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씹새끼들."
평소 욕을 하지 않던 최부장도 성이 나서 저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나왔다.
"옛날에 워킹휴먼이 경비업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다 이런 거 때문이라니까. 스트레스가 원체 많아요. 이게. 관리는 안 되고, 계약만 따놓으면 이게 일이냐고. 사람이 그 지경이 될 정도로 말이야. 29살밖에 안 된 친구가 술을 안 먹으면 잠을 못 잔단다."
최부장이 오과장과 정주임, 그리고 고사원을 보며 말했다.
그들이 꿀 먹은 벙어리로 가만히 앉아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그리고 나도 거들었다.
"고현준."
"네."
"경비원 근무 수칙이 뭐야?"
"공손과 절도 있는 말과 행동으로 입주민들을 대하며, 적극적인 자세와 친절한 미소로 투철한 서비스를 발휘..."
"그게 경비원 근무 수칙이라고?"
"..."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현준이를 보며 말했다. 현준이는 그저 고개만 숙이며 쭈뼛거리며 서 있을 뿐이었다.
나는 최부장을 바라봤다. 그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마른세수하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최부장이 말문을 열었다.
"현준이 네가 얘기한 건 결국 입주민들에게 경례하거나, 투철한 정신으로 택배 업무나 주차나 잡일을 해줘야 한다는 뜻이겠지. 그게 근무 수칙이라고? 살다 살다 그런 수칙은 내가 처음 들어본다. 안 그래요 김대표님?"
"맞습니다."
"경비원들은 감단직이야. 감시 단속적 근로자라고, 아파트에서 매일 생활하다시피 근무하는 양반들인데, 적극적인 자세? 친절한 미소? 경비원들이 무슨 서비스직이야?"
최부장의 말에 현준이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잘 몰랐습니다."
"기본적으로 경비원들이 왜 아파트에서 근무하는지 그런 개념조차 없는 거잖아 지금, 오과장!"
"네. 부장님."
"너는 어떻게 생각해? 경비들이 아파트 입주민들 부하 직원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닙니다."
"그럼 여태 뭐 했어? 가서 다 뒤집어엎든 계약을 해지해버리든, 제 직원들을 지켜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맞습니다."
"이성민 경비원이 부당 업무로 노동부에 신고했어봐. 우리만 독박이고 벌금 내는 거야. 우리 일이란 게 그래, 다들 인원 관리에 좀 더 신경 쓰자고 알았어?"
"네!"
"크흠."
날 대신하여 최부장이 할 말은 다 해줘서 속이 시원했다.
그런데, 사원들의 표정이 너무 암울하다. 나는 최부장님을 보며 말했다.
"부장님?"
"네, 대표님 말씀하시죠."
"제가 오늘 저녁에 뷔페 알아놨는데, 직원들끼리 식사나 한번 하시죠. 정길완 반장님도 출판 기념으로 오신다고 하셨는데요."
"그러시죠.."
뷔페라는 말에 현준이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오과장?"
"네 대표님."
"입주민 이동통로에 주차하는 새끼 차가 뭐야?"
"벤츠 G클래스입니다. 가격은 1억 4천정도 해서 뭐 함부로 손을 못 대겠더라고요."
"1억 4천.. 나이는?"
"30대 초반이라고 들었습니다."
"뭐하는 친구야?"
"그건 저도 잘.."
"오케이. 다들 식사나 하러 가시죠."
누군 진 몰라도 한참 잘못 걸렸다.
이제 우리가 어떤 회사인지 알겠지?
정길완 반장과 최부장이 서로 마주보고 앉아 소주 한잔을 걸치며 경비업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이지혜 팀장과 정주임,
고현준과 오대리가 마주 보며 앉아 연신 밥을 먹고 있었다.
나도 뷔페에서 스테이크를 특별히 주문하여 한 점을 칼로 잘라먹었다.
슥슥.
현재 시각 저녁 7시 30분.
"현준아."
"네 대표님."
"천천히 먹어라 아직 마감까지 한 시간 남았으니까."
"흐흐, 내일까지 배부르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더 먹어야 돼요."
현준이가 거침없이 뷔페 음식을 담아 먹었다.
유독 오과장의 표정이 어두웠다. 아마 방금 사무실에 있었던 일 때문에 내내 신경 쓰는 것 같았다.
"오과장 밥 먹어라.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최부장과 정길완 반장이 오과장의 표정을 살피더니 정길완 반장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오과장님께서는 하실 만큼 하셨습니다. 예전에 대표님께서도 주차일 때문에 속을 꽤나 삭였죠."
과거였다.
물론 생각보다 몸이 앞섰던 일이고 과정보다 결과가 더 중요했다.
나는 티슈 한 장을 뽑아 입을 닦아 내려놓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당하고만 있을 순 없습니다."
"네?"
오과장이 나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내 말을 쉬이 이해하기 어려워 보였다.
"갚아 줘야죠."
"..."
모든 이목이 내게 집중됐다.
"우리가 그런 회사잖아요. 직원들이 당하고만 있는데 그걸 모른 척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최부장이 소주 한잔을 마시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고현준이 먹는 것을 잠시 멈췄고,
이지혜 팀장과 정주임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오과장 만이 포크를 손에 꽉 쥐고 있었다.
"게다가 그깟 양아치 하나 때문에 말이죠."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됩니다. 어떻게든 처리만 된다면 뒷수습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자는 내 말에 직원들의 생각이 깊어 보였다.
나는 이 적막함 속에서 의자를 뒤로 끌어 일어났다.
"어딜 가시게?"
최부장이 나를 보며 물었다.
"신진 아파트요."
자리에 일어나 그들을 뒤로하고 홀로 뷔페를 빠져나갔다.
신진아파트로 향했다.
3개 동의 작은 단지에서 세대당 주차 대수가 적은 탓에 불거진 일인 것 같았다.
세대당 두 대 정도는 기본 차를 소유하고 있을 것 같았다.
입주민들만 진입할 수 있는 아파트 입구 게이트로 향했다.
자동차 등록이 되질 않았으니 바리게이트는 열리질 않았고
경비원이 다가와 물었다.
"누구세요? 여기 입주민들만 지나다닐 수 있는 곳이거든요."
나는 그에게 명함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휴먼매니저에서 왔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도일 대표라고 합니다."
"아이고, 대표님. 얼른 들어가시죠."
경비원이 바리게이트를 열어준 뒤 나는 단지 구석에 주차를 했다.
멀리서 경비원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어쩐 일이세요?"
"이성민씨 아시죠? 회사에 찾아오셨습니다. 일이 괴롭고 힘들다고 하셔서요."
"아.."
"여기 경비 반장님은 누굽니까?"
"접니다."
* * *
아파트 단지 내 벤치에 앉아 그간 있었던 일을 더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팔뚝에 있는 문신과 덩치로 봐서는 주점 혹은 사채업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도 확실하지 않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주민들도 무서워서 함부로 말을 못 하고 있어요. 일단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세니까."
"지금 주차된 차량이 설마 저겁니까?"
"네. 맞습니다."
맙소사.
주차를 저따위를 해놓는다고?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바로 정면이었다.
오고가는 차량이 간혹 실수라도 하게 되면 차량 범퍼를 충분히 긁을 수 있었다.
일부러 그걸 알고서 저러는 건가 싶었다. 나는 주차된 차량으로 다가갔다.
"이야, 주차도 아주 지랄 맞게 해놨네요."
"현재 이 차량 때문에 지하 주차장을 잘 이용하지 않으려 하죠. 어쨌든 긁히면 본인도 과실이 있을 텐데, 참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
"재력을 과시하는 거죠."
"아.."
"일단 알겠습니다."
경비 반장을 돌려보낸 뒤 나는 주차된 차량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리고 해당 차량에 적힌 전화번호를 확인하려는데, 아뿔싸
이런 싹수 노란 새끼가 전화번호를 적어놨을 리가 없지.
그때,
저 멀리서 검은 무리의 그림자가 보였다.
휴먼매니저 직원들의 모습이었다.
최부장과 오과장, 이지혜 팀장, 정주임, 고현준, 그리고 정길완 반장이었다.
"이 차야?"
"네."
최부장이 담배를 뻑뻑 피우며 말했다.
"씹새끼, 차 주차해놓은 거 보니까 제 성질 안 봐도 알겠다. 퉤 씨발."
"뭐 어떻게 하실 작정이세요?"
정주임이 물었다. 아무 대책 없이 이렇게 나온 게 그녀는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투였다.
"그러게, 안 오셔도 되는데 갑자기 왜 오셨어요. 다들."
"대표님이 나서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흐흐."
나름 뿌듯했다.
"그런데, 어떻게 조지죠? 시간이 꽤 늦었는데?"
"머리를 써야겠지?"
그들과 단지 내에 앉아 앞으로 어떻게 이 인간을 조져버릴지 계획을 세웠다.
회의는 거의 최부장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그간 이런 일을 가장 오래 했고 설움이 많은 사람이니만큼, 그의 입이 마치 모터를 단 것 같았다.
굉장히
다이내믹하고
스펙터클한 계획,
역시 최부장은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가 모든 계획을 짠 뒤 내게 말했다.
"감당할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 * *
경비 반장 정길완과 함께 경비 초소로 향했다.
"몇 동 몇 호에 사는 누굽니까?"
"네? 그건 개인 정보라."
"알려주시죠. 제가 책임질게요."
"102동 801호입니다."
"여기서 연결할 수 있죠?"
"네."
경비반장의 도움으로 해당 호수로 바로 전화 연결을 할 수 있었다.
목소리가 걸걸한 남성이 전화 받았고,
"여보세요."
"차 좀 빼주시죠."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당신 뭐야? 경비야? 씨발 진짜 내가 말했지? 입주민들도 나한테 걸고넘어지지 않는 일을 왜 나한테 지랄이냐고 씨발새꺄. 그리고 얻다 대고 인터폰을 걸고 지랄이야. 너 뭐야?"
"경비업체 대표입니다."
"하, 참나 씹새끼들. 내가 아주 엿으로 보이지 어? 내려가? 내려가서 저번처럼 한번 뒤집어엎어 줘? 하인 같은 새끼들이 아주, 시발."
"내려오세요. 제가 다 부숴버리기 전에."
"뭐?"
"내려오시라니까."
"딱 기다려."
인터폰을 끊자 경비반장은 그저 놀랄 뿐이었고, 정길완 반장은 탄식을 내뱉었다.
"반장님은 할 일 보세요."
"네."
기존 반장은 근무를 위해 돌려보내고, 정길완 반장이 경비 근무복으로 갈아입었다.
정길완 반장과 함께 그가 사는 102동으로 향했다. 천천히 걸으며 담배 한 대를 물었다.
생각이랄 건 딱히 없었다.
예전보다 내가 더 성장해서 더 이로운 방법으로 지혜를 발휘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아주 오래전 한 친구와 농담 따먹기를 할 때 너는 초능력이 생기면 어떤 능력을 갖고 싶냐 물은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아주 깊이 생각하더니 이런 말을 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던 거 그대로 돌려주고 싶어. 내 감정 그대로."
문득 그때의 일이 생각났다.
나는 정길완 반장과 함께 그의 차량 근처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
물론 정길완 반장은 주차금지 스티커를 아주 강력한 걸로 구해와 차량에 부착해둔 상태였다. 운전석 시야가 정확히 가릴 수 있도록 말이다.
102동에서 한 남자가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나왔고,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배를 긁어댔다.
전형적인 양아치 관상.
그는 갖은 인상을 쓰며 본인의 차량으로 향했고
운전석 앞 유리에 붙여진 주차금지 스티커를 발견한 뒤
"씨발 이게 뭐야!"
라며 고성을 질렀다.
그는 스티커를 떼기 위해 애써보지만, 정길완 반장이 신제품으로 가져온 스티커는 약품으로만 제거가 가능했다.
"어떤 개새끼야!"
그는 눈을 부라리며 주위를 둘렀고, 때마침 경비원 복장을 입은 정길완 반장을 발견한 그가 급히 다가왔다.
"당신이 이랬어?"
"예."
"때. 지금 당장 때 씨발놈아!"
정길완 반장이 애써 참는 게 보였다. 그도 맘 같으면 쌍욕을 질러내고 싶었으나, 간곡히 부탁했다. 내게 맡겨달라고.
"반말은 하지 마시죠."
"당신 뭐야?"
그의 차량에 기대어 내가 말했다.
"우리 경비원 중에 한 분이 당신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거든요."
"그래서?"
"되갚아줘야 할 것 같아서."
"하, 참나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의 앞에는 내가 있었고 뒤에는 정길완 반장이 있었다.
그가 나와 정길완 반장을 번갈아보며 조소하며 말했다.
"아주 쌍으로 지랄들 하세요. 병신 새끼들아. 너희들 뒤졌어 씨발."
"너는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사인 줄 알아?"
"..."
"너희 같은 새끼들 생기면 처리해주는 회사고,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 보호해주는 회사야."
"하."
"그래서 처리 좀 해야겠다."
정신을 못 차리게 해주지
-부우우우웅!
어디선가 거센 배기음이 울리며 차량 한 대가 다가왔다.
오과장이 타고 있는 견인차였다.
그가 자연스레 차량의 하부에 리프트를 넣었고, 차주는 해보라는 시늉으로 팔짱을 끼며 바라볼 뿐이었다.
오과장은 과거 먹고 살기 위해 견인차 일을 해봤다고 했다.
"살짝이라도 걸려봐 병신 새끼들아. 이거 차량가가 얼만 줄은 아냐? 씨발. 내가 똑똑히 보고 있으니까."
그는 스마트폰을 들어 촬영을 하고 있었고 리프트 설치가 완료되자 견인 차량은 천천히 이동했다.
그리고 약속된 장소에 차를 떨궈 놓은 뒤,
"에이? 겁났나 보네? 병신들."
"차가 고장 났나?"
오과장이 견인차가 일부러 고장 난 것처럼 연기를 한 뒤 리프트를 다시 해체했다.
"어휴, 잘들 논다 놀아."
오과장이 내게 엄지 척을 날린 후 미련 없이 떠났다.
"겨우 이정도야? 참나, 별 그지 같은 새끼들 다 보겠네."
양아치는 나를 보며 비웃었다.
그런데 아직 끝나지 않았지.
그와 내가 대치하고 있을 때,
-삐이이이익!
이번에는 화재경보기였다.
일순간, 아파트 주민들은 모두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어딘가 불이 났는지 살피고 있었고,
정주임과 이지혜 팀장이 단지 내 어두운 곳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벨튀 중에서도 극악이라는 경보기 누르고 튀기.
주민들은 우리 광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단지 내에서 다루기 어렵다는 인간과 내가 대치하고 있으니 이것만큼 재밌는 싸움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마치 격투기 현장을 방불케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는 주민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게 쪽팔리는지 나를 보며 말했다.
"쪽팔리게 이러지 맙시다. 나이 처먹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어휴."
"아직 안 끝났어."
"뭐?"
두둥,
이제 곧 등장한 것은 소방차였다. 그는 아직도 사태 파악이 되질 않아 보였고, 소방차는 일절 망설임도 없이
-콰앙!
그의 벤츠 G클래스를 밀어버렸다.
양아치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저 망연자실 서 있었고,
주민들의 환호성이 이어졌다.
-와아! 꼴 좋다!
-야이 씹새꺄! 그러니까 누가 소방차구역에 주차를 하래 병신 새꺄!
-나가 뒤져라 병신아!
-이야 속 시원하다 씨발!
소방대원은 급히 차에서 내려 화재 상황을 살폈고, 최부장이 소방대원에게 말했다.
물론 최부장의 인맥이었다.
"불은 제가 껐습니다. 화단에 작은 불이었습니다. 별일 없습니다."
물론 구라다.
"다행이네요."
그때,
"야이 개새꺄!"
양아치가 소방대원을 향해 말했다.
"내..차... 내 차 어떻게 할 거야!"
"소송하시든가 알아서 하세요. 길이 막히면 밀어도 됩니다. 그럼 다들 수고하세요!"
소방대원이 떠나자, 그는 망연자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급박하게 흘러간 상황, 이제 내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어이."
"..."
그의 얼굴에 땀이 흥건했다. 나는 명함 하나를 꺼내 그의 이마에 탁, 붙였다.
"이제 우리가 어떤 회사인지 알겠지?"
"이 개새끼가!"
그가 눈이 까뒤집혀 내게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르려 할 때,
현준이가 그를 엎어치기 한 뒤 바닥으로 내팽겨 쳐버렸다.
"아직 한 방 남았어. 씨발놈아."
제 역할을 한다는 것.
그들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혼자서 충분히 해결가능한 일이었다.
휴먼매니저 스킬을 이용해서 정말 쉽고 간편하게 할 수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그간 조금 외로웠다.
그래서 이번 일은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내가 스킬로 해결하는 것보다 그들 나름의 능력을 사용하니 더 통쾌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다.
오과장은 그간 생계를 위해 따놓은 자격증이 많아서 많은 것을 다룰 수 있었고, 먹고 살기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최부장의 인맥은 무시 못 할 정도로 넓게 분포되고 있었으며 살면서 가장 통쾌한 날이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허나, 그 기쁨도 잠시 일을 끝마치고 나서도 그들은 불안에 떨었다.
화재경보기를 누르고 도망간 이팀장과 정주임은 벌금을 물지 않을까 걱정했고,
고현준의 엎어치기는 폭행으로 고발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까짓
내가 다 수습이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상관없다.
가장 일이 컸던 것은 소방차였다.
직원들끼리 모여 단지 내에서 회의할 때만 해도 소방 구역에 주차된 차량을 밀어내는 정도만 할 줄 알았는데 이건 뭐 그대로 들이 받아버린 정도라 수리비가 꽤 나갈 것 같았다.
물론 벤츠 말고 소방차 수리비.
아파트 단지내 주민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끌어내긴 했지만, 이건 확실한 수습이 필요한 일이었다.
소방차 수리비를 비롯하여 화재 예방에 힘써주는 지역 소방서 기부를 통해 해결하기로 했다.
게다가,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찍은 영상은 실시간으로 일파만파 퍼져버렸다.
그간 주차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주민들이라 소방대원들의 거침없는 행동을 칭찬했지만, 반대로 너무 강성적인 대응이 아니냐며 나무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비난적인 여론보다 소방관을 칭찬하는 긍정적인 여론이 더 많았다.
일단 벌어진 일,
이제 정말 맘 편하게 목을 좀 축이고 싶었다.
"건배!"
기분 좋은 회식이다.
시원한 생맥주 한 잔을 들이켜니 피로와 스트레스가 전부 가셨다.
이지혜 팀장은 연신 심장을 부여잡으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녀는 화재경보기를 누르고 튀었다.
어릴 적 친구들이 벨 누르고 튀는 것을 보며 왜 저러나 싶었는데,
실제 해보니 왜 했는지 알겠다며 웃었다.
"재밌네요."
맥주 한 모금을 마시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촬영해 놓은 장면들이 많은데, 이거 저희 경비 친구한테 보내줄까요?"
정주임이 말했다. 촬영된 영상을 확인했는데, 다시 봐도 통쾌하고 재밌었다.
이 모든 일은 단지 우리 회사 소속의 경비 직원이 겪은 갑질 때문이었다.
그가 영상을 통해 좀 더 나아진다면 목표를 달성한 격이지.
"이성민 경비원에게 보내드려."
"넵!"
그리고 최부장이 말했다.
"이번 기회에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인간들 있으면 싹 정리해버리자고."
싹 정리해버리자는 최부장의 말에 냉기가 느껴졌다.
그의 말이 진심으로 느껴져서 그런가.
내가 최부장을 보며 말했다.
"꽤 통쾌하셨나 보네요. 기분이 좋아 보이세요."
"좋다마다. 살면서 이렇게 기분 좋았던 적이 또 있으려나 싶다."
"앞으로도 많을 겁니다."
"흐흠."
최부장의 평생 처음으로 있었던 일탈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저렇게 흥분하는 것 같았다.
시끌벅적한 술자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저마다 할 얘기가 많은 듯 쉴 새 없이 떠들고 있는 와중에도,
오과장이 아무 말 없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마치 홀로 고독을 씹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오과장에게 물었다.
"너는 안 해본일이 뭐야?"
워킹휴먼에서 근무할 때 듣기론 자격증도 수십 개, 알바 경험도 엄청나게 많았다.
이력서 경력란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말이다.
오과장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다 해봤습니다. 스무 살부터 진짜 거의 다 해본 것 같아요. 바닥으로 들어가서 하는 일, 공중에서 하는 일, 산에서 하는 일, 바다에서 하는 일, 거의 다요."
"그게 가능해?"
"먹고 살려면 뭐라도 못하겠습니까."
"인재였네."
그러더니 정주임이 손을 들었다.
"저는 안 물어보세요?"
"너는 뭐 했는데?"
"저요? 제가 컴퓨터는 웬만큼 다 잘 다루거든요. 언제든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진짜? 왜 여태 얘길 안 하고?"
"언제 물어는 보셨어요?"
"그러네, 내가 물어보질 않았구나."
저마다 능력이 다양했다.
이번에는 이지혜 팀장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 같은 경우 능력은 아니지만..혹시라도 쓸 곳이 있다면."
"뭐죠?"
"과거 논현동 미용실에서 꽤 근무를 했거든요. 대학교도 미용학과 나왔고요."
"미용학과요? 전공을 살리시지 그랬어요."
"새벽 일찍 출근해서 늦은 밤까지 근무를 해야 하는데, 애 둘을 놓고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아.."
"실력은 녹슬진 않았어요. 예전에 영화 쪽 특수 분장도 해본 경험이 있거든요."
이지혜 팀장은 우리가 영화에서처럼 첩보 영화를 찍는 줄 아나보다.
분장 일이 딱히 도움 될 건 없겠지만, 그래도 열정은 무시해선 안 되지. 이지혜 팀장에게 말했다.
"언젠가 기술을 발휘할 날이 올 겁니다."
정리하자면 오과장은 만능, 정주임은 컴퓨터에 능했고, 이지혜 팀장은 미용학과를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최부장과 정길완 반장은 넓은 인맥이 있었으니,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정말 두려울 게 없었다.
그때,
현준이가 소심하게 손을 들며 나를 바라봤다.
저마다 하나씩 능력을 갖췄는데, 현준이도 뭔가 내세우고 싶은 게 있나 보다.
딱히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눈치 상.
"저도 하나 있습니다."
"뭐야?"
"경찰 준비한다는 친구가 이번에 합격했습니다. 저의 든든한 인맥이요."
"아, 그때 은행 경비하면서 경찰 시험 준비한다는 친구?"
"넵."
"잘됐네."
"흐흐."
현준이는 그냥 옆에만 있어도 재밌는 친구다.
그때,
-에휴, 최저시급 좀 안 낮추나.
호프집의 벽에 걸린 대형 TV에는 국회 청문회가 열리는 듯 보였다.
노동부 장관의 청문회인 것 같았는데,
사장의 짙은 한숨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나의 눈과 귀는 TV로 향했다.
휴먼매니저 직원들의 시선도 마찬가지 내 시선을 따라 향했다.
-기업과 업체의 중간 착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국회의원의 질문에 노동부 장관 후보의 답변이 이어졌다.
-다 아시다시피 과거에는 근로자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요즘은 사용자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져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본다면 파견근로자를 이용해 가지고 거기서 임금착취를 하고 그러한 시대는 좀 지나갔다고 봅니다. 물론 일부 악용하는 사례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