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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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대충해 대충."

"네?"

"그리고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오과장 있잖아. 오과장에게 물어봐."

"네."

만사가 귀찮아졌다.

아버지 일을 겪고 나면 항상 이렇다.

축 늘어지고 의욕이 상실된다.

"김대표."

"네 부장님."

"담배 한 대 피우자고."

"끊으신 거 아니셨어요?"

"몸에 나쁜 담배는 끊었고, 좋은 담배가 있더라고."

"에이, 세상에 그런 담배가 어디 있습니까. 그냥 끊으십쇼."

"올라가, 냄새만 맡게."

"네."

최부장이 내 분위기가 영 신경 쓰였는지 끌고 옥상으로 향했다.

"요즘 안 좋은 일 있어?"

"아뇨."

"속 시원하게 말해 봐. 내가 큰 힘은 못 되더라도 김대표를 기분 나쁘게 한 자식은 욕해줄 수 있으니까. 뭐야?"

"아버지요."

"아…"

"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겨서요. 암에 걸리셨다고 해서. 하아…"

"어이쿠…"

"아직 구체적으로 들은 건 없어서요.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암에 걸렸는지 확인해본 건 없어요."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

"…네."

"얼른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동생이 병원에 있나 보더라고요."

"일이 우선인가, 당장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는데, 급히 가봐야지."

"별일 아니겠죠."

"뭐? 별일 아니긴! 물류 센터 근무자 중 한 분도 암에 걸리셔서 며칠 전부터 출근을 못하신다고 하셨거든…원체 몸이 좀 안 좋아 보이긴 했는데, 결국 췌장암이란다."

"정말요?"

"워킹휴먼 때부터 알고 있었던 양반이라 병문안 가봤더니 영 몰골이 말이 아니더라고…복수가 차서 배가 볼록한데…참…"

"안타깝네요. 췌장암이면 미리 예측하기도 어려워서 발견되면 말기라고 들었는데요."

"그러니까 말이다. 참 안타까운 양반이지. 일도 열심히 곧 잘했는데 말이다. 자식들이랑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는지 다쳐도 치료비가 없어서 간혹 내게 돈을 빌리기도 했거든…"

"…"

"그러니까 김대표, 내가 형으로서 얘기하지만 아버지 일이 우선이야. 일은 내버려둬."

"치료비는요? 그래도 워킹휴먼에서부터 지금까지 알고 지내신 분이면 회사 차원에서 치료비 정도는 지원해 주셔야죠."

최부장이 피지도 않는 담배를 갑자기 물었다.

그리곤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나를 바라봤다.

"그래도 될까?"

"최부장님이 원하시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고맙다."

"그리고 몇 년 근무하셨다고 했죠?"

"예전 워킹휴먼 초창기 때부터 전라도에서 몇 년 근무했고, 경기도에서 근무하고 있다가 병에 걸린 거지. 기간으로 따지면 한 10년 가까이 됐으려나."

"아…회사 차원에서 확실히 지원해주세요. 그래도 우리 식구인데요."

"그래. 고맙다. 자네는 어떻게 할 작정이야?"

"네?"

"며칠 회사 비워도 끄떡없으니까. 걱정 말고."

"네."

음료수 한 캔을 마신 뒤 다시 사무실로 복귀했다.

정주임의 표정이 불편해 보였다.

한 아저씨가 서 있었는데, 아저씨 뒤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친구가 발에 깁스를 한 채 서있었다.

"당신네들! 미성년자를 함부로 고용하고 일을 시켰으면 책임은 져야지!"

아저씨가 고함을 지르며 따지자 오과장이 연신 진땀을 빼며 달래기 바빴다.

최부장이 그 광경을 발견한 뒤 급히 달려가 아저씨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신지요."

"당신이 여기 책임자야?"

"제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애 발을 봐요 지금! 일을 하다가 발을 찧었으면 치료비라도 줘야할 거 아니냐고! 왜 그냥 돌려보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팔레트에 찧어서 작살이 났어! 작살이!"

"현장 관리자가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냈고요?"

상황은 이러했다.

고등학생이 부모님 동의서를 받고 물류센터 알바를 하다가 부상을 입었으나, 현장 관리자가 그냥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치료를 해줬어야 함에도 이건 명백히 우리 실수였다.

"죄송합니다."

아버님에게 다가가 머리를 숙였다.

"치료비부터 수당까지 전부 챙겨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버님."

"크흠…"

치료비와 휴업 수당을 준다는 말에 아버님의 인상이 조금은 펴졌다.

아이와 아버지가 떠난 뒤 분위기가 눅눅해져만 갔다.

최부장의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물류를 전담하는 그의 현장에서 발생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장 관리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하여 방금 사달을 전달했다

"최부장님."

"응?"

"돈 신경 쓰지 마시고 만약 현장 사원들이 실수로 다치거든 회사에서 100% 보상해주는 쪽으로 해주세요."

"알았다."

"그리고 아까 암에 걸렸다고 하신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김석훈이지."

"김석훈이요?"

"왜? 아는 사람이야?"

"아…아뇨."

설마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김석훈이라면, 나의 아버지 이름이기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정주임에게 부탁하여 김석훈의 근로 내역과 소득 신고내역을 전부 출력해달라고 부탁했다.

"여기 있습니다. 대표님."

"땡큐."

서류를 살펴보니 일단 그의 나이부터 나의 아버지와 똑같았다.

58년생. 개띠.

그리고 10년 전부터 워킹휴먼의 지방 물류 센터에서 근무를 했던 것 같다.

물류 1팀 황부장의 소속에서 약 3년간 일했고, 그 후 퇴사하여, 경기도 인근 남양주 현장에서 3년간 근무했다.

이때부터 최부장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 같았다.

게다가 남양주 현장이라면 워킹휴먼 재직 당시 현준이를 이끌고 박찬혁과 한바탕 싸웠던 현장이었다.

시기를 어림잡아 계산해보니 아버지가 재직했던 때와 내가 워킹휴먼에서 근무했을 때가 비슷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근무하는 물류센터 탓에 서류상 이름을 단 한 번도 못 봤고, 얼굴도 마주치지 못했었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최근 1년 근무했고, 마지막 몇 달간은 일산 현장에서 근무하다 암에 걸려 퇴직하였다.

워킹휴먼과 휴먼매니저의 소속으로 말이다.

그래도 나이와 이름이 똑같다고 해서 우리 아버지가 아닐 수도 있다.

좀 더 확실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정주임?"

"네. 대표님."

"혹시 이력서 따로 모아 두는 게 있나?"

"김석훈씨요?"

"어…"

"찾는데 좀 오래 걸릴 수도 있어요."

"부탁할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주임이 내게 이력서 한 장을 건넸다.

알바 사이트에서 직접 작성한 이력서였다.

"대표님 이력서 찾았습니다."

정주임이 건넨 이력서를 받자마자 이력서 사진부터 확인했다.

확실히 나의 아버지 ‘김석훈’이었다.

"하아…"

"왜요?"

정주임이 이력서를 보며 한숨만 쉬는 나를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다.

"잠시만…"

천천히 최부장님에게 다가갔다. 김석훈의 이력서를 건넸다.

"맞아. 이분이 이번에 췌장암에 걸리신 분이야."

"…!"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 이런 걸까.

그저 고개만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만약 나의 아버지가 맞는다면, 아버지는 오랜 시간 내 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남양주 현장에서도, 일산 현장에서도, 구미에서도, 혹시 내 얼굴을 마주쳤을까?

"하아…"

"왜 그래 김대표?"

"아닙니다."

충격의 잔상은 오래 남았다.

겨우 사무실을 빠져나와 건물 인근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버지의 이력서를 손에 쥐며 한참을 바라봤다.

배운 것 없는 아버지의 학력은 초졸이었다.

경력으로 따지자면 정말 보잘것없는 수준이지만, 당시는 농사나 지을 마음으로 초졸이 많은 시대였다.

일용직 경력이 대다수였고, 일도 오래 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일이 잦았다.

자격증이라곤 운전면허증이 전부다.

맞춤법과 띄어쓰기조차 맞지 않다.

이력서의 다음 장을 넘기니, 그래도 자기소개서를 써보겠노라고 빼곡히 써 놓은 글이 보였다.

"…"

그 글을 보고 있노라니 차마 읽지 못하겠다.

삐뚤빼뚤한 글씨에서도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단 한 문장이었다.

‘든든한 아들이 두 놈 있다.’

"하…씨."

담배를 한 대 물며 아버지가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들이 꿈틀거렸다.

화가 나기도 했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마음을 추스른 뒤 이력서를 고이 반으로 접었다.

다시 최부장에게 향했다.

"최부장님 혹시 김석훈씨…"

"응?"

"현재 어느 병원에 입원해 계시죠?"

"00병원에 입원해 계시지. 그런데 왜?"

최부장에게 이 분이 내 아버지라는 걸 차마 얘기하지 못 하겠다.

"제일 좋은 대학 병원으로 옮겨주고, 1인실로 마련해 주시죠."

"…!"

"부탁드릴게요. 부장님."

"알았다."

참 가까운 곳에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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