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임이 한 수 위다.
"빨리 와 빨리!"
젠장,
첫 출근부터 늦었다.
새벽 네 시까지 맞춰서 태성 인력 사무실 앞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그만 늦잠을 자버렸다.
10분 늦었다.
"죄송합니다."
"첫 출근부터 지각이야? 옷은 또 뭐야? 누가 정장 입으래?"
"정장 입는 게 아니었습니까?"
대충 저가 슈트로 입으려고 했으나, 완전히 명품으로 칠갑하여 중무장한 것은 나름의 자존심이었다.
시계는 외제차 한 대 가격 수준으로 착용했다.
어차피 가품으로 볼 것 같지만 말이다.
"오늘은 운전할 일이 거의 없을 텐데…더워서 어쩌려고 그걸 입었냐."
"…무슨 일 있습니까?"
"설명해 줄 시간 없으니까 얼른 타."
"네."
-부릉
조태성 대표가 봉고차의 시동을 걸고 나는 뒷좌석에 올라탔다.
나뿐만 아니라 몇몇 아줌마들의 모습도 보였고 정주임이 창문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야."
-툭툭
정주임의 옆구리를 쿡 찔러 깨우자 그녀가 화들짝 놀라 깼고,
"피곤해 죽겠어요. 조금만 더 잘게요."
다시 창문에 기대어 잠들었다.
정주임은 메이드로서 조현정 집의 파출 일을 담당할 예정이었다.
청소부터 시작해서 요리 보조, 집안 살림을 모두 도맡는다고 보면 된다.
정주임 포함하여 총 세 명이 있었는데, 조현정의 저택 평수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대지면적은 약 300평에 달했고 총면적은 1,000평을 훌쩍 넘었다.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까지 있었고 높은 담장과 나무들은 결코 내부를 볼 수 없는 구조였다.
집값은 약 240억,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저택이었다.
좁은 비탈길의 언덕을 타고 약 30분가량을 올라갔을까, 마침내 대저택 앞에 차량은 멈춰 섰다.
아직 새벽녘이라 밖은 어둡기만 했다.
"다들 눈떠요."
조태성 대표가 소리치자 정주임이 입에 묻은 침을 스윽 닦으며 미간을 좁히며 눈을 떴다.
"도착했다. 일어나."
정주임과 아줌마들이 봉고차를 나갔고 뒤이어 내가 뒤따라 마지막으로 나갔다.
눈에 펼쳐진 전경은 뉴스에서 자주 본 조현정 집의 입구였다.
경성京城
한자어로 대문짝만하게 쓰인 현판이 압도적이었다.
창업자 조두현은 1911년 생으로 친일 행적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경성을 기업명으로 정한 것도 창립자 조두현이 일제 강점기 때에 경성부에 재직 당시 설립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었다.
철골 구조로 된 대문이 개폐되자 신분 확인을 거친 뒤 입구를 지났다.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정원이었다.
뉴스에서도 나왔다시피 정원의 조경에만 들인 돈은 약 150억 원,
저택으로 향하는 길목은 마치 분재원을 연상케 했는데, 조태성 대표가 한 소나무 분재를 가리키며 10억짜리라고 알려주며, 웬만하면 가까이 가질 말 것을 당부했다.
분재의 가지 하나라도 부러지면 패가망신 할 것이라고 했다.
나무를 화분에 심어 크기를 작게 만드는 걸 분재라고 했다.
공간에 쉽게 적응하는 식물의 성향을 파악해서 만든 고목이다.
수십억짜리 분재를 눈으로 직접 보니 그 모습이 가히 고풍스럽다고 느껴졌다.
과거 옆집 할아버지네 화분을 깨뜨린 적 있었는데, 세상 떠나가라 노발대발했었다.
화분 하나로 매우 서러웠던 기억이 있는데, 아마 분재였던 것 같다.
왜 그랬는지 이제와 느낀다.
"취향이 올드하네요."
정주임이 내 옆에서 말했다.
"예전 회장부터 이어져 내려온 저택이잖아. 조현정 취향은 아닐걸?"
"그래요?"
"준공 연도가 1970년대잖아? 대문에 쓰여 있더라고."
"아…"
조현정이 어떻게 집안의 동생과 엄마를 몰아내고 경성 그룹 최대 주주가 됐는지는 상세히 알지는 못한다.
2대 회장은 최근 1년 전 죽어 재산의 절반 이상을 장녀에게 몰아줬다고 한다.
그런데 조현정은 아버지를 극히 혐오하고 싫어했다.
참 아이러니하다.
정문에서 저택 입구까지 한참을 걸어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조태성 대표는 우리를 보며 잠시 대기하고 있으라고 말한 뒤 홀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조현정의 실물을 볼 시간이 다가오자 내 심장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뉴스에서만 보던 얼굴,
마녀,
사치와 향락의 여왕,
포도가 없으면 포도주를 먹으면 된다고 했던 희대의 망언의 주인공…
그때
"꺄악!"
대저택에 발을 딛자마자 누군가의 소스라치는 고성이 들렸다.
나와 정주임 아줌마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의자에 앉아만 있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죠?"
"소스라치게 놀란 목소리인데?"
이내 한 여자가 대문을 활짝 열고 나타났다. 우리는 그 모습을 단번에 조현정이라고 생각했다.
입은 옷부터 달랐으니까.
그녀는 별안간 미친 듯이 사방에 침을 뱉으며 이리저리 쿵쾅 뛰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몸에 벌레를 털어내는 모습이었다.
순간 웃음이 나올뻔 했지만, 메이드들이 달려들어 그녀의 옷을 털어주며 쓸어주니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며 한결 가벼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짝.
곧이어 이어진 그녀의 찰진 스매싱,
"하루살이 날아다니는 거 몰랐어?"
"죄송합니다. 회장님."
"내 몸에 들어가면 어쩔 건대?"
"죄송합니다."
소문만 무성했던 조현정의 벌레 공포증을 눈앞에서 보게 됐다.
그녀는 이상하리만큼 벌레를 무서워했다.
곤충만 눈에 보이면 공포심이 극대화되고 불안 증세가 나타난다고 했다.
마치 연극의 한 무대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아직도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는 듯 구두를 벗어 털어댔다.
그리고 제 성질에 못 이겨 구두를 집어 던지는데, 아뿔싸 정주임의 발밑에 구두가 떨어졌다.
정주임이 구두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곤 구두를 들어 조현정에게 천천히 다가갔고,
한 손으로 그녀에게 건넸다.
그 모습을 본 메이드가 기겁했다.
"신겨 드려야죠."
메이드가 정주임의 손에 들린 구두를 뺏어 들어 조현정에게 다시 구두를 신겼다.
조현정은 처음 보는 정주임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신입?"
"네."
정주임이 당돌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조현정은 흥밋거리가 생긴 듯 본인의 구두를 정원 멀리 내던졌다.
구두가 정원 풀숲으로 사라졌다.
그리곤
"주워 와요."
조현정이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말하자, 정주임은 고개를 뒤로 돌려 나를 쳐다봤다.
설마 이것까지 해야 하는 거냐는 표정이었다.
해라.
참아라.
4조 원의 그룹을 먹고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정주임이 필수였다.
정주임은 내 눈을 바라보며 씩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정원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빨간 구두를 주워 조현정에게 다가가 건넸다.
"여기 있어요."
조현정이 얼굴을 끄덕거리며 손가락으로 발밑을 가리켰다.
직접 신겨 달라는 표시였다.
정주임은 이내 눈치를 챈 듯 그녀의 발에 구두를 신겨줬다.
정주임의 표정이 이상했다.
어린아이가 음모를 꾸밀 때의 표정이랄까.
그녀는 자존심이 강하다.
여자의 자존심은 보이지 않는 빽에서 나온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빽?
그녀의 말을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정주임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구두를 신겨주던 조현정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역시 구두에는…
메뚜기가 들어 있었나 보다.
하아…
발끝에 이물감이 느껴진 조현정은 다시금 구두를 벗었고 본인 눈으로 메뚜기를 확인했다.
메뚜기가 있는 것을 발견한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맨바닥으로 이리저리 쏘다니며 도망 다녔다.
그 모습에 메이드들의 웃음이 터져버렸다. 타인의 정신적 공포증을 보며 비웃으면 안 되겠지만,
마치 어린아이가 똥에 마려워 급히 뛰어다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크크큭"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조태성 대표가 날뛰는 조현정에게 다가가 메뚜기를 치워 내던졌다.
"죄송합니다. 오늘 온 신입이 처음이라 잘 몰랐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조태성 대표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고 옆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던 정주임의 머리를 강제로 눌러 숙이게 했다.
새빨간 구두처럼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조현정은 깊은 심호흡을 몇 번 내쉬더니 조태성 대표의 따귀를 내려치려다 말았다.
"조심하세요. 처음이라서 봐 드리니까. 앞으로 교육 잘 하세요. 그리고 너…"
조현정이 정주임을 바라봤고,
"네?"
"따라와."
"네."
구두 메뚜기 사건은 다행히 조태성 대표의 사과로 잘 마무리된 듯 보였으나, 정주임이 조현정 대표에게 이끌려 어디론가 향했다.
알아서 잘 처신하겠지.
내가 봤을 때 정주임이 한 수 위다.
* * *
조태성 대표가 나를 대저택 건물 입구 옆에 있는 작은 별관으로 안내했다.
인력사무소에서는 회장처럼 군림하더니 이곳에서는 제 숨도 제대로 못 가눌 정도로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정식 명칭은 기사대기실이었다.
1인용 소파가 있었고 나무 의자 두 개와 책상에는 일지를 작성하는 용지와 무전기, 그리고 라디오가 있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삼 주 전에 입사한 어르신이었다.
조태성 대표는 어르신에게 교육을 당부한 뒤 기사대기실을 떠났다.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50대로 보이는 어르신은 아무 말 없이 무전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전기에 영상이라도 나오는 걸까.
"회장님이 움직일 때면 무전기에서 연락이 올 거다."
"네."
어르신이 먼저 말했다.
무전기에서 차량 대기라는 명령과 차종이 떨어지면 해당 차량을 끌고 집 앞까지 대기시켜 놓는다고 했다.
주차장은 지하에 위치했는데 차량만 10대 정도 있다고 한다.
"운전은요?"
"우리가 운전하는 날은 평일, 본사로 향할 때 말고는 없을 거다."
"아…"
"그리고 우회전할 때는 항상 ‘우회전하겠습니다.’ 좌회전할 때도 마찬가지고, 후진은 특히 조심해야 돼. 예전에 후진할 때 사고가 났던 적이 있었거든."
"후진할 때도 ‘후진하겠습니다.’라고 얘기하면 되는 거죠?"
"아니"
"그러면?"
"후진할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 그게 최선이야."
"알겠습니다."
별안간 후진할 상황을 만들지 말라는 어르신의 말을 귀담아듣고 한참을 멍하니 무전기만 바라봤다.
어르신도 나도,
한편에 있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만이 정적을 채웠다.
어르신의 취향을 저격하듯 윤수일의 아파트가 흘러나왔다.
"저… 어르신."
"응?"
"할 일이 없는데 왜 이곳에 두 명이나 상주해야 하는 걸까요?"
진심 궁금해서 물었다.
특히 주말에는 운전기사가 필요 없다고 본인이 말하지 않았는가.
"그러게 말이다."
"하여튼 돈이 남아도나 봐요. 안 그래요 어르신?"
"그래. 맞다."
어르신도 내 말에 극히 동의했다.
"무전기를 들고 다니면서 다른 일 좀 보면 안 될까요?"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
"화장실이 급해서요."
최부장에게 전화나 할 참이었다.
"그래. 다녀 와. 내가 약도를 그려 줄 테니 이곳만 보고 잘 찾아가면 된다."
"네."
무전기 한 대를 챙겨 들고 어르신이 그려준 약도를 참고하여 화장실을 찾으며 최부장에게 전화했다.
"부장님?"
-어이! 김대표!
"준비는 잘 되고 있죠?"
-이게 만만치가 않은데, 김대표가 알려준 대로 잘하고 있지.
"흐흐, 믿겠습니다. 부장님."
준비를 잘하리라 믿는다.
그런데, 화장실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어르신이 매우 친절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준 약도를 보면서도 한참을 헤맸다.
약도가 없으면 화장실 찾는 것도 힘든 구조였다.
마치 미로처럼 느껴졌다.
방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서양의 대저택 분위기를 많이 빼닮은 구석이 많았다.
80년대 경성그룹 1대 회장 취향이 반영된 저택은 그가 미국에서 유학 당시 보았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왔다고 했다.
벽에 걸린 액자와 도자기를 감상하며 걷다가 어르신이 알려준 약도에 도착하여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흔한 변기나 소변기가 아닌, 호화로운 집무실이었다.
아뿔싸,
뭔가 일이 수틀린 것을 알아챘을 때 이미 늦었다.
-또각또각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고, 조현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말투가 서서히 가까워지자 나는 급히 소파 뒤로 몸을 숨겼고,
-딸깍
문을 열고 들어온 조현정과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그려준 약도를 보고 찾아왔거늘…
하아…약도를 그려준 어르신의 표정이 어째 매우 친절하고 신나 보였다고 했다.
그녀의 비명만 들릴 뿐이었다.
"이번에 새롭게 3% 룰을 발휘한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되는 거죠?"
조현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단 저희 쪽 사람들 끌어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표차이가 상당히 반분돼서 이게 어떻게 결정이 날지는…"
"모르겠다?"
"네."
"감사위원 후보로 선출된 사람은 누구죠?"
"휴먼매니저 대표라는 작자입니다. 이름은 김도일이고, 이번에 경성택배의 현장을 관리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머님하고의 관계는요?"
"그건 저도 잘…"
"아는 게 뭐에요?"
"워낙에 미지의 인물이라 잘 알려진 부분은 없고요. 현재 휴먼매니저 회사 자체가 이상하게 자본금이 늘었다 줄었다 튀는 부분이 있어서요. 파악이 좀 어렵습니다. 풍문으로 듣기론 로또에 연속으로 당첨된 사람이라고 듣긴 했는데…"
그들이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로또요?"
"소문일 뿐입니다. 확실한 건 아닙니다."
"경영권은 알아서 잘 방어해 주시리라 믿을게요. 확실히 막아요. 무슨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대주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방법도 찾아보고요. 그들의 표도 중요한 상황이니까."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들이 말하는 ‘김도일’이라는 작자가 운전기사로 채용 됐고 이 방에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겠지.
크크.
그들은 내 낌새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소파 뒤에 쭈그려 앉아 있는 내 꼴이 좀 우습긴 하지만 왠지 모를 스릴도 느껴졌다.
첩보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랄까.
"한 가지 방법은 있습니다. 현재 회장님께서 소유하신 주식의 3%를 믿을만한 사람에게 쪼개어 빌려주는 겁니다."
"그래서요?"
"의결권을 나눠주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현재 조현정이 소유한 지분은 32%다. 만약 그녀가 12%의 주식을 쪼개어 네 사람에게 빌려준 뒤 의결권이 생긴다면, 이번 주주총회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이것을 공의결권이라고 했다. 법적 효력도 다분하여 경영권 공격에 자주 사용했다.
최명희 여사의 지분 6%였다.
여사가 지분을 쪼갠다고 하더라도 한 명분의 의결권이 생기지만 장녀에게 대항하기에는 부족했다.
신의 한 수다.
조현정 주위에는 나름 똑똑한 인물들이 많았다.
3%룰은 일반적으로 경영권을 공격하기 위해 이용되곤 했었으나, 이렇게 방어적으로 사용하진 않았다.
일이 꼬이는 걸까.
"…내 재산을 나눠줘라?"
"나눠주는 게 아니라…빌려주는…"
"사지를 찢어줄까?"
"네?"
"당신 사지를 찢어서 나눠주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다행히도 경영그룹 조현정 회장은 그리 똑똑지 못했다.
"…"
"일을 이따위로밖에 처리 못해?"
"죄송합니다."
남자가 방문을 열고 나간 뒤 이내 다른 한 사내가 등장했다.
태성 인력 조대표였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김도일이라는 작자에 대해서 좀 알아야겠는데. 이번에 감사위원 후보로 선출됐다고 하더라고."
"김도일이요? 알겠습니다."
미심쩍은 투로 대답했다.
"그리고 조대표."
"네 회장님."
"요즘 교통사고로 사고 났을 경우 한 몇 년 정도 갔다 오지?"
"길어봐야 10년도 안 됩니다. 음주로 가장해서 심신미약 판정 받으면 반으로 줄어들 수도 있고요."
"…요즘 다들 너무 설쳐."
"무슨 말씀인지…"
"다들 내 재산만 눈독을 들이잖아! 어떻게 간단하게 죽일 방법이 없을까?"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조용히 처리하자고. 보상은 두둑하게 해줄 테니까."
"네."
그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녹음했다.
나를 죽인다고?
엄마를 죽인다는 걸까?
목적은 명확하지 않았지만, 엄마를 죽이는 짓거리보단 한낮 중소기업의 대표를 보내는 게 더 쉽겠지.
참나.
상상도 못 했다.
조현정이라는 인간이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할 줄은…
하긴,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겠나.
조현정이 나간 뒤 나는 옷을 털어내며 일어섰다.
집무실 분위기가 어째 최명희의 사무실을 꼭 빼닮았다.
본격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오래된 설비 탓에 화장실 세면대의 수압이 강하지 않았다.
슉.
변기에 비누를 넣었다.
하나씩, 하나씩, 야무지게 넣었다.
일을 처리하고 다시 운전기사 대기실로 향했다.
멀쩡한 표정으로 돌아온 내 모습에 어르신은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시원하게 잘 해결하고 왔습니다. 어르신."
"그려."
그가 헛기침을 하며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화장실이 굉장히 고급스럽고 호화스럽던데 세상에 그런 화장실은 처음 봤네요. 그런데 아주 똥냄새가 기가 막히더라고요."
"크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