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이와 이 부분에 관해서 상의를 했는데 부담주지 말고 엄마의 결정과 뜻대로 따르자고 했다.
엄마가 원하는 노후의 삶과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는 건 부모님 각자의 노후를 외롭지 않게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지 그뿐이다.
아버지의 고시원에서 챙겨왔던 가족사진을 병상 옆 탁상에 올려놓았다.
아버지가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며 내게 말했다.
"버릴 줄 알았더니. 챙겨 왔구나."
"이걸 어떻게 버려요. 하나 밖에 없는 가족사진인데."
"세월이 참 빠르네."
"그러니까요. 사실 가족사진을 어떻게 찍었는지 기억도 나질 않아요."
"네가 6살 때였지 아마.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울고불며하며 떼를 쓰기에 마침 직장도 쉬는 날이라 다 같이 여행을 갔었지."
"아…"
"옛날부터 그랬어. 뭔가에 얽매이는 걸 굉장히 싫어했는데, 지금도 그러냐?"
"아뇨. 지금은 안 그래요. 그냥 가족들이랑 있고 싶어서 떼를 썼겠죠. 그래서 가족사진도 찍었잖아요?"
"유일한 가족사진이다. 네 엄마도, 너희들도 없을 거다."
"알아요. 저도 처음본 사진이니까. 다음번에 가족사진이나 한번 찍죠."
"그러자. 내가 알아보마."
"네."
아버지가 일어나 가족사진을 볕 잘 드는 곳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더니 직접 까서 내게 건넸다.
"날이 덥지? 먹어라."
"네. 아버지."
아버지가 건넨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다리를 뻗고 앉았다.
맛있었다.
"맛있냐?"
"네."
"천천히 먹어라. 찬 거 빨리 먹으면 설사한다."
"알아요."
아이스크림을 물고 빨고 있을 때 아버지가 창가에 서서 한강 다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한강 다리 청소해본 적 있냐?"
"네? 아뇨?"
"한강 다리 보니까 생각이 나서 그래. 쓸고 담고 하는데 한 나절이 걸리더라. 한강 다리가 어찌나 긴지, 그때 실감했다니까."
"흐흐. 혼자서요?"
"그럼. 혼자 했지. 한강을 이렇게 보니 새삼 그때 생각이 난다."
그때
내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지영씨 부모님 뵙는 날]
알람 내용을 확인하자 아차 싶었다.
주말에 지영씨 부모님과 선약을 잡았었다.
아버지가 난처해하는 내 표정을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야?"
"아, 아니에요 아버지. 제가 선약을 잡아 놓은 걸 깜빡했네요."
"…젊은 놈이 벌써 약속을 잊어먹으면… 얼른 가봐."
"네. 아버지."
발길을 돌려 병실을 빠져나가려는 찰나,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의 여유는 있었다.
아버지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사실 밤낮을 새서라도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으나, 아버지 컨디션 난조가 심해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아버지.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요."
"…?".
빚이 얼마였고 어떻게 갚았는지, 그리고 언제 상환했고 누구에게 빚졌는지.
단순히 궁금했다.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연을 풀어냈다.
일대기를 가만히 듣다가도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시간이 꽤 빠르게 흘러 이제 병실을 빠져나와야 할 때였다.
"이따 저녁에 도현이가 올 거예요. 필요한 거 있으면 전화 주세요. 사 갈게요."
"알았다. 얼른 들어가 봐. 도현이 올 적에 손주도 오는 거지?"
"흐흐, 같이 오겠죠. 들어가 볼게요. 아버지."
"그래."
마음 같으면 아버지하고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이미 지영씨가 카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해요. 곧 도착해요 지영씨.]
[천천히 와요!]
제대로 샤워도 하질 못했고 꾸미지도 못했다.
차량 내부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내 몰골은 반쯤 삭아있었고,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탓에 다크서클이 짙어 있었다.
그래도 가야지 어쩌겠나.
성북구의 한 카페로 향했다.
지영씨가 걱정스러운 투로 내게 말했다.
"어디 아파요?"
"아뇨. 며칠 사정이 있어서 잠을 잘 못 잤네요."
"무슨 일이요?"
지영씨가 심란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부모님을 뵙는 날에 이런 몰골로 나타났으니, 걱정 반 짜증 반은 섞였겠지.
"아버지를 만났어요."
아버지 얘기를 꺼내자 지영씨가 다소 놀란 듯 보였다.
"아버지요?"
"네."
지영씨는 믿기 힘들다는 투로 내게 다시 물었다.
"도일씨가 아버지를 만났다고요?"
아버지를 극도로 싫어하고 증오했기 때문이었다.
그간 지영씨에게 자주 그런 마음을 표했었다.
아버지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 증오했다.
말도 섞기 싫었고 우연히 마주치기도 싫은 양반이었다.
그런데 왜 내가 이렇게 아버지 곁을 머물게 된 걸까.
지영씨가 말했다.
"어쩌면 도일씨가 가장 원했던 걸 수도 있어요."
"네?"
"강한 부정은 긍정을 의미하잖아요. 도일씨가 아버지를 원망했던 마음보다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날이면 그 원망을 녹여내고 싶었던 거겠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어쩌면…"
"네?"
"아버지의 모습에서 제가 그간 봐왔던 사람들이 투영되지 않았나 싶어요."
"아…"
"원망보다는 안쓰럽고 안타깝다. 그간 얼마나 힘들었을까."
"…"
"너무 잘 알거든요. 아버지가 물류센터에서 근무했다는 것부터, 경비업체, 건설 현장,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질 못하고 고시원에서 김치하고 밥을 훔쳐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아…"
"억장이 무너지죠."
"아버지는 어때요?"
"사실…좀 안 좋은 병에 걸리셨어요. 췌장암이요."
"…"
"평생 고생만 하다가 암에 걸렸는데, 아버지가 원망스럽더라도, 도리는 해야 될 것 같았어요. 지영씨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아버지, 정말 배운 거 없고 학력도 낮고 직업도 변변찮았거든요."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도일씨."
"사실 저는 신경 쓰여요. 이제는 아버지에게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그렇게 살아온 환경에 화가 나요. 아버지가 머물던 고시원에 갔더니 정말 닭장처럼 돼 있더라고요. 침대가 무슨 관짝 사이즈예요. 거기서 평생을 사셨어요. 그리고 빚? 아버지는 빚 갚을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몸으로 때웠다고 하더라고요. 어디 여행지 펜션촌 식당 같은데서 밤낮 구분 없이 일을 했데요. 거기서 수년간 일을 해서 몸으로 때웠고 다 갚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자 남았다고 또 몇 년을 허송세월 보냈어요. 남들은 왜 그렇게 무식하게 살았냐며 혀를 차겠지만, 아버지는 그게 최선인 줄 알고 살아왔던 거예요. 그나마 밥 주고 반찬 주고 숙식은 제공해주니까요."
"…"
"지영씨도 이해가 안 될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도 않겠죠. 그런데 저희 아버지가 그렇게 살아왔어요."
"…"
"그거뿐이겠어요? 몸으로 때운 수년 그리고 빚을 다 갚고 취업을 했는데, 1년간 근무했던 경비원도 업체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어요. 다들 그러려니 하죠. 원래 법이 이런가보다 하고 사는 거죠. 중간에서 떼먹는 수수료만 30%더라고요. 그나마 우리 회사 소속으로 들어왔을 때는 나아졌지만, 과거 아버지의 삶은 완전히 착취당하고 살아온 인생이에요."
"…"
"그 착취의 결과가 췌장암이었고요. 너무 후회스러워요. 지난 10년간 아버지는 말단 하청 직원이었고, 저는 대리에서 과장이 됐고 이제는 회사 대표가 됐어요. 그동안 아버지의 삶이 변화된 게 있나요? 이제는 이런 생각까지 들어요.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살았다. 그래서 이런 벌을 받는가 보다 하고요."
"하…"
속에서 울분을 토해내자 지영씨가 내 어깨를 쓰다듬어줬다.
속 얘기를 털어낼 수 있는 사람은 지영씨밖에 없었다.
"아버님이 도일씨 회사에서 근무했을 때 그나마 본인의 삶에 위안받았을 거예요."
"…"
"도일씨가 직원들에게 대했던 거, 사소한 거 하나하나 복지를 위해 신경써준 거 분명히 아버지도 받았을 거예요. 아버지가 그걸 보면서 많이 뿌듯해 하셨겠죠."
"저는 그것도 모르고…"
"어떻게 알아요? 수천 명의 직원이 있는데. 도일씨가 최선을 다한 만큼 아버지도 힘이 됐을 거예요."
"…"
"그러니, 너무 후회하지 마세요. 앞으로 시간 남았잖아요. 저도 옆에서 힘이 돼 줄 테니 같이 이겨내 보죠."
"고마워요 지영씨."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지영씨와 카페를 나와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이제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질 때쯤 부모님 댁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빈손으로 갈 수는 없어 지영씨의 추천으로 소주 네 병을 샀다.
아버님은 평소 술을 좋아하시는데, 요즘 어머님 눈치를 봐서 술을 못 드신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마음 편하게 드실 수 있을 거라며 지영씨가 내게 힌트를 줬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마중 나와 나를 반겨 주셨다.
내부로 들어가니 역시나 이번에도 어머님께서 만찬을 차려 놓으셨다.
음식 개수는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랄 정도였다.
예전에는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면, 이번에는 거실에 큰 상을 펼쳐놓고 음식을 차리셨다.
집안에 들어오자 지영씨의 동생 지훈이가 나를 반겼다.
"어서들 앉아."
아버지가 먼저 자리에 앉았고, 벨트를 미리 풀고 단추를 풀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한껏 들떠버린 덕에 어머님 앞에서 벨트를 푸는 쇼를 보여줬다.
다행히 어머님이 귀엽게 봐주셨다.
식사를 하는 동안 예전과는 달리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지훈이의 은행 이야기부터 지영씨의 상담실 이야기,
저마다의 이야기가 오가며 공감하고 함께 위로해주고 화내주고, 그런 시간이 오갔다.
그저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어색했다.
가족이란 게 원래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지영씨와 지훈이의 이야기가 끝내고 이제 내 차례가 다가온 것 같았다.
아버님이 내게 질문했다.
"요즘 하는 일은 어때. 잘 돼?"
"네. 너무 잘 돼서 무서울 지경입니다."
너무 잘 돼서 무섭다니,
내 말을 듣던 가족들이 웃었다.
요 며칠 아버지가 계시는 병원에서 숙식을 했기 때문에 회사를 들르지 못했지만, 깨톡방에 들리는 소식통으로는 오과장이 콜센터 계약을 수십 군데 따내고 있었고,
최부장은 마치 독식이라도 하겠다는 야망으로 물류센터를 야금야금 먹어대고 있었다.
이미 경기도를 넘어 지방까지 확장된 상태였다.
휴먼매니저 소속의 직원들만 현재 사천 명에 달했다.
이제 휴먼매니저도 할 일이 끝난건가 싶다.
이정도 직원이면 이제 다른 사업을 해도 되겠지.
[김도일님의 마지막 퀘스트를 발현합니다.]
때마침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직원수 350만 명 달성]
뭐?
「완료 보상 1000UNI」
「제한 시간 무제한」
350만 명의 직원 수를 달성하라는 휴먼매니저의 퀘스트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350만 명?
"350만 명?"
혼잣말을 해대니 가족들이 의아한 얼굴이었다.
"도일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 350만 명이라니요?"
"아, 아니에요."
총인구의 7%를 휴먼매니저 직원으로 고용하라니 이게 가능한 수치인가?
기회비용을 건드리는 거죠.
대기업 삼정의 직원은 약 11만 명이고, 그다음으로 7만 명, 4만 명 순이다.
굴지의 대기업도 직원수 10만명을 겨우 넘기는 판국에, 350만 명?
게다가 대기업이야 기술력과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겨우 10만이라도 가능한 수치겠지만,
휴먼매니저가 무슨 기술력이 있나?
없다.
인력 파견회사가 무슨.
지영씨 가족들과 오랜만에 좋은 시간을 보내고 홀로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이번 퀘스트의 목적을 곱씹었으나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지영씨로부터 깨톡이 왔다.
[도일씨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너무 멍해 보여서 부모님이 걱정하셨어요.]
[미안해요. 지영씨. 제가 좀 얼이 빠져 있었네요.]
[이해해요. 아버님 일도 겪으셨고, 많이 피곤했을 텐데, 오늘 고생 많았어요.]
[고마워요. 이해해줘서.]
* * *
다음날 아침 일찍 휴먼매니저 회사로 향했다. 현재 내가 검토하고 싶었던 것은 휴먼매니저의 확장성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회사를 확장해 직원들을 고용 하냐는 것이 가장 큰 화두였다.
직원들을 모두 회의실로 소집했다.
최부장님을 비롯하여 직원들이 회의실로 모였다.
아침 댓바람부터 회의했던 적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직원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대표님?"
정주임이 말문을 열었다.
"현재 휴먼매니저 직원이 정확히 총 몇 명이죠?"
"4,122명. 정확히."
최부장이 자랑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허나 저기의 절반 이상, 아니 60%가 물류센터의 직원들이고, 60%중에서도 20%가 h2비자를 발급받은 외국인이다. 현재 물류센터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이고, 내국인들은 택배 상하차 일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작년부터 택배 상하차 인력 부족 심화로 외국인 노동자를 대거 영입할 수 있는 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에 단순 노무에 한해서 외국인 고용을 허가해준 상황이었다.
물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이주노동자로 ‘택배’ 해결?... 죽음의 국적만 바꾸나]
[택배 상·하차 이주민 허용 추진... 노동계 위험의 이주화]
[택배 현장에 외국인 투입...더 뿔난 노동자]
업무 강도가 높은 일이며 밤낮을 바꿔야 하는 심야 노동이기 때문에 노동 환경은 개선하지 않고 외국인 이주 노동자에게 위험을 떠맡긴다는 비판이 거셌다.
"최부장님 혹시 대한민국에서 물류센터 외주화로 근무 중인 노동자가 몇 명인 줄 아십니까?"
"음…10만 명으로 알고 있지."
"10만 명…현재 저희가 계약한 물류센터는 경성택배가 전부죠?"
"그렇지."
한일통운, K마켓, 쿠몬, KGB택배, 등 물류 회사들이 많았다.
다 합친다면 10만명은 되겠지.
"이지혜 팀장님?"
"네."
"혹시 전국 콜센터 직원들이 몇 명인 줄 아십니까?"
"30만 명 정도 추산하고 있습니다."
"경비는?"
"10만 명이요."
350만 명의 미스터리가 어느 정도 풀리기 시작했다.
생산제조, 경비, 청소, 건설, 유통, 물류, IT, 콜센터, 등의 아웃소싱과 밀접한 직업군들이 대략 350만 명이라는 결론이다.
"대표님 혹시 질문의 의도가 뭔지 궁금해서 그런데 여쭈어 봐도 될까요?"
현준이가 내게 물었다.
그렇다면 단순하게 대답해줘야지.
"전국에 있는 간접 노동자가 총 350만 명입니다."
"그래서요?"
"350만 명을 고용하고 싶은데요."
그러더니 정주임이 손을 들며 말했다.
"350만 명을 고용하자고요?"
"그렇죠."
"와…그게 가능한 소리세요? 지금도 벅찬데요."
"그러니까, 차근차근히 해나가 보자는 거죠"
내가 뱉은 말이라고 해도 허황되기 그지없고 아무 대책도 없는 수준이다.
질러 놓고 보는 꼴이다.
"부산 인구가 350만 명 아닌가요?"
오과장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랬나?"
350만 명을 고용하라는 건 부산인구를 전부 휴먼매니저 직원으로 고용하라는 것과 같다.
"차라리 부산시를 사버리죠."
오과장이 농담 섞인 말투로 말했다.
"부산을 사라?"
"농담입니다."
생각해보니 부산을 사는 방법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물론 같은 맥락으로 봤을 때, 직원을 고용하라고 했지 사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머리를 굴렸다.
회의실이 조용했고,
저마다 생각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첫 번째 방법은 우리가 그들을 직접 찾아가는 것,
그런데 시간적 소모가 길고 육체적으로 힘들다.
350만 명을 구인하는데 구시대적인 방식은 시간만 지체할 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우리를 직접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다.
동생의 쌀국수 가게도 손님들을 이끌어 오기 위해 SNS를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홍보를 한다.
비단 SNS뿐만 아닌 거리에서 전단도 뿌리고, 너튜버들에게 요청하여 광고도 요청한다.
그렇다면?
우리 회사도 홍보를 해야겠지.
현재 간접 고용노동자는 350만 명이다. 간접이라는 말은 언제든지 해고를 당하기 쉬운 위치고, 고용 기간이 짧고 이직이 많다는 뜻이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내 편이 돼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저 입 꾹 닫고 퇴사하는 사람들이 많고, 파리 목숨처럼 언제 계약해지를 당할지 모르는 위치기 때문에 원청에 대항하기 어려운 구조다.
그렇다고 중간업체가 나서서 부당함을 같이 싸워주는가?
그런 것도 아니다.
괜히 원청에 미운털 박혀선 안 되기 때문이고, 간접 노동자의 편을 들어주기에는 너무 달콤한 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돈 되는 사업이고 사업비용도 적다.
기술력이 필요 없는 일이기 때문에 적당한 인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인력만 파견해주면 돈이 들어오는 구조다.
게다가 월급의 절반이 떼이든, 수십 퍼센트가 떼이든 중간 업체가 주는 돈이 전부인 줄 알고 받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고, 여태 휴먼매니저에 소속된 직원들 대부분이 과거 직장에서 그랬다.
간접 노동자 350만 명의 숫자가 그 피해규모를 예상케 했다.
휴먼매니저가 직접 이런 부당한 부분을 짚어 나가며 홍보하기로 했다.
"공익광고 차원에서 하는 건가요?"
정주임이 물었다.
공익 차원으로 해준다면 좋겠지만, 국가에서는 무관심하기 때문에 아마 지원 따위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공익광고는 안 될 거야. 우리가 직접 우리 자본으로 만들어야 돼. 광고 회사 섭외해서, 퀼리티 높게 뽑아보자고."
"음…"
"좋은 생각이야. 특히 중간착취에 관련된 소개를 자세히 다루어 줬으면 좋겠는데…"
최부장이 말했다. 이런 부분을 널리 알려서 간접 노동자들이 알게 한다는 취지에 높은 점수를 줬다.
"제 생각도 그래요. 중간착취가 핵심이거든요. 아무래도 돈이 민감한 부분이잖아요? 본인이 받아야 할 월급에 수십 퍼센트가 중간업체로 돌아간다는 걸 강조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그걸 영상 적으로 잘 표현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고 말이야."
"맞아요. 그게 핵심이죠."
"강하게 보여줬으면 해요."
이지혜 팀장이 손을 들며 말했다.
"어떻게요?"
"그러니까, 기업에서 중간업체를 거쳐, 근로자에게 월급이 돌아가는 구조를 자극적 영상으로 표현해보자는 거죠. 요즘 플랫폼이 많잖아요? 배달앱도 그렇고. 중간에서 수수료 떼가는 거 보면 아주 화가 날 정도거든요. 그런 것처럼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부분을 접목 시켜보자는 거죠. 내 월급도 누군가 떼간다는 것을요."
"그것도 괜찮은 방법인데요?"
쌀국수 집을 하는 동생 도현이가 자주 하소연했던 부분이었다.
배달앱의 수수료가 너무 많다는 것.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런데 논점이 흐려지지 않을까요?"
정주임이 이지혜 팀장을 보며 반문했다.
"어떤 면에서요?"
"어쨌든 간접 노동자들의 중간착취를 배달앱이라는 실생활에 접목하여 설명하는 건 쉽고 간편하긴 한데, 논점이 흐려질 수 있다는 거죠. 이게 배달앱을 비판한다는 느낌도 가해질 수 있거든요."
"아…"
"제 생각은 그래요. 여기서 담배 태우시는 분 많죠? 오과장님하고 대표님 담배 태우시죠?"
"그래서?"
"예전에 이런 광고가 있었거든요? 하루에 담배 한 갑 줄이면 수십 년 후에 외제차 뽑는다고."
"맞아. 기억나."
"기회비용을 건드리는 거죠. 평생 간접 노동자로 살아온 한 노동자가 만약 중간착취를 겪지 않고 온전히 월급을 받았다면, 그의 기회비용도 더 넓어졌을 거라고요."
"오. 괜찮네. 너무 자극적이지도 않고, 설명도 없고 핵심만 짚은 것 같은데?"
"팩트잖아요? 한 달에 30만 원을 착취당하면, 10년에 삼천만 원이 넘어요. 저희 할아버지가 그랬거든요. 경비 월급에 매달 30만 원은 못 받았어요. 그걸 너무 늦게 알아버려서 후회되지만, 만약 할아버지가 그걸 제대로 받았다면 제 생각에는…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었을 것 같거든요."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 아버지도 그랬거든."
직원들도 정주임의 의견에 동의했다. 공익광고처럼 보이는 회사 홍보 광고의 방향성은 정했고, 이제 광고 회사와 접촉하여 회의를 거쳐 촬영을 해야 했다.
그런데 광고 배우를 누구로 하냐는 것.
영화배우, 개그맨, 아나운서, 등 많은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고민했으나, 신뢰성이 두터운 사람을 찾는 건 어려웠다.
"누가 좋을까?"
"배우는 한수아 어때요?"
현준이가 말했다.
한수아…
그녀는 내 옆집 여자라 딱히 구미가 당기진 않지만…
"한수아?"
"요즘 2030을 대표한 배우잖아요? 대표님하고 친분도 있어서 허락해 줄 것 같기도 한데요."
"젊은 층을 대표한다고?"
"그럼요. 요즘 SNS에서도 한수아가 최고라고 보면 됩니다."
나쁘진 않다.
SNS 여왕이라고 불리는 그녀가 광고 모델로서 나서준다면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볼 수도 있겠지.
"기획사 측하고 미팅 잡아보자고, 걔 개런티는 얼마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