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수술까지 약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수술이 끝난 이후에는 병실을 비워줘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 거취 문제에 대해 상의했다.
동생은 식당 일 때문에 아버지를 모실 여력이 없다.
그래서 일단은 내가 아버지를 모셔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동생은 뜬금없게도 엄마를 들먹였다.
"엄마는 같이 살 마음이 조금 남아 있어 보이긴 하던데, 아까 과일 깎을 때도 그렇고."
사실 나도 그렇게 느꼈다.
과거 부부끼리 싸우는 모습만 봐서 그랬는지, 엄마의 과일 깎는 모습이 새삼스럽게 새로워 보였다.
"그런데 엄마가 나이도 있는데 아버지를 모시면서 병간호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그리고 서로 이혼한 사이잖아. 부부도 아닌데 아버지를 모시고 살 이유가 없지."
"하긴…"
"도현아."
"응?"
"엄마한테 얘기 하지마라. 괜히 엄마 불편하게 만들지 말자고."
"알았어."
"엄마 입장에서는 너나 나나 부담 주기 싫어서 병간호하겠다고 나설 양반인거 알잖아."
"알지."
"내가 잘 모셔 볼 테니까 걱정 말고."
아버지 노릇 좀 해주면 안 될까?
수술 이후 퇴원할 아버지를 모시는 과정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현재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전문 요양 기관을 섭외해 음식부터 생활까지 전문적으로 케어를 받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형, 아버지랑 같이 살면 좀 불편하지 않겠어?"
"나밖에 없잖아?"
"…"
"내가 해야지. 너무 신경 쓰지 마, 도현아."
"고마워. 형."
"아버지에게는 미리 말씀드리자. 혹시 다른 생각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
병실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설명해 드렸다.
도현이가 아주 신난 듯 보였다.
아버지가 가까운 곳, 좋은 환경에서 사는 게 기분이 좋았나 보다.
"안 간다."
그런데, 아버지가 단호히 말했다.
안 간다고.
도현이가 다소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지 말고 아빠. 혼자 지내다가 저번처럼 누가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어떡해?"
도현이가 애써 어르고 달래며 아버지를 설득해 나섰다.
"내가 알아둔 방이 있다. 거기서 좀 편하게 살면 되니까 너희들은 신경 쓰지마."
"알아서 한다고?"
도현이가 난처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봤다.
고집을 부린다.
췌장암 4기다.
의사에게 들은 바로는 췌장암은 장기의 위치적 특성상 절제가 매우 난해하고 어려운 수술이라고 한다.
재발과 전이가 빈번한 암이며 4기라면 항암치료를 하더라도 평균수명 길면 1년이라고 한다.
허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음식물을 섭취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구토가 심하기 때문에 간호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고집을 부린다.
"도현아 아버지 뜻대로 하시게 내버려 둬라."
"뭐? 아버지 뜻대로? 이게 지금 단순 몸살감기가 아니잖아. 아버지가 고집 피우는 거 몰라서 그래? 우리한테 민폐 끼치기 싫어서 그런 거잖아."
"알아."
"그런데도 가만히 있으라고?"
병상에 누운 아버지가 두 아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선 인상을 찌푸렸다.
"그만들 해."
아버지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도현이는 내게 아주 화가 난 것 같다.
"말해봐 형. 아까는 본인이 모시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너무 쉽게 포기하는 거 아냐?"
"아버지가 싫어하잖아.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시니까 그러는 거 아닐까?"
"뭐?"
"아버지, 대체 무슨 생각이세요?"
아버지를 보며 물었다.
그저 먼 산만 바라보던 아버지가 입을 꾹 다물고 별말씀 없으셨다.
빌어먹을 특유의 유전자다.
불리하면 입 꾹 닫고 상대방을 미치게 만든다.
"제가 이번에 좀 더 좋은 고시원 알아봐 드릴게요. 거기는 방 안에 스프링클러도 있고, 소화기도, 화장실도 있더라고요. 냉장고도 음료수 냉장고가 아니라, 큰 냉장고 같던데, 거기 계시면 예전 보다 삶의 질은 더 나아지실 거예요."
"형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어, 맞아. 아버지 고시원에 살게 해드리자. 그게 나을 것 같아. 아버지도 그게 마음 편하실 것 같고."
"형 미친 거야?"
"아니. 아주 이성적인데?"
"정신 차려 형. 아버지 췌장암이야.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암이라고, 그런데 고시원에 넣어두자고?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왜? 아버지가 원하시잖아."
아버지를 보며 비아냥거리자, 도현이가 나를 보며 욕을 내뱉었다.
"형, 진짜 갑자기 왜 그래? 어? 아버지 앞에서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냐? 말 다했어?"
"그래 말 다했다? 왜?"
"형 진짜!"
"다들 그만들 하라니까!"
아버지가 외치자 도현이가 씩씩거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나를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내 삶은 내가 알아서 한다. 너희들에게 도움받을 생각 따위는 없으니까, 이제 앞으로 이런 얘기는 꺼내지들 마."
아버지가 단호히 말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강한 거부 반응이 느껴졌다.
어쩌면 당연한 거다.
아버지는 평생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잘됐네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또 뿔뿔이 흩어져서 찢어지며 살아야지."
도현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가시가 잔뜩 돋쳐 있는 말이었다.
마찬가지, 나도 잔뜩 예민해진 탓에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내가 알아본 고시원은 꽤 넓어요. 한 달에 50만 원 정도 하는데, 밥하고 김치만 나오는 게 아니라, 다른 반찬도 무제한이에요. 괜찮죠? 라면도 무제한이고."
아버지를 보며 비아냥거리자 동생 도현이가 이내 참지 못하고 내게 달려들었다.
"형 진짜 씨발!"
병상에 누운 아버지 앞에서 다 큰 30대 성인이 몸싸움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아버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때마침 엄마가 들어왔다.
간신히 둘을 떼어낸 엄마가 우리를 보며 소리쳤다.
"너희들 뭐 하는 거야!"
도현이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창가에 있는 화분을 들어 던지려는 것을 엄마가 간신히 말렸다.
"아버지 앞에서 어떻게 그렇게 얘기할 수가 있냐고! 완전 미친 싸이코잖아."
"그럼 아버지가 그렇게 살겠다는데 우리가 왜 간섭해? 아버지? 맞잖아요? 방 구해 놓으셨다고 우리 앞에서 떳떳하게 얘기하셨잖아요!"
"…"
"도일도 도현이 둘 다 그만 해!"
엄마가 소리를 치자 일제히 조용해졌다. 적막한 가운데 도현이의 씩씩 거리는 소리와 나의 거친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아버지는 그저 고개만 푹 숙이며 이 상황을 몹시 괴로워했다.
"도일이 너는 아버지가 그렇게 얘기했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니? 응? 그리고 도현이 너도, 형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엄마의 일갈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도현이가 충분히 화낼 만한 일이었다.
마음이 여린 녀석이라 그저 아버지 앞에서 아직도 응석을 부리는 동생이다.
부모라는 단어 한마디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녀석이니, 어쩌면 내가 아주 정떨어져 보이겠지,
그런데 이건 나와 도현이의 문제가 아니다.
"왜 이혼한 거야?"
적막한 가운데 엄마와 아버지를 보며 물었다.
"뭐?"
"궁금해서 그러거든? 왜 이혼했어? 단순히 돈 때문에? 빚이 많아서? 뭐야 대체?"
"…"
정말 궁금했다.
왜 이혼을 했을까.
평생 궁금했던 일이지만 상처를 안고 사는 엄마에게 물어보진 못했다.
엄마가 짙은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를 바라봤다.
"사는 게 힘들어 그랬다."
목소리가 작기만 했다.
"단순히 그게 전부야? 그게 전부냐고?"
"20년이 더 넘은 일이야."
"사는 게 힘들어서 이혼했다?"
"…"
"지금은 편하잖아."
"뭐?"
"이제라도 좀 편하게 사는 게 힘들어? 과거는 그랬다 쳐도, 지금은 먹고살 만하잖아. 여유롭잖아. 그러면 좀 편하게 좀 사는 게 힘드냐고."
"…"
"왜 이혼해서 자식들을 이렇게까지 만들어?"
"…"
"이게 우리 잘못이야? 엄마랑 아버지 잘못이잖아. 왜 이런 일로 나하고 동생이 싸우게 만드냐고."
"하아…"
"아버지 얘기 좀 해봐요. 자식들이 장성해서 이렇게까지 싸우는 꼴을 보고 있으면 스스로 뭔가 생각이 안 들어요? 예?"
"김도일!"
엄마가 나를 보며 소리쳤다.
멈추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럴수록 내 감정은 더 격앙됐다.
"가정을 파탄 내버린 죄책감? 그래서 그래요? 그 죄책감이 너무 커서 자식들이 도와주겠다고 나서도 받질 못하는 거냐고요."
"…"
"그런데 그런 죄책감 아버지까지였으면 하거든요."
"…!"
"도현이나 나는 아버지처럼 살 생각도 없고, 평생 그런 죄책감 갖고 살고 싶지도 않아요."
"…."
"아버지가 우리에게 해야 할 의무는 전부 저버렸지만, 나하고 도현이, 아버지처럼 살진 않았으면 하거든요. 마음이 불편해도 받아요. 아버지 스스로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도 그냥 받아 들여요. 그게 자식들을 위한 일이고, 아버지를 위한 일이니까…"
엄마도
아버지도 아무 말 없었다.
도현이가 고개를 파묻고 마른세수를 해댔다. 내 진짜 마음을 이제야 알았나 보다.
"그래, 도일이 네 말이 맞다."
아버지가 말문을 열었다.
"난 평생 죄인으로 살았고, 지금도 벌 받는 심정으로 산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도움받는 게 스스로 거부감이 드는 거겠지. 내가 벌을 받는가 보다 한다. 도일아. 미안하다."
"미안하면… 이제 좀…이제라도 좀 아버지 노릇 좀 해주면 안 될까?"
"…"
"어려운 거 아니잖아."
"…"
"우리 가족 좀 평범하게 살아보자는 게 무리한 부탁은 아니잖아."
엄마가 고개를 파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등 돌려 그저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아 냈다.
* * *
단순히 먹고 살기 힘들다고 이혼하는 부부들이 몇이나 되겠나.
꼭 없다곤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보다 더 한 이유가 있으려니 했다.
기억력 스킬을 사용하여 과거를 회상했을 때, 아버지가 엄마를 질타하며 ‘왜 도장을 찍었냐. ‘왜 그랬냐.’ 따지는 것으로 봐서는 뭔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나 싶다.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싶지만, 후벼 파봐야 상처만 커질 뿐이라 말았다.
아버지는 자식들 뜻대로 해주기로 했다. 첫째로 내가 아버지를 모시는 경우였는데, 역시, 예상한 대로 엄마가 불만을 표했다.
병원 복도에서 엄마와 마주했다.
"그러면, 아버지를 혼자 집에 둬? 아버지가 그렇게 하겠다잖아. 왜 엄마가 반대를 하냐고."
엄마는 연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도일아."
"왜"
"너 평생 혼자 살거니?"
"…"
"만나는 사람 있다며, 시아버지 모시고 사는 남자를 어느 여자가 좋다고 달라붙겠어? 안 그래?"
"하, 지영씨는 그럴 사람 아니야. 충분히 이해해줄거야."
"그건 도일이 네 생각이고."
"…"
"딸아이가 참해서 좋게 생각해 수도 있겠지만, 친정 식구들이 가만히 놔두겠냐고, 앞으로 결혼해서 시아버지를 모신다는데, 그건 그쪽 부모님들이 결혼 반대하고 나설 일이야."
엄마의 현실적인 조언을 듣자 하니 꼭 그럴 것 같기도 했다.
지영씨의 부모님은 분명 좋은 사람이지만, 딸 결혼 문제에 관해서는 현실적일 수밖에 없겠지.
내가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인 것 같았다.
"하아, 그러면 도저히 답이 없어. 요양원에 보내드릴 수는 없잖아. 췌장암 4기면 생활이 가능한 정도인데…"
"좀 더 생각해보자."
"치, 아무 대책도 없으면서."
"대책이 없긴…"
"…?"
"내가 나서면 다 해결될 일이다."
"엄마가 나선다고?"
"자식들이 무슨 죄냐. 내가 해야지."
"확실히 말해 엄마. 아버지랑 같이 산다는 거야?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봐도 되는 거지?"
"그럴 수도."
"만약 엄마가 아버지랑 같이 살게 되면 아파트가 아니라 더 좋은 집 얻어 줄게."
"치…"
"진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 얻어 줄 테니까, 엄마가 결정만 해."
"아버지 의견도 들어봐야지. 혼자서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엄마하고 아버지가 다시 합가하여 산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런데 이혼한 부부가 다시 재결합하여 혼인 신고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한 가지 조건을 더 했다.
"엄마 혼자 병간호 하는 일은 없을 거야. 나도 자주 들릴 거고, 동생도 그럴 거야. 평일에는 전문 요양사 분들이 붙어 주실 거고."
"아버지하고 얘기해보마."
총 인구의 7%를 고용해야 한다고?
엄마의 결정이 오래 걸릴 건 안다.
앞으로의 여생을 아버지하고 보낸다는 건 쉬운 선택이 아니다.
이혼 부부가 재결합하여 산다는 얘기는 내 주위에서 들어보질 못했으니까.
서로의 상처를 심연까지 들여다봤고, 이혼이라는 극단적 선택까지 했다.
15년을 함께 살았고 20년을 넘는 세월 동안 떨어져 지냈다.
엄마에게 이혼 사유에 관해 물어본바 결국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컸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희망을 걸어본다.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찾아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