욕짓거리는 내뱉었다.

"저 새끼 말하는 싸가지 봐라. 네가 내 친구야 새끼야? 그리고 천사장님은 우리밖에 없어. 우리가 전부라고. 너희들은 뭐했어? 전부 그만두고 나갔잖아 새끼들아!"

황부장이 내 직원들을 보며 소리쳤다.

"황부장."

"네. 천사장님."

"너는 가만히 있어."

"…"

천사장의 일갈에 황부장이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천사장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

"네가 들어온 이후로 우리 워킹휴먼이 계속 내리막길을 탔던 것 같거든."

"내 탓이다?"

"정주임이나 현준이 오과장까지 그만두고 자네 회사에 들어갔잖아? 응? 게다가 최부장까지 말이야."

"당신이 회사 운영을 개판으로 했다는 뜻이겠죠."

그의 손을 뿌리쳤다.

"이 개새끼가!"

천사장의 손이 높게 올라갔다. 당장이라도 나를 치려는 기세였다.

최부장이 소리쳤다.

"천사장! 이제 그만 합시다."

"…!"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이제 다 끝났습니다. 밖을 보시죠."

천사장이 창문 밖을 내려 봤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일빌딩 앞에 모였다.

이지혜 팀장의 확성기 소리가 여기까지 울렸다.

"워킹 휴먼에서 근무하셨던 분들! 여기 이 자리로 모이실게요. 저기 굿타임즈는 이쪽으로! 돈 받으려면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통제에 잘 좀 따라주세요!"

"…"

"곧 있으면 회사 대표님들 내려오실 겁니다. 그때 만날 수 있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확성기를 통해 들리는 소리에 회사 대표들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제 때가 됐다.

"다들 나가시죠."

"…"

한숨을 푹푹 내쉬던 대표들이 차마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뭐 하시나요 다들. 얼른 나가라니까!"

* * *

업체 대표들이 도일빌딩을 빠져나갈 때 근로자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5년간 근무했던 한 근로자가 착복당한 금액은 연 천이백만 원, 한 달에 백만 원씩 착취를 당했다고 한다.

"야이 개새끼들아! 내 돈 돌려줘! 돌려 달라고!"

한 근로자는 IT업체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파견업체에게 첫 근무 당시 면접비 30만 원을 업체에 냈고, 그 후에 한 달 동안 월급의 30%가 사라졌다고 한다.

-퍽

근로자들이 대표들에게 달걀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도일 빌딩 입구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도일빌딩으로 도망가려니 이미 빌딩 문을 잠갔고, 도일 빌딩을 벗어나려니 정문 앞에 근로자들이 버티고 있으니 중간에서 완전히 몰매를 당하는 수준이었다.

업체 대표 중에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대표도 있었는데, 한 근로자는 하루 인건비 12만 원에서 5만원을 떼였다고 한다.

법적으로 수수료를 떼는 건 일당의 1%다. 인력사무소 업체들이 주로 하는 거짓말이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수수료 10%를 떼야 한다며 착취하는데, 순전히 거짓말이다.

10%를 줘야 하는 곳은 인력을 쓰는 사용자 측이지, 근로자가 아니다. 근로자의 수수료는 단 1%다.

"내 돈 뱉어내 새끼들아! 오늘 집에 못 갈 줄 알아!"

천사장도 피하질 못했다.

워킹휴먼은 4대 보험으로 주로 해 먹었다고 한다.

한 달 월급의 10%를 떼고 단기 계약직 사원들에게 4대 보험에 가입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한 달에 벌어들이는 금액은 약 이천만 원.

그저 누워만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천 사장 이 X발놈아! 너 그럴 줄 알았다! 내 돈 내놔 이 새끼야!"

-퍽

달걀이 천사장의 머리에 정확히 명중했다.

"나이스 샷!"

현재 옥상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현준이가 외쳤다.

황부장과 박찬혁도 달걀 세례를 피할 수 없었다.

-퍽

-퍽

얼굴에 한 방, 어깨에 두 방씩.

"찰지네요. 크크."

"그러니까 말이다."

굿타임즈 대표는 주로 청소 도급을 도맡았는데, 그가 주로 해먹은 방법은 연차 수당이라고 했다.

연차에 월급이 포함돼 있다고 거짓말을 한 뒤, 연차를 쓰게 되면 월급에 금액을 착복했다고 한다.

방식도 참 여러 가지다.

물론 연차뿐만 아니라 상여금도 기본적으로 다 해먹었다고 한다.

인당 상여금 20만 원, 추석, 명절 떼 원청으로부터 들어오는 떡값은 대부분 본인 뒷주머니에 들어갔다.

"굿타임즈 대표 X발놈아! 5년 동안 해먹은 내 3천만 원 뱉어!"

그 외 대리운전 기사, 조리사, 파견 회사원, 콜센터, 방송국, 백화점, 공장 등 다양한 근로자들이 모였다.

적게 잡아도 오백 명은 훨씬 넘어 보였다.

중간에 가로막힌 업체 대표들의 절규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은 돈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면서…"

-퍽!

한 회사 대표가 근로자들을 어설프게 달래려 하자, 그의 입에 달걀에 퍽 하고 들어갔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니, 경찰들이 몰려와 사태 수습을 위해 무리를 비집고 들어갔다.

몇 시간이 지난 뒤에야 소동은 서서히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입고 있던 정장이 이리저리 뜯기고 머리채까지 잡혔던 업체 대표들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겨우 도망쳐 빠져나왔다.

"김대표."

"네 부장님."

"이제 어쩔 생각인가?"

"계획대로 해야죠. 조만간 TV 광고도 들어갈 거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만들어야죠. 그리고 불법을 저질렀으면 그에 마땅한 벌을 받아야겠죠."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타인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

중간착취는 불법이다.

작전 성공이네.

[오후 대낮에 벌어진 중간착취에 의한 폭력]

[00빌딩 앞에서 대낮 난투극, 알고 보니 중간착취에 분노한 근로자들]

[수면 위로 떠 오른 중간착취 피해자 약 수십만 명, 피해 추산 금액 수천억 원]

본인이 임금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본인 주머니에 들어가야 할 돈이 타인의 배에 기름칠을 하게 해준다면 억울해서 가만히 눈 뜨고는 못 살지.

허나 그걸 알면서도 참아왔던 근로자들이 너무 많다.

불안을 안고 살아가며, 억울함을 토로해도 들어줄 사람들이 없었다.

이번 사건으로 워킹휴먼에 소속된 파견 사원들이 다수 퇴사하였다고 한다.

다른 업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간 많게는 월급의 30%까지 떼어갔던 업체들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꼴이다.

착취 업체로 소문났고 인력을 조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원청에서는 계약해지를 들고 일어섰다.

그런데 결국 딱 그 수준이다.

계약해지를 하고 그간 해먹은 돈 잘만 간수했다면 언제든 다시 세탁하여 업체 하나 차리면 그만이다.

문제는 피해자들.

그들이 돈을 받아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짱구를 돌려봐도 결국 집단 민사 소송을 통해 강제 집행을 하는 경우가 최선이었다.

법으로 집행을 하지 않는 이상, 그들 주머니에서 스스로 돈을 내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들은 결코 뭉칠 수 없는 구조였다.

누가 내 옆에서 중간착취를 당한다?

남의 월급 따위에 관심 가지면 그게 민폐인 줄 아는 정서가 깔린 탓에 누가 왜 어떻게 착취를 당했는지 당최 알 수가 있나.

게다가 파견 직원들이 뭉치는 것을 원청부터 시작해 중간 업체들도 싫어하기 때문에 애초에 뭉치는 조짐이 보인다면 사전 차단해버리는 경향이 많다.

그래도 꾸역꾸역 파견 사원들이 단체로 시위를 열어 투쟁한다고 해도, 결국 고발당하고 그 피해 손해 배상과 더불어 징역형을 사는 경우가 많으니, 어느 누가 총대 메고 대표로 나서서 부당함을 토로하겠는가.

수십 년간 근로자들이 이렇게 길들여져 왔고 변화는 없이 착취만 발전해왔다.

아주 성실히 범국가적 가스라이팅 한 결과라고 봐야 될까.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내가 있잖아?

내가 총대 메고 그들의 대표가 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단체 소송을 준비할 계획이다.

그간 홀로 싸워 왔을 근로자부터, 중간착취를 당했음을 알면서도 묵묵히 참아왔던 근로자들까지, 전국 단위로 휴먼매니저로 모이게 할 생각이다.

조순형 기자의 기사로는 부족했고, 인터넷 신문에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신뢰성 없는 인터넷 언론 플랫폼은 시선을 끌기가 힘들다.

결국 광고다.

TV광고가 모두 완성됐다.

송출 준비도 마쳤고, 이제 몇 시간 뒤 시청률 20%의 예능 프로그램 중간광고로 나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걸 혼자 확인할 수는 없지?

* * *

그간 업무에 찌들어 맛있는 회식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사원들을 위로 차원 자리를 마련했다.

주말에?

이미 정주임의 입이 마중 나와 툴툴거리며 맥주만 들이켤 뿐이었고, 현준이만 신이나 연신 소고기를 굽기 바빴다.

기름진 소고기가 불판 위에서 익어갔고 최부장이 연신 소주를 들이켜며 짙은 개운함을 표했다.

"죽인다. 김대표. 자네도 한 잔 받아."

"네. 부장님."

최부장님이 내게 소주 한 잔을 건넸다.

워킹휴먼 사건으로 심히 심란했을 최부장이 이번 일로 훌훌 털어버린 것 같았다.

얼굴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크으!"

소주 한잔을 마신 뒤 오과장에게 소주병을 건넸다.

"너도 마실래?"

"네. 주시면 받겠습니다."

"받아."

오과장이 한 잔 마시더니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 휴먼매니저 회식 특성상 술은 자작이다.

그래서 회식 자리에 흔한 건배사도 없고 건배해야 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불가피한 일도 없다.

무조건 자작.

자작이 최고다.

"대표님, 그런데 갑자기 주말 회식…?"

정주임이 의아한 투로 물었다.

"우리 광고 완성됐잖아?"

"아… 그거 같이 확인하려고요?"

"주말 저녁 소파에 누워 편안한 주말을 보내야 할 황금 시간대에 아주 불편하고 께름칙한 광고를 내보낼 예정이거든…이 원대하고 위대한 순간에 혼자서 확인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요 부장님?"

"나도 네 전화 기다렸다. 때마침 네 전화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아냐?"

"으휴, 하여튼 두 분 다…그런데 광고가 수정됐다고 들었는데요?"

정주임이 고기 한 점을 집어 먹으며 내게 물었다.

"맞아. 수정했어. 아주 깔끔하고 단순하게."

"하아…설마 제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죠?"

"응?"

"광고에 우리 얼굴 넣고 그런 거 아니죠?"

"미쳤냐. 절대 아냐."

"궁금해 미치겠네. 대체 뭘 수정했기에…"

"긴장되네요."

이지혜 팀장이 말했다.

긴장된다는 말이 미세하게 떨렸다.

덩달아 내 심장도 두근거렸다.

"아마, 이번 광고로 인해 많이 바빠질 겁니다."

"바빠진다니요?"

"그래서 미리 소고기 좀 많이 잡수시라고 자리를 만들었죠."

가편집 본을 받은 뒤로 몇 가지 수정을 했다.

좀 더 자극적으로, 좀 더 쉽고 단순하게.

이번 일은 확실히 매듭짓고 싶었다.

"어! 광고 시작합니다!"

고사원의 외침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의 중간 광고가 시작됐다.

[물류센터 근무자가 부상을 당해 절뚝거리며 홀로 집으로 돌아갈 때, 그의 실제 월급과 떼인 금액이 나온다.

[그 외, 건설, 조선소, 청소부, IT 직원, 콜센터, 공장, 등 각자 부당한 일을 겪은 장면에서 월급과 공제된 금액이 나오고,

영상 막바지에는 한수아가 등장하여 해당 영상을 설명하고 중간착취에 관하여 고발한다.]

[그리고 휴먼매니저 회사 로고와 전화번호가 명시됐고, 전국의 모든 근로자들에게 착취 문의 전화를 받는다고 썼다.]

-푸웁.

정주임이 맥주를 마시다 뿜었다.

"왜?"

"지금 우리 회사 번호 넣으신 거예요?"

"어."

"미쳤나 봐!"

"아직 광고 안 끝났어."

첫 번째 광고가 끝났고 두 번째 광고가 시작됐다.

[평생 파견과 도급 직원으로 근무했던 할아버지의 실제 지급된 급여와 착취 금액을 산출한다. 할아버지가 휴먼매니저 회사를 방문하여 중간착취에 관해 상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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