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4. (154/200)

* * *

저녁 시간이 되자 또 시작된 전쟁터였다. 일전의 우울감은 다 사라지고 일에 미친 듯이 매진하고 움직이니 잡념들이 전부 가시었다.

어김없이 만석이었다.

손님들이 줄지어 들어왔으나 일은 아까보다 더 수월했다.

제수씨와 손발이 잘 맞았다고 해야 할까.

오전에 스파르타식으로 배운 요리 레시피를 빠르게 습득했다.

알아서 재료를 만들어 볶고 지지고 면을 투하하여 삶고.

이젠 제수씨도 흡족한 눈빛이었다.

"잘했어요. 아주버님!"

"여기 파볶 네 개!"

파볶이란 파인애플 볶음밥을 뜻했다.

"네. 나갑니다!"

이러다 동생네 주방에 취업하게 생겼다.

* * *

식당 마감 시간이 훨씬 넘었을 때 손님은 완전히 끊겼다.

이모들에게 시간 외 수당과 야근 수당을 더해서 드렸다.

동생은 미리 퇴근했다. 내일 새벽에 일찍 나와서 홀로 재료 준비하겠다며 칼퇴근을 요청했고 제수씨는 승낙해줬다.

나름 노하우라고 생각했다.

둘이서 늦게까지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체력 안배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종일반 어린이집에서 하원 한 조카는 엄마 등에 업혀 졸고 있었다.

식당 마무리가 거의 끝났을 때쯤, 엄마가 소주 한 병을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다들 이리 와라."

엄마가 나와 제수씨를 불러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각자 잔을 나눠주며 소주 한 잔씩을 따랐다.

"엄마는?"

"약 먹잖아. 못 먹어."

"에이,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럴까?"

동생이 빠진 게 아쉽지만, 쌀국수 가운데 두고 소주 한 잔씩을 마셨다

크으.

노동 끝에 먹는 소주는 달다.

"맛있네."

"흐흐. 감사합니다. 어머님."

"다들 고생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궁금했던 점.

"제수씨."

"네?"

"한국말 유창했던 것 같은데. 내가 잘 못 들었나?"

"호호. 못 해요. 어려워요. 어려워."

"아닌데. 분명히 한국 사람 같았는데. 혹시 일부러 못 하는 척하는 거 아냐?"

"아니에요."

"아무튼 고생했어요. 제수씨."

제수씨의 한국말 미스터리는 심증으로만 남을 것 같았다.

엄마 품에 잠든 조카가 칭얼대기 시작하자 제수씨가 급히 안았다.

"먼저 들어가 자."

"네. 어머님. 내일 아침에 나올게요."

"천천히 나와도 돼. 도현이가 새벽에 나온다고 했으니까. 푹 자고 오픈 시간에 맞춰 나와."

"네. 어머님."

제수씨가 내게 고개를 꾸벅하며 인사한 뒤 가게를 빠져나갔다.

엄마와 단둘이 남아 소주 한잔을 더 마셨다.

"엄마."

"응?"

"좋은 소식."

"뭔데?"

"어제 여자 친구네 부모님 만났거든."

엄마는 잔뜩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어떻든? 잘해 주셔?"

"말도 마. 좋으신 분 같더라고. 이것저것 배려도 많이 해주시고. 정말 좋았어. 사실 오늘 여자 친구도 오려고 했는데…"

"그런데 왜?"

"엄마를 처음 보는 자리잖아. 식당 개업일이라 일도 바쁠 테고 다음에 초대해주면 그때 오겠데."

"마음도 곱네. 고와."

"기대돼?"

"기대되지 그럼. 우리 맏 며느리 될 사람인데."

"흐흐. 엄마."

"..."

소주 한 잔을 따르며 엄마를 불렀다. 그런데 엄마의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요즘 들어 감정 기복이 잦다.

"아 왜 또 울고 그래."

"…"

"울지 좀 마."

아버지 얘기를 꺼내고 싶었으나 엄마도 나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아 그냥 말았다.

"너희들이 잘살면 된다. 엄마는 그거 말곤 바라는 게 하나도 없다."

"알았어. 나도 엄마만 건강하면 돼. 앞으로 행복하게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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