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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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와 간단히 먹을 안주를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

만약 이번 광고를 성공시킨다면, 많은 간접 노동자들이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휴우.

그런데 다른 업체들의 반감이 두렵기도 하다.

본인들의 밥줄이 걸린 일인데, 업계 비밀 같은 중간착취에 관련된 이야기를 광고에 풀어 버리면 반감을 살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어쩔 수 없다.

잘못된 건 바로 잡아야지.

집으로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잡고 돌리려는 찰나, 혹시 한수아를 먼저 만나는게 어떨까 싶었다.

옆집으로 몸을 돌려 벨을 눌렀다.

-딩동.

현재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는 듯 대꾸가 없었다.

촬영을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그때, 누군가 승강기를 타고 1층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9층에 멈춰 섰다.

한수아일 것 같았다.

승강기 문이 열렸고,

역시 한수아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수아씨."

"어? 안녕하세요."

그런데 술이 얼마나 취했는지 혀가 매우 꼬여있는 상태였다.

대화는 무리라는 판단.

그냥 집에 들어가려는 찰나,

"혹시, 도일씨?"

"네 왜요?"

"저랑 술 한 잔 하실래요?"

그녀가 내가 들고 있는 맥주 봉투를 보며 말했다.

"많이 취한 것 같은데요."

"아니요. 안 취했어요."

한수아가 마른세수를 하며 본인이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똑바로 뜬 눈으로 강조했다.

"저도 할 얘기가 있는데 괜찮으시면 우리 집에서 한잔하시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사실 떨떠름했다.

한참 학교 후배이기도 하고, 과거 클럽 춤 사건 이후 감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한수아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굳이 그녀를 회사 광고 모델로 쓰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그래도 직원들이 원하니까.. 의견은 반영해보고 싶었다.

"한수아씨를 우리 회사 광고모델로 쓰고 싶다는 직원들 의견이 있어서요. 어떻게 생각해요?"

"저를요? 무슨 회사인데요?"

"뭐, 일자리 소개해주고, 인력 파견해주고, 도급 맡아서 일해주는 회사요."

"그런 회사가 있어요? 아…우리 회사 매니지먼트 같은 건가 봐요?"

"예? 맥락은 좀 비슷하네요."

"그런데 왜 하필 저죠?"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수아씨냐…우리 직원 중에 한 명이 당신 팬입니다. 그게 전부에요."

단순하게 별다른 이유가 없다고 하니 한수아의 입 꼬리가 슥 올라갔다.

"겨우 그것 때문에요?"

"제가 직원들 의견 반영은 잘해주는 편이거든요."

"좋은 사장님이시네."

"…"

"그런데 제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에요. 어쨌든 CF라면 환영이긴 한데, 제 이미지도 중요하니까. 대기업이라면 모를까…"

"대기업…풉."

"지금 비웃었어요?"

"비웃었다고 하기보다는 본인 위치를 너무 잘 알고 계셔서요. 수아씨는 대기업하고 잘 어울리죠. 암요. 그런데 몇 달 전에 찍은 치킨CF는 대기업이 아니었던 것 같던데."

"지금 비꼬는 거 맞죠?"

"…"

거들먹거리기에 비꼬았다고 얘기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설마 예전에 제가 대문에 침 뱉어서 이러는 거예요?"

"네? 침이요? 아…맞아. 그때 수아씨가 저희 집 대문에 침 뱉었죠? 잊고 있었네."

"풀죠."

"풀자?"

"어차피 서로 실수한 건 맞잖아요. 저도 대외적인 이미지가 중요한데, 서로 시한폭탄 떠안고 있는 거 불안하거든요."

"사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수아씨 이미지도 잘 모르고 여기에 이사 와서 수아씨 알게 된 거거든요. 우리 회사 직원이 수아씨 추천하기에 한번 진지하게 만나서 얘기해 보고 싶었는데, 우리 회사가 대기업은 아니더라도,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한 회사라서요. 그냥 없던 일로 하시죠."

"없던 일로 하자고요? CF를?"

"수아씨도 이미지가 중요한 만큼, 우리 회사도 이미지가 매우 중요해서요. 이거 아쉽게 됐네요."

"하!"

"그리고 술 좀 그만 마시면 안 될까요? 지금 벌써 소주 두 병째 깠는데."

취한 듯 취하지 않은 듯 아슬아슬한 선을 간신히 버티며 외줄 타기를 하는 모습이다.

한수아 본인은 취하지 않았다며 소주를 벌컥 들이켰지만, 홍조가 만개했고 혀가 서서히 꼬이는바 이제 옆집으로 돌려보내야할 것 같았다.

"이제 그만 들어가죠."

"잠깐만!"

테이블에 깔린 술병과 마른안주를 정리하려는 찰나 한수아가 선서하듯 손바닥을 들며 말했다.

"뭐에요?"

어이가 없다는 투로 그녀를 바라봤더니, 역시 황당하기 그지없는 말을 내뱉었다.

"한수아가 취했다? 아니, 안 취했거든요?"

"취한 거 맞아요. 오징어를 앞니로 뜯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러다 이빨 나가니까 적당히 먹고 들어가죠."

"예전부터 그랬거든요!"

"저는 그런 사람 처음 봅니다. 앞니 나가요. 어쨌든 옆집 살고 있어서 친근하게 좀 대하고 싶어서 술자리 만들고 싶었어요. 그게 전부에요."

"겨우 그게 전부에요? 늦은 밤에 옆집 앞에 서성거리면서 술 한 잔 하자는 게 다른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결혼할 사람 있어요."

"그게 중요한가?"

"네. 중요해요."

"치우기 전에 한 가지 할 게 있어요."

"뭐죠?"

한수아가 스마트폰을 꺼내 술자리를 찍어댔다.

"지금 사진 찍는 거예요?"

"옆집 남자와 첫 술자리를 기록에 남겨야죠."

-찰칵

-찰칵

"인별그램에 올린다고요?"

"네. 왜요? 제 마음이잖아요?"

한수아가 테이블 위 소주병과 맥주 캔을 알맞고 예쁜 구도로 찍어대며 인별그램에 업로드 했다.

업로드하자마자 수도 없이 올라오는 댓글들을 하나씩 살폈다.

ㄴ 수아야, 옆집 아저씨라니 무섭다ㅠㅠ 우리 순수한 수아.

ㄴ 이거 기사 나는 거 아님? 옆집 남자하고 술 먹는다닠ㅋ ㅠㅠㅠㅠ 수아야 정신 차려, 또 취했구나.

ㄴ ㅋㅋ 미쳤네 내일 기사 [한수아 옆집 남자와 술주정]

ㄴ 옆집?………

ㄴ 수아야,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는구나. 오빠가 술 사줄게.

ㄴ 한수아 정신 나갔네. 모르는 사람하고 술 먹는 거임?

댓글을 보고 있자하니 괜한 오해를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글 내려요."

"싫은데요? 그리고 이미 수십만 명이 봤을 텐데요."

"수십 만?"

"저를 따르는 팔로워들이 몇 명인 줄 아세요?"

"몇 명인데요?"

"구백만 명입니다! 구백만 명!"

한수아의 실제 인별그램 팔로워 수는 현재 구백만 명이었다.

구백만 명…

현재 내 인별그램 팔로워 수는 백 명도 채 되질 않는다.

이래서 연예인들 개런티가 수억씩 하는구나 싶다.

"제가 한번 떠들면 모든 게 완판 되거든요. 몇 달 전에 찍은 치킨 CF도 업계 5등에서 1등으로 올라간 건 아시죠? 이제야 제 가치를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글 먼저 내려줘요. 제가 직원들하고 얘기해보고 수아씨 회사에 연락드릴게요."

한수아를 돌려보내고 홀로 식탁 테이블을 정리하다가도 수시로 한수아의 인별그램을 살폈다.

하…

결국 글은 내리지 않았다.

댓글이 미친 듯이 올라온다.

옆집 남자의 정체를 파헤치는 네티즌 수사대도 이미 파견된 상황.

구백만 팔로워의 위엄이 이런 건가.

패착이다.

한수아를 집에 불러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괜한 실수였던 것 같다.

마음이 복잡한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괜한 오해를 받는 게 싫었다.

결혼할 사람도 있는데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될 시기 아닌가.

게다가 가장 큰 변수라면 한수아를 팔로워한 사람 중에 가장 못미더운 놈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명석이.

유일하게 옆집 남자의 정체를 알고 있는 녀석.

이 녀석은 한수아의 팬이다.

과거 옆집에 한수아가 산다는 걸 알게 된 이후 수시로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갔었다.

만약 명석이가 한수아를 여태 팔로워 했다면, 조만간 높은 확률로 전화가 올 거라는 게 내 예상이었다.

아니, 빠르면 지금이라도.

-띠리리링

역시나 명석이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일단,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쌍욕부터 날려줘야겠다.

"너는 X발 아주 나쁜 새끼야."

-뭐 갑자기?

"너 한수아 인별그램 보고 연락한 거 맞잖아 새끼야. 평소 연락 한 통 없던 놈이...내가 궁금하지도 않았냐?"

-너도 똑같아 새꺄. 내가 연락해야 되냐? 네가 하면 되잖아 새꺄.

"바빴다고."

-아이고, 지랄, 한수아랑 술 처먹을 여유는 있고? 너 맞지? 한수아 인별그램에 옆집 남자가 너 맞잖아 새꺄.

"맞아."

-와, X발, 미쳤네. 나 좀 불러주지

"사업차 얘기할 게 있어서. 다른 이유는 없었어."

-무슨 사업?

"우리 회사 광고좀 찍으려고 했거든, 한수아 이미지면 괜찮을 것 같아서 광고 모델로 생각하고 있었지."

-야.

"응?"

-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냐.

"뭔데?"

-애라씨 방송국 관뒀거든, 지금 광고회사 차리려고 하는데, 하아…도일아. 너랑 나랑은 정말 평생 가야 될 것 같다.

"제수씨가 왜 회사를 관둬?"

-예전부터 퇴직금으로 광고회사 차리고 싶어 했거든, 그게 꿈이었데. 그리고 시발 알잖아. 매번 촬영한다고 지방 돌아다니기도 힘들고, 실적 압박에 스트레스가 많아서 애 만들 시간이 없다 썅. 이번 기회에 확 접어버렸지 그냥.

"참…그러면 너는 뭐해?"

-나도 당연히 방송국 때려 쳤지. 애라씨랑 광고회사 같이 하려고. 흐흐. 도일아, 이제 나도 사장이다.

"네가 사장이라고? 아…그러면 영 미덥지 못한데."

-내가 사장이겠냐. 그냥 이사라고 해줘.

"내일 미팅하자."

-진짜지?

"야, 애라씨가 방송국 경력이 20년 넘잖아? 너도 10년 넘었나? 그리고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이럴 때 서로 도움 주는 거지 뭐."

-흐흐, 고맙다.

"그리고 애라씨나 너나 광고 경력은 없더라도 연출 경력은 많으니까. 믿을 수 있는 거지 뭐. 내일 우리 회사로 올래?, 아, 아니다. 애라씨가 결정해야 될 일이지? 한 번 물어보고 얘기해줘."

-물어보나마나 지금 밥줄 끊기게 생겼는데 무조건 해야지. 내일 들를게. 고맙다 친구야.

"얼른 자라."

-야, 그리고 너 한수아랑 밤에 너희 집에서 술 먹은 거 지영씨가 알면 X되는 거 알지?

"…너 X발, 입조심 해라 진짜. 죽는다."

-흐흐, 내일 좋은 결과물 내보자고.

"하, 개새끼 진짜. 끊어라."

-깨톡으로 회사 홈페이지 보내줄게 한번 봐.

-뚝.

애라씨와 명석이가 설립한 광고회사는 휴먼디렉터즈.

휴먼? 아마, 명석이 녀석이 내 회사 이름을 벤치마킹하여 만든 것 같았다.

설립 초기라 대형 TV 광고는 없지만, SNS 마케팅, APP, 너튜브 등의 광고는 꽤 있었다.

애라씨 정도면 충분히 믿을 만한 사람이다. 능력이야 뭐 방송국 경력으로 충분히 밀고 나갈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건 애라씨는 완벽주의자라는 것.

그게 어찌나 심한지 그들의 결혼식 축가를 노래방에서 리허설하며 행동과 손짓까지 코칭을 받았었다.

그런 사람이 내 편이 되면 아주 든든하겠지. 흐흐.

다음 날 아침 애라씨와 명석이를 만난 곳은 휴먼매니저 본사의 회의실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덕에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근황을 서로 물었다.

본격적으로 회사 광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즈음, 애라씨가 물었다.

"어떤 광고를 원하시는 거죠? 목적이?"

"사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회사를 홍보하여 매출을 상승시킨다는 단순한 광고 목적은 아닙니다."

"네? 그럼 뭐죠?"

"아마, 명석이도 경험해서 잘 알 겁니다."

"내가? 내가 뭘 경험해?"

"명석이 너도 방송국에서 근무했을 당시 중간업체 끼고 입사했었지?"

"맞아. 당시는 대부분 그랬지. 카메라 보조 알바였거든."

"그때 네가 얼마 받았지?"

"120만 원 정도? 그런데 갑자기 왜?"

"120만 원이라고? 아무리 10년 전이라고 할지라도 방송국이면 야근은 밥 먹듯이 하질 않았나? 내 기억에는 그런데."

"맞아. X나게 했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X발 어떻게 버텼는가 싶다."

"120만 원 월급이 적당했다고 생각해? 네 스스로?"

"절대."

내가 명석이와 대화를 하는 걸 듣고 있던 애라씨가 말문을 열었다.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방송 작품 제작 경험이 있고 경력 20년이면 방송국 틈새까지 다 꿰차고 있겠지.

그녀가 펜대를 굴리며 말했다.

"중간착취에 관해서 찍고 싶은 건가요?"

"네. 맞아요."

애라씨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곤 명석이를 바라보며 불편한 내색을 보였다.

이걸 방송 광고로 내보내기에는 심의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 비판적이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있다면 심의 규정에 어긋나 티브이 광고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

애라씨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했는데,

결론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

"명석이가 10년 전 다녔던 회사는 현재 자회사까지 만들어서 이중 착취 구조를 만든 것 같더라고요. 이런 착취의 관행을 광고를 통해 알리고 싶어서요. 그게 주목적입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든 없든, 잘 찍어만 주시면 제가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갈 길만 잘 가면 돼 성희야.

광고 컨셉을 잡아야 했다.

공익 광고처럼 보이는 회사 광고라고 할까. 대기업 광고들을 몇몇 벤치마킹 해본 결과 결국은 이미지 메이킹이 대부분이었다.

평범한 캐치프라이즈가 많았다.

캐치프라이즈란 선거나 광고 등에서 기발한 문구를 통해 시선을 이끄는 것이었다.

‘사람이 우선인 회사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회사다.’

‘워라벨이 존중 받는 회사.’

등등, 뭐 새로울 것 없이 뻔한 정보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뭔가 기발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끄는 슬로건이 없을까 고심하다가 결정 된 슬로건은 이러했다.

‘중간착취가 없는 회사.’

중간착취라는 생소한 단어와 착취라는 자극적 단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유발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사회 비판적이지도 않고 다른 회사를 비방하지도 않은, 온전히 우리 회사의 장점만 내세울 수 있는 슬로건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될 것도 없다.

정주임이 이번 광고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피력했기 때문에 다른 직원보다 정주임에게 일을 맡겨보고 싶었다.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정주임과 현준이, 애라씨와 명석이, 한수아와 회사 관계자였다.

회의실은 조용하기만 했다.

서로 기 싸움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인 걸까.

현준이와 명석이만 표정이 밝았다.

한수아의 팬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비록 정주임이 현준이의 옆구리를 찌르는 걸로 봐서는 또 한 소리 들을 것 같기도 했지만 말이다.

"휴먼매니저 관련해서 저희 측에서도 많이 조사하고 찾아봤습니다. 한수아의 깨끗하고 청량한 이미지가 휴먼매니저 회사와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허허."

회사 관계자의 입에 발린 칭찬으로 회의는 시작됐다.

"저희도 그간 한수아 배우가 쌓아온 이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봉사활동도 많이 하셨고, 기부도 많이 하셔서요."

"과찬이십니다. 허허."

"광고 컨셉 도안을 보시면 우리 회사가 강조하고 싶은 문장은 단 한 가지입니다. 중간 착취가 없는 회사와 더불어, 그런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죠."

"중간착취라면 어떤 부분 말씀이신지?"

회사 관계자가 물었다.

내가 입을 열려는 찰나, 한수아가 대뜸 회사 관계자를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중간착취 몰라요?"

"…?"

"제가 회사에 벌어다 주는 금액의 40%는 먹죠? 그게 착취라는 거예요 팀장님."

"허허, 참. 꼭 말을."

회사 관계자는 한수아의 거침없는 발언에 진땀을 뺐다.

"이 회사가 참 마음에 드는 이유가 그거예요. 우리 같이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 보호해주는 그런 회사 아닌가? 그죠 대표님? 이참에 매니지먼트 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회사 이름도 딱 좋네요. 휴먼매니지먼트 호호호."

"하하…수아씨가 힘이 없는 건 아니죠. 그리고 그건 중간착취가 아니라……"

"그건 한수아씨가 계약을 잘못해서 그런 거겠죠."

애라씨가 한수아를 보며 말했다.

한수아의 눈이 토끼 눈처럼 커지며 애라씨를 바라봤다.

"네?"

"대표님이 말씀하셨던 중간착취는 계약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요. 내가 당신의 수입에 30%를 먹든, 20%를 먹든, 그런 계약서 자체가 없다고요."

"아…"

"근로자가 받아야 할 몫을 일부 공제하여 중간이득을 취하는 경우를 뜻하니까, 이 문장 그대로 외우고 있어요. 그래도 회사 광고 촬영하는데 기본 이념은 알고는 있어야겠죠?"

"…"

애라씨가 콕 집어 설명하니 한수아가 입을 꾹 다물었다.

아주 정확한 설명이었다.

"그런데, 김애라 피디님? 예전에 우리 한번 뵙는데. 기억하시죠?"

한수아가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애라씨를 보며 말했다.

"알아요. 한수아씨 고등학교 때 촬영한번 했었죠."

"호호. 기억하시네요."

애라씨는 수년 전 휴먼 극장 연출 당시 시골 마을에 사는 5남매 촬영했었고, 당시 5남매의 한 명이 한수아였다고 한다.

얼굴도 예쁘고, 말도 잘하고, 공부도 꽤 했기 때문에, 당시 애라씨의 방송으로 한수아가 유명해질 수 있는 계기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은인과 다름없다고 할까.

"시골 여자아이가 출세했네. 그때는 완전히 아가였는데."

‘아가’라는 표현에 한수아의 표정이 다소 일그러졌다.

"키도 컸고, 돈도 잘 벌죠."

"요즘도 우유에 홍초 타서 드세요?"

"아니요?"

"식판에서 김치 빼먹더니, 요즘도 편식하고?"

"잘 먹는데요?"

"아버님은? 휴먼 극장 촬영 당시 연세가 꽤 되셨는데. 지금은 잘 계시고?"

"네. 아직도 농사하고 계세요."

"아버님이 힘들게 자식 농사 잘 지으셨는데, 수아는 왜 그럴까?"

"제가 뭐 어때서요."

"농담이야. 앞으로 친해지자고."

애라씨 특유의 톡톡 튀는 말투와 뒤끝 없는 쿨한 끝맺음에 한수아가 다소 분해 보였다.

손부채질하며 본인의 열을 삭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애라씨의 카리스마에 이미 녹다운이다.

회의는 광고 촬영 스케줄 협의부터 시작했다.

우리가 원하는 날짜는 최대 한 달 이내, 하지만 한수아의 영화 촬영이 걸려 있었다.

하아,

시작부터 난관이다.

최대한 빠른 기간 내에 촬영하고 싶었는데, 현재 한수아의 영화 촬영으로 두 달 뒤나 광고 촬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두 달이면 너무 늦습니다."

내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특히 350만 명을 직원으로 고용하라는 이번 퀘스트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급히 해야만 했다.

"대표님, 허허, 너무 급하신 거 아닙니까? 저희 한수아 배우, 어디 안 도망갑니다.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해나가 보시죠. 대표님."

"그게 아니라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지…"

모두가 내 얼굴을 바라봤다.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네?"

물론 살리고 싶은 사람은 나의 아버지였다. 휴먼매니저의 마지막 퀘스트를 달성하면 아버지를 고칠 수 있는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이해 못하겠지만…

"지금도 중간 착취에 허덕이는 근로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루 빨리 광고내서 사실을 알려야죠."

"아…"

"두 달은 너무 늦습니다. 팀장님. 한수아 영화 촬영분을 미리 앞당겨서 찍으면 안 될까요?"

"그게 저희가 조율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확실히 말씀해주시죠. 정말 불가능한 겁니까?"

"…"

"불가능하다면 저희 측에서 한수아를 기다려줄 여유가 없습니다."

차라리 다른 배우를 쓰면 썼지, 한수아를 위해 두 달이나 허비하는 건 불필요한 소모다.

"잠깐만요."

팀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문을 열었다. 그들도 한수아의 개런티를 포기 못하겠지.

"일단 영화 제작사 측에 협조 요청은 해보겠는데, 이게 아시잖습니까."

"…?"

"맨입으로는. 쓰읍."

"압니다. 가능하게만 만들어 보세요."

"알겠습니다."

한수아의 영화 촬영분만 미리 앞당겨 찍으면 촬영 콘티가 꼬이고, 그만큼 영화 촬영이 딜레이되며 제작사 측에서 손해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한 달 내에 찍을 수만 있다면 그 정도 즘이야 상관없다.

앞으로 광고를 맡아줄 애라씨와 명석이는 촬영 스케줄과 리허설, 광고 콘티를 작성하여 다음 주에 다시 만나 회의하기로 했다.

촬영 스케줄 협의는 얼추 마무리됐고, 개런티는 약 8억,

8억이면 현재 연예인들 중에서도 탑5 안에 드는 금액이었다.

"8억…"

정주임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말했다.

"정주임?"

"네?"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뇨."

회의 내내 말도 없던 정주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자 제각기 뿔뿔이 흩어졌다. 회의실에 홀로 남은 정주임이 마저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정주임?"

"네?"

"따라와."

홀로 서류를 정리하던 정주임을 이끌고 회사 옥상으로 향했다.

정주임에게 음료수 한 캔을 건넸다.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옥상 난간에 팔을 기대어 섰다.

"연예인들 팔자는 참 신기한 것 같아요."

정주임이 음료수를 마시며 말했다.

"뭐?"

"8억이면, 남들 평생 일해도 못 버는 금액인데, 한 번에 8억, 참 인생에 회의감에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침울했구나?"

"아…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요."

"그럼 뭔데?"

"대표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한수아는 아닌 것 같은데요?"

"왜?"

"하아, 제가 이런 말씀 드리면 대표님께서 뭐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싸가지 없어서요."

"싸가지?"

"그렇잖아요. 우리 회사 이미지 실추되면 어떡해요."

"걔 원래 싸가지 없어. 알아 나도. 그런데 사람들은 모르잖아?"

"…"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수아가 가진 능력이 너무 뛰어나."

"무슨 능력이요? 대표님이 참 보는 눈도 없다. 걔가 무슨 능력이 있어요?"

정주임이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팔로워가 구백만 명이더라고."

"네?"

"인별그램, 팔로워 구백만. 대단하지 않냐? 걔가 말 한마디를 내뱉으면 구백만 명이 본다는 거야. 참 대단해."

"…"

"엄청난 능력 아니냐? 내가 글 한번 쓰면 구백만 명이 읽고 답글을 달아주는 게?"

"그렇긴 하네요."

"걔가 그러더라고, 본인이 말 한마디 내뱉으면 그게 완판이 된다고."

"…"

"연예인들은 정말 우리하고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더라고. 8억, 크지, 많이 커. 그런데 구백만 팔로워면 그 정도 받아야지 않나?"

"아…"

"나도 걔가 좋은 건 아냐. 나랑 안 좋은 과거도 있고, 지영씨가 알면 난리칠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너무 아까워. 한수아의 능력이 너무 부럽고 나도 갖고 싶거든."

"구백만…많긴 하네요."

"넌 몇 명이냐?"

"저요? 백 명도 안 돼요."

"크크. 그게 뭐가 중요하냐. 실제로 얼굴 맞대고 만나는 사람이 중요한 거지 뭐."

"그것도 다섯 명이 안 될 것 같은데요?"

"그게 뭐가 중요해. 한 사람만 제대로 만나면 되는데 뭘."

"현준이?"

"크크크크."

정주임의 기분을 알 것만도 같다.

한수아와 정주임은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구백만 팔로워, 게다가 방송 한 번에 수억씩 벌어들이지만, 정주임은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지하철을 두 번 환승해서 회사에 도착하는 친구다.

부러운 감정은 당연하고, 질투심도 나겠지.

"정주임"

"네?"

"어렸을 때 내 꿈이 뭔 줄 아냐?"

"…?"

"그냥 평범한 내 방 하나 갖는 거였거든."

"아…"

"그래서 딱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자취하기 시작했을 때, 그냥 나는 그때부터 성공한 거야. 온전한 내 방이 있고, 내가 살림하고, 내가 꾸리는 집이 있다는 거, 그게 꿈이었으니까."

"참 소소하시네요."

"진짜야. 그때부터 나는 목적을 이룬 거야. 그래서 이미 꿈을 이룬 사람이 뭘 더 바라고 살아?"

"흐흐흐."

"그런데 내 방을 온전히 가꿔 나가는 거, 그게 참 힘들더라."

"…"

"돈을 벌어야 하고, 매일 쓸고 닦아 줘야 하고, 이미 목적은 이뤘는데, 참 할 일도 많더라고…그래서 내가 그렇게 아끼고 좋아했고, 매일 쓸고 닦던 그 방을 나와 버렸어.."

"아…"

"그랬더니 마음이 편해. 그렇게 이사를 수없이 다녔더니 이제는 그런 꿈도 다 사라져 버리고 그냥 일상이 돼 버린 거야."

"…"

"우리 갈 길만 잘 가면 돼 성희야. 언젠가 네가 바랐던 삶이 일상이 될 날이 올 거야."

"네.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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