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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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건드려선 안 된다는 게 내 지조다.

최여진이 부동산에서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집이 통조림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집의 의미는 단순하다.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사회생활에 절여진 몸뚱이를 간신히 이끌고 맥주 한 캔 마시며, 마음 편히 두 다리 뻗고 누워 내일을 준비하는 기본적인 삶의 도구가 집이다.

내가 처음으로 휴먼매니저의 퀘스트를 완료했던 것도 집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통조림이라고?

통 안에 가둬놓고 용접을 해 버릴까 보다.

최여진이 꽁꽁 숨겨놓은 돈의 소재를 파악해야 했다.

정확히 521억 원.

1억 원은 5만 원권이 2,000장이다.

무게는 9KG이며 521억 원의 무게는 대략 4.6T이다.

만약 최여진이 정말 멍청하게 아무 계획 없이 무지성 갭투자로 부동산만 축적해놓은 상황이라면 한 푼도 가지고 있지 않은 빈털터리일 확률도 있었다.

세금도 내지 않는 상황이며 가압류가 걸린 집들이 많았다.

정말..최악의 상황으로 그녀가 숨겨 놓은 현금이 없다면, 모든 계획은 말짱 도루묵이며, 그녀가 소유한 집은 어쩔 수 없이 모두 경매로 넘어가야 했다.

세입자들은 전세금의 최소 70%에 가감된 금액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 더 최악인 건 최여진이 세금을 내지 못해 가압류가 걸린 집은 선순위 채권까지 밀려 경매 낙찰가액이 모조리 세금으로 빠져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집주인이 체납된 세금을 왜 세입자 전세금으로 갚아야 하냐며 따질 수 있겠지만 채권 순위에 따라 법이 그러하다.

그래서 끝까지 그녀의 돈을 추적해야 했다.

첫째로 의심되는 곳은 그녀가 소유한 빌라중 유일한 공실이었다.

그런데 그곳은 현준이가 사는 곳 근방에 위치한 원룸이며 돈을 묻어두기 적합하지 않은 곳이라고 판단했다.

현준이가 그곳을 찾아가봤지만 승강기도 없는 곳이라 많은 돈을 숨기기에는 불가능하다.

두 번째로 파악한 곳은 최여진의 주민등록상 본가였다.

그녀가 실거주하는 아파트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아파트에 돈을 묻어 놓고 사는 건 국세청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꼴이지.

게다가 500억을?

최여진은 그리 멍청해 보이진 않는다.

"대표님 여기서 우회전이요."

정주임이 조수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며 내게 말했다. 현재 정주임이 내비게이션을 봐주고 있었다.

"혹시..어디로 가세요? 여기 고속도로 진입인데."

최여진이 말했다. 뒷좌석에 앉은 그녀는 오과장과 연신 수다 떨기 바빴다.

"회사로 가는 중입니다."

운전을 하고 있는 내가 말했다.

물론 회사로 가는 건 아니다.

외곽고속도로를 타고 경기도 양주로 향하고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로 파악해서 알게 된 그녀의 실제 본가다.

이걸 어떻게 알게 됐냐면, 이번에도 이지혜 팀장의 눈썰미에서 시작됐다.

화연씨가 전달해준 최여진의 부동산 내역 중 유일하게 빌라 혹은 아파트가 아닌 집이 있었다.

[대표님! 제가 등기 확인하면서 발견했는데요! 이것 좀 한번 봐주시겠어요?]

이지혜 팀장이 내게 내밀었던 등기 사항을 확인하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기도 외곽에 위치했으며 상권도 없는 허허벌판의 주택, 게다가 세입자의 이름은 최현식.

그녀의 본가라고 판단한 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최현식은 최여진의 아버지라는 것이었다.

이건 김한성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그리고 등기사항을 확인해본 결과 10년 전 소유권자는 최현식의 명의로 돼 있었다.

수년간 명의는 변경됐고 마지막으로 등기된 이름은 최여진, 그녀였다.

최현식은 현재 강남에 위치한 실버타운에서 노후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결국 최여진이 소유한 400채 중 한 곳에 돈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휴먼매니저 직원들과 몇 시간의 회의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오랜만에 고속도로를 타네요."

최여진은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차 내부에서 흥겨운 얼굴로 말했다.

"속도 좀 낼까요?"

"좋죠!"

누군가 본인 뒤를 추적하여 돈의 행방을 찾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겠지.

* * *

그녀는 본인이 소유한 부동산을 전부 매매할 수 있는 기회라고만 여기고 있다.

눈앞에 있는 오과장이란 대어를 어떻게 하면 놓치지 않을까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겠지.

욕심에 눈먼 인간을 속이는 건 쉽다.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는 인간들은 본인 눈에 피눈물 흘릴 생각은 안 한다.

본인이 속고 있다는 사실도 부정해가며 합리화할 것이고 진정 현실을 자각했을 때 모든 걸 잃고 있을 테지.

그런데 여느 드라마처럼 최여진이 그간 해온 악행을 단순하게만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한 사람이 죽었고,

수백 명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등에 칼을 꽂고 다니는 그녀를 멈추게 하는 건 재판을 받고 징역으로 몇 년 살게 하는 게 아니다.

징역은 교화소가 아니다.

악행을 잠시 멈추게 하는 것뿐이다.

"왼쪽으로 빠지셔야 합니다."

"그래."

조수석에 앉은 정주임이 내게 말해줬다.

하마터면 고속도로에서 국도로 빠지는 길을 놓칠 뻔했다.

[양주 150M]

도시 외곽으로 빠져 고속도로를 탄 뒤 양주로 가는 국도로 다시 빠졌다.

이제 이 길은 최여진도 서서히 익숙하겠지.

고속도로 이정표에 찍힌 ‘양주’는 그녀의 의심을 절정으로 치닫게 했다.

"여기는 양주 가는 길 아닌가요?"

"잘 아시네요. 맞습니다."

"휴먼매니저 회사가 양주에도 있었나요?"

"아니요."

그녀의 질문에 내가 대꾸해줬다. 혹시라도 불미스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목적지까지 도착하기까지 완벽히 속여야만 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지금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거다.

맞다.

그녀는 지금 납치당하고 있는 거다.

물론 협박한다거나 납치해서 폭력이나 갈취할 생각은 없다.

최여진도 법의 허점을 노려 세입자의 전세금을 떼먹으며 막대한 부를 쌓은 것처럼, 우리 또한 그녀의 허점을 노릴 뿐이었다.

"왜 양주로 가는 거죠?"

최여진은 최대한 덤덤한 말투로 오과장에게 물었다.

오과장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게 좋은 상품이 있거든요. 같이 봐주십사 해서요."

오과장의 말에 최여진이 안심한 듯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정주임은 내 옆에서 구토하는 시늉을 했다. 하긴, 오과장이 조금 느끼해 보이긴 했다.

목적지까지 남은 시간 5분

이제 최여진도 급히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그녀의 미심쩍어하는 움직임은 운전석에 있는 나에게도 느껴졌다.

본가는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의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여기.."

"네?"

"여기를 어떻게 알고 왔죠?"

"..."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자각했다.

그리고 자각했을 때 이미 늦었다.

세금이라면 우주 끝까지 쫓아가서 징수하는 국세청을 피해 그녀는 이곳에 현금을 쌓아놨다는 게 휴먼매니저 직원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결론일 뿐이다.

확신할 수는 없는 처사다.

허름하고 비루한 집 앞에 차는 멈췄다.

집 앞에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현준이와 이지혜 팀장이 있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그들이 나를 반겼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현준이가 내게 꾸벅 인사를 하며 말했다. 그리고 뒷좌석에 앉은 오과장도 정장을 벗어 던지며 내렸고, 시계를 풀어 헤치며 내게 건넸다.

"연기 하느라 힘들었네요. 불편한 점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대표님."

그리고 최여진은 이 모든 광경을 차 안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최여진씨 얼른 내리시죠."

"하!"

회사 대표인 줄 알았던 오과장이 내게 꾸벅 인사를 하고, 주위 직원들도 내게 다가와 대표라고 부른다?

최여진의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당최 알 수가 있나.

그녀가 헛웃음을 내비치며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내게 다가왔다.

"지금 뭐 하자는 상황이죠?"

"당신에게 떼인 전세금 받으려고 왔죠."

"...!"

최여진의 얼굴이 굳었다.

아니, 차갑고 무표정하며 얼굴에는 생기가 갑자기 사라졌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돈 받으려면 뭔들 못하겠어요."

현준이가 나서며 말했다.

"이거 주거침입인 거 몰라?"

그녀가 빨간 입술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그래서 네년을 데려온 거야 이 쌍년아. 문 열어."

정주임이 갖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최여진이 기가 차서 정주임을 바라봤다.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내가 말했다.

"최여진씨, 지금 상황 많이 안 좋으니까, 문 열어 봐요."

"왜들 지랄들이세요. 네? 사람 하나 납치해놓고 이거 법적으로 문제 있는 거 몰라요? 그리고 전세금? 없어 이 병신들아. 내가 그걸 진즉에 가지고 있었으면 돌려줬겠지!"

"지랄? 지금 지랄이라고 했어?"

정주임이 화가나 그녀에게 달려들었으나 오과장이 급히 막아섰다.

"지금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

"뭐?"

"정확히 한 시간 뒤에 당신에게 떼먹힌 전세금 받으러 세입자들 몰려올 텐데."

"하! 그래서 내가 저 집에 현금을 묻어 놨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이제는 다들 불법 추심까지? 이거 고소할 거야!"

"1분 지났어요. 어떻게 할래요?"

"..."

"그래, 보여줄게. 똑똑히 봐 다들."

그녀가 허름한 대문에 어울리지 않는 키패드를 눌러 문을 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외관과 달리 여느 평범한 가정집처럼만 보였다.

주방은 언제든 요리를 할 수 있도록 가재도구들이 고급스럽게 깔렸고, 다양한 식자재와 유통기한이 긴 식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실은 여느 평범한 집처럼 소파와 거실장 텔레비전이 있었으나, 이곳에서 521억 원의 행방을 찾을 순 없었다.

"다들 뭘 기대한 거예요?"

최여진이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현준이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고, 정주임도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데도 얕은 희망이라도 가지려 부엌의 상부장과 하부 장을 열어보거나 화장실 변기의 물받이 통을 열었다.

방안에 있는 침대를 뒤집었고 이불장과 옷장을 다 헤집었다.

베란다 바닥을 훑어보거나 혹시라도 땅에 묻어두지 않았을까 삽으로 마당의 흙바닥을 파보기도 했지만, 521억 원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당연한 결과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

최여진이 콧방귀를 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바라봤고, 그녀가 말했다.

"다들 정신 차리세요. 전세금 하나 받겠다고 이따위 짓을 꾸미세요? 돈이 있으면 당연히 줬겠죠!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전세금까지 떼먹어가면서 이 짓거리를 하겠냐고! 이제 다들 나가주시죠!"

"..."

"다들 나가라니까요!"

그녀가 일갈하며 소리쳤다. 오과장이 고개를 푸욱 숙이며 내게 다가왔다.

"이제 그만 나가시죠. 아무래도 여긴 없는 것 같아요."

"다들 나와."

망연자실 서있는 직원들을 보며 내가 말했다.

이곳에 돈은 없다.

"아 씨발!"

현준이가 화가나 주방에 있는 통조림을 집어 던졌다.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달려들 기세였으나, 오과장이 그를 말렸다.

통조림이 바닥에 구르며 내팽개쳐졌고, 현준이가 씩씩거리며 집을 빠져나갔다.

하아..

이런 결과를 마주하긴 싫었다. 그간 직원들과 노력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

-또르르르

현준이가 내팽개쳤던 통조림이 내 발밑에 떨어졌다.

씨발.

마지막까지 나를 비웃는 것 같다. 최여진은 집을 마트에 진열 된 통조림이라고 생각하는 년이다.

[집은 마트에서 진열된 통조림 같은 상품이라고요.]

그녀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언제든지 꺼내 먹기 쉽고 유통기한도 길어서 쟁여두기 편한 통조림.

삶의 회의감이 든다.

누군가는 집 한 채를 사기 위해 아득바득 이를 갈며 일하고, 누군가는 통조림 취급하며 편의점에서 물건 고르듯 한다.

그런데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잖아.

왜 타인의 등골을 빼먹으면서까지 이따위 짓들을 하는 거지?

게다가 사회 초년생이나 신혼부부들을 상대로?

주식이나 코인도 남의 돈 따먹는 거라고 하지만, 집은 건드려선 안 된다는 게 내 지조다.

엿 같다. 지랄맞다.

내가 당했다고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구친다.

그런데 문득,

통조림?

내 발밑에 떨어진 통조림을 들어봤다.

꽁치 통조림.

유통기한은 십 년이다.

십 년..

시선은 최여진에게 향했다.

그녀는 통조림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팔짱을 끼며 바라봤다.

무심결에 통조림을 흔들었다.

꿀렁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분명히 안에 내용물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통조림은 유통기한이 10년이나 되네."

"그러게요."

정주임은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둥 한숨을 푹 쉬며 내 말에 대답했다.

"왜 10년이나 될까."

"멸균처리 해서 가능합니다."

오과장이 말했다.

"가정에서도 통조림을 만들 수가 있나?"

"그럼요. 기계가 있는데요."

-딱.

통조림을 열고 내용물을 쏟아내자 진액이 쏟아지며 진공 포장된 내용물이 툭 떨어졌다.

나는 내용물을 들어 보이며 그들에게 보여줬다.

진공 팩에 담긴 것은 오만 원 권 뭉텅이였다.

"찾았다."

최여진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잠깐만! 얘기 좀 하죠."

그녀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응하려 내게 말했으나,

나는 그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간 탓에 긴장감이 쏴악 풀려버렸다.

그간 만난 현금 중에 가장 반갑다.

진공 포장된 돈을 들어 보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돈 없다며 쌍년아. 이건 뭐야? 꽁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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