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쨍그랑.
주방에서 설거지하던 제수씨가 그릇을 놓쳐 깨졌다.
깨진 그릇을 급하게 치우려다 손가락에 살짝 상처가 났다.
주방 이모가 급히 제수씨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괜찮아. 가서 쉬어요."
동생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고 상처를 살폈다.
"뭐가 괜찮아. 지금 피나잖아."
도현이가 연고와 밴드를 가져와 제수씨 상처를 치료했고 엄마는 그저 한숨을 푹 쉬며 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급하게 굴지 말자고 얘기했잖아. 그럴 줄 알았다. 앞으로 저녁 장사는 어떻게 준비하려 그러냐."
"어떻게 이 상황에서 안 급해. 그리고 다쳤잖아. 그러면 와서 상처 좀 보고 살피는 게 우선이잖아. 왜 식당 생각만 하냐고."
도현이가 그간 설움을 토했다. 그러자 엄마가 다가와 제수씨의 상처를 살폈고,
"이 정도면 아무것도 아니다. 방수밴드 붙이면 충분히 할 만해."
"그게 할 소리야?"
"그러게 네가 주방 일을 좀 배워두면 오죽 좋아!"
"시간이 있어야 하지. 내가 놀았어?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게 얼마나 많았는데. 식당 사장이 요리를 꼭 잘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사업이라고 사업."
"이 놈이 말하는!"
"그렇잖아. 아까부터 계속 나한테 뭐라고만 하고. 나도 할 만큼 했어 엄마."
"할 만큼 했다고?"
"어! 할 만큼 충분히 열심히 했어!"
"네 엄마는 평생 식당 일하면서 너희들 먹여 살렸는데 그 정도는 했어?"
"하아..갑자기 그 애기가.."
"엄마 눈에 식당일 돌아가는 거 눈에 훤하다. 얼마나 힘든지도 알고 고생할 거 뻔히 안다. 그런데 내 새끼들 고생하는 거 두 눈 뜨고 편히 쉬고만 있으라고?"
"그게 아니라 엄마.."
"엄마가 이 정도 잔소리도 못 해?"
"..."
하긴, 경력으로 따지자면 엄마가 더 선배고 경험자다.
단순히 엄마라서 이곳에 있는 게 아닌, 평생 해왔던 일을 알려주기 위해 잔소리가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됐다.
그때, 누군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자, 동생이 고개를 휙 돌려 말했다.
"죄송해요 손님. 지금 재료 준비…."
불청객이 찾아왔다.
행복하게 해줄게.
도현이가 말문이 막혀 가게 내부로 들어온 아버지를 바라봤다.
이렇게 마주한 것도 질색이다.
하필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사람을 말이다.
그는 나의 아버지 ‘김석훈’이었다.
대체 어떻게 알고 이곳을 찾아오게 됐는지 다가가서 따져 묻고 싶었으나,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엄마도 나도 도현이도.
그저 멍하니 서서 아버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열네 살, 사춘기에 막 접어들 때였다.
사춘기 겪는 열네 살 청소년은 부모님의 이혼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항상 밝았고 교우관계도 원만했던 내가 부모님의 이혼 이후,
입을 닫고 방문을 잠그며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평범하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됐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야 조금은 나아지긴 했으나 중학교 3년은 아무 기억도 남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만 흘렀다.
남들과 다른 가정이라는 상처는 오랜 시간 아물지 못했다.
상처는 깊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는 충격은 현재까지도 넓은 인간관계를 맺는 데 방어기제로 남았다.
처음으로 부모님이 별거를 하게 된 날, 아버지는 옷을 가방에 쑤셔 넣고 물건 등을 챙기고 캐리어 두 개를 양손으로 끌고선 집을 나갔다.
문을 나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무슨 말이라도 했었다면 좋으련만 아버지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내게 용돈 십만 원을 건넸었다.
그게 전부였다.
흔한 포옹도 없었다.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표현이 맞을까.
그런 아버지가 20년 만에 갑자기 나타나서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털이 곤두서며 머리가 쭈뼛 섰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머리가 어지럽고 복잡하게 흘렀다.
아버지와 나는 닮았다.
어릴 때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었다.
눈, 코, 입을 빼다 닮았다며 동네 이웃 주민들은 아버지와 내가 같이 걸을 때마다 얘기하곤 했다.
그런 아버지는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흰 머리 자욱했고 살 없는 얇은 피부에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너무 늙었다.
양쪽 볼이 패였고 눈이 퀭하여 그림자가 짙었다.
볼품없는 앙상한 정강이는 메마른 나뭇가지와 같았다.
환갑을 넘어선 아버지의 모습은 처참하게도 백발노인이 돼 있었다.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머릿속에 아무 단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버지는 주위를 한번 쓱 둘러보고는 익숙하게 테이블에 앉았다.
홀 이모가 컵과 물통을 테이블에 서빙하며 메뉴판을 전달했다.
메뉴를 한참 훑어보던 아버지가 말했다.
"소고기 쌀국수 한 그릇만 주세요."
"네."
홀 이모는 아버지를 무슨 걸인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큼 아버지의 행색은 처참했다.
한 푼도 없을 것 같은 몰골이라 홀 이모가 엄마에게 조용히 말했다.
"돈 없을 것 같은데… 한 번 확인해 볼까요?"
"…"
엄마는 홀 이모의 말에 대꾸도 하지 못했다. 뭔가를 꾹 눌러 참고 있는 듯해 마치 콕 찌르면 터질 것 같은 한숨만 내쉬었다.
무릎을 짚고 의자에서 일어난 엄마가 천천히 아버지 앞으로 향했다.
내 시선에는 아버지의 등진 모습밖에 보이질 않았다.
‘왜 왔냐.’ ‘어쩐 일이냐.’ ‘갑자기 찾아온 이유가 뭐냐’ 같은 질문이 엄마의 입에서 나올 줄 알았으나, 젖은 눈으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
엄마가 수저통에 수저를 꺼내 내려놓고 물을 따라줬다.
아버지는 마른기침하며 물을 한잔 마셨다.
때마침 쌀국수가 나왔고 도현이가 직접 아버지 앞에 쌀국수를 내려놓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국수를 한없이 바라보며 한 입 떠먹었다.
엄마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
도현이도 나도 아무 말 없이 쌀국수를 먹는 아버지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거친 호흡으로 단숨에 한 그릇을 비워냈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았다.
빈 그릇을 보며 잠자코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이내 거칠게 의자를 뒤로 끌며 자리에 일어섰다.
동생이 계산을 한사코 만류했으나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원 지폐를 툭 내던지곤 ‘맛있게 먹었다.’는 말을 남기곤 미련 없이 가게를 나섰다.
아버지는 그렇게 다시 떠났다.
가게를 떠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열네 살 때의 기억과 겹쳤다.
주방에서 훌쩍이며 울고 있는 엄마를 제수씨가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위로하고 있었다.
"어머님 괜찮아요?"
"괜찮다. 손가락은 어때?"
"괜찮아요. 어머님."
"아가. 무리하지 말거라. 응?"
"네."
엄마가 제수씨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 *
골목에서 담배를 물었다. 동생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발을 굴러댔다. 그러더니 과장해서 깊은숨을 내쉬었다.
"네가 연락했어?"
"…"
"화내려고 그러는 거 아냐."
"그래, 내가 얘기했어. 그런데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지."
동생이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동생은 간혹 아버지와 연락하곤 했다
"막내아들이 상경하는데 그래도 아버지가 이유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미안해. 형."
"괜찮아."
동생은 내 대답을 듣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던 것을 알기 때문에 동생의 마음도 내내 불편했다.
자연스럽게 다가와 말했다.
"형은 아버지를 몇 년 만에 보는 거지?"
"20년."
"그 정도로 오래됐다고?"
"어."
"많이 변했지?"
"노인이 돼버렸네."
"고생을 많이 하셔서 그래. 나도 최근에 만났던 게 아버지 입원했을 때였는데…그때보다 지금이 더 늙었네."
동생으로부터 아버지 소식을 들었던 게 몇 달 전이었다.
아버지가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했던 날이었다.
"무슨 일했지?"
"막노동. 요즘은 허리가 안 좋아서 일도 못 구하나봐."
"사는 곳은?"
"전라도에서 살았는데 요즘은 잘 모르겠네. 서울에 와 계신 것 보니까…"
"넌 대체 무슨 생각이야?"
"응?"
"묻잖아. 네 꿍꿍이가 대체 뭐냐고."
동생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어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아댔다.
"예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나? 형이 아버지한테 악한 감정만 가지니까 그러지 말자고."
"기억나."
동생에게 로또 1등을 주려다 5등을 줬던 날이었다.
"내가 그때 말했잖아. 아버지 인생도 있는 거라고. 아버지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선택이었다고."
"그래서?"
"나도 알아. 형은 매번 나를 어리게 취급했지만 나도 그때 10살이었어. 우리 집에 빚이 많았던 것도 알고, 사채에 허덕여서 살았던 것도 느껴. 다 보고 자랐어. 나도."
"..."
"아버지 책임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야."
"뭐?"
"아버지하고 엄마가 합의로 재산 분할 한 거라고. 그 일부 빚은 어쩔 수 없이 엄마가 가지고 온 거고."
"그래 네 말이 맞다."
"정말?"
‘지랄하지 말고 네 인생이나 똑바로 살아’라고 얘기하려 했으나 말문이 막혔다.
"엄마 얼굴 봤냐?"
"봤지."
"무슨 생각이 들든?"
"…."
"엄마가 왜 우는 것 같아?"
"…"
"보고 싶었던 아버지가 찾아와서? 아니면 지난날이 후회되는 것 같았냐?"
동생이 담배를 깊게 몰아 내쉬었다.
"아마 아버지 몰골이 안됐겠지.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을 거야. 세상에 일흔도 안 된 양반 몰골이 그게 말이 돼?"
"그래? 내 생각은 달라."
"..."
"부모님 이혼하고 엄마가 3년 동안 이모 집 맡겼을 때 기억나지?"
"어."
"너하고 나하고 부모 없이 살았던 세월이 3년이야. 그때 내가 이 악물고 버틴 건 엄마가 언젠가 찾아올 거라는 믿음이었다고."
"..."
"그런데 엄마는 왔잖아. 3년간 뼈 빠지게 고생해서 우리 세 식구 살 집 마련해놓고 왔잖아. 와서 우릴 키웠잖아."
"...."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 네 말이 맞을 수도 있어. 아마 그런 측은한 마음도 들었겠지. 그런데 엄마가 아버지를 바라봤던 그 눈빛은 원망이었어. 죽도록 사무치는 원망이었다고."
"알았어."
"엄마가 받은 상처에 우리가 소금을 뿌리지는 말자. 응?"
"..."
"이번 일이 마지막이었으면 싶다."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