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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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LV4 상승」

「LV4 SKILL 원하는 날짜의 기억력 복원」

[유의 사항 - 많은 사용은 자제 바랍니다.]

내가 원하는 날짜에 모든 기억력을 동원하여 그때의 경험과 인상, 정보들을 복원할 수 있었다.

이제는 잊힌 기억들,

어떻게든 기억하고 싶어 몸부림쳐도 완전히 아득해져버린 기억을, 기억력 스킬로 이용하여 과거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이정도 취미생활은 돼야,

취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축하드립니다! 김도일님의 여섯 번째 메인 퀘스트 투자의 성공률이 상승했습니다!]

[현재 달성률 30%! 앞으로도 꾸준한 재생 부탁드립니다!]

읭?

뜬금없이 나에 대한 투자의 퀘스트 성공률이 상승했다.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살고 있었던 찰나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런데 왜?

생각해보니 이번 퀘스트는 나에 대한 투자였기 때문에 취미생활을 발견한 게 성공률 상승의 원인이 아닐까 싶었다.

크크크

휴먼매니저는 뭐든지 내가 1순위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꿰맞추려 부단히 노력하는 것 같았다.

「기억력」

나는 기억력이 굉장히 좋지 않은 편에 속한다.

누군가는 유치원에 다닐 때의 기억이 온전히 난다고 했으나,

내 기억은 초등학교 2학년 이후만 뚜렷했을 뿐 그 전의 기억은 사실 거의나질 않았다.

인간의 기억은 무한하지 않으며 중요하지 않은 것은 망각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건 틀렸다.

이제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으니까,

* * *

36년의 인생을 통틀어 내가 가장 기억하고 싶은 일은 뭘까.

막상 과거 여행을 떠나려니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가장 행복했던 때로 돌아가는 것, 아니면 힘들었던 때? 평범하고 일상적인 하루? 누군가 내게 지금 당장 떠오르는 과거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지영씨를 우연히 마주쳤던 결혼식장이라고 얘기할 수 있었다.

물론 가장 최근의 일이라 생생하게 떠오르긴 하지만,

그때의 지영씨 얼굴과 표정 속에 감춰진 감정과 설렘을 느껴보고 싶었다.

-삐리리리

하, 꼭 가장 중요한 순간에 동생 도현이에게 전화가 왔다.

"이사준비 끝났냐?"

-어, 지금 올라가는 중 두 시간 뒤에나 도착할 것 같은데, 형 그런데 이번에 엄마 모시는 거 혹시 며칠만 미루면 안 될까?

"왜?"

역시, 예상했던 결과였다. 동생에게 엄마를 모셔서 살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어제 저녁 물었는데,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그리고 나는 예상됐던 동생의 답변에 준비된 대답을 꺼내들었다.

"야, 엄마가 네 먹여 살리는데 얼마나 고생하셨냐? 기억 안나? 말년에 가족들끼리 어울리면서 사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

-아! 형!

"뭐?"

-엄마한테 미안해서 그래, 오해하지 말고, 괜히 이사 날짜에 맞춰서 모시려니 일만 시키려는 것 같잖아. 일단 이사 마무리하고 가게 정리 끝나고 오픈했을 때, 그때도 늦지 않으니까…. 지금은 좀 민폐야. 엄마한테.

"…."

크흠….

-형한테 미안한데. 대신 좀 얘기해주면 안 될까.

"도현아."

-응?

"형제끼리 미안한 게 뭐가 있냐. 내가 엄마한테 잘 얘기할 테니까. 너는 딴것 신경 쓰지 말고 너희 가족들이나 신경 써. 두 시간 뒤에 도착한다고?"

-응.

"내가 아파트에 도착해 있을게. 혹시 인력 필요하면 얘기하고, 내가 많이 데려갈 수 있으니까."

-괜찮아. 요즘은 이삿짐센터도 워낙 잘돼있어서 이분들이 다 해주셔.

"그려, 이따 봐"

-응! 고마워 형!

-뚝.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형제들끼리 나오는 다툼 1순위로 꼽자면, 개인적으로 부양 문제라고 생각했다.

휴,

동생은 다행히 제수씨하고 얘기를 잘 끝낸 것 같았다.

제수씨가 완강히 반대한다면 동생 입장만 난처해질 수 있었고, 괜히 가족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 있었다.

고마웠다.

어려운 결정을 해줘서.

앞으로의 일들이 기대됐다.

우리 가족들이 모두 내 품에 있었다. 뿔뿔이 흩어졌던 것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고 뭉쳐가고 있었다.

휴먼매니저도, 가족도,

이제 나는 그들을 품으면 될 일이다.

* * *

동생 도현이가 올 때까지 약 두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취미 생활을 위한 스킬을 활성화했다.

「기억력 스킬을 활성화합니다.」

내가 돌아가고 싶었던 곳은 명석이의 결혼식장이었다.

그곳에서 지영씨를 우연스럽게 마주쳤던 날, 그때 그 감정과 설렘을 느껴보고 싶었다.

[2021년 11월 1일 오전 10시]

명석이의 결혼식 날짜를 기입하니 곧 휴먼매니저의 시스템의 알림창이 떴다.

이제 생각해보니 명석이의 결혼기념일을 강제로 기억하게 됐다.

[김도일님의 기억력을 활성화시킵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을 편안하게, 몸을 가벼이 소파에 누웠다.

문득 영화 이터널선샤인이 생각났다.

주인공은 사랑했던 연인과의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하지만, 이미 각인된 추억은 쉽게 지우질 못한다.

서로가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영화였던 것 같다.

20년 전에 봤던 영화라 잘 기억은 나질 않는다.

흐흠.

현재 UNI가 없어서 기억력에 관한 스킬을 만렙으로 달성하진 못하지만, 나름 짐작하건대, 이터널선샤인의 영화처럼 만렙은 기억을 지우는 스킬이지 않을까 싶다.

[기억 활성화 완료]

이제 곧 세상에서 가장 기이한 내 취미생활이 시작된다.

[2021년 3월 12일 오전 11시의 기억으로 돌아갑니다.]

어둠 속에서 잔상이 뚜렷해지기 시작했고, 기어이 결혼식장의 모습이 펼쳐졌다.

촉감, 냄새, 표정, 분위기 등이 실제처럼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며 서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절연한 금수저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명석이를 꼭 안아주며 결혼을 축하해주고, 축가를 부르기 위해 무대에 선 내 모습이 마치 실제처럼 느껴졌다.

마이크를 쥐었고 명석이 부부를 위한 축가를 시작했다.

음정과 박자는 역시 정확했다.

-사랑하기 전에는, 그댈 사랑하기 전에는.

그리고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기억속의 내가 지영씨를 발견한 듯 토끼눈을 뜨며 노래를 불렀다.

아마, 이때쯤 내가 그녀를 발견한 순간이지 않았나 싶다.

여기서 기억을 스톱시켰다.

-스톱

기억을 잠시 멈춘 뒤 나는 지영씨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다가갔다.

주위 인물들이 모두 흐릿해졌다.

내 시선은 온전히 지영씨에게 향해있다.

지영씨는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었고 축가를 부르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소를 짓고 있는 줄은 몰랐었는데,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흐뭇한 미소였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지영씨라 반가웠다.

-시작

다시 내 축가는 시작됐고 지영씨는 스마트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급히 깨톡을 하고 있었다.

-정지

이건 참 고약한 취미생활이다.

몰래 남을 훔쳐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이게 맞는 일인가 싶었다.

씁쓸했다.

늦은 점심 홀로 외로이 청승만 부리는 것 같아 처량하게만 느껴졌다.

휴우.

기억력 스킬을 종료시키려는 찰나, 그녀의 손가락에 환하게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반지?

네 번째 손가락?

내가 본 게 맞다면 네 번째 손가락 반지가 의미하는 바는 인연이 있다는 뜻이었다.

지영씨가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는 건 내가 전혀 몰랐었다.

과거에 누굴 만나든 무슨 과거가 있든 현재의 지영씨가 중요했기 때문에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물어보지도 않았고 내가 딱히 관심도 없었다.

나도 많은 여자를 만났으니까.

-깨톡

때마침, 누군가에게 깨톡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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