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불이라도 지르려나?
[하청회사 대표, 경쟁회사 대표 목 졸라 살해]
[하청 회사의 중간착취, 갑과 을의 중간에서 병적인 그들]
[쳐다본다며 하청 직원에게 폭행한 하청회사 대표]
[내부 고발한 하청 노동자를 납치 폭행한 하청회사]
현재 내가 읽고 있는 기사들의 주인공이 모두 우리 회사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대표들이었다.
물론 경쟁 회사 대표를 살해한 사람은 징역 30년을 받았지만 말이다.
하나 같이 강성이고 성질이 더러운 인간들이다.
이 바닥에서 유명했다.
폭력은 기본이고, 과거 깡패 용역도 관리했던 자들도 있었다.
지금은 과거를 세탁하여 경비업체로 업종 변경하여 사업하고 있지만, 그 성질 어디 가겠나.
거기에 박찬혁과 황부장도 있었으니, 이번 기회로 지네들 눈엣가시인 휴먼매니저를 업계에 퇴출시키려는 모양이다.
그런데 무슨 수로?
답은 없지만, 방법은 다양하다.
그저 그들의 주특기인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 그리고 제풀에 지치게 만드는 방법이거나, 기사에 보이는 모양대로 납치 폭력으로 협박을 하려 들겠지.
차라리 그 정도 수준이라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다.
만약 휴먼매니저가 주식회사였다면, 지분율 싸움으로 대거 자본이 유입돼서 회사를 장악하려 든다면 머리만 아파지겠지.
그런데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밥그릇이 하청 근로자들의 피와 땀이라는 건 알까.
너무 잘 알 것이다.
잘 알면서도 중간 착복을 통해 얻은 달콤한 돈을 뿌리칠 수가 없는 거겠지.
누워만 있어도 가만히 돈 들어오는 구조인데 말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건설, 제조, 등의 대기업에서 그들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살인기업 GN건설…1년새 하청노동자 6명 사망]
여기서 중요한 것은 GN건설의 분기별 산재 건수는 제로라는 것이다.
근로자들이 하청 회사 소속이기 때문에 산업 재해는 하청회사로 잡히고, 원청은 벌금만 내면 그만이다.
중대재해처벌법?
빛 좋은 개살구고 사망 사고만 더 늘어났다. 결국 처벌받은 인간들은 하청 대표들이거나 대기업은 벌금형이 전부다.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지만, 결국 대기업은 법망을 피하기 위한 꼼수만 늘어나고, 하청 회사를 더 필요로 하게 되고, 수요와 공급을 더 원활하게 만들어버린 꼴이었다.
그런 악순환이 수십 년.
죽어간 근로자들만 수천 명.
이제 그 고리를 끊을 때가 온 게 아닐까 싶다.
문제는 시위대들이었다.
현재 회사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이 저녁이 돼서도 물러날 기색이 없어 보였다.
내 얼굴을 직접 만나 담판을 지으려는 작정인가 보다.
최부장이 회사 대표로 시위대를 만났다.
그들이 원하는 내용은 단순했다.
세상을 바꾸려는 헛된 이상은 품지 말고 서로 잘 좀 해쳐먹고 살아보잔다.
게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게 만들어 달라는 뜻도 표명했다.
"극단적인 선택이라뇨?"
"회사에 불이라도 지르려나?"
"설마요."
"충분히 그럴만한 자식들이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 자네가 너무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
"예전처럼 우리만 잘하면 될 일이잖아. 왜 굳이 광고까지 만들어서 모든 화살이 우리에게 향하게 만드느냐 말이야."
"부장님께 피해 가는 일 없을 겁니다."
"피해? 내게 피해와도 상관없다. 자네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괜찮습니다.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아…김대표!"
주위를 둘러봤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내 신변이 걱정되는 듯 사무실에 버티고 앉아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 불안이 보였다.
반면 정주임의 키보드 타자치는 소리만 사무실을 가득 메웠다.
초침은 계속 흘렀고,
이렇다 할 대책 없이 시간은 계속 흘렀다.
"다들 퇴근하시죠."
일단은 모두 퇴근을 시켜야 할 것 같았다. 괜한 일에 연루돼서 퇴근 시간까지 놓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들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멀뚱히 나를 쳐다만 볼 뿐이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퇴근을 해요."
오과장이 말했다.
"그래도, 지금 시간이 늦었잖아."
"괜찮습니다. 대표님 혼자 두고 퇴근할 수 없죠."
"맞아요. 우리 회사 일이잖아요?"
"맞습니다. 대표님 옆에서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사원들이 저마다 소리를 냈다.
고마웠다.
퇴근 시간도 지났는데…
"경찰을 부를까요?"
오과장이 말문을 열었다.
"경찰?"
"막말로 저 새끼들이 우리 회사 앞을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치."
"경찰이 오면 해결해 줄 수도 있죠."
경찰을 부를 생각은 나도 했었다.
그런데 불러봤자,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경찰이 와서 해산시켜주면? 또 찾아오지 않을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그렇다고 이렇게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당한다라…"
"맡겨만 주시면 제가 싹 쓸어버리겠습니다. 대표님."
현준이가 입에 침을 튀기며 말했다.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깡패야?"
"…"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야. 일단 기다려 봐."
마음 같으면 혼란 스킬을 이용하고 싶었지만, 보는 눈들이 너무 많았고 스킬을 남발하고 싶지는 않았다.
"김대표."
"네. 부장님."
"일단은 저쪽 대표들하고 만나서 대화는 해봐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기다려보시죠."
"크흠. 무슨 생각이라도 있는 거야? 같이 좀 알자."
"생각보다는 행동을 좀 보여주려고요."
"무슨 행동?"
최부장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현재 직원들 중에 정주임만이 컴퓨터 앞에 앉아 연신 업무를 보고 있었다.
"가뜩이나 너무 덥고 짜증 나잖습니까."
"그래서?"
"열은 열로써 다스리는 법이죠."
열은 열로서 다스린다는 이열치열의 뜻을 최부장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내 얼굴을 바라보며 씩 미소를 짓는 정주임만 이해할 것 같았다.
그녀의 키보드 소리가 더 빨라지고 있었다.
* * *
애라씨에게 전화가 왔다.
광고 촬영은 무사히 잘 끝났다고 한다. 현재 스튜디오는 모두 철수하고 뒤풀이를 진행한다고 하는데, 내게 참석 여부를 물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회식을 가겠나.
"애라씨."
"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혹시 가편집본은 언제쯤 완성될까요?"
"가편집본이요? 왜요? 못미더우세요?"
"아, 아뇨 그게 아니라."
"가편집이야 진즉에 완성됐죠.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몇 가지 수정 보완해야 될 부분이 많긴 한데, 대표님이 보시고 의견 보내주세요."
"네."
애라씨에게 가편집본을 메일로 받은 뒤 직원들과 함께 광고 영상을 검토했다.
이 시국에 광고라니,
최부장이 영 못미더운 기색이었지만, 그래도 광고는 잘 뽑혔다.
"와…정말 괜찮은데요? 이거 광고 나가면 사람들 문의 전화 엄청나게 빗발치겠는데요. 중간착취부터 시작해서 휴먼매니저가 대체 무슨 회사냐고 크크크."
"그러니까. 잘 뽑혔네요."
그래픽 부분은 더 손봐야겠지만, 지금 당장 광고를 틀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훌륭한 퀼리티였다.
"부장님, 저희 빌딩 옥상의 옥외광고 있지 않습니까."
"옥외광고?"
"지금 틀죠."
"뭐?"
"마침 광고도 비었겠다."
"불난 집에 부채질할 생각인가?"
"..........."
최부장이 아까부터 예민한 상태였다.
"무슨 문제 있나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말이야. 저 인간들 이성 잃으면 자네 어떻게 감당하려 그래?"
"걱정 마시죠."
"참..."
하긴, 최부장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다. 그들의 성질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며, 과거 직장 동료이며 사장이었다.
어쩌면 가장 불편한 위치에 있을 사람은 최부장이겠지.
"부장님..."
"...."
"저희 입장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고 봅니다. 물러설 생각도 없고 합의볼 일도 없습니다. 저 믿고 따라와 주시죠."
"알았다."
"오과장."
"네. 대표님."
"광고 영상 옥외광고로 틀자."
"네."
도일 빌딩 옥상에 있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광고 영상이 송출됐다.
경비원이 해고를 당하는 장면과 동시에 그의 실제 월급과 중간착취로 부당하게 떼인 금액이 표현됐고,
물류센터 근무자가 부상을 당해 절뚝거리며 홀로 집으로 돌아갈 때, 그의 실제 월급과 떼인 금액을 표시했다.
그 외, 건설, 조선소, 청소부, IT 직원, 콜센터, 공장, 등 각자 부당한 일을 겪은 장면에서 월급과 공제된 금액을 표기했다.
영상 막바지에는 한수아가 등장하여 해당 영상을 설명하고 중간착취에 관하여 고발한다.
그리고 휴먼매니저 회사 로고와 함께 광고는 끝난다.
반응은 역시 뜨거웠다.
시청자 반응이 궁금하긴 했는데, 현재 회사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 열렬하게 뜨겁고 분노에 휩싸이는 것으로 봐서는 광고는 아주 잘 뽑힌 것 같았다.
-야이 개새끼들아 광고꺼!
-부숴버리기 전에 광고 끄라고!
-휴먼매니저는 개뿔, 양아치 새끼들!
그들의 욕설이 내게는 긍정적 반응으로 들렸다
열기가 더해질수록 주위 시선들을 끌기에 적합했다.
조순형 기자를 불렀다.
나의 중학교 동창이자 유일한 기자 인맥이었다.
이 파국에 대해서 전화로 설명했고, 조순형 기자가 한걸음에 달려 와줬다.
그를 만난 건 옥상이었다.
옥상에서 송출되는 영상을 보던 조순형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에 찍은 광고라고?"
"어. 잘 뽑혔지?"
"이야, 이거 만만치 않겠다."
"예상했던 일이야. 별로 대수롭지 않아."
"그러니까, 이 상황을 기사로 써달라는 거지?"
"흔히 있는 일은 아니잖아?"
"…"
"하청 노동자들 시위는 흔하지만, 하청 회사가 밥그릇 문제로 시위한다? 충분히 기삿거리가 될 것 같은데. 안 그래?"
"음…그렇지, 흔한 경우는 아니긴 하지."
"최대한 자극적으로 기사 뽑아줘."
"예를 들어?"
"저 인간들이 지키고자 하는 밥그릇이 뭐겠어?"
"간접 고용과 중간착취에 대한 구조를 써라? 최대한 자극적으로?"
"가능할까?"
"가능은 하겠지…"
"그런데?"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그래? 벌써부터 달려드는 인간들이 많은데 말이야."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너도 참…고집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믿는다. 친구야. 잘 뽑아줘."
조순형 기자를 돌려보낸 뒤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직원들이 나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다들 회의 한번 하시죠."
회의실에 들어가 앞으로의 계획에 관하여 설명했다.
이열치열.
열은 열기로 물리치는 법.
힘은 힘으로 맞서 싸우는 뜻이다.
그리고 정주임의 업무가 모두 끝났다.
그가 대량의 프린터 물을 들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뭐지?"
최부장이 정주임을 보며 물었다.
"우리 회사 앞에 있는 업체 대표들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대표님께서 업체 계약 다 먹을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뭘 먹는다고?"
"저 개새끼들 사업을 다 먹는다고요."
"…!"
계획은 간단하고 단순했다.
머리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그들의 사업을 다 먹어버리는 것.
그게 최선이었다.
"가능할까요?"
그들을 보며 물었다.
"대표님이 원하신다면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이지혜 팀장이 별안간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