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0. (140/200)

크흐, 이게 행복이지

지영씨와 회사 인근의 카페에 왔다. 그녀가 잠시 화장실을 갔을 때 나는 스마트폰을 켜서 어제 있었던 1,019회차 로또 당첨 기사의 반응을 살폈다.

[1,019회 로또, 안도와 탄식 나온 이유...1등만 1,000명, 당첨금 천오백만 원]

[이번 주 로또 1등 1,000명…부산은 서면·신평동 판매점 30곳, 돼지복권방 30명 당첨]

ㄴ1등 50명이 정상적인건가???? 상식이 없어서 이해가 안간다 수학적으로도 도출되는 건가???

ㄴ불가능에 가까울 확률의 로또 1등이 1,000명이나 나올 확률은? 이상하지 않나?

ㄴ당첨돼도 기분이 별로겠네...

ㄴ번개맞을 확률이라매? 하루에 번개를 1,000명씩이나 맞냐?

ㄴ이게 무슨 로또인가....추첨방식을 바꿔야한다...

이번 1,019회차의 로또 당첨 인원을 천 명으로 설정해둔 탓에 역시 이번 회차도 원성이 자자했다.

댓글들은 하나같이 말도 안 된다며 이번 기회에 전부 모조리 갈아엎고 시스템을 새로 도입하자는 사람도 있었다.

로또 회사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이제 그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지.

구매 금액 인상에 대한 검토, 그리고 로또 시스템을 변경하는 방향에 대해서 기사가 올라왔다.

[로또 구매 금액 인상 검토]

[인생 역전은 옛말인 로또, 생존 방법은?]

[서민들에게 인생 역전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로또, 개선 방안 검토]

[역대 최대 판매율을 달성한 로또, 사회 이면을 들여다본다.]

ㄴ로또는 번호를 하나 더 늘리든, 판매금액을 인상해야함.

ㄴ인생 역전 한번 해보자!

ㄴ판매금액 이천 원이면 1등이 대체 얼마임?

ㄴ기본 50억은 넘어감.

ㄴ만약 번호 하나 더 늘리면?

ㄴ그때는 백억 이상임.

ㄴ레알 이게 인생역전이지 ㅋㅋㅋ

ㄴ금액 인상되면 한 게임에 이천 원?

ㄴㅇㅇㅇ 맞음 이천 원, 그리고 한 장에 만원이 되는 거임.

이제 로또 회사도 별수 없이 판매 금액을 늘리든지, 아니면 기존 여섯 개의 추첨번호에서 총 일곱 개 번호로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로또 1등 확률이 번개에 두 번 맞을 확률인데, 하루에 그런 확률을 천 명이 당첨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지,

게다가 2회 연속.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한국의 로또에 대해 취재를 했다.

[한국의 로또 열풍, 물가 상승과 비례한다.]

[인플레이션은 로또에서도 적용된다?]

"뭐가 그렇게 재밌으세요?"

"네?"

그녀가 화장실에서 다녀온 뒤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인터넷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어서요."

"뭐죠?"

"로또 1등이 천 명이 당첨됐다는 기사요."

"그게 재밌으세요?"

"신기한 거죠."

"저도 기사 봤어요. 로또가 조작이란 말이 있던데 도일씨 생각은 어때요?"

"조작이요? 조작일 수가 없죠. 인생 역전의 희망을 조작으로 추첨한다면 다른 나라의 로또도 마찬가지겠죠. 게다가 로또 회사는 불법 도박 사이트처럼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회사가 아니에요. 그게 조작이라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음.."

"조작은 아니지만 시스템은 있다고 봐요."

"시스템이요?"

"네. 로또만의 독특한 시스템이요."

"그게 뭐죠?"

"저요."

"네?"

"제가 로또를 전부 통제하거든요."

"정신분석이 필요한가요?"

"흐흐."

지영씨와 해묵은 감정을 다 풀어냈고 사사로운 농담 따먹기도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했다.

맘 같으면 술 한잔을 하고 싶었으나 요 며칠 귀가를 하지 못한 지영씨를 얼른 집으로 들여보내고 싶었다.

"지영씨 동생한테 연락 왔었어요. 누나가 연락이 안 된다고.."

"지훈이가요?"

"네. 그래서 제가 회사에 있을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아..어떻게 알았어요?"

"저라도 회사에 있을 것 같았거든요. 사이가 좋은가봐요? 동생이 누나 걱정을 많이 하는 것 보니까."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지영씨에게 물었다.

"네, 사이좋아요. 남들은 남매사이 저렇게 좋을 수가 있나 싶은 정도로 좋아요."

"정말요?"

"가족하고 매번 외식할 때마다 오해받는다니까요. 남친 이냐고."

"하. 남매사이가 좋다는 건 처음 들어보네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죠. 저는 사이좋아요. 싸운 적도 별로 없고 걔가 대들었던 적도 거의 없고요."

"신기하네."

"왜요? 제가 이걸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하면 항상 신기하다고 하던데. 도일씨는 동생하고 사이가 별로 좋지 않나요?"

"나이 차이가 좀 나니까 사이가 좋고 안 좋고를 떠나서 걔가 저한테 대들만한 사이즈가 안 됐죠. 꿀밤 맞으니까."

"아.."

"지영씨는 동생을 잘 다루는 것 같은데, 비법이라도 있을까요?"

"욕심 안 부렸어요."

"네?"

"먹을 게 하나라도 생기면 동생이랑 나눠 먹었으니까요. 그게 비법이라기엔 너무 단순하죠?"

"단순하지만 어렵죠. 하긴, 저도 그랬어요. 저는 지영씨보다 더했으니까요. 제가 알바해서 번 돈으로 치킨 사주고 피자 사주고, 그게 제 보람이었어요."

"아.."

"우리 너무 잘 맞죠?"

"..."

"이렇게 잘 맞는데 어떻게 우리가 헤어져요?"

내 말을 듣던 지영씨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커피를 한잔 마셨다.

그리고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다음에도 허튼짓하다가 걸리면 이걸로 안 끝날 거예요."

"넵"

이번에는 내 동생 도현이가 곧 오픈하는 베트남 음식점에 관해 얘기했다.

강남에 위치해서 지영씨의 직장에서 거리가 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같이 방문하자고 했다.

"전부 지영씨 덕분이에요."

".."

"가족이 함께 모여서 사는 거, 매번 꿈꿨던 일이거든요. 지영씨가 제게 해준 조언이 아니라면 이루지 못 했을 거예요."

* * *

지영씨에게 예전 남자친구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그녀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면, 도리어 그녀가 내게 과거 전적에 대해 질문을 쏟아낼 것 같았다.

내가 더 불리하다는 결론,

그래서 그냥 참았다.

그녀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길, 그녀는 조수석에 앉아 쿨쿨 졸고 있었다.

그간 회사일도 바빴을 테고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테니까 그간의 긴장감이 솔솔 풀리는 것 같았다.

"다 왔어요."

"미안해요. 깜빡 졸았네요."

"회사가 많이 힘들어요?"

"아뇨. 처음이라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아서요."

"얼른 들어가 푹 쉬세요. 주말인데."

"네. 도일씨도 들어가요."

나도 푹 쉬고 싶었으나, 이제 막 아파트 짐정리하고 있을 동생의 아파트로 향했다.

동생네 가족들에게 밥 한 끼라도 사주고 싶었다.

다시 강남으로 향했다.

동생의 아파트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면 될 일인데, 이제 동생의 집이니까,

-딩동.

벨을 누르자 동생이 문을 열고 나왔다.

먼지를 뒤집어썼는지 머리에 뿌연 먼지가 가득했다.

동생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형, 서울은 시발 공기마저 다르네."

"야, 머리에 그거 미세먼지냐? 좀 털어라."

"흐흐, 들어와."

집으로 들어가니 꽤 깔끔하니 많은 게 정리돼있었다. 이삿짐센터 풀코스로 계약했더니 실내정리부터 에어컨, 세탁기, 등 모든 걸 해결해줬다.

그리고 몰래 온 손님이 있었다.

‘엄마’

그래도 막내아들이 상경하는 소식을 들었으니 어찌 집에서 발 뻗고 가만히 있으랴,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손에 닿는 일 뭐라도 도움이 되고자 택시를 타고 왔단다.

어휴.

"밥은 다들 자셨어?"

내 말에 가족들이 모두 고개를 저었다.

"앞에 고기 집에서 밥이나 먹자고. 짐은 원래 한 번에 정리하는 거 아냐. 천천히 날 잡아가면서 해. 무리하지 말고."

엄마, 제수씨, 동생, 조카와 함께 인근 고기 집으로 향했다.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가족들이 뭉쳐서 아무 근심 없이 고기 집으로 가는 이 사소한 행복이 정말 그리웠다.

지방에서 조선소로 근무했던 동생을 상경시킨 것,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중 하나로 꼽으라면 그럴 수 있었고,

엄마를 동생네 집에서 함께 살게 하는 것도 그랬다.

그들에게 함께 먹고 살 수 있는 가게를 마련해준 것은 더 잘한 일이고.

동생 옆에 찰싹 붙어 가는 제수씨의 모습과 조카를 보니 내 옆구리도 살짝 시리긴 했지만, 이만한 행복이면 충분타.

가족들이 먼저 식당에 들어가고 동생과 나는 입구 흡연구역에 앉아 담배를 폈다.

"형. 고마워."

"고맙긴."

동생은 별안간 내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고맙다는 말도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형."

"응?"

"엄마가 나한테 돈 주는 거, 이거 형이 엄마한테 부탁한 거야?"

"뭐?"

순간 이해가 안 됐다. 무슨 돈을? 내가 엄마한테?"

"엄마가 나한테 이천만 원을 건네더라고. 이번에 가게 오픈한다니까 보태서 쓰라고, 그런데 엄마한테 그런 돈 없었을 텐데.."

"아..그래?"

"응, 오늘 계좌로 싸주셨어. 흐흐."

"좋냐?"

"세상 살맛 나지. 앞으로 엄마 잘 모시고, 가게 잘 꾸리면 진짜 행복할 일만 남아 있을 것 같거든."

엄마에게 2등 당첨금을 줬었던 적이 있었다.

아마 그 돈을 동생에게 준 게 아닐까 싶었다.

필요할 때 꼭 저축해두는 성질이 있었기 때문에, 마침 그 돈을 꺼낼 참이었겠지.

그런데 그 돈, 내가 결혼할 때 쓰겠다는 돈 아닌가?

어쨌든 여기서 불과 30M 떨어진 곳이 동생의 가게로 점찍어둔 곳인데, 현재 리모델링 공사 중이었다.

동생이 가게를 보며 말했다.

"저거 꼭 성공시켜볼게. 형."

"네가 하냐? 제수씨가 하지."

동생과 담배 한 대를 나누어 피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제수씨가 한껏 들떠있었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제수씨라 식당을 차리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 꿈이 목전에 있으니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으랴

반면에 동생은 어딘가 불편한 모습이었다.

그가 머리를 툭툭 치거나, 귀를 세차게 후비곤 했다.

"아, 요즘 머리가 영 아프네."

"응?"

"며칠 전에 사고 난 이후로 계속 이러는데, 이거 후유증 때문인가?"

"병원에 얘기 안 했어?"

"따로 안 했지. 퇴원 이후부터 그랬으니까. 이명이 심심찮게 들려."

"담배를 끊어 인마."

동생은 폭발이 발생했던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이야?"

아뿔싸, 완전히 잊었다.

엄마에게 사고 얘기를 하지 않기로 했는데, 무심결에 말이 나와 버렸다. 동생이 제 입을 막으며 후회하는 시늉을 하는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 있어. 동생이 며칠 전에 축구하다가 넘어졌거든."

"그게 사고야?"

"..."

"똑똑히 말해, 무슨 일 있었어?"

엄마가 정색하며 말했다. 동생은 입을 꾹 다물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고, 나도 이걸 어떻게 엄마에게 얘기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빠, 사고 났어요. 어머니."

결국 제수씨가 말문을 열었다.

"응?"

"직장에서 사고요. 다쳤어요. 입원했어요."

엄마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리고 제수씨는 눈치도 없이 고기를 불판에 올렸고,

-치익.

손주에게 계란찜을 먹이던 엄마가 이내 수저를 내려놓고 자리에 일어섰다.

"엄마."

내가 엄마의 손을 붙잡았다. 엄마는 매우 서운한 투로 나를 바라봤다.

"놔라."

"아, 왜 그래. 엄마. 별일 아니라니까, 엄마한테 얘기하면 괜히 신경 쓸까 봐 그랬어. 그치 도현아?"

"어, 엄마 나 진짜 쌩쌩해, 멀쩡해서 팔팔 날아다닌다니까. 보여줄까? 여기서 앞구르기 뒤구르기 보여줘?"

도현이는 이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으나, 그런 애교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엄마는 집안 가장으로 반백 년을 살았는데, 가족 일이 제 귀에 들어오지 않으면 굉장히 서운해 하거나 간혹 화를 냈다.

"..."

"미안해 엄마."

도현이가 엄마를 보며 말했다. 엄마는 글썽이는 눈망울로 도현이를 바라봤다.

"괜찮아? 몸은 어떻고?"

"어 엄마 진짜 괜찮아. 이명 들리는 건 어제 잠을 못 자서 피곤했나 봐, 진짜 몸 괜찮아. 그리고 이제 엄마랑 같이 살잖아?"

"어휴. 못산다. 못살아."

"화 풀어. 미안해."

내가 엄마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리고 간신히 자리에 앉혔고, 이제 엄마의 잔소리를 들을 시간이었다.

그때,

제수씨가 쌈 하나를 싸서 엄마 입에 들이밀었다.

"어머니, 먹어요."

엄마는 제수씨가 강제적으로 들이미는 쌈 하나를 기어코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거리는 엄마를 제수씨가 보며 말했다.

"저도 하나 싸줘요."

동생과 나는 서로 씩 웃으며 소주 한 잔을 따라 마셨다.

크흐, 이게 행복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