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9. (179/200)

식물처럼 살았거든

아버지의 병실에 들렀다.

이제 수술이 며칠 남지 않았다.

동생 도현이는 식당이 바쁘지 않은 한가한 시간에 아버지와 말동무가 돼드렸고, 나는 퇴근 시간 이후에 아버지를 찾기로 했다.

아버지는 폐활량 강화 운동기구로 열심히 호흡하고 있었다.

네모난 투명 케이스 상자 안에 세 개의 공이 있었는데, 호스를 연결해 흡입하면 폐활량에 따라 공이 하나가 올라가거나, 두 개가 올라가거나 아니면 하나도 버겁거나 했다.

"아버지 폐활량이 그것밖에 안 돼요?"

"너 해봐라. 이게 올라가나."

"줘 봐. 한 번 해볼게."

-쓰읍!

있는 힘껏 공기를 들이마시자 공 세 개가 케이스를 부실 듯이 높게 솟아올랐다.

"봤지?"

"담배는 안 피웠나 보구나."

"…아버지는? 평생 피웠죠?"

"크흠."

말해서 뭐하겠나.

술과 담배에 절은 생활을 했을 게 분명하겠지.

아버지가 머쓱하여 운동기구를 옆에 내려놓고 한숨을 푹 쉬었다.

"어떻게 됐어요?"

"뭘?"

"뭐긴 뭐예요. 엄마하고 같이 사는 거."

"…"

아버지가 수술을 끝내고 퇴원한 뒤에 엄마의 선택에 따라 합가하여 살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아버지의 의견도 중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건 엄마의 결정이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답이 없기에 먼저 아버지에게 물어봤다.

아버지의 얼굴이 굳은 것으로 봐서는 서로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한 건가 싶다.

휴우.

사실 과거 이혼하기 전에도 의견 차이도 심하고 성격이 맞지 않았다고 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말이다.

"네 엄마 성질 내 앞에서만 그렇게 부리냐?"

아버지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원래 그랬어. 알잖아. 억척스럽게 살아온 거."

"크흠."

"심하게 싸웠어요?"

"잔소리가 심해. 너희 엄마 올 때마다 잔소리를 얼마나 듣는지 알기나 해?"

잔소리…

단순히 잔소리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잔소리도 애정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버지."

"응?"

"그 잔소리 그립지 않았어?"

"뭐?"

"누군가 옆에서 잔소리해주는 거, 그립지 않았냐고. 난 누군가가 나를 위해 잔소리해 주면 그게 참 좋던데."

물론 거짓말이다.

지영씨의 잔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육아 훈육을 하는 당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

"잔소리도 애정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 그리고 아버지는 잔소리 좀 들어야 돼."

"참."

"엄마 기력도 쇠해. 옆에서 아버지 잘 되라고 잔소리 해주는 거 그것도 체력 소모야. 그런데도 끝까지 하잖아. 만약 아버지가 엄마하고 안 살더라도, 나나 도현이도 아버지 옆에서 잔소리 할 게 뻔해. 어떻게 할래? 선택해 엄마 잔소리, 자식들 잔소리."

"참, 좋은 아들 뒀네."

반평생 홀로 살아왔고, 경제적인 이유와 마찰로 이혼했다.

동전 한 푼에도 싸웠던 시절이다.

이제 그 시절은 갔고,

잔소리라고 해봐야 건강하고 관련된 것들이겠지.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하나 물어봐도 돼?"

"…?"

"저번에 식당에는 왜 찾아온 거야? 도현이 쌀국수 집에."

"그게 궁금해?"

"어. 너무 갑자기 찾아와서는 쌀국수 한 그릇만 비우더니 말 한마디도 없이 나가버렸잖아. 대체 왜 그런 거야?"

"궁금해서 찾아갔다."

"단순히?"

"그럼, 도현이가 식당 차렸다는데, 한번 찾아가 봐야지."

아버지의 속내가 단순 호기심이라고 보기에는 그때 당시의 아버지는 너무 초라했다. 마치 도움을 요청하는 걸인처럼 보였으니까.

"난 그때 아버지가 식당에 찾아왔을 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도와달라는 뜻으로 느껴졌거든."

"…"

"이제 더 이상 버티질 못하겠다. 가족들이라도 힘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

"…"

"내가 가장 원했던 거야. 가족이잖아. 힘들면 같이 서로 의지하고 사는 거잖아."

"그래."

"아버지도 알 거야. 엄마 건강도 썩 좋질 않아. 류마티즈 관절염은 평생 약 먹으면서 살아야 하는 병이야. 서로 잔소리 좀 하면서 살았으면 싶어."

"…"

"그러니까 아버지도 엄마가 잔소리한다고 해도 깊은 뜻이 있겠거니 하고 말아. 괜히 못난 성질 부리지 말고."

"알았다."

-띠리리링

그때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다. 확인해보니 애라씨였다.

며칠 이내에 광고 대본 초안을 작성하여 보내준다고 했었다.

"전화 좀 받고 올게요."

"편하게 받아."

전화를 받기 위해 잠시 병실 밖을 나왔다. 애라씨의 속사포 같은 말이 들렸다.

-도일씨 대본 메일로 보내드렸으니 한번 읽어보세요. 그리고 정주임님이 말씀드렸던 부분도 한번 써봤어요. 총 두 가지 콘셉트로 작성했거든요? 선택은 도일씨가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벌써 다 하셨다고요?"

-지금 메일 읽어보시고 오늘 안에 결정해주세요. 결정되는 데로 현지 촬영도 확인하고 콘티도 그려야 하고 할 일이 많으니까요.

"네 참고할게요. 고생하셨어요. 애라씨."

-대표님도요.

광고 촬영 대본이 완성됐다.

스마트폰으로 메일에 들어가 애라씨가 보내준 파일을 열었다.

총 두 가지 버전이 있었다.

하나는 애라씨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대본이었다.

GN아파트의 경비원에서 시작해서, 물류센터, 대학교 청소부, IT기업에 근무하는 파견 직원, 조선소 등의 근로자들이 흘리는 땀으로 영상은 시작되고,

한 컷씩 약 2초, 그리고 뒤이어 한수아가 등장하여 ‘중간착취, 알고 계시나요?’라는 멘트와 연간 받지 못하는 임금 추정 약 삼천억 원이라는 자료조사 통계와 함께 ‘중간착취가 없는 세상’ 이라는 멘트로 영상은 마무리된다.

다른 한 가지는 정주임의 아이디어를 반영한 대본이었는데, 예전에 얘기했던 기회비용을 건드리는 콘셉트이었다.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한 할아버지가 매달 받는 월급 120만 원을 쪼개어 생활하는 장면으로 영상은 시작된다.

그리고 마트에서 장을 보기 위해 반찬거리를 살펴보지만 결국 포기하고 그 돈으로 손주에게 용돈을 건네는 장면이 나온다.

만약 할아버지가 중간착취 없이 월급을 전액 받았다면, 기회비용의 선택 폭이 넓어지는 것을 보여준다.

중간착취가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과 자료조사 통계와 함께 ‘중간착취가 없는 회사 휴먼매니저’라는 멘트로 영상은 마무리된다.

전자의 애라씨 대본 같은 경우는 다양한 근로자들이 등장하면서 포용력이 넓어짐과 동시에 설득력을 얻을 수가 있었다.

정주임의 대본도 마찬가지, 할아버지라는 인물을 등장시키고, 반찬을 포기하고 손주에게 용돈을 주는 장면이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임팩트는 있었다.

둘 다 괜찮은 대본이라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다.

병실 복도에 앉아 대본을 검토한 뒤 다시 아버지 병실로 들어갔다.

고민에 짙은 표정을 하고 있으니 아버지가 궁금한 듯 내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아, 아뇨."

"회사에서 일 터졌어? 최부장이 사고 쳤냐?"

"아뇨. 아버지. 사실 이번에 회사 광고 촬영을 하려고 하거든요. 두 가지 콘셉트 대본이 왔는데 어떤 걸 결정해야 할지 고민이 되네요."

"줘봐."

"네?"

"한번 볼 테니 줘 보라고."

아버지에게 스마트폰을 건네 대본을 보여드렸다.

한참을 읽어가더니 내게 스마트폰을 다시 건넸다.

"둘 다 별로다. 너무 착해 다들."

"네? 별로라고요?"

의외였다.

"첫 번째 광고는 모호해. 땀 흘리는 근로자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야. 착취를 당하고 사는 놈들이 저렇게 땀 흘리고 일할 것 같아?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 썼구먼. 쯔쯔."

"아…두 번째는요?"

"두 번째도 마찬가지야.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용돈 준다고 반찬을 포기해? 기초 수급자 공익 광고가 아니잖아? 게다가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한데, 그걸 포기하고 손주 용돈을 줘? 손주 애비는 뭐하고?"

"하…"

"착취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땀을 빼앗은 것이야. 빼앗는 놈이 누군지 그리고 왜 빼앗는 구조가 된 것인지, 그런 설명이 없잖아."

"아버지 되게 잘 아신다."

"비록 과거 사업을 크게 말아 먹었지만, 인력을 부렸던 경험이 많아. 그걸 너무 잘 알지. 빼앗는 놈의 성질이나 뺏기며 사는 놈의 성질이나.."

"뭐야?"

아버지가 병실을 둘러보더니 이내 휴먼매니저의 리본이 붙은 화분을 들고 침대에 앉았다.

"잘 봐라. 도일아."

"…"

아버지는 화분에 있는 식물에서 잎 하나를 떼다 버렸다.

"너는 이게 무엇인 거 같아?"

"식물이지."

"식물은 맞지. 그런데 내가 지금 잎을 하나 떼다 버렸잖아."

"그치, 그래도 식물이잖아?"

그러더니, 아버지는 한 줄기에 자라난 잎을 모조리 떼버렸다.

"뭐 하는 거야? 잎을 왜 떼고 그래?"

"그래도 식물이잖아."

"뭐?"

"내가 이 잎을 뗐다고 해도 어차피 물 잘 주고 햇볕에 놔두면 다시 자랄 거 아니냐. 무슨 걱정이냐."

"크흠."

그러더니 아버지는 다시 식물을 창가에 다시 내려놓았다.

"평생을 내가 저 식물처럼 살았거든"

"…"

"떼이고 떼여도 어쨌든 다시 살아나서, 또 떼이고, 그렇게 평생 살았다."

"왜 그러고 살았어?"

"네 말마따나 식물이니까."

"뭐?"

"식물이 무슨 힘이 있어? 누군가 내 잎을 떼 가도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지 뭐."

"…"

"빼앗는 놈들 성질도 그래, 아무리 착취하고 빼앗아도 가만히 있는데 어떻게 그걸 빼앗지 않고 내버려 둬?"

"…"

"중요한 것은 그런 부분을 대부분이 서로 알고 있다는 거다."

"…"

"착취당해 가면서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꾹 참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알기나 해?"

"…"

"그걸 보여줘. 못 배운 애비가 그래도 인생을 살면서 느낀 게 있다면, 이런 노동 시장이 사장들의 양심에 좌지우지된다는 거야. 아무런 법적 구호 장치가 없잖아?"

"맞아요."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느껴는 바도 알겠는데, 보여줄 것이면 확실히 보여줘라."

"네."

아버지와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눈 뒤 병실을 빠져나왔다.

꽤 늦은 시간이었다.

밤 10시가 돼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얘기한 부분을 곱씹었다.

‘알면서도 참고 사는 거’

‘불안을 안고 사는 거’

한참의 고민 끝에 대본을 전면 수정했다.

좀 더 호소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에 애라씨가 보내준 대본에서 근로자들이 땀 흘리며 일하는 장면을 바꿨다.

경비원이 해고를 당하는 장면과 동시에 그의 실제 월급과 중간착취로 부당하게 떼인 금액이 동시에 표현되게 바꿨고,

물류센터 근무자가 부상을 당해 절뚝거리며 홀로 집으로 돌아갈 때, 그의 실제 월급과 떼인 금액을 표시했다.

그 외, 조선소, 청소부, IT 직원, 콜센터, 공장, 등 각자 부당한 일을 겪은 장면에서 월급과 공제된 금액을 표기했다.

그리고 두 번째 정주임의 아이디어에서 할아버지가 반찬을 포기하고 손주에게 용돈을 주는 장면은 전면 수정하여, 평생 파견과 도급 직원으로 근무했던 할아버지의 실제 지급된 급여와 착취 금액을 산출하여 광고상 이미지로 보여주고자 했다.

그리고 착취된 금액을 온전히 받았으면 그에 따른 기회비용을 표현하고자 했다.

훨씬 더 깔끔했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부분들이 잘 표현된 것 같았다.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애라씨에게 전화했다.

"애라씨? 안자고 계시죠?"

-일하고 있죠. 광고 대본은 선택하셨나요?

"네. 선택했습니다."

-뭐죠?

"두 개 다 찍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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