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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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체계적 둔감법이라는 말이 있다.

체계적으로 사람을 둔감하게 만든다는 뜻인데, 일반적으로 심리적 공포심을 둔감 시키기 위한 치료법 중 하나이다.

홍수법이라는 기법을 사용할 수도 있는데, 이는 한 번에 매우 강한 자극에 노출시켜 공포반응이 소실될 때까지 지속하는 기법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공포증이 존재하는데, 동물. 자연환경, 상황등이 있다.

그중에서 조현정이 겪고 있는 공포증은 곤충 공포증이었다.

공포증의 원인은 조현정의 과거를 훑어보지 않는 이상 불분명하여 알 수 없다.

아버지를 극도로 혐오하고 어머니를 경쟁상대로 생각하는 그녀의 성질을 미루어 보건대 유아기 시절부터 생성된 공포증이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장녀에게 재산의 절반을 물려준 것은 아마, 과거 좋은 관계를 유지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아버지에 관한 극도의 부정은?

이것 또한 아버지에 대하여 부정을 추구할수록 긍정적 영향을 얻을 수 있는 그녀만의 생존 방식이라고 했다.

부정은 추구해서 긍정을 얻는다?

다소 어렵게 느껴졌지만, 지영씨가 깨톡글로 보내준 조현정의 정신 상태는 나름 신빙성이 있었다.

2대 회장인 조현정의 아버지는 굉장한 난봉꾼이었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는 겉으로는 사랑하는 척 존경하는 척 그렇게 살아왔고 아버지가 죽은 뒤 그를 혐오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세상으로부터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았던 아버지를 부정하면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긍정을 얻을 수 있었다.

-탁.

책상을 내려쳤다.

"왜 그래?"

"아뇨. 기분이 좋아서요."

틈틈이 심리학을 공부했던 게 도움이 됐다. 나의 예상과도 얼추 비슷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곧 소식이 들릴 참이었다.

화장실 변기가 막혔다는 소식에 일순간 메이드들이 난리가 났다.

집안에 상주한 변호사 및 회계사들도 모두 화장실에 몰려왔다.

똥물이 넘쳐흐르다 못해 분수를 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이러질 않는데…"

"얼른 사람 불러!"

"네."

변기를 뚫어줄 준비된 기사들은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최부장과 오과장이었다.

오과장은 과거 설비 일을 해봤다고 했다.

비누가 막혔을 경우 관통기로 비누를 분쇄하여 석션하여 빨아들이면 된다고 했다.

역시 오과장은 만능이다.

그들이 봉고를 끌고 들어왔다.

분쇄기와 석션을 제외하고도 몇 가지 준비된 것들이 많았다.

홍수법

한 번에 매우 강한 자극을 줘서 공포증을 완화하는 치료법이다.

현재 정원에는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벌레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정원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봉고차 한가득 짐칸에 곤충들을 실어 왔다.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 곤충이 갇혀 있는 철문을 열었다.

물론 바퀴벌레들도 있었다.

으…

곤충은 세상 유토피아를 만난 것처럼 잽싸게 잔디로 숨어 뛰어들었다.

최부장에 듣기론 귀뚜라미 천 마리에 약 사만 원 정도 한다고 했다.

이백만 원어치 샀다고 들었으니…

재빠르게 풀숲으로 사라진 곤충들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운전기사 대기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정주임을 만날 수 있었다.

"어떻게 됐어?"

"다들 하겠대요."

정주임의 목적은 현재 고용된 메이드와 경비원, 경호원들의 파업이었다.

물론 질 좋고 더 나은 환경의 일자리를 제시했고 파업 참여 조건으로 보상금까지 걸었다.

휴먼매니저가 그간 해온 선행들이 도움 됐다.

실제 보도된 뉴스 기사를 보여주며 신뢰를 쌓았다.

나 또한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

시가총액 4조를 먹기 위해서 뭔들 못하겠는가.

변기 똥물 사태가 진정되자 저녁이 됐다.

저택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저택 외부를 둘러싼 어두운 점들이 무리를 이루어 서서히 넓게 퍼지고 있었다.

멀리서 맨눈으로 보기에는 당최 무슨 종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대저택은 잠식당하고 있었다.

이제 곧 그녀의 고함이 들릴 때가 됐는데

역시,

"끼야아아악!"

찢어질 듯한 고함이 저택을 울렸다.

* * *

퇴근은 뒷전, 메이드와 경비, 운전기사, 현재 대저택에 상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달라붙어 곤충을 잡기 위해 혈안이었다.

조현정은 바닥에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 떼들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기 바빴다.

결국 본인의 방으로 피신하여 문을 쾅 닫았다.

집안까지 스며든 바퀴벌레는 사방에 천지였고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마치 천둥과 같았다.

수천 마리의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모두가 곤충 잡기에 혈안이 돼 있을 때, 아니 잡는 척을 하고 있을 때, 나는 홀로 조현정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누구세요!"

"김도일이라고 합니다."

"김도일?"

그녀는 김도일이라는 말에 문을 활짝 열었다.

눈이 마주쳤다.

"당신…"

"오늘 운전기사로 입사한 김도일입니다."

"당신 뭐야!"

나는 그녀를 밀친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급히 경호원을 찾았지만 이미 그들도 우리의 한통속이었다.

"이제 아무도 없어요."

"뭐?"

"당신은 혼자라고"

"이 개새끼가!"

그녀가 미친 듯이 발광하며 책상에 있는 책과 유리잔을 집어던졌다.

잽싸게 피했고, 벽에 부딪혀 깨진 유리가 조각되어 사방에 튀었다.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그녀는 씩씩거리며 미친 듯이 발광할 뿐이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방문으로 향했다.

"열지 마! 열면 죽여 버릴 거야!"

"…"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사이로 대량의 바퀴벌레와 벌레들이 떼를 지어 들어왔다.

조현정이 절규하며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 모습이 마치 괴물을 보는 듯했다.

"그러게 사람한테 벌레를 왜 먹여"

그녀는 한 운전기사에게 벌레가 가득 담긴 음식을 대접했다.

그리고 그는 먹었다.

잘리지 않기 위해서.

그녀는 이내 몸에 이불을 잔뜩 감싸며 책상 위로 올라갔다.

나는 바퀴벌레가 무섭지 않았다.

조현정 같은 인간이 무서울 뿐이다.

그리고 그녀의 발광을 멈출 수 있도록 방금 녹음해둔 음성 기록을 들려줬다.

[다들 내 재산만 눈독을 들이잖아! 어떻게 간단하게 죽일 방법이 없을까?]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조용히 처리하자고. 보상은 두둑이 해줄 테니까.]

"살인 교사. 맞지?"

"이 개새끼야!"

그녀의 찢어질 듯한 욕설이 마녀를 보는 듯했다.

"죽어 이 개새끼야!"

더 이상 볼 것도 없었다.

나는 서서히 뒤로 물러나 방을 빠져나갔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 대저택 로비로 향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나가시죠."

"네."

이제 우리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내 뒤에 수많은 메이드와 경비원들, 그리고 경호원들까지 따르고 있었다.

절규로 가득한 그녀의 비명만 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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