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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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금 먹튀범 최여진 사건을 해결한 이후로 회사는 평온하게만 흐르고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최여진을 내가 처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학교 폭력을 저지른 죄는 묻혀선 안 된다.

게다가 사람이 죽었다.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죄를 피했고 성인이 돼서도 누군가에게 무형의 폭력을 행사하며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벌을 달게 받아야 한다.

비록 법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선에 있지만, 복수를 원하는 가족들에게 넘겨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가 징역을 선고 받는다면 어쨌든 교도소에 들어간다.

출소한다면 또 어느 세월에 그녀를 찾아 돌아다닐까 싶다.

사무실 소파에 앉아 직원들이 건넨 보고서를 읽고 있을 때 ‘끄응’거리는 소리가 발밑에서 들렸다.

‘휴먼’이었다.

새끼였던 진돗개 ‘휴먼’이 불과 몇 주 만에 쑥쑥 자라버렸다.

휴먼을 들어 품 안에 가두어 머리와 배를 쓰다듬어댔다.

"대표님 들으셨어요?"

"응?"

오과장이 내게 말했다.

"전세금 먹튀 했던 최여진 있지 않습니까."

"어."

"풀렸답니다."

"뭐? 죄가 명백한데 왜 풀려나?"

새로운 소식에 내 귀가 쭈뼛 섰다.

풀려났다?

‘휴먼’을 바닥에 내려놓자,

오과장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간 미납한 세금만 강제 추징했답니다."

오과장의 말을 듣던 현준이가 발끈했다.

"미친년, 전세금을 통조림에 보관한 게 명백한 증거 아닌가요?"

"세금 탈루만 엮었겠지."

간혹 부동산 업자들 사이에서 이중 임대차 계약을 작성하여 차액을 숨겨 임대 소득을 누락하곤 했다.

"에이, 설마요."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 전세금 반환 의지가 없다는 증거보다 세금 탈루가 더 명백하잖아."

"그런데 그렇다고 풀려나는 겁니까?"

정주임이 불만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반성문 구구절절 쓰고 세금 전부 완납하면 그럴 가능성이 있지, 그게 아니라면…검찰 쪽에 인맥이 있었을 수도 있고."

"네?"

최일 고등학교 학교폭력 5인방 중에 현직 검사 출신도 있었다.

결코 이름을 잊지 않는다.

박동수 검사.

만약 최여진이 현직 박동수 검사와 서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이라면 입김이 충분히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러니했다.

전후 사정은 명확히 모르지만, 만약 그가 입김을 넣어 최여진을 풀어준 것이라면…

정말 그렇다면…

이건 신이 주신 기회다.

언제나 한결같다

회사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화연씨에게 전화했다.

최여진이 어떻게 풀려나게 됐는지 전후 사정을 듣고 싶었다.

"어떻게 된 거죠? 최여진이 풀려났다고 들었습니다."

-일이 그렇게 됐네요.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드리고 싶은 말씀은 참 많은데요. 쉽게 얘기하면 이해관계가 얽혔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이해관계요?"

-원래 모든 건 이해관계로 얽혀서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

목소리가 딱딱했다.

더 캐서 물어봐도 똑같은 답변일 것 같아 말았다.

"아…"

화연씨가 직접적으로 내뱉지 않았지만, 이해관계란 흔해 빠진 학연과 지연을 뜻하는 것 같았다.

-실망하셨죠?

"아뇨. 사실 큰 기대는 안 했거든요. 화연씨도 어쩔 수가 없었나 보네요."

-…

"다음에 식사나 하시죠."

-네. 들어가요 도일씨.

실망?

솔직히 실망한 부분도 있었다.

강성인 줄만 알았던 화연씨가 이해관계라는 말로 덮어버리며 사건을 무마해버릴 줄은 몰랐으니까.

그런데 폐쇄적인 검사 집단에서 상부의 지시를 거역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최여진은 다시 자유로운 몸이 됐다.

자유롭다는 것은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뜻이겠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썩어빠진 검찰계 인맥이 내게 이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이제 그녀를 다시 찾아야 했다.

어디선가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죽여 버릴 거야! 언젠가 내가 꼭 죽일 거야!]

표독스런 얼굴로 내게 소릴 쳤던 최여진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언젠가 죽일 거라는데, 내 몸뚱이 이곳에 있으니 알아서 찾아와줬으면 싶다.

휴먼매니저 사무실로 들어갔을 때 직원들은 하나 같이 내 얼굴을 근심어린 표정으로 바라봤다.

"대표님 괜찮으실까요?"

현준이가 내게 말했다.

"왜? 뭐가?"

"최여진이요. 대표님을 죽여 버리겠다고 그렇게 소릴 쳤는데, 솔직히 걱정되죠."

"내가 당할까 봐?"

"네."

"아서라."

"개인 경호원 불러드릴까요?"

이번에는 정주임이 끼어들며 말했다.

"그만들 해. 이까짓 일 가지고 무슨 경호원까지 부르냐?"

"최여진 같은 년 한번 정신 나가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를 것 같은데…"

"맞습니다. 며칠 전에 뉴스 댓글 보니까 대표님 신상을 완전히 까발렸더라고요.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그때

-똑똑똑.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들겼다.

현준이가 재빨리 일어나 사무실 문을 열었고 내 귀에는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또각또각,

익숙한 구둣발 소리에 나는 뒤돌아 정체를 확인했고,

그곳에 최여진이 있었다.

"어!"

순간적인 놀람과 탄성이었다.

"뭡니까?"

현준이가 적잖이 당황하여 최여진에게 물었고, 그녀는 아무 대꾸도 없이 한 손에 들린 음료 박스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내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녀의 새빨간 입술, 유달리 검은 머리, 모공조차 보이지 않는 하얀 피부.

"잘들 있었어요. 다들? 일이 잘 풀려서 이렇게 또 찾아뵙게 됐네.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다들 알죠?"

최여진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

헛웃음이 나왔다.

"손님이 왔으면 커피 한잔은 기본 아닌가?"

최여진은 정주임을 보며 말했다. 정주임이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쳐다만 봤고,

"커피 한 잔 드려봐라."

내가 정주임에게 말했다.

어떤 꿍꿍이속이 있는지 한번은 들어보고 싶었다.

제 발로 우리 회사를 찾아왔다?

하여간 보통내기는 아니다.

정주임이 믹스 커피 한 잔을 내려놓았다. 종이컵 끝까지 가득 찬 커피가 일렁거렸다.

"이게 먹으라고 타 준 거야?"

최여진이 일갈하자, 정주임은 컵을 다시 들고선 획, 버렸다.

"싫으면 먹지 말고 알아서 타 드세요."

"하하!"

"여기 온 이유가 뭡니까?"

내 질문에 최여진은 다리를 반대편으로 꼬았다.

그녀가 표독한 눈빛과 비웃음을 흘렸다.

"김한성에 관해서 묻고 싶었거든요."

"…!"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은데 같이 나가실까?"

* * *

-스윽

레어로 익힌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썰어내자 시뻘건 육즙이 터져 나온다.

클래식이 흐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고급 레스토랑이다.

그녀가 조막만 하게 자른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어 오물오물 씹었다.

맛의 풍미가 입안에서 퍼지는 듯 지그시 눈을 감는다.

레드 와인 한잔을 마신 그녀가 잔을 내려놓은 뒤 냅킨으로 입을 스윽 닦았다.

"안 드세요?"

"네 안 먹습니다."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손으로 스윽 밀었다.

먹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녀의 입에서 김한성 얘기가 나온 이후로 내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마음 같으면 지금 당장 설득 스킬을 사용하여 그녀를 김한성 곁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빨리 끝내죠. 김한성 얘기가 나온 이유가 뭡니까."

"휴먼매니저에서 김한성이 소유했던 화승 콜센터를 흡수 했던데. 맞죠?"

"네. 맞습니다. 뭐 문제 있나요?"

"우연치고는 기막히네."

"네?"

"나도 김한성의 친구였거든. 고등학교 동창."

"그래서요?"

"김한성은 현재 연락 두절에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고, 잘나가던 회사를 넘기고 잠적했다는 게 믿어지질 않아서. 그런데 당신 회사하고 연관이 됐네?"

와인 한 잔을 마신 뒤 내려놓았다. 그리고 숨길 필요도 없는 일이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김한성은 현재 최해랑씨 부모님이 소유한 철물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

"개인적으로 부모님에게 용서를 빌고 싶다고 해서요.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며칠 전에 찾아갔더니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하!"

"그리고 많이 억울해하더라고요. 혼자 저질렀던 일이 아닌데, 왜 본인만 이렇게 용서를 빌어야 하냐고요."

"그게…무슨 말이지?"

"학교 폭력이요. 당신이 가담했고 최해랑을 죽음으로 몰았던 폭력을 얘기하는 겁니다. 기억나죠?"

"…"

그녀가 와인잔에 담긴 술을 모두 마신 뒤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았다.

이제야 모든 실마리가 풀렸다는 듯 그녀가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머릿속이 복잡해 보였다.

"최해랑을 어떻게 알지?"

"그건 설명하자면 길고…"

"복수하려고 이러는 거야? 그딴 최해랑 년 때문에? 당신이 그 년하고 무슨 관계인데?"

"아무 관계 없어. 그리고 복수? 내가 왜 당신들한테 복수해?"

"뭐?"

"당한 건 최해랑이고 그의 부모님인데, 내가 왜 복수하냐고."

"복수가 아니다?"

그녀가 와인 잔에 레드와인을 따랐다.

"만약 내가 당한 일이라면 이렇게 안 끝나지…하나만 물읍시다."

"…"

"당신한테는 복수가 뭐야? 날 찾아온 이유가 고작 이것 때문이야?"

"내가 당한 만큼 수십 배로 돌려주는 게 복수지."

"수십 배?"

"내 분이 풀릴 때까지."

그녀가 칼을 손에 꽉 쥐었다.

"사람 같지 않다는 게 그런 거야."

그녀가 내 말에 손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분노로 일그러진 그녀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그리고 궁금하다면 답해 줄 수 있어. 내가 왜 당신들 같은 부류를 추적하는지."

"...."

"개인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뭐?"

"학교 폭력을 일삼던 학생들이 먼 미래에 대체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궁금했거든"

"싸이코 같은 새끼."

"연구 결과는 단순해, 김한성도 당신도 과거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아서. 물론 또 다른 가해자 박동수 검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

"당신이 풀려난 거 박동수 검사 입김이 들어간 거지?"

"…"

그녀가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가득 담긴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누군가에게 전화했다.

준비된 손님이 있었다.

"들어오시죠."

한 사내가 터벅터벅 레스토랑 내부로 걸어 들어왔다.

후줄근한 옷차림의 김한성이었다.

그가 굉장히 주눅이 든 얼굴로 내 눈치를 보며 서 있었다.

최여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친구 김한성이 이렇게까지 망가져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한 눈치였다.

"앉아."

"네."

김한성이 내 말에 복종하며 최여진 옆에 앉았고, 최여진은 김한성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살펴댔다.

"너 왜 그래? 대체 무슨 일이야?"

"내버려 둬."

김한성은 최여진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그리고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가 내게 소스라치게 말했다.

"너 뭐 하는 새끼야!"

개의치 않고 김한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김한성씨."

"네."

"당신이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최여진씨 앞에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학교 폭력을 저질렀고 저희로 인해 한 학생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죄 값을 받기 위함입니다."

김한성의 고백에 최여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최여진씨 들었죠? 이 모든 건 김한성씨 자의로 시작된 일입니다."

그녀가 스마트폰을 들어 어디론가 급히 전화하려 했다.

그때,

"하지 마."

김한성이 최여진의 손을 막았다.

그리고 떨리고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가자. 여진아."

"뭐?"

그녀가 의자를 뒤로 끌며 물러섰다. 당장이라도 도망칠 기세였다.

"가서 용서 빌자. 가면 해결 될 거야."

"이 새끼야. 정신 차려!"

김한성의 눈은 오직 최여진에게 향해 있었다. 그가 울분을 토해내며 말했다.

"맞잖아. 우리가 죽인 거 맞잖아. 매일 밤마다 괴롭혔고 때렸고…기억하지?"

"…"

"가서 용서 빌자. 나 혼자만으로는 버거워 여진아. 제발 나 좀 살려주라."

"싫다면? 그리고 왜 나한테만 그래? 나만 그랬어?"

"용서를 비는 게 힘든 건 아니잖아."

"…"

그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가며 사정했다.

"그게 어려워?"

"…"

"네가 한 짓이잖아. 네가 나한테 시킨 짓 아니냐고!"

"미친 새끼…"

"친구 부탁 한 번만 들어주라. 아니면 나도 어쩔 수 없어."

김한성의 불안한 눈동자는 접시 위에 벌겋게 물든 나이프로 향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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