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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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급행차에 올라탄 격이다.

‘최여진’

그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최일고등학교에 재학당시 가난하고 공부 잘했던 학생 최해랑을 구타 및 협박했으며, 현재는 갭투자로 400채를 구입하여 400세대의 전세금 총 521억 원을 떼먹은 아주 질이 나쁜 사람이다.

박동수, 최재철, 김한성, 최여진, 김세리의 이름을 다시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김한성부터 최여진까지 학교폭력을 일삼던 친구들이 사회에서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물론 전부가 그렇지 않겠지만, 경험에 미루어보자면 현재 100%의 확률이다.

최여진이 부동산에 등장한 이후 오과장이 잔뜩 긴장한 눈치였다.

여느 뉴스 보도를 통해서 본 바, 전세금 떼먹고 도망간 사람을 찾는 건 강력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힘들다고 했다.

아마 조금만 늦었더라면 최여진은 완전히 잠적해버리고 소유한 부동산이 경매로 넘어가면, 손을 털고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게 되겠지.

"안녕하세요."

그녀가 소파에 앉은 우리에게 인사했다.

"이리와 앉아요."

공인중개사 아줌마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주춤하더니 아줌마 옆에 앉아 선글라스를 벗었다.

아줌마는 자연스레 일어나 커피 한잔을 타서 그녀 앞에 놓았고,

"인사들 해요. 우리 동네 빌라왕 최여진씨라고 호호."

그녀에 대한 소개를 해줬다.

최여진은 빌라 왕이라는 말이 싫지 않은 듯 으쓱해 보였으나, 공인중개사의 말에 가시가 돋친 줄은 모르고 있었다.

"우리 복지재단 회장님이 글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빌라를 많이 구입해야 하나 봐요. 우리 사장님 빌라 가진 거 많잖아. 이참에 한번 다 팔아보자고."

"..."

공인중개사 아줌마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본인도 복비를 받아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나름 쏠쏠하게 도움이 되고 있었다.

"복지 재단이요?"

복지 재단에서 빌라를 구입하겠다는 경우는 처음 보겠지.

"어느 복지재단이세요?"

"휴먼매니저요. 복지 재단이라기보단 사학 재단에 가깝고, 복지 재단으로 넓힐까 생각 중입니다."

오과장의 왼편에 앉아있던 내가 말했다. 그녀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휴먼매니저?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한데.."

"기사에도 몇 번 났어요. 800억 가량의 한일빌딩을 매입했을 당시에도 짧은 기사도 났고요. 사업도 다양하게 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학교 운영도 하고요. 소유한 법인 부동산도 많고."

"아..대단한 재단이네요."

최여진은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오과장을 발끝에서부터 머리 위까지 스캔했다.

소파에 앉은 세 명 중에 가운데 앉은 오과장이 누가 봐도 회사 대표로 보였다.

하나같이 명품으로 칠갑한 그를 보고 있자니 그녀의 표정이 온화해졌다.

"그런데 젊은 나이에 어떻게 빌라 왕이 되셨네요."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수행비서처럼 보이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시선은 오과장에게 꽂혀있었다.

그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요즘 시대에 부동산 투자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최여진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그녀가 머리를 뒤로 넘기며 나를 보며 비웃었다.

"안 하면 바보죠. 저도 할 수 있는 만큼만 했어요. 무리하지 않게. 남들은 400채라고 부자다, 재벌 아니냐고 하는데,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800채도 우습죠."

"800채.."

"제가 아시는 분은 몇 년 전에 아파트 갭투자로 수백억 벌고 현재 은퇴하고 잘 살고 계시잖아요? 다들 빌라 갭투자라고 전세금 떼먹네 마네 뒤에서 욕들하고 다니는 것 같던데요. 어떻게 보면 전세라는 제도 자체가 그래요. 수억 원을 남에게 맡겨놓으면서 어느 집주인이 그걸 온전히 내버려 두겠어요? 다들 남의 돈으로 투자하는 거죠. 그렇게들 해요 대부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수완이 밝으시네요."

오과장이 커피 한 모금을 마신 뒤 테이블에 다시 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칭찬에 최여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저도 사장님처럼 사업 수완이 밝았다면 언제든 저의 재산을 수십 배로 불릴 수 있었을 텐데요."

오과장이 다소 겸손을 떨며 말하자, 최여진은 목소리를 더 높였다.

"그러니까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야. 수억 줘가며 전세 살지, 우리 같은 사람은 안 그래요. 상품이에요. 집은 마트에서 진열된 통조림 같은 상품이라고요."

"집은 상품이다?"

"그럼요. 마트의 상품도 매일 물가 상승률에 따라 제값이 널뛰기하다시피 하잖아요? 그런데 집은 통제하는 사람도 기관도 없어요. 마냥 두면 떨어지는 거고, 그렇다고 누군가 관리하자니 그럴 수도 없고요."

"갭투자자들이 그걸 올려놓는 거고?"

"그렇죠. 저희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집값을 올려놓는 거죠. 안 그래요? 저희 같은 사람들이 없어져 봐요. 아파트나 빌라나 폭락한다니까요. 그러면 누가 손해겠어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네요. 누군가 얻으면 누군가는 잃어야죠. 그게 집도 마찬가지고."

"그럼요!"

"대화가 잘 통하시네요."

"회장님도 부동산에 일가견이 있으신 분 같은데 시간 괜찮으시면 단둘이 말씀 좀 나누실까요?"

최여진은 아주 물 만난 고기마냥 오과장을 달달 볶아내려 했다.

호구를 잡았거나, 대어를 낚았거나, 어쨌든 최여진 입장에서는 신이 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전세금도 반환하지 못하는 처지에서 뚫린 입이라고 아주 잘도 지껄여댔다.

그때,

"그러면 사장님이 소유한 부동산 400채의 전세금을 전부 돌려줄 의지는 있으세요?"

"네?"

정주임이 인상을 가득 찌푸리며 말했다.

"얘기를 듣고 보니까 제가 좀 이해가 안 되는 거 같아서요. 사장님이 남의 돈으로 그렇게 사들인 빌라 매물, 나중에 전세 만기 됐을 때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줄 수가 있냐고요."

최여진이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커피잔에 진한 립스틱이 묻어났다. 그녀가 정주임을 내리깔아보며 말했다.

"그거야 당연하죠. 그만큼 수익이 나니까요. 그런데 제가 말한 갭투자에 대해서 이해는 하시고 있는 거죠?"

최여진의 비아냥에 정주임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 수익이 나셨나 봐요? 난 또 전세금이라도 떼먹을 줄 알았죠."

"빌라만 하겠어요? 빌라는 소꿉장난이고, 실상은 아파트죠. 어제도 아파트 하나를 팔았는데요. 차익이 1억이 났거든요. 갭투자로 오천만 원에 샀던 아파트인데, 어쨌든 그 정도면 하루 일당치고는 괜찮죠?"

지금 그녀가 말한 수익은 분명 거짓말이다. 그녀의 부동산 등기를 모두 확인 했는데, 아파트는 없었다.

"아, 1억?"

"그런데 아가씨는 우리 회장님 옆에서 비서로 계시나?"

"비서가 아니라.."

정주임이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게 내 시선에 보였다.

그녀의 성질이라면 한 대 쥐어박고도 남을 참이다.

본인의 남자친구를 도박에 빠뜨린 근본적 원인이었다.

"정비서."

계획된 일을 그르치지 않을까 싶어 내가 급하게 불렀다.

"네."

그녀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대답하며 나를 바라봤다.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는 게 보였다.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까?"

때마침,

-띠리리리

내 전화도 울렸고, 정주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과장이 정주임과 나를 보며 말했다.

"다들 나가 있어요. 사장님하고 얘기 좀 하고 있을게요."

* * *

정주임은 부동산 문을 벌컥 열고 나갔고 한숨을 푹 내쉬며 담배를 물었다.

화가 진정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나도 연신 울리는 전화를 확인했다.

화연씨였다.

"네 화연씨"

-도일씨 대박 사건.

"뭐죠?"

-도일씨가 알아봐 달라고 했던 최여진씨 있죠?

"네."

-수사 가능할 것 같아요.

"정말요?"

-현재까지 현준씨네 집 포함해서 총 40가구에요. 40가구의 전세 기간이 만료 됐는데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거든요. 반환 의지가 없다고 볼 수 있고, 사기 혐의가 다분해요.

"아.."

-혹시 최여진씨 소재 파악된 게 있나요? 제가 현준씨에게 전화 해봤는데, 도일씨가 만나고 있을 거라고 들었는데요.

"잡으러 오시는 건가요?"

-400채에요. 미반환 전세 금액만 531억 원이고요. 건국 이래 최대 전세 사기 수사가 될 수 있다니까요. 그걸 도일씨하고 제가 하는 거고요. 구속수사 아니면 언제 잠적할지 모르는 사람이에요. 지금 당장 잡죠.

고민이다.

부동산 유리창 너머로 최여진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최여진은 잡혀선 안 된다.

"...저도 모릅니다."

"모른다고요?"

화연씨가 일순간 말이 없어졌다.

그녀는 분명히 알고 있다.

내가 최여진과 만나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뭔가 내키지 않았다.

이대로 수사받으면 정녕 모든 게 끝나버릴 것 같았다.

화연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문을 열었다.

-하나같이 피해자들의 공통점이 뭔 줄 아세요?"

"뭐죠?"

-신혼부부 혹은 사회초년생이에요.

"..."

-특히 사회초년생들이 많아요. 불과 몇 분 전에 세입자로 있는 친구하고 통화했는데, 매일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데요.

"..."

-부모님에게 지원받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친구도 있고, 10년간 모아놓은 돈으로 첫 전셋집에 들어갔는데 그 전 재산을 잃을 위기에 놓인 청년도 있어요.

"압니다. 저도."

-도일씨. 제가 하나만 물을게요.

"네."

-최여진씨 옆에 있죠?

내 시선에는 다시 최여진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 말 없는 거 보니 옆에 있다고 생각할게요.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저희가 나서는 게 별 의미도 없죠.

"네?"

-저희 목적은 잡아다가 사기죄로 기소하는 거고, 사실 세입자들 목적은 돈을 받기 위함인데, 저희가 강제로 집행한다고 해서 꽁꽁 숨겨놓은 돈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어요?

"..."

-검사 입장에서는 일단 잡는 게 우선이니까 제 마음 이해하죠?

"그렇긴 하죠."

-도일씨.

"네?"

-무슨 계획을 생각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제가 한 가지 힌트를 드리자면..분명 어딘가에 감춰놓은 돈이 있을 거예요. 도일씨도 그걸 추적하기 위해 그렇게 서 계신 것 같고요.

"네?"

나는 급히 주위를 둘러봤으나 화연씨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는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잘 해봐요.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시고요.

"..."

화연씨와 전화를 끊고 앞으로 계획한 일을 생각했다.

최여진이 사기죄로 기소당하고 징역을 살게 된다면 그때는 정녕 피해자들은 돈을 받지 못한다.

최여진은 결코 잡혀선 안 되고, 끝까지 돈을 추적해서 10원 짜리 하나라도 남김없이 빈털터리로 만들어야 했다.

그녀의 돈을 추적해서 돈의 행방을 파악하는 게 세입자들에게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최여진은 분명 돈이 있다.

있어도 아주 많이 있을 것이다.

그게 어디 있느냐가 문제지.

-덜컥.

오과장과 최여진은 서로 팔짱을 낄 기세로 부동산 문을 열고 나왔다. 벌써 친해진 게 정분나게 생겼다.

안에서 무슨 얘기를 그리 나눴는지 모르지만, 나름 속 얘기가 잘 통한 것 같았다.

부동산 공인중개사 아줌마가 뒤이어 발을 질질 끌며 나왔다.

아쉬운 투로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쉽네요."

"다음에 또 들릴게요.."

그들이 차에 올라타고 나도 운전석에 올라탄 뒤 뒷좌석에 앉은 오과장과 최여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시동을 걸었다.

최여진,

그녀가 제 발로 지옥 급행차에 올라탄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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