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아버님을 집으로 돌려보낸 뒤 현준이와 정주임이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마워 누나."
"대표님에게 고마워해야지."
"감사합니다. 대표님."
현준이가 내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 했다.
"이따 보자고."
"네."
오과장과 정주임, 그리고 내가 차에 올라탔고 현준이네 집 인근의 부동산에 도착했다.
미리 전화로 약속을 잡아둔 상태였기 때문에 공인중개사가 부동산 입구까지 버선말로 마중 나와 있었다.
"아이고 안녕들 하세요."
공인중개사는 우리가 몰고 온 차, 복장, 분위기 등을 단 몇 초 만에 파악한 뒤 입가에 미소를 가득 지었다.
오과장이 뒷좌석에서 내리며 공인중개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준비된 매물 있으면 보여주시죠."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쇼핑 중에서도 가장 고급지고 화려한 쇼핑이라는 부동산 쇼핑이다.
하루에도 수십억씩 써가며 부동산을 싹쓸이해가는 졸부들처럼 오늘 오과장은 그러했다.
공인중개사는 우리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녀는 소파에 반듯한 자세로 앉아 이미 준비된 카탈로그를 우리에게 들이밀었다.
카탈로그 까지?
급히 조잡하게 만들어 놓은 티가 물씬 풍겼지만, 아파트 및 빌라, 건물의 실사진과 상세한 내역들을 한눈에 정리했기 때문에 나름 볼만했다.
오과장이 심도 있는 눈빛을 하며 카탈로그를 한 장씩 넘겨보는데, 그가 불만족스러운 눈빛을 보내니 공인중개사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 동네 요즘 하자에요?"
"네?"
오과장이 ‘하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니 공인중개사는 진땀을 흘렸다.
"하나같이 준공 연도가 90년대 중후반이네, 신축은 없나요?"
"신축.. 있죠 당연히 있죠. 왜 없겠어요. 그런데 신축을 보시려고요?"
신축 빌라를 본다는 말에 공인중개사는 다소 의구심을 품었다.
당연히 건물과 아파트 쇼핑을 하러온 줄 알았는데, 신축 빌라라니.
나는 오과장 옆에서 최대한 예의 있고 바른 말투로 말했다.
"대표님, 아동 불우이웃돕기에 기부해야 할 신축빌라는 총 40채입니다."
"40채."
공인중개사는 기부라는 단어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죠? 40채 정도 필요한데.."
"있죠. 왜 없겠어요!"
공인중개사는 펄쩍 뛰며 벽에 걸린 대형지도로 향했다.
지휘봉 같은 것을 들더니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여기 보이는 구산동에서 구산 2동까지 신축 재건축 빌라들이 엄청 많이 들어섰거든요. 여기가 입지도 좋아요. 인근에 지하철도 있고 편의시설도 많고 게다가 학군도 좋거든요. 신호부부들도 많이 찾는 동네에요. 집값이 싸고 신축이라 집도 깨끗하고요."
공인중개사가 자신 만만한 투로 말했다. 그리고 저 동네, 공인중개사가 동그라미 친 저 동네 사이에 현준이의 집이 있었다.
"그런데 기부를 하신다고?"
"복지 재단에서 사용할 예정이에요. 중개사님? 그만 물어보시고 태경빌라 매물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정주임이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시간을 더 지체하기 싫은 티가 났다.
공인중개사는 태경빌라라는 말을 듣고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태경 빌라를 찾으시는 이유가 있나요?"
태경빌라는 현준이가 사는 집이었다.
"왜요? 문제 있어요?"
정주임이 직설적으로 문제 있냐고 물었고, 공인중개사는 한참을 뜸들이며 말했다.
"호호, 매매를 하신다면 문제없어요."
* * *
집주인과 함께 태경빌라를 향했다. 작년에 준공된 이 빌라는 현재 12가구가 사는 6층짜리 빌라였다.
필로티구조로 된 덕에 주차 공간은 넉넉했다.
공인중개사는 태경빌라의 꼭대기 층이 현재 매물로 나와 있다며 말했다.
우리는 현준이네 가족들이 사는 해당 층으로 향했고, 세입자, 즉 현준이 아버지가 마치 구세주를 만난 것 마냥 우리를 보며 반겼다.
"집 보러 오셨다고요?"
"네."
집주인은 우리를 이끌고 불도저처럼 아버님의 집을 들이밀며 들어갔다.
주방이 썩 잘빠져서 나름 공간 활용을 잘한 것 같았다.
"깨끗하죠? 이 집이 처음 오픈했을 때 인기가 얼마나 많았는데요. 건축주님도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을 잘 써서 하자보수도 여태 한 번도 없었고요. 꼭대기에는 호수별로 창고까지 마련돼 있어서 빌라치고는 공간 활용을 굉장히 잘 한 편이죠."
"집주인은 어때요?"
오과장이 거실 전경을 둘러보며 무심결에 말했다.
집주인 얘기가 나오자 공인중개사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는데,
아버님도 굉장히 난처해하는 표정으로 공인중개사를 바라볼 뿐이었다.
공인중개사는 아버님에게 윙크며 손짓이며 갖은 액션을 취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사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네?"
그녀가 짙은 한숨을 내쉬며 손부채질을 해댔다.
"집주인이 사실 생 양아치거든요."
그녀가 껌을 딱딱 씹으며 불만족스러운 투로 말했다.
"우리 동네 빌라 매물을 전부 싹쓸이해간 년이라니까요."
공인중개사도 한 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 편이었다.
"아.."
"여기 우리 세입자 아버님도 전세금을 받지 못해서 전전긍긍이에요. 우리 복지 사업 하시는 회장님들께서 이 집 사주시면 우리 세입자 아버님도 맘 편하게 전세금 받고 나갈 수 있다는 거죠."
"흠.."
"우리 회장님이 매매를 한다니까 제가 이렇게 소개시켜주지, 전세 보러 왔다고 하면 이런 집은 건너뛴다니까. 안 그래요 아버님? 요 근래 전세 세입자 보러오는 사람 아무도 없었죠?"
"네. 맞습니다."
"이 집으로 할게요."
오과장이 말했다. 그리고 공인중개사가 금니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잘 생각했어요. 좋은 집인데 나쁜 집주인 때문에 망쳐선 안 되지. 제가 집주인 불러 볼게요."
중개사는 거침없었다. 동네 인근의 빌라를 갭투자로 싹쓸이 해간 탓에 전세 매물이 씨가 말랐다며 최여진을 욕해댔다.
그녀는 급히 최여진에게 전화했다.
"여기 태경빌라 601호 매매하고 싶다는 분 찾아왔거든. 빨리 와봐야 할 것 같은데..그 집을 누가 사냐고? 아니 글쎄 복지 사업 하시는 분들이 와서 집을 빨리 구해야 된다잖아. 그러게, 별일이네 참. 빨리 와. 버스 놓치기 전에."
중개사는 씩 웃어 보이며 우리를 다시 부동산으로 안내했다.
소파에 앉은 우리에게 커피와 차를 대접하며 그녀도 중역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하소연했다.
"집주인이 아주 돈독에 오른 년이에요. 제가 막말로 우리 회장님 앞에서 집주인을 욕하면 제가 좋을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우리같이 선량한 중개사들만 욕먹는다니까."
"그렇죠. 어쨌든 중개수수료를 받아야 하는데 전세 매물이 말라버리면 피해를 입으니까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갭투자로 이 근방 매물을 싹쓸이하면서 가져가더니 태경빌라 어르신 전세금도 못 주고 못나가고 있다니까! 저런 집을 우리가 어떻게 세입자를 구해다 줘? 말이야 방구야?"
"그렇죠."
"아유, 나라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니까. 앉아들 계세요. 곧 올 거예요."
"네."
몇 분이 흘렀을까.
선글라스를 쓰고 한 손에 명품빽을 메고 긴 생머리를 한 최여진이 부동산을 열고 나타났다.
향수 냄새가 몇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도 진하게 풍겼다.
"최여진씨?"
"네."
집주인 소환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