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장관 후보의 답변에 이어 한 국회의원이 재차 질문했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대우를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보다 분명하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너무 분명하게 하면 너무 경직화되어 가지고 파견근로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데……
-지금도 엄연히 중간착취가 버젓이 일상화 되고 벌어지고 있는데, 노동부 장관이 너무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닙니까?
꽤 무거운 주제였다.
요즘 들어 많이 생겨나는 아웃소싱 업체와 도급업체, 파견 업체 탓에 중간착취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지고 있었다.
기업과 근로자를 연결해주며 중간에서 착복한 금액이 연 수천억 원이라면 꽤 큰 시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중간착취가 현재도 버젓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노동부장관 후보는 중간착취는 없다며 단언했다.
내가 겪은 일이 그렇게 많은데 아직도 윗선에서 이렇게까지 모른다는 게 믿어지질 않았다.
청문회를 집중하던 직원들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무거워지고 있었다.
"대표님?"
이지혜 팀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네?"
"혹시 만약에 있잖아요."
"네. 말씀하시죠."
이지혜 팀장은 꽤 뜸을 들였다. 어려운 질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모든 이목이 이지혜 팀장에게 쏠렸다.
"우리 회사도 엄연히 중간 업체잖아요?"
"그렇죠."
"착취는 아니지만, 중간에서 기업과 근로자를 이어주는 역할인데.."
"..."
"만약에 중간착취 금지법이 생겨서 우리 회사가 사라지게 된다면 어떻게 하죠?"
"..."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기업이 직고용을 통해 중간 업체를 끼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사라질 회사다.
"그러면 좋은 일이라고 봐야죠. 우리 회사가 사라지는 날이면, 모든 기업이 직고용을 한다는 의미니까요."
"그렇죠."
"그게 계약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인턴이든 뭐든, 직고용을 통해 기업이 직접 인력을 관리하는 것과, 저희들이 중간에서 인력을 관리하는 건 차원이 다르거든요."
"네."
"소속감부터 다르죠. 기업 소속이냐, 아웃소싱 소속이냐에 따라 기분 차이도 다르고요. 이력서에 아웃소싱 업체를 쓰지 않듯이 말이에요."
"..."
"씁쓸하지만 그게 현실이에요. 우리가 아무리 직원들에게 잘해줘도 결국 기업 명찰 달고 일하고 싶은 게 현실이니까요."
"맞아요."
"그런데 방법은 있어요. 우리가 그만큼 하면 되니까요. 지금 당장은 모호한 답변일 수 있지만, 언젠가 직원들이 휴먼매니저 소속임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할 때도 있겠죠."
"네."
"김대표 말이 맞아."
최부장이 내 말을 거들었다. 그의 눈이 상기됐다.
"그리고 중간착취 금지법은 회사의 존폐가 달린 일이 아니야. 착취를 하지 않으면 될 일이야. 여태 우리가 해왔던 것처럼 하면 된다고. 양아치 회사들이나 망하면 될 일이지. 우리가 왜 사라져?"
"맞아요."
"월급에 수십만 원씩 쳐 떼먹는 개새끼들이나 조지면 된다고."
"네."
최부장이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우린 우리 역할만 제대로 하면 되는 거야."
최부장의 마지막 한 마디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역할을 한다는 것.
최부장이 핵심을 짚었다.
그날 밤 노동부 장관의 청문회는 밤새 이어졌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 없는 탓에 하나둘씩 흩어져 귀가했고,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최부장과 나,
그리고 의외로 정주임이었다.
최부장이 잔뜩 술에 취해 있었다.
내가 끝까지 남은 건 그래도 최부장을 안전히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다.
"이제 들어가시죠. 부장님."
"오과장."
"저 도일이에요."
"도일이냐?"
"예."
"흐흐. 도일이 이 자식 많이 컸어. 내가 아주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
"그럼요. 부장님이 키워준 덕이죠."
"내가 키워? 에이.. 네가 큰 거지 뭐. 안 그러냐 정주임?"
"..."
"오랜만에 일 잘하는 두 놈들이 앞에 있으니 내가 어깨가 든든타. 흐흐, 아니지 우리 김대표님이지.."
"..."
최부장이 결국 인사불성으로 취해 테이블에 고개를 파묻었다
-털썩.
정주임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럴 줄 알았어요."
"너는 왜 집에 안 가고?"
"매번 이랬어요. 워킹휴먼에 있을 때도 대표님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부장님 신경 썼잖아요."
"나 혼자서 힘들까봐 남아 있었던 거구나."
정주임은 내 말을 들은 체 만 체하며 최부장을 흔들어댔다.
"부장님! 정신 차려요 부장님!"
"못 일어나."
내가 정주임을 보며 말했다.
"업어서 인근 모텔에 모셔야지."
"..."
"가자."
최부장을 업고 가까운 모텔로 향했다.
네 덕분에 찾게 됐다.
하나도 무겁지 않다.
가볍다.
스킬을 써서 그런지 솜털같이 느껴진다.
최부장을 업고 간신히 인근 숙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를 눕히고 정주임과 나는 다시 모텔방을 나왔다.
그런데,
그녀는 집에 가지 않고 나를 멀뚱멀뚱 쳐다만 볼 뿐이었다.
"왜? 집에 안 가냐?"
"할 말이 있어서요."
"취했냐?"
"아니요."
정주임과 단 둘이 인근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맥주 한 캔을 깠다.
오랜만에 단 둘이 먹는 술이다.
가장 최근에 먹었던 게 클럽인 것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니, 시간 참 빠르다.
사실 나도 정주임에게 할 말은 좀 있었다. 사소한 일로 짜증을 내는 경우도 많았는데, 특히 현준이에게 더 그랬다.
그들이 사귀는 건 내가 옛날부터 알고 있었으니 그들끼리 회사에서 툴툴거리는 건 이해하는 바다.
그런데 공사는 구분해야지.
"할 말 있다며?"
나야 뭐 알코올 분해가 남들보다 뛰어난 수준이라 취하지 않는다지만, 정주임은 정말 말술이다.
그녀의 빈 캔 맥주가 두 캔을 넘어섰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대표님."
"응?"
발개진 코와 볼, 꼬인 혀, 서서히 취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말을 해 불렀으면."
"하아. 대표님, 제가 있잖습니까."
"뭔데?"
"현준이랑 사귀는 건 아시죠?"
"..."
"알죠?"
"대충 눈치는 깠지. 솔직히 말하면 옛날부터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어."
"하아.."
"왜? 현준이 때문에 일을 못하겠냐?"
"그건 아닌데요."
"너희들 끼리 싸우고 지지고 볶는 거 너희들 자유라 내가 터치 안하는데, 너 요즘 예민해. 사소한 걸로 툴툴거린다니까. 대체 이유가 뭐야."
"솔직히 말해도 돼요?"
"어."
"현준이 이 개새끼 때문에 제가 일을 못 하겠슴다."
푸핫,
이러면 안 되는데 마시던 맥주를 입에서 뿜어 흘려버렸다.
정주임의 입에서 나온 ‘현준이 이 개새끼’란 말이 왜 그렇게 웃겨버렸는지 모르겠으나, 그냥 웃겼다.
"뭔데? 무슨 일인데?"
나는 빈 캔을 찌그러트리며 말했다. 대화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고 정주임의 탄식이 이어졌다.
"제가 아주 미치겠습니다. 하아."
"속 시원하게 얘기해 봐. 일 때문에 그래? 너무 안 맞아서?"
"아뇨. 걘 뭐 딱히 하는 것도 없는 놈이라 일적으로 부딪치는 건 없어요. 사적으로가 문제지.."
"바람 폈어?"
"걔가 바람을 펴요? 저한테 죽죠."
"그럼?"
"걔 도박하는 건 아시죠?"
"푸훕. 뭐? 도박?"
현준이가 도박을 한다는 데에 내 표정도 조금 굳어졌다.
"도박도 그냥 도박이 아니에요."
"그러면?"
"토토요."
"토토?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내 주위 친구들도 간혹 하던데?"
토토란 프로 스포츠 경기의 승무패를 맞추는 도박의 일종, 로또 판매점에 가면 구입할 수 있다. 합법이다.
"그렇긴 하죠. 그런데 그것만 하면 저도 넘어갈 순 있어요."
"또 뭐가 있냐?"
"바카라도 해요."
"허..."
"한 달에 한 번은 도박장은 꼭 가고요. 스크린 경마장은 매주 간다니까요."
"참나. 왜 만나냐? 전생에 죄지었냐?"
"그러니까요. 제가 왜 그런 놈이랑 만나서 이러고 있을까 싶습니다. 사실 그것 때문에 매일 싸워요. 회사에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현준이만 옆에 있으면 속에서 열불이 난다니까요."
현준이가 한 달에 받는 돈은 약 350만 원.
24살의 나이에 그 정도 받는 거, 상위 3% 안에 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돈으로 도박을 해?
"걔 완전 꾼 다됐어요. 매일 토토니 뭐니 하면서 하루 종일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니까요. 근래는 코인에 손을 대는지 하한가니 상한가니, 한강이니, 밀물이니 썰물이니, 아주 죽겠어요. 진짜."
"하아.."
"대표님, 현준이 어떡하죠? 워킹휴먼에 있을 때는 안 그랬는데, 걔가 월급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사람이 확 변해버린 거 같아요."
"성희야."
"네?"
"네가 선택한 사람이야. 악으로 깡으로 버티든, 손절을 치든, 뭐든 네 선택이야."
"..."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건 도박 하는 사람들은 잘 안 바뀌더라. 물론 내 경험이고."
내가 해본 경험은 아니다. 과거 대학 시절 도박에 빠진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
"이 얘기 하려고 날 붙잡아 둔거야?"
"상담받고 싶어서요. 그래도.."
정주임이 얼버무렸다.
"대표님이라면 뭔가 혜안이 있을 것 같아서요."
혜안이라면 있다.
"손모가지를 분질러 버려."
"제가 그 덩치를 어떻게 이겨요."
"아니면 월급을 뺏어버리던가."
"..."
"어차피 네가 우리 직원들 월급 넣어 주잖아. 잘됐네. 현준이 급여에 돈 넣어주지마."
"그래도 될까요?"
정주임은 마치 원하는 답변을 얻은 것처럼 표정이 밝아졌다.
"상관은 없어. 그런데 현준이가 그걸 승낙할까 싶다."
"결정권은 제게 있죠."
"야, 너희들 결혼 할 거냐? 연인사이에 돈 문제 걸리면 예민해진다. 확실히 해야 돼. 네가 정말 현준이랑 결혼을 할 생각이고 서로 책임지겠다면 그래도 되는데.. 아니면 네가 좀 막 나가는 거지."
"생각해볼게요. 휴우. 제가 대표님 붙잡고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참. 죄송해요."
"괜찮아. 이제 들어가자. 그리고 성희야."
"네?"
현준이보다 좋은 사람 많다고 얘기해 주려다가 입에서 나오질 않았다.
"현준이가 네 맘을 알아줬으면 싶네."
* * *
눈을 뜨자마자 창문 사이로 밝은 햇살이 비쳤다.
급히 커튼을 치고 다시 누워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9시.
스마트폰을 켜서 곧 있을 1,020회차의 로또 당첨 금액을 살폈다.
현재 로또 판매금액은 약 2천 원으로 올랐기 때문에, 만약 다섯 명의 1등 당첨자가 나온다면 1인당 192억 원의 당첨금액이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저번 1,019회차에서 천 명의 당첨인원이 나온 이후 여러 가지 통계 기사가 쏟아졌는데, 천 명이 나온 것은 단순히 우연이라는 기사였다.
한 조합에 만 명 이상이 쓴 번호도 있었고, 조합이 없는 번호는 110개에 불과하다는 것.
만약 만 명이 쓴 조합 번호가 1등에 당첨 됐다면 1,019회차는 만 명의 1등 당첨자가 나왔을 것이라며 이번 논란을 일축했다.
한 회에 1억장이 팔리며 확률상 평균 10명 정도의 당첨자가 나오는 게 일반적인데, 천 명이 나온 경우는 이런 통계 확률을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결과라고 했다.
나의 기행에 열심히 반론해주며 일 해주는 로또 회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조만간 또 이월이다.
흐흐,
비록 내 몸뚱이는 침대 속에 있지만 사무실의 전경이 상세히 펼쳐졌다.
최부장이 숙취에 절어 겨우 자리에 앉을 테고, 정주임과 현준이가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일을 시작하겠지.
오과장은 어제 겪었던 일이 아직도 채 흥분이 가시지 않아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었으나,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을 것 같고, 이지혜 팀장도 마찬가지겠지.
웃음이 났다.
특히 어제 있었던 정주임의 연애 상담은 내가 직원에게 미치는 영향의 선을 넘어선 수준이다.
직원들의 사생활까지 내가 간섭을 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설득 스킬을 이용하여 현준이를 정신 차리게 만들어 주고 싶지만, 그를 맹목적으로 나를 따르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직원인가?
가족인가?
이게 참 모호하다.
분명 가족처럼 질긴 인연으로 회사 생활을 함께 해나가고 있지만,
결국 내가 그만큼 돈을 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닌가?
만약에 급여를 주지 않는다면? 회사가 사라진다면?
그들이 내 옆에 있을까?
당연히 없겠지.
이런 구차한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것도 내 복이지.
사무실에 들어가니 정주임이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예전부터 느꼈는데 그녀가 간혹 머리를 질끈 묶어 말똥 머리를 한 날이면 제 성질이 한참 곤두선 날이라는 방증이었다.
아마 어제 있었던 연애 상담을 염두에 두고 그러는 것 같았다.
나는 현준이를 불렀다.
"현준아."
아무것도 모르는 현준이는 그저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바라봤다.
예전부터 느끼는바, 이 녀석은 나만 보면 웃었다.
내가 현준이를 부르자 정주임이 헛기침을해대며 인상을 가득 쓰고 있었다.
"따라와. 옥상에 가서 얘기 좀 하자."
"네?"
현준이와 함께 회사 옥상으로 향했다.
캔 음료 하나를 옥상 난간에 올려두고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요즘 회사 생활은 어떠냐?"
"할 만합니다. 아니 너무 소중하고 좋은 회사인 것 같습니다."
"생활은?"
"무슨..생활 말씀이십니까."
"돈은 잘 모으고 있냐고. 네 나이에 그 정도 월급 받는 친구 드물어. 회사 생활하면서 말이야."
"네.. 잘 알죠 흐흐. 덕분에 매일 감사해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 너랑 처음 물류센터 갔을 때 기억나?"
"기억나요."
"네가 그랬잖아. 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것도 모르면서 말을 너무 심하게 하는 거 아니냐고."
"그때는 제가 철이 없었네요. 흐흐."
"아냐. 내가 널 판단하는데 중요한 척도일 것 같은데, 한번 묻자. 어떤 삶을 살았는데?"
"그냥.. 흐흐."
현준이가 어물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긴, 무턱대고 그의 과거사를 묻는데 선뜻 대답해줄 사람이 누가 있겠냐.
돌려 얘기하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
"도박하냐?"
"하.."
현준이가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금."
"네. 해요."
"언제부터?"
"한 달 전부터 하게 됐습니다."
"성희가 스트레스 많이 받는 것 같던데. 끊을 마음은 없고?"
정성희 이름이 나오자 현준이의 안색이 굳었다.
"성희 누나가 얘기했나요?"
"어. 네가 걱정돼서 죽겠대. 오죽하면 네 월급까지 본인 계좌로 넣으려고 한다니까. 남자 대 남자로서 얘기하는 거야 인마."
"하아.. 저랑 성희누나 사귀는 거 알고 계셨구나.."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어떻게 할 거야? 네 월급 성희 계좌로 들어갈 수도 있어."
"끊어 보겠습니다."
"끊어보겠다? 불법 도박이 말로만으로 끊을 수 있는 건 아닌데. 대체 이유가 뭐야? 갑자기 도박을 하게 된 계기라도 있을 것 아냐. 네가 적은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현준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른세수를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수틀린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제가 한 달 전에 저희 집안이 전세 사기를 당했습니다."
"뭐?"
"그러다 보니 제가 잠시 미쳤나 봅니다."
"전세 사기를 당했다고? 얼마였는데?"
"3억 정도.."
"집주인이 도망간 거야?"
"네. 부모님에게 듣기론 전세금 들고튀었다고 하네요. 아직도 안 잡혔습니다. 받을지도 모르겠고.."
"아..그래서 그거 메꾸어 보려고 도박을 한 거고?"
"메꾸겠다는 의지보다는 인생 참 허무하더라고요. 우리 가족 평생 모았던 돈인데요."
"집주인 이름이 뭐야?"
"최여진이요. 개새끼."
"최여진?"
"아세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었다. 누구 였더라, 분명히 낯익은 이름이다.
"현준아."
"네. 대표님."
"약속 하나 해줘라, 도박은 하지 않기로."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희들 사귀는 건 나만 알고 있을 거니까, 사무실에서 너무 티 내지 말고"
"네."
현준이와 사무실에 내려간 이후로 입가에 씁쓸한 맛이 가시질 않았다.
평생 모은 돈을 사기로 한 번에 날리면 누구든 사행심이 생기기 마련이겠지.
그런데 현준이 입에서 나온 이름 석 자.
‘최여진’
「기억」스킬을 이용할 필요도 없이 뇌리에 박힌 이름이다.
내가 이 인간 이름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최일 고등학교 학교폭력 5인방의 이름 중 한 명이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박동수, 최재철, 김한성, 최여진, 김세리, 총 다섯 명이다.
게 중에 콜센터 대표 김한성은 현재 처리당한 상태였고 나머지 네 명은 호기롭게 잘 살고 있다고 들었다.
"어디 가세요?"
재킷을 입고 나가려는 찰나,
정주임이 내게 물었다.
"네 덕분에 찾게 됐다."
"뭘요?"
"궁금했던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