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다리 두 개를 먹어?
"대표님! 수건이 없어요!"
"서랍장 안에 있을 거야!"
"네!"
한강 물 먹은 현준이를 집에 데려와 씻겼다. 그래도 함께 주먹을 날려준 사이인데 이 정도 배려는 해줘야지.
현준이가 씻고 나온 뒤 치킨을 시켰고 각자 맥주 한 캔을 땄다.
"아까는 진짜 미쳤어요. 대표님이 싸움을 그렇게 잘하시는 줄 몰랐어요. 주먹 한 방에 다 나가떨어지는데, 와아…대표님 주먹 좀 봐도 돼요?"
현준이가 식탁 앞에 앉으며 내 손을 살펴댔다.
별 특별할 것도 없는 주먹인데 아까의 일은 꽤 충격이었나 보다.
두껍지도 않고 얇지도 않은 평범한 주먹으로 수십 명을 때려 눕혔으니 말이다.
"회사에 소문내지마."
"대표님 이참에 격투기 선수로 데뷔하시는 건 어때요?"
"미쳤냐?"
"흐흐."
"고생했다. 적셔라."
"짠!"
현준이와 함께 캔 맥주 한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맥주가 목을 넘어 위까지 도달하기까지의 그 짜릿함과 청량감,
크으.
"죽인다."
"잘 먹겠습니다!"
닭다리 하나를 집어 먹으며 뼈를 발골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덩달아 손이 급해졌다.
그런데 닭다리는 원래 두 개 아닌가?
"너는 닭다리를…두 개…"
"네?"
"아니다. 먹어라."
말자.
나 때문에 괜한 싸움에 휘말린 녀석인데 두 개 정도는 양보해 줄 수 있지 뭐.
서른 명의 장정들이 달려들어 한방에 해치웠다.
휴먼매니저의 능력이 없었다면 현준이도 나도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연신 닭다리를 먹는 현준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안해졌다.
팔뚝에 상처도 보였다.
회사원인 그에게 너무 위험한 일을 동행시켰다.
"미안하다. 괜히 너까지 끌어들여서. 무섭고 힘들었지?"
"아뇨. 재밌었는데요."
현준이는 별로 대수롭지 않았나 보다.
"그런데요. 대표님."
"응?"
"이번에 저희가 경성그룹 경영권을 차지할 수 있으면 대표님은 뭐하실 거예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바로 답하지는 못했다. 반대로 그에게 묻고 싶었다.
"뭐할까?"
"네?"
"너는 뭐하고 싶은데. 네가 상상했던 일을 현실화 시킬 수가 있다면 말이야."
"음…"
현준이가 치킨을 씹으며 고민에 빠졌다.
"대기업을 경영한다면 일단 제가 해보고 싶었던 사업을 현실화 시켜보고 싶긴 해요."
"그래? 뭔데?"
"AI를 이용하는 거죠. 만약에 제가 물건 하나를 찜해놓고 샀는데, 택배 기간이 이틀이 걸릴지 삼일이 걸릴지 잘 모르잖아요?"
"그치, 그런데 쿠몬 배송은 하루 만에 배송해 주잖아?"
"그렇긴 한데 그건 직매입 직배송 시스템이라 가능하고 일반 택배 시스템은 또 다르잖아요."
"그치."
"택배를 집하하고 분류하고 거점으로 뿌리고, 배송하고,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소모가 발생하는 부분도 있다고 봐요."
"어떤 면에서?"
"제가 이걸 언제 느꼈냐면 며칠 전에 홈쇼핑으로 옷 하나를 샀거든요, 그런데 그 옷 매장이 알고 보니까 저희 동네에 있는 매장이더라고요. 그래서 하루 지나면 택배가 도착하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제 택배는 옥천으로 가고 옥천에서 또 분류돼서 또 어디로 가더니 또 분류돼서 결국 우리 동네 영업소로 와서 배송되더라고요."
"아…"
"이 과정을 단축시키는 겁니다. AI로요."
현준이의 말은 동네 마다 택배 기사들이 택배 물량을 수집하여 대형 차량에 실어 허브로 보내는데, 이 과정에서 현준이의 택배처럼 불필요한 시간적 소모를 AI로 해결하고 싶다는 뜻인 것 같았다.
"어떻게?"
"제가 방법을 알면 이러고 있지 않겠죠? 하고 싶다는 뜻이지 구체적인 방법은 잘 모르겠네요. 흐흐. 대표님은요? 뭘 하고 싶으세요?"
"너 택배 해봤냐?"
"아뇨."
"엘베 없는 빌라 5층을 2L 물 여덟 개 들고 뛰어 올라가 봤어?"
"올라 갈 수는 있겠죠."
"한 번이야 쉽겠지, 그런데 그 짓을 하루에 수십 군데 한다고 생각해봐. 하루에만 100층의 계단을 오르는 거야. 물까지 들고."
"아…그래서요?"
"배송단가 올려 줄 거야."
"단가를요?"
"아마 요즘 단가가 700원정도 할걸? 1.5 배 정도면 적당할 것 같거든. 그리고 하루에 이백 건 이상 배송하는 택배 기사들 물량 부담을 줄여 주는 거지."
"아…"
매년 평균 10명이 넘는 기사들이 과로사와 업무상 질병으로 죽는다.
많은 물량을 적은 단가로 배송하려니 몸은 좀 더 빨리 움직일 수밖에 없다.
"또 있어. 택배 기사들 작업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는 거지."
"어떤…?"
"택배 기사들 배송하기 전에 분류만 몇 시간씩 하는 거 알지? 본인 지역 배송 물량을 하나씩 전부 분류하는 건데, 이걸 택배 기사들이 왜 해?"
"…"
"수십 년간 이어져 내려온 관행이라곤 하지만 사실상 이게 무료 봉사거든. 반나절을 한 푼도 벌지 못하고 날리는 거지. 게다가 택배 기사는 배송 담당이지 분류 담당이 아니잖아? 회사가 언제부터 그렇게 흘러갔냐? 그리고 무료 봉사해서 얻은 이익은 누구한테 돌아갔겠어? 최명희같은 인간 집무실 비용으로? 흐흐"
그간 택배기사들은 돈 한 푼도 받지 않고 분류 작업을 무료로 해왔다.
새벽에 출근해서 물량을 분류하고 탑차 적재까지 반나절이 걸린다.
몸은 이미 기진맥진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 250개 가까이 되는 물량을 배송한다.
늦은 밤까지 배송하는 택배 직원들을 본적이 있다면 이런 구조적인 문제 탓이었다.
당연 과로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와…"
"분류 인원을 전적으로 회사 부담으로 지원할 계획이야."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있어. 택배 기사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를 못해."
"헉, 왜요?"
"근로자보다는 개인사업자로 인정받는데 이게 영업용 차량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거든. 그리고 택배 대리점하고 위탁 계약을 맺기 때문이고."
"아…"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근로자란 사업 또는 사업장의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회사로 출근해서 해당 회사의 택배 물량을 싣고 배송하는 게 단순히 영업용 배송 차량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노동자로 대우받지 못하는 건 어불성설 아닌가 싶었다.
분류 시간도 근무 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해 그간 무료봉사를 해왔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일본에서는 편의점 사장도 노동자로 인정받네 마네 하는 얘기가 오가는데, 택배 기사들에게 기본적인 대우는 해줘야지?
시간이 꽤 흘렀다.
밤 열한 시를 향해가고 있었고, 치킨 한 마리도 모자라서 피자 한 판을 시켜줬다.
"천천히 먹어라. 체한다."
"네."
현준이 녀석이 먹는 모습을 보니 한 참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
징그러운 어린아이?
그런데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많은 게 변한 것 같았다.
위축된 모습은 사라졌고 언행에 자신감이 묻어나 있었다.
"요즘 정주임이랑은 어때?"
정주임 얘기가 나오자 현준이의 얼굴이 다소 붉어졌다.
부끄럽다는 건가?
"왜? 싸웠어? 또 무슨 사건이 터진 거야?"
"아뇨. 사실 대표님에게 가장 먼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뭔데?"
"누나한테 말씀하시면 안 돼요."
"얘기해봐."
현준이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이내 입을 스윽 닦으며 나를 바라봤다.
"조만간 결혼할 것 같아요."
"결혼?"
풉.
마시던 맥주를 코에 뿜을 뻔했다.
"진짜? 결혼한다고?"
"네. 저희 부모님도 다 뵙고, 누나는 부모님이 안 계셔서 이모 뵙고 인사도 드렸어요."
"와…혹시…"
"왜요?"
"속도위반?"
"아니에요. 사실 예전에 저희 집 전세 사기 당할 뻔했을 때, 누나가 옆에서 심리적으로 많이 도와줬거든요. 저희 부모님이 누나를 너무 좋게 봐주셔서 당장 며느리 삼고 싶다고 했어요."
"아…네가 프러포즈를 한 게 아니고?"
"하긴 해야겠죠? 그런데 누나는 그런 거 할 시간에 돈이나 더 모으라고 할 게 뻔해서…흐흐 그리고 누나랑 아직 자본 적도 없는데요."
"뭐어?"
"저도 하고 싶긴 한데, 무슨 자기가 신데렐라도 아니고 항상 12시 막차 타고 집에 간다니까요. 제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항상 그랬어요. 미쳐버리겠어요."
"크크크크."
그냥 웃음밖에 나오질 않는다.
"네가 하고 싶다고 매달린 거야?"
"아뇨. 그러질 않았는데, 그래도 하고는 싶잖아요? 그래도 만난 지 꽤 됐는데…요즘은 선섹후사예요."
"그게 뭔 말이야?"
"먼저 자고 난 다음에 사귀는 거요. 저도 최근에 들어서 알았어요. 요즘 유행인가 봐요."
"요즘 세대는 참 빠르구나."
"아우토반이죠."
"하…내가 너만 할 때는 결혼이란 건 생각도 안하고 살았는데."
"사실 제 주위에도 결혼 준비하는 사람 저밖에 없어요. 친구들도 저보고 왜 그렇게 빨리 가냐고 뭐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왜 빨리 가?"
"안정적이잖아요."
"…"
"대표님 덕에 휴먼매니저 회사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잖아요? 지금 때를 놓치면 앞으로 정말 못할 것 같아서요. 흐흐.."
"내가 맺어준 인연이네?"
"그럼요. 대표님이 주례해주셔야 합니다."
"주례는 요즘 잘 안 해. 노래나 한 곡 뽑아줄게."
"감사합니다."
"현준아."
"네?"
"너 자신을 진지하게 한번 들여다봐. 내가 왜 누나 앞에서 남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걸까, 대체 왜 어린 아이 취급하는 거지? 이런 생각들 말이야."
"아…"
치킨 닭다리 두 개를 아무렇지 않게 먹는 녀석이 무슨 눈치가 있겠냐만…. 크흠.
"그리고 정주임은 겉으로 말은 좀 세게 하지만 속으로는 내심 프러포즈를 받고 싶어 할 거야."
"그렇겠죠? 제 생각도 그래요."
"해. 무조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방법이 중요한 게 아냐. 네 진심을 보여줘. 그게 중요해."
하아, 말을 하는 동안에도 오글거려 죽겠다. 크크
"네. 해볼게요."
"해볼게요는 자식아. 네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거지."
"대표님 피자 치킨 한 마리 씩 더 시킬까요?"
"대체 얼마나 먹는 거야? 그래. 시켜라."
* * *
현재 로또 스킬을 이용하여 1회차 이월된 금액은 약 육천이백억 원이다.
여기서 세금을 약 이천억 원을 낸다면 내가 수중에 쥘 수 있는 금액은 약 사천억 원 정도였다.
그런데 세금을 너무 많이 뗀다.
로또에 당첨되는데 왜 세금을 내야 하는 걸까.
의문이다.
일본의 타카라쿠지 복권은 당첨금액에 세금을 공제하지 않는다.
서민의 꿈에 세금을 매길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이 있듯이 실제 법령에도 소득세를 매기지 않는다고 명시됐다.
1등 당첨금을 찾으러 가기 전 오랜만에 휴먼매니저 시스템 창이 울렸다.
[띠링]
[축하드립니다! 김도일님의 일곱 번째 메인 퀘스트 「투자」를 완료하셨습니다!]
[완료보상 1000UNI를 지급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들린 퀘스트 완료 창이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로 로또를 레벨9까지 올려볼 생각이었다.
[로또스킬 세부 능력]
「LV1 SKILL 로또당첨장소 확인」
「LV2 SKILL 첫 자리수 확인」
「LV3 SKILL 두번째 자리수 확인」
「LV4 SKILL 세번째 자리수 확인」
「LV5 SKILL 로또 번호 전체」
「LV6 SKILL 로또 당첨번호 선택」
「LV7 SKILL 독식」
「LV8 SKILL 당첨인원 선택」
「LV9 SKILL ??」
「LV10 SKILL ??」
레벨 별로 세분화된 로또 스킬을 보니 지난 일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감개무량했다.
LV1부터 현재 LV9까지 많은 일을 겪어왔다.
그리고 이제 비로소 LV9
대체 어떤 기술이 숨어있을까.
[로또스킬을 레벨업 합니다.]
「로또」LV8
「로또」LV9 상승」
「LV9 SKILL 세금 공제」
세금 공제였다.
약 33%의 소득세를 감면해주는 스킬이었다.
"대박인데?"
로또 세금 공제 칙령을 내리도록 하겠다!
주가 좀 올려볼 생각이었는데…
로또 세금 면제 스킬을 현실화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소득세법부터 전부 개정해야 하는 일이다.
로또는 기타소득으로 분리되어 분리과세로 취급된다.
개인의 사업, 근로, 이자, 부동산 등의 소득 따위를 합산하지 않고 해당 로또 소득에만 납세하는 방법이며 종합 소득세에 포함되지 않는다.
소득세법 21조 1항에 의하면 복권, 경품권, 그 밖의 추첨권에 당첨되어 받는 금품을 기타소득이라고 칭했다.
만약 여기서 복권이라는 단어를 뺀다면 로또뿐만 아니라 여타 복권의 세금도 면제받을 수 있었다.
경마, 연금 복권, 토토, 모든 복권을 통틀어서 말이다.
그런데···어떻게?
내가 직접 국세청장을 설득하거나 대통령을 만나야 하는 일인가?
휴먼매니저의 능력을 의심하진 않지만 이런 고차원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를 시스템이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었다.
대답해줘! 휴먼매니저!
[휴먼매니저의 한계는 없습니다. 1,023회차 로또 세금 면제 스킬을 이용하시겠습니까?]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