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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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오면 된다.

화연씨가 동료 검사들과 함께 현장을 방문했다.

체납된 세금과 탈세 혐의, 그리고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혐의가 있었다.

"영장 발급됐어요. 최여진씨 부모님부터 시작해서 동생까지 가족들 전부가 부동산 사기에 연루돼 있는 것 같아요."

"정말요? 제가 그것까지는 생각 못했는데요."

그런데 어차피 초범이라 징역은 면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껏해야 벌금형이거나 집행유예로 끝나겠지만, 빨간 줄은 마땅히 그어야지.

그녀를 화연씨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이번 일은 화연씨에게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나마 성과를 넘겨주는 거밖에 없었다.

기자들도 찾아왔다.

기자들은 휴먼매니저 직원들이 전세 사기범의 돈을 추적하는 과정을 인터뷰로 담았다.

"추적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한 기자의 질문에 휴먼 매니저 직원들이 앞다퉈 설명했다.

마치 영웅이 된 것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추적과정의 일대기를 무용담으로 꾸며대며 말했다.

"자 여기 단체 사진 한 장만 찍을 테니까 직원분들 다 같이 서주시겠어요?"

한 기자의 요청에 우리는 최여진의 집을 배경으로 함께 섰다.

나를 중심으로 그들이 양옆으로 퍼졌으며 자리를 다잡았을 때 우리의 시선은 카메라로 향했다.

최부장님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는 물류센터 계약을 따내기 위해 협상 중이다.

아쉽다.

직원들끼리 단체 사진을 처음 찍는데 최부장님이 없다는 게 다소 아쉬웠다.

때마침 내 시선에는 최여진이 화연씨에게 끌려가는 장면이 보였다.

승합차에 올라탄 그녀가 내 얼굴을 표독스럽게 바라봤다.

그녀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고 나도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줬다.

조만간 또 보자고.

"자 다들 자리 잡으셨죠? 이제 찍습니다. 거기 젊은 친구 표정이 너무 환한데 적당한 미소가 좋을 것 같아요!"

"적당한 미소 지으란다."

"네!"

"찍습니다. 하나둘!"

"잠깐만요!"

멀리서 누군가 외쳤다.

우리의 시선은 사진 기자 뒤편에서 급히 뛰어오는 최부장님에게 향해 있었다.

"최부장님? 어떻게 오신 거지?"

"제가 연락드렸습니다. 이런 중대한 일에 최부장님이 빠지면 섭섭하잖습니까."

오과장이 다소 쑥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짜식. 잘했다."

최부장님은 별안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내 옆에 바짝 붙어서며 어깨동무했다.

"무슨 일인데? 대체?"

"그냥 찍으시면 됩니다."

"이제 찍어요!"

-찰칵!

"대표님 이번에는 무슨 일을 해볼까요?"

오과장이 신이 나서 말했다.

마치 우리가 불의를 앞장서며 물리치는 특공대처럼 생각하나 보다.

"오과장?"

"네. 대표님!"

"영업이나 뛰자."

* * *

400채 갭투자 전세 사기범을 일반인들이 잡은 건 해외 토픽감이라며 다음 날 신문에 1면으로 실릴 것이고 헤드라인으로 가장 먼저 나갈 거라며 말해줬다.

[전세 사기꾼을 잡은 일반인들 화제]

[2030의 피를 빨아먹은 전세 사기꾼 붙잡혔다]

[400채 전세 사기꾼 검찰 조사]

[전세 사기를 막은 00매니저 직원]

뿌듯했다.

마냥 평범한 직원들이다.

뭐 하나 잘난 것도 없는 일반인들이다.

-꿀꺽꿀꺽

홀로 집안 소파에 앉아 캔 맥주를 마시며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찾아봤다.

댓글들이 재밌었다.

ㄴ검경보단 휴먼매니저.

ㄴ휴먼매니저 직원들 잘 암. 저 사람들 존나 착함. 아웃소싱 있을 때 저 회사 소속이었음.

ㄴ휴먼매니저 회사는 대체 뭐 하는 회사야? 아웃소싱? 부동산? 학교재단? 뭐 할 건 다 하네.

ㄴ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을 돕는 회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휴먼매니저, 회사 이름에도 딱 답이 나오잖아요?

ㄴ당신 회사 직원임? 누가 그렇다든?

네티즌들은 휴먼매니저 회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ㄴ휴먼매니저 대표 로또 독식한 인간 아님? 어떻게 아웃소싱 회사가 800억대 빌딩을 소유하냐? ㅋㅋㅋㅋ

ㄴ그러게 ㅇㅈ 800억대 빌딩 소유한 건 솔직히 로또 독식한 인간이라고 볼 수밖에. 회사 설립시기도 비슷함.

ㄴㅇㅇ 맞음.

역시 네티즌 수사대들은 어김없이 대표 이력과 회사 관련해서 파악해대기 시작했다.

ㄴ이름은 김도일. 자산은 이리저리 흩어놔서 자세히 측정불가. 몇 년 전만 해도 물류센터에서 상하차했던 놈임. 내가 잘 암.

ㄴ예전에 물류센터 알바했을 때 팀장? 으로 있던 사람 같던데. 그때 존나 착했음. 역시 잘 될 것 같더라.

-꿀걱꿀걱.

기분이 묘했다.

연예인이 된 기분이 이런 건가?

내 능력을 감추며 살았을 때는 신문 기사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서서히 휴먼매니저 회사가 음지에서 양지로 향하니 댓글 보기가 무서워졌다.

나에 대해서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구글링부터 시작해서 과거사를 꺼내 가며 합심하여 파헤치는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게 있나?

에라 모르겠다.

[도일씨 통화 가능하세요?]

지영씨로부터 문자가 왔다. 그녀에게 바로 전화했다.

"네 지영씨."

-이번 주 주말에 부모님 뵙는 거 알고 계시죠?

"아. 그럼요 알죠!"

사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당장 하루 남은 시간이었다.

-저도 부모님께 다 말씀드렸어요. 굉장히 궁금해 하세요.

"흐흐. 제가 따로 준비해야 할 게 있을까요? 부모님 선물이라도 사가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럴 필요 없어요. 초면인데 간단히 밥 한 끼 먹는 자리니까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선물은 나중에요.

"알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빈손은 좀 그런데..아버님 술 좋아하신다고 하셨죠?"

-네. 그러면 간단히 한잔하실 수 있게끔 술이라도 사오면 좋을 것 같네요.

"네. 혹시..봤어요?"

-봤다니요?

"아뇨. 아니에요."

휴먼매니저 기사를 봤냐고 물어봤는데 아직 못 본 것 같았다.

통화를 끝내고 내일 있을 자리를 준비해야 했다.

사치스러움보다는 평범하게 입어야 했다.

시계도 고가 보다는 중저가 정도로 세팅했다.

휴우, 이제 나도 정말 결혼이란 걸 하는 건가 싶다.

살면서 처음으로 여자 친구의 부모님을 정식으로 뵙는 날이었다.

과거에 연애를 하면서 간혹 마주친 적은 있었으나 정식적이라는 말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지영씨의 아버님은 오랜 시간 부동산을 하신 분이고 어머님은 주부로 계셨다고 한다.

동생은 은행원으로 있고 장녀인 지영씨는 심리 상담사이며 본인 회사를 차렸다.

남부러운 것 없는 집안이다.

넉넉하고 여유롭고 화목한 가정이다.

매달 한 번씩 여행을 가고 주말에 한 번 외식한다.

반면에 우리 집은 그러질 못했다.

부모님은 이혼했다.

여행이라곤 단 한 번도 가질 못했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외식은 딱 한 번 해봤다. 그것도 이제 기억 속에서 흐릿해진다.

아버지는 생존 여부도 알지 못한 채 어디선가 살고 있었고, 엄마는 관절이 좋지 않아 약을 달고 산다.

아버지에 대한 최근 소식을 들은 건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지나면 원망도 누그러든다고 해야 할까.

혼자 사는 게 얼마나 외로운지 나도 잘 알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서서히 동정심으로 바뀌고 있었다.

내가 여유가 생겼으니까 하는 말이겠지만 한 번이라도 아버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긴 했다.

동생은 내가 차려준 식당을 조만간 개업한다.

이름은 ‘하노이하노이’로 정했다. 이름이 마음이 들진 않지만, 제수씨가 살았던 지역 이름이라고 했다.

인테리어가 끝났으니 개업 시기는 다음 주로 정했다.

만약 지영씨 부모님이 가족에 관해 묻는다면 방금 나열한 부분을 솔직하게 얘기할 마음이었다.

이게 전부다.

비록 내세울 건 없지만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이다.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된다.

휴먼매니저의 이능 따위도 필요 없는 일이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그만이다.

이혼 가정이라는 이유로 그들 앞에서 기가 죽기도 싫었다.

지영씨 부모님이 그러시질 않겠지만,

만약 배운 것 없는 엄마가 혹여나 상견례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무시당하는 기색이 보인다면 결혼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엄마는 배운 게 없지만 두 아들 건강하게 키워냈다.

무시당할 사람은 아니다.

간혹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으로 집안끼리 비교했다.

말이 비교지 결혼 생활 평생 기울어진 운동장 아래편에서 위를 보면서 살아야겠지.

지금 내 친구 명석이만 봐도 그렇다.

명석이의 아내가 한참 연상이고 게다가 능력도 월등히 뛰어나며 집안끼리 차이도 심했다.

그걸 결혼식에서 느꼈다.

찾아오는 하객들의 인원부터 분위기까지 차이가 심하게 났다.

명석이는 어깨를 좁히며 산다.

그는 연상이니까 어쩔 수 없다며 얘기하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혼 시작부터 벌어진 차이가 그의 어깨를 좁게 만들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내 결혼식에는 하객들이 몇 명이나 찾아올까?

친구들은 명석이 한 명이다.

중고등학교 동창생들은 연락 두절된 지 수년이 넘었기 때문에 솔직히 결혼식 청첩장 보내는 건 민폐일 것 같았다.

그나마 대학 동창들이 있는데 청첩장 보낸다고 해서 와줄 녀석들은 딱히 없다.

휴먼매니저 소속의 직원들만 이백 명이 넘는데 그들을 전부 불러버릴까?

아니다.

대표 얼굴도 모르는 직원들이 결혼식에 찾아오게 하는 건 민폐겠지?

민폐다.

이건 내 경험에 미루어 판단했다.

과거 대기업 인턴으로 근무할 당시 얼굴 한번 마주친 적 없던 누구 상무내 아들 결혼식 갔을 때 꽤 귀찮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잘 좀 보이려고 축의금 십만 원 냈는데, 결국 한 달 뒤에 계약해지당했다.

휴먼매니저 직원들만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리고 경비 반장님과 화연씨, 그리고 명석이.. 또 누가 있을까.

과거 물류센터 반장들과 연락을 해볼까? 그들이라면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도 연락을 안 한지 꽤 오래된 탓에 괜히 껄끄럽다.

하객 인원을 대충 계산해본 결과.

친구 한 명

지인 한 명

직원 일곱 명.

물론 실습사원 강아지 휴먼도 포함시켰다.

더는

없다.

이런 젠장.

그렇다면 친척들?

흙수저 집안답게 친척들과 왕래가 거의 없었다.

아버지네 친가 집안은 옛날부터 콩가루 집안이었기 때문에 명절 때 모였던 적이 없었다.

엄마네 집안이 그나마 서로 왕래하긴 했었다.

그런데 과거 우리 집안이 어려운 사정으로 나와 도현이가 이모네 집에 얹혀살 때 엄마가 보내준 생활비를 주식 투자금으로 유용한 걸 알게 됐고 엄마는 눈이 뒤집혀 이모와 대판 싸웠다.

그때 이후로 연락은 안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친척들도 제로다.

결론은 내 지인 하객은 총 아홉 명이다.

누군가는 하객이 많이 찾아오지 않을 것을 걱정하여 하객 품앗이 카페에 들어가서 서로들 돕는다고 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그나마 평평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단다.

그런데 꼭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았다.

품앗이라 나도 누군가의 결혼식에 찾아가야 하는데 바빠서 가기 싫을 것 같다.

모르겠다.

아홉 명이든 구십 명이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오면 그만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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